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스탠드.[제20화]
발걸음이 자꾸만 옥상으로 치 닫는다.
만날 사람도 그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계속해서 옥상주위를 맴돌다 결국은
계단을 밟고 올라서고 있었다.
“꺄아악.”
옥상에서 타고 내려오는 비명소리에 승하의 발걸음이 좀 전보다 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의 눈에 펼쳐 진건 계단 밑에 빙 둘러 쌓인 여학생들의 무리였다.
“가위.”
떨리는 목소리로 가위를 찾고, 그것을 집어든 애가 혜미 라는 걸 알았을 때 그 밑에 누워있는 준희의 모습에 승하는 순간적으로 큰소리를 내 뱉었다.
“뭐하는 짓들이야?”
가위를 들고 준희의 머리카락을 자르려던 혜미는 승하의 등장에 놀라 가위를 떨어
트렸고, 곧장 준희의 몸을 향해 떨어지는 가위를 승하가 손으로 받아내었다.
“윽.”
낮은 신음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지만 승하는 손바닥을 펴보지 않았다.
욱신거리며 퍼져오는 잔통 에도 가위를 쥔 그 모습 그대로 혜미와 다른 아이들에게 명령했다.
“지도실로 가 있어 .내 허락 없이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앉아있어.”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지독히 시린 말투였다. 한참동안 발을 떼지 않던 혜미와 그
패거리들이 승하의 말에 움찔하며 축 처진 어깨로 내려갔다.
“이 준희 눈떠 일어나봐. 준희야. 이 준희!”
준희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으나 그녀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승하는 더럭
겁이 났다. 혹시라도 잘못 된 게 아닌가 싶어 급한 마음에 준희를 안고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안절부절 못하고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던 승하에게 간호사가 다가와 의사의 호출을 알렸다.
“박사님, 상태는 어떤 가요? 아무 문제없는 거죠?”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자신의 안부보다, 거두절미 하고 준희의 안위부터 물어오는
승하의 행동에 이 박사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흠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네만
유산의 위기는 넘겼네.”
“?”
이박사의 말에 승하의 눈이 저절로 커져 왔고, 그는 혹여나 잘못 들었나 싶어 손으로 자신의 귀를 파고들었다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순간 패닉상태에 빠진 승하 앞에 이박사가 챠트를 내 밀었다.
어느새 초음파 검사를 마쳤는지 네모난 사진 하나도 함께 내 밀었다.
승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사진을 집어 들었다.아직 자리 잡히지 않은 검으스르한
바탕에 형체를 잡아가는 아가의 모양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하. 얼마나 된 거죠?”
“7주째 접어들었어.”
‘믿을 수 없어. 그럼 지금 준희 뱃속에 내 아기가 자라난다는 건가?’
승하는 넋 나간 사람마냥 이박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을 흘려듣고 있었다.
“이봐, 내 말 듣고 있어?”
한참을 떠들다 지친 이박사가 승하 앞에 책상을 두 어번 내리치며 물어왔고 그는
그제 서야 이 박사에게 시선을 두어 응시했다.
“뭐라고 하셨죠?”
“자궁외임신이라고.”
‘쿵.’
커다란 바위하나가 그의 온몸을 짓누른 거 같이 정신이 멍해졌다.
“자궁외임신의 특징 중 하나가 부정출혈 이란거야
생리가 없다가 출혈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그걸
생리로 착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해.
자궁외임신은 때가 되면 반드시 유산 또는 파열을 일으켜.
자궁외임신이 위험한 것은 임신 낭이 파열될 경우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출혈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
이 학생은 또 전에 복막염 수술까지 받았던 터라 그 위험성이
더욱 짙어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확고한 이박사의 말에 승하는 말문이 막혔고 제발 이것이 악몽이기를 바랬다.
허나, 눈을 감았다 떠 보아도 지금 이 상황은 영락없는 현실 이었다.
