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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9) 퍼스널 스페이스

온단테 |2005.05.05 07:47
조회 219 |추천 0
9. 퍼스널 스페이스

나는 주변의 사람과 사물에 거리를 두고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근원을 알 수 없다는 불안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고,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게 된 다음부터 일정하게 타인들과 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불안했습니다. 바닷가에서 나를 도와주신 할아버지와도 서로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습니다. 난 할아버지께 과거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고, 할아버지는 그 뒤로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도 나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고, 우리들은 그렇게 십여년 동안 마치 현재만이 있는듯 바다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몇해전 본 ‘쇼생크탈출’이라는 영화에서 마지막 주인공들이 도착한 바다는 ‘추억이 없는 곳’이라고 했는데 내가 머물던 바다는 바로 그런곳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어느날 할아버지는 잠자리에서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난 할아버지 곁에서 삼일 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의 죽음보다도 나와 맺어진 단 하나의 세상과의 인연이 사라진 것 같아서 두렵고, 서글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만류하는 이웃분들을 떠나 난 무작정 서울로 왔습니다. 다행히도 이웃분의 소개로 편의점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행동에 몇몇 사람들은 의아해 합니다. 삼년동안 나를 지켜보았던 편의점 사장님으 빨리 경찰소를 가던가, 구청에 가서 자신의 신분을 찾던가 아니면 새로 등록해서 떳떳하게 살아가라고 말하셨고,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은 “성현씨는 얼굴도 잘생겼고 머리도 좋으니깐 분명히 성공 할 수 있을꺼에요. 다른일을 찾아보세요.”라고 하며 나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충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난 적당히 웃으며 맞장구쳐주었고 그들과 나 사이에 선을 긋고 조용히 그들을 나의 영역에서 몰아냅니다. 설사 그들의 말대로 하더라도 결국 변하는 것은 업을 것이라고 난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낙관적인 견해 일 뿐이고, 나는 세상과 이질적인 어떤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유진이라는 소녀와 손을 잡은 순간, 난 강한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녀와 처 신체접촉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 보다는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나의 피부에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이물질이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그녀의 흔적들을 쫓아 그녀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난 흥미와 흥겨움 보다는 점점 회의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

또 다른 한 주가 시작되고 그 두번째 날의 오후 2시에 그녀는 또다시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나의 마음이 상당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휩싸이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말이 하지 않더라도 전달이 되나 봅니다. 그녀는 차가운 나의 태도를 금새 느끼고 잠시 멍하니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아무말 없이 생수 한병을 가져와 계산하였습니다.

“육백원 입니다.”

난 사무적으로 대답했고.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돈을 건네 받은 후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웠습니다. 터벅터벅 걷는 발자국소리, 그러나 난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 그녀의 존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녀가 나의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린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난 책에 몰두해 있었고, 다행히 손님이 없어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잠시 책을 읽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습니다. 그리고 물건들이 잘 진열되어 있나 매장을 한번 훑어보려고 했는데 나의 눈에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져있었습니다.
편의점 한곳에 그녀가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난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갔습니다.

바닥에는 생수통과 알약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검은 다이어리가 꼭 들려 있었습니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듯 차가운 바닥에 얼굴을 맞대고 있었고 붉으스름하던 볼은 창백하게 변해있었습니다.

난 두려움, 놀라움과 함께 슬픔과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녀를 나의 영역에서 밀어버렸고, 그녀는 나의 의지에 밀려 자리에 쓰러진 것 같았습니다. 난 나와 손을 맞잡았던 그녀의 손을 다시 내 손에 쥐어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맥박이 뛰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맥박은 손과 손을 통해서 나에 전해졌고, 나의 심장도 거칠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기쁨과 함꼐 빨리 그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난 서둘러 전화기로 달려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나와 손을 맞대고 있는 그녀의 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아요?”

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고, 그녀의 눈은 나의 목소리에 서서히 뜨여졌습니다.

“하하하! 아저씨 속았지요. 어쩌면 그렇게 무관심 할 수가 있어요. 내가 얼마나 아저씨를 속이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계속 비틀거렸습니다.

“괜찮으니까 잠깐 거기 않아있어요. 갑자기 움직이면 안되니까.”

“하하하! 장난이라니까요.”

그녀는 나의 만류에도 불과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난 그녀를 부축해서 스낵바의 의자에 앉힌 후 뜨거운 녹차 2개를 가져왔습니다.

“어떄요?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내가 녹차를 그녀에게 내밀며 걱정스레 묻자 그녀는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습니다.

“헤헤, 쇼를 한 보람이 있네요. 아저씨가 이제서야 내 눈을 똑바로 봐주고.”

그녀의 미소에 그때서야 내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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