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랑의 기본은 솔직함이다.
우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었다. 하염없이 걷던 우현은 익숙한 풍경에 고개를 들었다. 신애의 집이었다. 신애의 아파트 단지 안에서 우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도 모르게 신애의 집으로 향한 걸음이었다. 문득 상근이 외침이 귓가에 울렸다.
[야, 그렇게 못 잊겠으면 솔직해져! 그게 답이다!]
우현이 항상 신애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현 성격에 신애가 싫었다면 10년간 사귀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애의 순진함이 좋았었다. 신애의 맑은 성격이 좋았었다. 그에게도 그녀에게 빠졌던 시간이 있었고, 그에게도 그녀에게 얽매였던 시간들이 있었다. 단지 우현은 꽉 막힌 그녀의 성격이 답답했을 따름이었다. 어디서든지 자신을 구속하고, 자신의 행선지를 알아야만 하는 그녀의 그런 성격 단면들이 그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그는 계속 그녀와 사귀었을지도 모른다. 우현은 지금이라도 신애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신애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숙이고 들어갈 자신이 있었다. 우현은 근처 놀이터 그네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자신을 사심 없이 좋아해줄만한 여자가 세상에 신애 말고 또 있을까? 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것 같았다. 우현은 핸드폰을 들었다. 우현이 앉은 그네에서 신애의 집은 바로 보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신애가 전화를 받았다.
“나야.”
우현의 목소리에 전화기 너머 신애는 말이 없었다. 이럴 것이라는 것 짐작 못하고 전화한 우현이 아니었다. 우현은 생각했던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었다.
“나야. 우현이. 곰곰이 생각해 봤어. 내가 잘못했어.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신애야.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응?”
[.............]
우현의 잘못을 시인하는 말에도 신애는 아무 말 없었다. 신애는 갑작스레 걸려온 우현의 전화에 당황스러웠고, 그의 쉽사리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에 또 한번 당황스러웠다. 그의 말에 떨리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신애의 머릿속에는 한 강의 얼굴이 떠올랐다. 신애는 침대에 한껏 웅그린 자세로 앉아 전화기 너머의 우현 숨소리까지에도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나빴어. 그래. 솔직히 인정해. 너한테 내가 잘못했다는 거. 너에게 내가 잘못한 게 많다는 것. 그러니깐 이제 나에게 기회를 줘. 잘할게…….잘할게 신애야......”
우현의 목소리는 약간 촉촉이 젖어있었다. 울먹이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신애의 가슴이 찌릿하게 울었다.
[너무 늦었어........]
한참이 지난 후 겨우 신애가 한 마디 내 뱉었다. 신애의 말에 우현이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신애의 대답에 우현도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술김이라도 술기운을 빌어서라도 신애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현은 독백하듯 말을 이어갔다.
“네가 원망스러웠다. 나도 남자인데……. 남자란 동물에게는 섹스도 중요한데 그것을 표출하게 하지 못하는 네가 미웠다. 처음엔 나도 인정하려고 했어. 그래 네 말처럼,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깐…….”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욕망은 너를 향한 미움이 되더라. 그게 싫었어. 널 미워하게 되는 게 싫었어. 내가 널 정말 미워했던 것은 아니었어. 내가 구박하면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반응 없는 네가 싫었던 거야.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휴…….”
[.........]
“네가 떠나니깐 알겠더라. 너 만큼 나를 봐줄 사람 없다는 거……. 나 같은 날라리 누가 봐주겠냐…….신애야……. 나 너 없이는 못살겠다.”
처음이었다. 우현이 자신의 속마음을 속 시원히 신애에게 털어놓은 것은……. 우현의 그런 말투에 신애는 마음이 움직였다. 울먹이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따라 신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1년 2년도 아닌 10년 세월이었다. 그 세월이 고작 몇 달 사이에 무 자르듯 없어지지는 않는다. 신애는 자신의 울음소리가 우현에게 들릴까 수화기를 틀어잡았다.
“다 그대로인데, 모든 다 그대로이고 너만 없어진 것뿐인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초라해져만 가는 내가 싫다. 흑…….읍…….”
[울지 마…….]
애써 울음을 삼키는 우현에게 신애가 겨우 입을 떼었다. 그의 말에 가슴이 찌릿하고 가슴이 아파왔다.
[진작, 진작 그래주지 그랬어. 진작 날 좀 붙잡아 주지 그랬어!]
신애가 악 바친 눈물을 삼키며 울부짖었다. 신애의 말에 우현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왜 진작 그녀를 알지 못했는지, 왜 떠나보내 버리고 난 후에야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울지 마, 신애야…….울지 마…….”
[넌 정말 나쁜 놈이야…….넌…….정말…….]