“이 학생 보호자에게 연락해주게.”
“보호자는 저 에요. 제가 보호자 입니다.”
힘없는 목소리지만 분명 단호한 외침 이었다. 이 박사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승하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마구 헝클었다.
‘훗, 엎친데덮친다 더니 설상가상 이네.’
* * * *
[그 시각 태후의 집]
“이 멍청아 어디로 가는지 뒤를 따랐어야지 지금 당장 찾아내 당장!”
태후의 분노한 목소리와 동시에 통화 하던 핸드폰이 벽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정성스레 준비한 이벤트의 꽃인 3단 케잌 마저도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I LOVE ♡ YOU
부서진 케잌 장식품이 바닥에서 처절히 뒹굴고 있었다. 준희의 생일을 축복해 주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하루를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 하고 싶었다. 서 태후 이기에 가능 하다는 걸 머리 속 깊이 각인 시켜 주고 싶었다.
자신이 아니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철저히 세뇌 시키고 싶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방방 뛰던 태후는 생각을 고치고 밖으로 나와 차고 깊숙이 박아 두었던 바이크에 올라탔다.
***** ***** ***** ***** *****
[같은 시각 레스토랑 룸 안]
“오빠 준희 한테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거 아닐까?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불안해.”
윤희의 말에 유빈도 불안감을 느끼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준희 학교 앞에 가있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무리 기다려도 준희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는 거였다. 재차 물어 여러 번 확인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내가 준희 얼굴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또래로 보이는 애한테 물어보니 모른 다더라
그래서 교실까지 가봤어. 근데 아무도 없더라고
내가 마지막수업 받고 있을 시간부터 기다렸는데
그럼 나보다 먼저 나갔다는 거잖아. 어떡할까 유빈아?”
유빈은 그만 철수하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 버리고 불안으로 떨고 있는 윤희를 돌아다 봤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룸 안을 서성이며 왔다 갔다 하는 윤희를 유빈이 바로
세우며 빤히 쳐다봤다.
“불안해 할 거 없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우리가 이러면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길수도
있으니까 좋게 생각하자. 조금 더 기다리다가
그래도 연락 없으면 집으로 찾아가 보자.”
윤희를 안심시키며 둘은 의자에 앉았다 1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시계를 쳐다보는 윤희와 유빈이 들어 서있는 레스토랑 룸 안에는 주인 잃은 케익과 한껏 부풀려 멋을 낸 풍선들 그리고 화려한 꽃 바구니 만이 즐비하게 들어 서있었다.
그렇게 언제 올지 모를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
준희가 들어간 수술실 문 앞에서 승하는 잠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가 무사히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위험성이 짙다는 이박사의 말이 승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어서 빨리 이 악몽이 지나 가기를 바랄 뿐 이었다.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몸에서 생명 하나가 꺼져 간다는 사실을 알리 없는
준희 였지만 차후에 깨어난 준희 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 할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양손을 맞잡고 수술실 복도를 서성이던 차에 수술실 문이 열리고 준희가
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하고 침대에 실려 나왔다.
우선 회복실로 가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승하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고
간호사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의 건조한 음성이 들렸고, 승하는 스프링에 튕겨
나가듯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준희의 모습에서 승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유산도 출산과 똑같이 몸조리 잘 하셔야 돼요.”
간호사가 준희의 손에 링거 주사바늘을 여러 개 꼽으며 짧게 한마디 하고는 밖으로
휙 나가 버렸고 ,그 말에 준희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병실에 둘만 남자 준희는 승하를 보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준희야. 그게.......”
“당신 짓이지? 이렇게 만든 게 당신이지?
왜, 왜 그랬어? 나 하나도 모자라 이젠
죄 없는 아이까지 햇빛도 보기 전에 왜
밟아 버렸어?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해? 아악.”
승하의 말을 툭 자르고 그의 말을 듣기도 전에 전적으로 그의 탓 이라며 몰아
부치는 준희 앞에서 승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자신을 오인 하는 게 준희 에겐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쳤다.
