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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그녀{#11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하여}

이야기 상자 |2005.05.18 12:23
조회 1,277 |추천 0

 "으윽. 속쓰려."
 요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어제 술을 마신 걸 후회했다. 속 쓰린 것도 있지만 아침에 할머니에게 들을 잔소리를 생각하니 머리까지 둥둥거렸다.
 "이런 약 먹어야 할라나?"
 아무래도 몸이 좀 허약해 진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더 먹어도 이상 없었다. 가끔 친해진 친구들에게 한국의 술이라며 소주를 먹였고, 그들 중 그 맛에 빠져 소주를 사 들고 오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샤워나 해야겠다. 술 냄새 죽이네."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몸도 정신도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일어났어? 미안."
 소리칠 시간도 없었다. 그나마 타월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저 인간이 왜 자기가 알람시계를 하고 그러는 거야. 간 떨어질 뻔했네."
 
 유신은 요나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려 어쩔 줄 몰랐다. 깨끗한 하얀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타월을 두르고 머리는 물기를 잔뜩 머금어 평상시 폭탄 머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저 머리 스타일이 더 어울려."

 "왜 남의 방문을 벌컥 벌컥 열고 그래요?"
 요나는 계단에서 그를 보자 마자 따지고 들었다.
 "미안해. 자고 있는 줄 알았어."
 "다음부터 그러기만 해봐요."
 유신은 다시 폭탄머리가 된 요나의 머리를 아쉽게 바라보았다.
 "왜 독부리 장공이라고 부르려고?"
 요나는 묻는 듯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나지 않아?"
 "뭐가요?"
 유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사람이 머리 스타일 하나로도 많은 것 이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제 술먹고 들어왔잖아."
 "지금 나라 스무고개 해요. 나도 내가 어제 술 먹고 들어온 거 알아요. 주 요점이 뭐냐구요?"
 "나보고 어제 독부리 장공이라고 하던걸."
 "정말이요. 남자가.. 그런 건 좀 잊어버려줄 수 없어요?"
 "재미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히 못 잤다."
 오늘은 요나의 말꼬리 잡고 들어지는 날이 되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술 먹은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뭐니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너 혹시 미국에서 그렇게 행동하고 다녔니?"
 요나는 절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왜 그 녀석을 만나는 거냐?"
 할머니는 뭐라고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유신이 있어서 참는 것 같았다.
 "이미 끝난 인연이다."
 "그냥 친구 사이에요."
 "말도 되지 않는 소리. 그만 만나라 알아들었니?"
 "...."
 "왜 말이 없는 거냐?"
 "사모님 아침부터 화내시면 혈압 올라가요. 요나도 잘 알아들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할머니가 화낼 때 끼여들지 않았을 거였지만 향미 이모는 오랫동안 할머니를 모셔오던 사람이라 그녀의 기분 파악을 그 누구보다 더 잘했다.
 "어서 밥 먹고 나가라. 향미가 콩나물 해장국 끓였다고 하더구나. 뭐가 예뻐서...."
 "그런데 요나야 사람들이 네 머리보고 뭐라고 하지 않던?"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향미 이모는 부단히 노력했고, 그런 그녀가 고마워 요나는 기분은 영 아니었지만 우스개 소리를 해서 할머니의 입가에 작은 미소를 만들었다.
 "저보고 안전핀 꽂은 수류탄 같다고 했어요."
 그 말에 다들 웃고 말았다. 이 시간만큼은 그런 말을 한 미진이 밉지 않았다.
 
 "끝난 인연이라는 게 뭐야?"
 "상관할 봐 아니잖아요."
 유신은 요나의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요나의 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을 때부터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오늘은 계약 지켜."
 "알았어요."
 쫌생이
 유신은 요나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그녀의 신경을 더 건드리고 말았다.
 "왜 술 마셨는지 물어봐도 되냐?"
 "그건 물어 본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냥 심난해서요."
 요나는 말이 술술 나와 놀랐다. 아무리 그에게 관심이 있다지만 상연에게도 하지 않는 말이 잘도 나왔다.
 아마 알고 있는 거라 그럴 거야.
 "그때 그 친구 있잖아요? -요나가 앞에 있는 핸드폰을 눈짓으로 가르치자 유신은 한번에 알아들었다.- 그 친구가 말도 없이 미국으로 가버렸어요."
 "그래."
 유신은 차분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난 친구 도와준다고 한 일이 그 친구에게는 별로 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인간을 사랑하나봐요. 하긴 사랑이 쉽게 없어지는 거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겠지만 요."
 유신은 씁쓸하게 웃는 요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 친구에게나 그 신부에게나."
 요나는 유신의 지지에 고맙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신은 당연히 고마웠다. 지원을 불행한 결혼에서 구해주었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좀 과격하기는 했지만 옮았다고 믿었다.
 
