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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병 물려준 내가 죄인.(펌)

鄭定久 |2005.05.12 09:25
조회 442 |추천 0

몹쓸병 물려준 내가 죄인  
고엽제 후유증 사망 아들에 4년째 편지쓰는 이윤문씨

"몹쓸병 물려준 내가 죄인"

■ 30일 베트남戰 종전 30주년 2세들 보상 아예 못받아
"딸 혼사길까기 막을라" 병명 숨긴채 고통의 나날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인 이윤문씨가 29일 자신의 집 거실에서 가천 길 대학이 아들에게 발급한 명예졸업증서 등을 보다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는 30일. 전장의 포성은 멈춘지 오래지만 전쟁으로 인한 고엽제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의 상처는 참전용사는 물론 그 2세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어 이들에게 베트남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의 역사다. 1968년에 파병돼 1년간 통역병으로 복무하다 귀국한 뒤 다시 70년부터 2년간 전쟁에 참여한 이윤문(59)씨. 그는 최근 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들에게 편지를 써 오고 있다. 아들 범석(당시 22)씨는 2001년 5월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과 같은 증 세로 세상을 떠났고 이씨는 자신의 질병이 아들에게 유전돼 이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일기장마다 하루하루 “아버지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다. 때묻지 않은 그 곳에서 영원히 편히 쉬거라”는 등의 내용으로 아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절절한 그리움을 토해내고 있다. 이씨는 22살이던 68년 백마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에 첫 발을 내딛었다.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장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미군비행기에 서 쏟아지는 고엽제가 얼마나 치명적인 지도 모른 채 적과 맞서 싸웠다. 2차례 파병되며 총 3년여의 기간을 보내고 귀국한 이씨는 인천에서 전자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려갔다. 1남1녀의 평범한 가장으로 살던 그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난 것은 귀국후 30년이 지난 96년 5월. 갑자기 호흡곤란과 현기증으로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병명은‘고혈압으로 인한 부정맥 증세’라는 심각한 심장질환 이었고 결국 심장 옆에 인공심장박동기를 부착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발병 원인은 역시 고엽제였다. 그는 2002년 정부로부터 고엽제후유의증 (고엽제로 인한 직접적인 질병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의심될 만한 증세)경도 판정을받아 치료비 지원을 받고 있다.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고 매일 20여 개의 알약을 복용하는 중증 환자가 됐다. 2001년 5월 이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인천 가천길대학 3학년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것이다. 아들은 치료도중 숨졌고 사인은 ‘고혈압으로 인한 부정맥’으로 판명됐다. 아버지 이씨가 앓고 있는 증세와 같은 것이었다. 고엽제 후유증 환자 가족 중 46명에 대해서는 ‘유전으로 인한 발병’으로 정부가 인정해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처럼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의 경우 2세들은 고엽제 관련 질병 심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이씨는 아들이 자신 때문에 숨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 의학적인 규명도, 정부로부터의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이씨는 이제는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딸(28)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아버지가 될까 두렵다. 자신이 고엽제 환자라는 게 알려질 경우 배필마저 구하기 어렵게 될 까봐 입조심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씨는“비록 내 몸은 썩어가고 있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라며“나와 같은 고엽제 관련 환자들을 정부가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i닷컴 > 한국일보 > 사회 >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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