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스탠드.[제23화]
아무래도 불안했다.
내 치부(恥部)를 솔직히 드러낼 만큼 태후와의 관계는 깊지가 않았다.
승하와의 얽힌 관계나 병원을 다녀와 기록해 놓은 흔적들 태후가 알아서 좋은걸
없었다.
‘오후15시17분. 4시부터니까 지금가도 늦지는 않겠지?’
시계를 들어다 본 나는 수업을 받다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요번시간은 지난번 나와 마찰이 있었던 수학선생 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나가봐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이 생겨서요.”
난 공손하게 사과를 하고 수학선생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교실을 빠져나왔다.
내 뒤에 대고 수학선생의 신경질적인 말이 들여왔지만, 흘려들었다.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타고 ‘골드밸리’ 로 가 달라고 했다.
서울을 빠져나와 경기도 인근지역으로 쏜살같이 달리던 택시가 어느새 태후가 말한
골프장으로 들어섰다. 진입로부터 창립15주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삼엄한 경비를 내세우듯 경비원이 택시의 앞을 가로막고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창립파티 초대받고 왔어요.”
가방에서 초대장을 찾던 나는‘아차’하며 먼저 태후 앞에서 그것을 갈기 찢어 버리던걸.
기억했다. 그런데, 의외로 경비원은 아무 트집 없이 택시를 들여보내 주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중앙 문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로비에 들어섰다.
벌써 다 연회장으로 들어선 듯 내가 서 있는 로비엔 안내데스크(후론트)만 보였다.
“연회장은 어디죠?”
“초대장 가져오셨나요?”
“아뇨, 그건 받자마자 버렸는데요.”
힐끔 위아래를 나를 훑어보던 여직원은 교복을 입고 당당하게 초대장을 찢어버렸다는 내말에 인상을 썼다.
“죄송합니다.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받았었다 잖아요. 연회장이 어디냐고요?”
“이것 봐요 손님. 아니 학생. 여긴 아무나 들락거리는 곳이
아니에요. 무슨 의도로 왔는지는 알겠는데 망신당해서 끌려
나가고 싶지 않으면 내발로 조용히 걸어 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여직원의 눈살에지지 않고 조금 큰소리로 말한 내 말에,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딱딱하게 외운 대사를 읊조리듯 후론트 여직원이 말했다. 마치 나를 깔보는 듯한 그녀는 나를 면전에 세워두고 ‘호호’거리며 입안에 사탕을 넣었다 빼다를 반복하며 전화통화를 했다. 무시하는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태후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전화를 끊은 여직원이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머, 너 아직 안 갔니? 거기 그러고 있어봐야
못 들어가니까 마음 접고 어서 돌아가라. 열 셀
동안 안가면 경비 부른다.”
갑자기 반말을 해대는 여직원은 빨갛게 바른 입술을 이죽거리며 다시 후론트 안으로
쪼르륵 들어갔다.
난 데스크를 사이에 두고 요번엔 잡지책을 넘기는 여직원 앞으로가 그녀의 멱살을
힘껏 잡았다.
“손님대접 참 독특하네. 참으려고 했는데,
당신 서비스 자세가 틀렸어.”
“어머, 어머 이 애가 왜이래 이거 못 놔?”
“거기 뭐지?”
“하, 하.......사장님.”
여직원의 멱살에 가있는 내 손을 그녀가 힘껏 풀어내고 뒤에서 소리가 들린 근원지로
당황한 모습으로 빠르게 다가갔고 난 그녀를 따라 내 몸도 뒤로 돌았다.
지금 막 도착 한 듯 잘빠진 연미복을 차려입은 훤칠한 남자와 연보라 이브닝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미끈하게 잘빠진 여자가 나와 여직원의 실랑이를 뒤에서 보고 있었다.
“저기 그 그게.”
“이곳의 사장님 이신 가요?”
우물쭈물 대는 여직원의 말을 끊고 내가 끼어들어 앞에 선 남자에게 물었다.
호리호리하게 잘 생긴 그 남자는 그렇다는 뜻의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뭐가 문제냐고 물어왔다.
난 지금까지 있었던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했고, 내 말은 들은 앞의 사장이란 남자는
갑자기 소리 내여 웃기 시작했다.