신애의 눈물에 우현은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안타까운 회한의 눈물만이 흐를 뿐이었다. 좀더 솔직히 그녀에게 다가설걸. 이라는 늦은 후회만이 남을 뿐이었다.
“미안하다......”
우현은 자신의 눈물을 더 이상 신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어버렸다. 꺼져있던 신애의 방에 불이 들어왔다. 잠을 깨운 것은 아닌지. 미안함이 남았다. 우현은 쓸쓸히 일어나 걸었다. 우현의 전화를 끊고 신애는 몸을 일으켜 불을 켰다. 우현이 이렇게만 나오지 않았어도, 나쁜 놈이라고 욕하며 죄책감 느끼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신애는 미안함이 들었다. 우현에게 미안함이 든다는 것 자체가 한 강에게도 미안한 것임을 알면서도 오늘만큼은 우현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안함이 흘러내렸다. 베란다로 가 새벽 공기를 마시던 신애의 눈이 커지면서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우두둑 흘러내렸다. 가로등 사이로 쓸쓸한 우현의 등이 보였다.
“왔었구나....... 나에게 왔었구나......”
신애가 중얼거렸다. 방충망 너머의 우현을 따라 신애의 손길이 움직였다. 한 걸음 두 걸음……. 지금이라도 쓸쓸한 그의 등을 안아 주고 싶은 욕망이 들었지만, 이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였다. 자신의 아픔을 한 강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신애는 그렇게 우현을 떠나보내고 있었고, 우현은 그렇게 신애를 다시 품고 있었다.
근무 중인데도 신애의 머릿속은 온통 한 강과 우현의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가 오는지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 뿐 정신은 온통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제 우현 때문에 한숨도 못잔 신애였다. 우현이 왜 이제 와서 자신에게 그럴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민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하염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신애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을 알았는지 때마침 찾아온 제과점 주인아저씨가 신애의 책상 위에 치즈케이크 상자를 올려놓으며 한 마디 건네었다.
“아가씨, 무슨 근심 있으신가?”
“그게…….”
“고민이 있을 때는 이 달콤한 치즈케이크를 먹어보라고. 내가 이리 뵈도 사랑을 가득 담아서 만든 거니깐!”
아저씨의 말에 신애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제과점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은행을 나섰다.
“신애야!”
“어? 윤정아!”
제과점 아저씨가 나가자 곧바로 윤정이가 은행 안으로 들어왔다. 더운 듯 손부채를 해 가면서 에어컨 있는 곳을 종종 걸음을 치면서도 윤정의 시선은 신애를 향해 있었다. 한가할 시간이여서 그런지 은행 안에는 윤정과, 유대리, 진아와 신애뿐이었다.
“여기 어쩐 일이야?”
놀란 신애와는 달리 윤정이는 태연했다. 연신 에어컨 앞에서 알짱거리던 윤정이 신애의 물음과는 상관없는 말을 꺼내놓았다.
“날씨가 너무 더운 거 있지? 완전히 여름이라니깐! 그래도 넌 좋겠다. 여긴 엄청 시원하네!”
텔레마케터식의 목소리가 몸에 베서인지 그런 말을 하는 윤정이의 목소리는 간드러지다 못해, 간질거리기까지 했다. 윤정이의 목소리가 웃겼는지 진아가 티 안 나게 킥킥거리고 있었다.
“대 놓고 웃어도 되요. 직업이 텔레마케터라서 그런 거니깐! 웃기죠?”
진아의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윤정이 빠르게 신애를 향해 다가오면서 개구지게 말했다. 그런 윤정이 성격이 신애는 부러웠다. 자신이 저런 상황이었다면 분명 마음 상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은행에 무슨 일로 왔겠어? 쿡쿡 그래도 이렇게 환한 대 낮에 나 보니깐 좋지?”
윤정이 쿡 웃으면서 말했다. 작은 옆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어 윤정이 돈 뭉치를 신애에게 건넸다.
“사실 다른 은행에서 거래를 쭉 했었는데 마땅치도 않고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이럴 때 써먹어야지. 수익 많은 예금상품 있어?”
“이게 다 얼마야?”
“다 합해서 한 사천돼.”
윤정이 연신 손부채로 얼굴을 부쳐대며 말했다. 사천이라는 말에 뒤에 앉아있던 유대리가 앞에까지 나와 윤정이 옆에 서서 물었다.
“이걸 다 예금으로 하시게요?”
“네. 요즘 제1금융권은 이자가 영 꽝이라서요! 좋은 거 있나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안 그래도 요즘 실적 문제로 지점장님께 혼이 났던 유대리였다. 윤정의 물음에 유대리가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윤정을 안에 있는 특실로 안내했다. 작은 은행에서 4천이면 대단한 돈이었다. 윤정이 유대리를 따라 들어가면서 신애를 향해 윙크를 했다.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조금 있다 보자’고 속삭였다. 윤정의 입 모양에 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이 지나 유대리가 나오면서, 신애를 향해 말했다.