‘난 끝까지 악역 할게. 전부 다 내 탓이니까
지칠 때까지 날 원망하고 미워해도 좋아
그래도 풀리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날 증오해
그래서 네가 편해질 수 있다면 난 그걸 로도 만족 할게’
“쿡. 근본도 모르는 애를 낳아서 네가 어떡하겠다는 거지?
그나마 나에게 감사해. 나로 인해 네 인생이 다시 발 돋음
할 수 있는 거니까. 멍청하지 않다면 말야 지금 네가 이
시점에서 애를 낳아 기르는 게 얼토당토않다 는걸 알거야
어차피 낳아봐야 사생아고, 넌 미혼모야.”
“꺼져! 지금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
안 그럼 내가 당신 죽여 버릴지도 몰라.”
차갑게 비웃는 승하의 말에 준희가 이를 악물고 독소를 내 뱉었다.
그런 준희에 모습에 승하는 가슴 한쪽이 저려왔지만 이미 뱉어낸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뇌의 지배와는 달리 입에선 전혀 다른 반응만을
보였다.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은 골을 만들어 내는 그런 단어들만이
입 밖으로 샐 뿐이었다.
“함부로 몸둥이 굴린 댓가야 다음부턴 적어도
애 아빠가 누군지는 알 수 있게 처신하라고!”
“꺼지라고 했잖아. 꺼져, 꺼져, 꺼져 닥치고 꺼지라고!”
악을 쓰며 발악하던 준희는 순식간에 손목에 꽂힌 주사바늘을 힘껏 뽑아내 버리고 그녀를 지탱해 주던 링거 병을 승하를 향해 힘껏 던졌다.
승하를 지나쳐 벽에 부딪치며 산산조각 난 링거 병의 파편하나가 승하의 얼굴에 날라 들었고, 그의 얼굴에 작은 흠집 하나가 패였다.
흠집 사이로 새어 나오는 피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뽑힌 바늘구멍 사이로 분수처럼 뿜어대는 피와 금새 라도 실신해 버릴 것 같이 미쳐 날뛰는 준희를 보며 승하는 자신의 내뱉은 말들을 돌이 킬 수 없음에 후회스러웠지만
책망만하고 후회만 할 수는 없는 지경이었다. 승하가 인터폰을 들었다.
“507호 환자. 급해요.”
인터폰을 내려놓은 승하는 피가 낭자한 손으로 다른 링거 병을 들고 불타오르는
준희의 눈과 마주쳤다.
“당신 같은 건 죽어, 당장 죽어 버리라고.”
“너 스스로 날 죽여라. 그러기 위해서 기력 회복 좀
해야 할거다. 완쾌해서 돌아 올 날만 기다릴게.”
준희의 눈물과 피로 병실은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온갖 난동을 부리며 손에 집히는 대로 집어던지던 준희는 간호사의 등장으로 그 행동을 저지당했고, 체력이 다 소진됐는지 '풀썩'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처절한 준희의 몸부림을 뒤로하고 승하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병실을 나왔다. 벽에 기대 선 승하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고, 누구한테 들킬 새라 애써 고개를
치켜들고 꾹 참아내고 있었다.
‘준희야. 심장이 아프다. 생소한 이 아픔이 너로 인해
느낄 수 있어 그래도 행복하다. 난, 내 감정 하나까지 마음대로
표현할줄 모르는 바보야. 아니, 감정조차 지배당하고 있다 는 게
더 옳은 표현일지도. 이렇게 너로 인해 힘들고 아픈 것도 사랑
이라면 난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이게 너에 대한 배려인지도.
나 혼자 하는 외사랑 이라도, 준희 너 가 죽어서도 날 봐주지
않는다 해도 난 이 준희 라는 한 여자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가슴에 품었던 것을 결코 후회 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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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