“강후씨.”
그 남자의 웃음에 옆에 있던 여자가 민망 한 듯 그의 팔을 잡아 흔들었고 나에게 살짝 따뜻한 미소를 보내왔다.
“혹시, 우리 태후 친구인가요?”
나를 알아보는 듯한 그 남자의 질문에 난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앞에 두 남녀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놀란 눈을 했다.
“박연우씨 손님에게 무례를 범했군.
어서 사과하고 연회장 안내해드려.”
“죄,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사장의 말에 한풀 꺽인 여직원은 나를 연회장으로 안내했고, 난 그 남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태후는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 등 뒤에 그 남자의 기분 좋은 말이 들려왔고, 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여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연회장에 들어섰다.
* * * *
집에 돌아온 승하는 잠시 숨 돌릴 틈도 아버지의 호출을 받았다.
무턱대고 열흘을 넘게 학교도 나가지 않고 해외까지 나갔다온 사실에 화 가 나신
모양이었다.
승하는 어떤 질타도 감수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본가로 들어가 아버지를 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 게냐?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요번엔 뭐가
문제인 게야? 네 녀석의 생각은 알 수 가 없어.”
“잠시 머리 좀 식힐 겸 바람 쐬고 왔습니다.”
“이런, 무심 한 놈 이따 오후에 혜원이 데리고
가 보거라. 오늘 창립기념 행사라는데 이 애비가
좀 바쁘구나.”
그의 부친이 흰 봉투를 내 밀었고,승하는 그걸 받아들고 알았다고 말 한 뒤 거실로
나왔다.
“너 없는 동안 연락 안 된다고 혜원이가
밤낮을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가끔 보면 철없다니까 .뻔히 네 아버지
심기 불편한거 알면서도 그래.”
쟁반에 녹즙을 받쳐 들고 온 그의 모친이 승하에게 그것을 내밀며 함고하듯 말했다.
“어머니 저 잠시만 눈 좀 부칠게요.
1시 되면 깨워주세요.”
“그래, 좀 자야지 어서 들어가 쉬어.”
승하는 녹즙을 내미는 어머니의 손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자기위해
눈을 감았다.
준희의 일 이후 숙면을 취하지 못했었고, 해외여행에 따른 시차 때문인지 지금은 잠이
쉽게 들었다. 잠시 눈을 감은 것 같았는데 그의 모친이 어느새 그를 깨우고 있었다.
“승하야, 2시가 다 되간다.
혜원이가 오는 중 이라는 구나.”
그의 모친 입에서 혜원이란 이름이 나오자 승하는 벌떡 일어났다.
거의 2주 만에 보는 약혼녀가 궁금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기에 마주 칠걸 생각하니
거추장스러울 따름 이었다. 그는 욕실로 들어가 정신이 나도록 찬물에 씻고 나왔다.
옷을 챙겨 입고 혜원이가 집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나와 밖에서 기다렸다.
곧 혜원이의 차가 들어서고 그녀는 제대로 주차도 하지 않은 채 뛰어내려 승하의
목을 감싸 안았다.
“오빠, 보고 싶었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승하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떨쳐내고는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
“오빠, 나한테 뭐 화 난거라도 있어요?
왜 그래요? 사람 무안하게.”
“피곤해, 갈 거면 타고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서운한 말투로 말하는 혜원에게 승하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조수석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
운전 내내 앞만 보는 승하와는 달리 혜원은 계속해서 승하를 쳐다보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에게 눈길한번 안주는 승하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승하는 내려서 연회장으로 들어서면서도 같이 온 혜원을 내 팽개치듯 버려두었다.
혜원은 에스코트 없이 제 갈 길만 가는 승하가 순간 미워졌지만, 애써 마음을 숨기고
뛰어가 그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
“놔.”
하지만 승하는 자신의 영역침범을 허용하지 않았고, 혜원은 그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갑자기 냉정해진 승하의 태도에 몸 둘 바도 몰랐다.
***** ***** ***** ***** *****
호텔연회장 같은 이곳의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모두다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 바람에 단연 내가 돋보였다.
교복을 입고 긴 머리를 양쪽으로 땋아 내린 내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돌려졌다.