 "상연이구나."
 -속은 어때?
 "괜찮아. 어제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생은 무슨. 그런데... 할머니에게 혼나지 않았어?
 요나는 그 말에 상연이가 할머니에게 혼났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아니 별로. 너 많이 혼났겠구나. 미안해. 괜히 술친구 해 달라고 해서."
 -아니야. 난 언제라도 좋아. 별로 혼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네 할머니가 날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잖아.
 "그래. 이해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있잖아? 왜 유신이라는 사람... 너희 집에 있어?
 그 말에 요나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사방으로 품을 뻔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상연은 요나가 자신에게 살 갚게 대하는 걸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염치없는 생각 일 지도 모르지만 요나가 좋다면 그는 언제나 그녀의 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복병이 나타난 것 같아 한 숨도 잘 수가 없었다.
 -어제 집에서 봤어. 널 네 방으로 데려다 주던걸.
 그 말에 요나는 흥분했고, 휴게실 유리가 흔들리 정도로 쩌렁쩌렁 소리를 냅다 질렀다.
 "진짜? 정말이야?"
 요나의 입에서 끙하는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응.
 그래서 독부리 장공이라는 말이 흘러 나왔던 거구나. 이런 나 디게 무거운데. 창피스러워 살수가 있나.
 "우리 사장인 건 알지?"
 -알고 있어.
 "우리 할머니가 경영부탁하면서 한국에서 혼자 사는 거 별로 보기 싫다고 방 내줬거든. 그런데 이거 비밀이야."
 -왜?
 요나도 왜 비밀인지 몰랐다. 하지만 유신이 이모에게 숨긴 후부터 그냥 그렇게 알고 지냈다.
 "야 그렇지 않아도 나 미운 오리새끼인데 그 사람하고 한 집에 산다고 소문나봐. 나 회사 못 다닐 거다. 사람들에게 치어서. 알았지 절대 남들에게 말하지마."

 상연은 요나와 전화를 끊은 후 사무실 밖으로 보이는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미진의 거짓된 마음을 알고 난 후부터 요나를 그렇게 보낼 걸 얼마나 많이 후회했던가.
 다시는 그녀와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녀와 다시 만나더라도 그녀가 다시는 그를 받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받아 들였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그걸 계기로 상연은 절대 요나의 인생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빌미를 잡았다.
 유신이라는 남자가 어제 자신의 등에서 요나를 안아 들었을 때. 상연은 그의 강인한 눈에서 소유욕을 보았다.
 그 눈빛이 떠올라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할머니 보다 그가 더 신경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뭐해요?
 "회의 들어가려는 중이야."
 -그래요.
 유신은 요나의 목소리에 다시 장난기가 발동한 걸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다.
 "지난 번 같은 문자 날리면 계약 파기다."
 -피이. 남자가 쪼잔하게 그런 걸로 계약파기다 뭐다. 협박하고 남들도 알아요?
 "전화 상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싫어요. 어쩔 건데요?
 유신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고, 그걸 본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생각해 보지 뭐. 나 바빠 끊자."
 -알았어요. 고생해요. 자면 안돼요. 빠이~~~.
 유신은 핸드폰 전원을 끄면서도 연신 웃음을 지었다.
 "사장님 애인이신가 봐요?"
 언제나 유신의 감정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 부장이었다.
 그런 그가 가끔은 싫었지만 애인이라는 질문에 유신은 한껏 웃어주어 문 부장은 뒤로 자빠질 정도로 기분이 업 되었다.
 "네. 애인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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