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선생님을 한다니.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대고, 고등학교 때 성적은 뒤에서 5등 안에 들 던 나였다. 그런 내가 선생님을 한다니. 나는 고개를 내 저었다.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주머니 속에는 달랑 천 원짜리 몇 장이 있을 뿐이었고, 부모님께 최후 통첩을 받은 뒤였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그 모든 원조는 끊길 것이었다.
나는 열심히 생활 정보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다방, 유흥주점 광고는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광고가 바로 학원 강사였다. 학원 강사?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나는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학생이었었으니까. 그런 내가 공부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죄악이었다. 윽. 나는 얼굴을 신문지 위에 묻었다. 그렇지만 뾰족한 수도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국어 강사를 구하신다고 해서요..
나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경험자냐고 물어볼 것이고 없다고 그러면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을 것이다. 몇 번 당해봐서 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뜻 밖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요? 한번 방문해 줄래요? 이력서 가지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네? 저는 초본데요..
-아, 괜찮아요.. 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있나? 한번 와줘요. 집이 어디에요?
-일곡동인데요..
-잘됐구만. 오늘 2시 즈음에 와줘요.
전화는 끊겼다. 그러나 나는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는 재빨리 시계를 바라봤다. 10시 20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는 담배 한 대를 태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학원은, 생각보다 컸다. 큰 빌딩의 2,3,4층 전부를 학원에서 쓰고 있었다. 솔직히 기가 죽은 나는 주춤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2층에 들어서자 큰 괘종시계가 나를 반겼다. 나는 상담실이라고 쓰인 창문을 빼꼼 내다봤다. 안에는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내가 창문을 두드리자 그 남자가 밖을 내다봤다. 남자가 쓰고있는 안경이 반짝, 빛났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 강사 구하신다고 해서요..
-아, 그래요?
남자는 친절하게 웃으며 상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서 교무실로 통하는 나무 문을 열었다.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막, 교무회의가 끝나 아직까지 자리에 앉아있던 학원의 모든 강사들이 나를 바라본 것이었다. 그 눈들이 보내는 호기심에 나는 부담스러워졌고, 이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원장님, 강사 인터뷰 오셨는데요?
-아, 그래요?
저 쪽에서 키가 크고 시원시원하게 생긴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원장이라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긴 원장이 여자구나. 전화를 받아 친절하게 말해준 사람이 원장이었다니. 나는 잠깐 동안 감격스럽기도 했다. 우습게도. 여자는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자리를 권했다. 내가 자리에 앉는 사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상담실로 들어와 원장이라고 쓰인 자리에 앉았다. 저 남자는 누구지? 나는 궁금했지만, 우선은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이력서를 가져왔느냐고 했다.
내가 이력서를 내밀자, 여자가 대충 보고는 남자에게 넘겼다. 남자는 꼼꼼하게 보고 다시 여자에게 넘겼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얼마나 길었는 지 모른다.
-얼굴을 보니까, 우리 학원이랑 잘 맞겠어. 나는 했으면 하는데?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잘 해볼 자신 있어?
-아, 네.. 시켜만 주신다면..
나는 일부러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여자가 잠깐 동안 망설이더니 말했다.
-저, 그럼 급료를 얼마나 받고 싶어요?
급료? 나는 다시 한번 내 귀를 의심했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냐? 다른 학원에서는 시강도 하라 그러고 정말 꼼꼼한데서는 수습기간도 둔다. 그런데 이 학원은 오자마자 급료를 물어보다니.. 그것도 얼마나 받고 싶냐고. 나는 또 겸손하게
-저, 주시는대로 받겠습니다. 아직 경력도 없고.. 배우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데요.
그러자 여자가 활짝 웃어보였다.
-그래요? 그런 마음가짐 참 좋네요. 백만원으로 하죠.
-네?
백만원? 너무 센거 아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곳에서, 제일 많이 준다고 한 곳이 팔십이었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백만원은 너무 적은 액수였다. 내가 한 고생에 비하면. 흥.
-자,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한여운 선생님이에요. 인사해요.
나는 일어섯 고개를 푹 숙였다. 감히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다들 하늘같은 선배들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는 수줍은 척 하고 인사를 했다.
-제가 제일 어리다고 들었는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배우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금은 시큰둥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앉은 나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이유미 선생님, 한여운 선생님 잘 가르쳐 줘요. 한 선생님, 이 선생님한테 모르는 거 있으면 잘 물어보구요.
여자 원장이 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학원에는 여자 원장과 남자 원장이 있었다. 여자 원장은 박 원장, 남자는 이 원장이었다. 이 원장이 학원을 두 개를 합치면서 박 원장을 스카웃했다고 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들고 이 선생을 바라봤다. 처음 온 날 만나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인 이 선생은 눈 웃음이 예쁜 여자였다. 착하게도 보였고 말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그리 나쁘진 않아 보였다. 나는 이 선생과 잘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
-누가 지각인고?
박 원장의 말에 학원의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고 실장-처음 상담실에서 본 느끼한 웃음의 소유자-이 대답했다.
-아, 최석주 선생님이십니다만..
-뭐여, 출근시간도 안 지키면 어떡해요? 오늘은 꼭 벌금 받아요. 벌금 만원.
원장이 웃으며 말했지만, ‘오늘은’이라고 말하는 걸 봐서 최석주라는 선생은 지각을 습관적으로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넉살좋게 웃으며 들어온 최석주 선생은 말쑥한 정장을 입고 검은 가죽 가방을 든,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최 선생님. 고 실장님한테 벌금내요. 만원.
원장의 말에 최 선생은 고 실장을 한번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첫날 교무회의가 끝났다. 나는 이 선생에게서 그날 수업 시간표를 받고는 자리에 앉아 교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반은 중학교 1,2와 고등학교 1, 2학년이었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은 좀 어렵기 때문에 이 선생이 들어간다고 했다. 나는 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 반가워요.
눈을 들어보니 최 선생이었다.
-아, 네.
-난 과학이에요.
-알아요.
내 목소리가 좀 퉁명스러웠는지 그는 잠깐 내 눈치를 보더니 곧 웃으며 말했다.
-원래 과학하고 국어가 돌아가면서 수업에 들어가는 거 거든요. 한 선생님하고 나하고 메이트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잘 지내자구요.
-말로만 그러시는 거에요? 치, 술이라도 한 잔 사야지.
내 말에 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요. 나중에 근사한데서 한 잔 사죠.
그는 윙크를 해 보이고는 뒤로 돌아섰다. 여자 여럿 후렸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교재 연구를 열심히 하는 척! 했다. 어쨌든 여기서는 내 성질 죽이고 열심히, 하는 척! 해야 한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오랜만이에요~^^ 새 연재 시작합니다. 시간에 쫒겨서 좀 느릿느릿 연재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꾸준히 완결할테니 지켜 봐 주시고..마지막까지 격려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