“신애씨, 이제 곧 퇴근시간이고 손님도 별로 없으니깐 들어가서 친구랑 이야기 하고 있어요.”
“네.”
유대리의 말에 신애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윤정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신애에게 권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근무 시간 아니야?”
“맞아. 아니 아니야!”
“무슨 말이야? 맞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근무 시간은 맞는데 어제부로 그만뒀으니깐 아니라는 거지.”
“뭐? 너 일 그만뒀어?”
“응. 그렇게 됐어.”
신애가 윤정에게로 바짝 붙으며 윤정을 바라보았다. 신애의 심각한 얼굴을 본 윤정이 신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렇게 온갖 근심어린 얼굴로 보지 말라고! 별일 아니니깐…….이거 먼저 말해야 겠네.”
윤정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신애의 귓속에 대고 속삭였다.
“나 사실 시집가!”
“뭐?”
신애가 놀라며 반문하자, 윤정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너 남자 있다는 이야기 없었잖아.”
“네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그리고 사실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뭐 말하고 할 새도 없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너 퇴근 시간 안됐어?”
윤정의 물음에 신애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퇴근 시간이야.”
“가자, 나가서 이야기 하자!”
신애와 윤정은 근처 생과일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날씨가 벌써 여름으로 훌쩍 다가서서 그런지 가게는 사람으로 붐볐다. 겨우 자리가 나 윤정과 신애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빨리 말해봐!”
조급해 하는 신애와 달리 윤정은 여유로웠다. 주문을 받으러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키위주스 2잔’을 간단히 말하고선 신애에게 브리핑 하듯이 말했다.
“사실 예전부터 만나는 남자는 있었어. 같은 동네 살고 나보다 한살 위야. 그 사람이랑 만난지는 오래 됐지만, 사귀는 관계는 아니었고…….”
“그런데 어떻게 결혼까지......”
“나도 그게 미스테리야. 무슨 정신으로 프러포즈를 승낙했는지…….”
윤정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긴 듯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사람 나도 좋아는 했어. 근데 남자답지 못한 성격이 맘에 안 들었었어. 그런데 얼마 전에 프러포즈해왔었어.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의 솔직한 태도가 내 마음을 끌었었어. 글쎄 사내자식이 눈물까지 글썽이더라니 깐. 뭐 그런 상황에 깜박 넘어가서 결국 승낙 하고 말았어.”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 사람이 그러더라. 자긴 가진 게 하나도 없다고, 대뜸 와서 자기는 장남이라서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지금 받는 월급은 얼마고,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솔직히 자기는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생각해 본 적도 그럴 생각도 없다고 말하더라. 그 말에도 조금 감동이었는데, 자신의 상황 뭐 이를테면 집안 환경 이런 것 있잖아.”
“그런 것도 중요하지.”
윤정이 신애의 호응을 바라자 신애가 재빠르게 말을 맞추어 주며 말했다.
“그래. 솔직히 그런 집에 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사람이 그렇게 나오면서 그래도 하나 약속한다고. 뭐든 같이 하자고. 설거지든, 빨래든 청소든 같이 도와줄 자신은 있다면서 사람 하나 구제하는 셈 치고 자기랑 살자고 말하더라.”
“그래서 승낙 한거야?”
신애의 말에 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윤정은 행복해 보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나, 행복감에 도취된 사람들만이 지닐 수 있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처음엔 윤정의 이야기를 듣고 말릴 심산이었던 신애도, 윤정의 표정을 보고선 단념했다.
“정말 축하한다.”
신애의 말에 윤정이 피식 웃으며 ‘축하는 무슨’ 이라고 말했다.
“근데 너 그 사람이랑은 잘 되가는 거야?”
“누구?”
“그 한 강이라는 사람…….”
윤정이 한 강이 이름을 꺼내자, 신애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 졌다. 우현이 왔다 간 이후 신애는 의식적으로 한 강을 피했다. 한 강의 전화도, 한 강이 문자도……. 가끔 기다리는 한 강에게 피곤하다는 말로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윤정에게 하자 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랑 했던 사람이 그렇게 나오면 흔들릴 만도 하지만, 신애야.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 지금 당장은 우현이가 아쉬워 너에게 그런다 는걸 너도 알고 있잖아.”
“알고 있지만 …….”
“한 강이라는 사람은 아쉬워서 널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난 네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까라고 믿어. 알지? 10년 동안 우현을 만난 것도 판단 미스라는 것.”
윤정의 말에 신애는 착잡했다. 그와 사랑했던 것 까지 판단 미스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애의 주변 모든 이들이 우현과의 만남을 그렇게 표현했다. 잘못된 만남. 그날 우현의 진실 된 속마음을 들어서 일까? 신애는 우현이 더 이상 밉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소연이라는 그 여자애와 행복하길 빌고 또 빌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자신을 흔들지 않기를 빌었다.
“네 속마음이 뭐야?”
윤정의 진지한 물음에 신애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한 강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사실 많이 흔들려. 우현이 막상 그렇게 나오니깐…….”
“그 자식. 욕도 못하게 나오는구나. 그치?”
“응. 사실 나쁜 사람으로 그냥 남았으면, 그랬더라면 덜 아플 텐데……. 이젠 그게 아니니깐 그게 슬퍼.”
“신애 네 심장은 누굴 보면 먼저 뛰니? 조건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네 심장이 말 하는 대로 행동해. 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구니?”
윤정의 물음에 신애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머릿속에서 그리고 가슴속에서 한 강이 떠올랐다. 하지만 선뜩 대답하지는 못했다. 한 구석에 남은 우현이 자꾸만 걸려, 그리고 그 우현에 대한 기억이 한 강에게 미안스러워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심장에 진실해! 그게 사랑이니깐. 나도 사실, 그 남자 조건 보고 결혼 상대자로 생각조차 안했었어. 근데 내 심장이 사랑이랜다. 웃기지? 너도 알지? 우리 집 넉넉한 편이 아니라 결혼은 조금 재력이 있는 사람과 하고 싶었어.”
윤정의 말에 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정은 고등학교 때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결혼은 돈 많은 남자랑 한다고, 윤정의 집이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에 그 누구도 윤정의 생각에 반박하지 않았었다.
“근데 며칠 전 그 사람 프러포즈를 받는데 심장이 미친 듯 뛰는 거야. 마치 백 미터 달리기 하고 온 애처럼 말이야.”
말 하는 내내 윤정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프러포즈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으로 충족해 보였다. 신애는 진심으로 그녀를 축복했다. 축복받는 사랑. 우현과 자신도 이렇게 축복받는 사랑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새삼 흩어진 사랑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흔들리지 마. 이젠 너만 생각하지 말고 한 강이라는 그 사람도 좀 생각해 주라고!”
버스에 탄 윤정이 버스 창문을 열고, 신애에게 재빨리 외쳤다. 사라져 가는 버스의 끝자락을 신애는 한 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곤 윤정이 한 말을 읊조렸다.
“흔들리지말라고?......”
“혹시 날 생각 하지 않았어?”
언제 나타났는지 한 강이 신애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갑작스런 한 강의 출현이었지만 신애는 놀랍지 않았다. 마치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봤을 뿐이었다. 신애가 한 강의 얼굴을 놀람 없이 쳐다보자 한 강이 머쓱한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그동안 우현 때문에 흔들렸어요!”
느닷없이 통보 식으로 신애가 한 강을 향해 말했다. 그녀의 태도에 한 강이 신애를 쳐다보았다. 그는 말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다음 말을 차분히 기다리는 듯 했다.
“그래서……. 그래서 미안해요. 내가 우현을 생각하면서 아직까지도 미안함 뭐 이런 감정이 남아있었어요. 그게 미안해서 못 만났던 거예요.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난다는 게 죄짓는 것 같아서요.”
“그거 였어?.....”
신애의 말에 한 강이 미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려서 시원해진 신애의 단발머리를 한 강이 기분 좋게 매만지며 말했다.
“말 해줘서 고맙네. 안 그래도 섭섭 하려던 찰나 였거든.”
그의 말에 신애가 죄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숙여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떨리고 있었다.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떨리고 있었다. 가슴이, 심장이, 미친 듯 그를 향해 반응하고 있었다. 한 강이 한 팔로 그녀를 슬쩍 끌어 당겨 가슴으로 안았다. 신애는 그에게 안겨 그의 심장소리를 듣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솔직해 지자고 아가씨! 이유도 없이 기다리는 사람 피마른다.”
장난기가 다분히 어린 말투였지만, 한 강의 말속에는 절박함이 묻어나 있었다. 신애는 그 기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며칠씩 우현이 잠수를 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피마름의 연속이었다. 피가 마르고,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고, 행여나 하는 생각들로 잠못이루고. 그런 것을 알면서 한 강에게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에 신애는 미안했다. 자신의 아픔을 한 강에게 전해 주었다는 게 미안했다. 신애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한 강의 등을 껴 앉았다. 두근거리는 한 강의 심장소리가 좀더 가까이서 들렸다. 자신의 심장소리처럼 빠르게 덜컹거리는 그의 심장과 신애의 심장은 하나로 뛰었다. 2인 1조 달리기처럼, 둘은 그렇게 묶여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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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짧게 나마 리플 달아주세요^^* 오늘은 님들의 리플이 무한으로 필요한 날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