“젠장.”
난 혼잣말로 낮게 읊조리며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와 인적이 뜸해 보이는
테라스로 자리를 옮겨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잠시 밖에서 소란스런 움직임이 들려왔고, 여러 장정들의 음성도 덩달아 들려왔다.
난 피던 담배를 집어던지고, 밖으로 나와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잠시잠깐의 시간동안 좀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댔고, 그 안에서 태후를 찾기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뒤돌아 나오려는 내 발목을 잡은 건 여기저기서 터지는 후레쉬 소리와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였다.
“오늘 골드밸리의 15주년 창립기념을 맞아
축하차 들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서태후씨의 프로테스트 통과를 접하게 되니
전 오늘 참 운이 좋은 기자네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경사가 겹쳤네요.”
“전, 골프매거진의 한지현 기잡니다.
오늘 시합이 끝나고 나서 제일먼저
떠오른 건 무엇인지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시사골프의 이정우 입니다.
프로테스트 통과를 축하드리고, 한 말씀
해주시길 바랍니다.”
난 검은 양복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아무래도 그곳에 태후가 있을 것 같았기에. 그런데,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저희 골드밸리 창립15주년을 맞아
어려운 발길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골드밸리 회장님의 막내아들이
프로테스트에 통과하는 경사가 겹쳤습니다.
모든 기자단들이 인터뷰를 원하기에 잠시
그 주인공을 만나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온 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일순 조용해졌고, 마치 연예인의 기자회견 마냥 그 중심엔 태후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태후는 씨익 웃으며 내 앞으로 걸어왔고, 그곳 모든 사람들은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키듯 자의적으로 양쪽으로 쫙 갈라졌다.
그들의 많은 눈은 나에게 걸어오는 태후의 시선을 쫓았다.
면바지에 흰 카라티를 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쓴 태후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졌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우승컵을 치켜 올리듯 자신만만한 태후의 모습이었다.
내 앞에 가까이 다가온 태후는 내 어깨를 감싸 쥐고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단 그리고
그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하듯 외쳤다.
“제 여자 친구에요. 예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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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스탠드.[제24화]
“제 여자 친구에요 예쁘죠?”
순간 카메라 후레쉬가 연실 여기저기서 터졌고, 요란하게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에
삼켜져 태후의 뒷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쨍그랑.’
잠시 폭풍전야가 지나가고 조용해진 사이 고요함을 깨고 미세하지만 카펫바닥에 떨어져 컵 깨지는 소리를 나도 그 안의 사람들도 모두 분명히 들었다.
일제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놀랍게도 그곳엔 승하와 그의 약혼녀가
자리 잡고 있었고, 깨어진 컵은 그의 약혼녀 손에서 미끄러져 내린 듯 했다.
그날이후 처음 마주하는 승하는 조금 야위어 파리해 보였다.
“훗. 초대장이 아깝군. 시간이 아까워.
고작 이따위 삼류연애나 보여주려고 불러 모았습니까?”
그는 양손을 엇갈려 한손엔 와인잔을 쥐고 있었다.
그곳의 모든 시선이 승하를 주시했고,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는 기자도 더러 있었다.
“넌, 누구 허락받고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거야?
당장 네 자리로 돌아가, 당장 돌아가!”
느닷없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승하로 인해 연회장은
다시 한번 소란스러워 졌다.
“선생님, 당신 제자의 축하는 못해줄망정
이게 무슨 소란이십니까?”
태후의 입에서 선생이란 단어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어머나’하며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 태후, 선생이란 단어를 아무 때나 갖다 부치지 마라.
난 지금이곳에 한 호텔의 경영자로서 참석한거야.”
“그렇다면 준희 에게도 돌아가라는 명령은 하지 마세요.”
나를 보호하듯 내 어깨를 감싸 쥔 태후의 오른손엔 좀 전보다 더 강한 힘이 들어갔다.
태후가 올았다. 승하의 말은 모순을 드러냈다.
“후후. 서태후 너 앞에선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만
준희 앞에선 난 엄연한 선생님이야. 그래서 명령할 수 있는 거다.”
승하의 눈엔 언뜻 살기가 비춰졌고, 그는 제 할말을 다 마친 듯 들고 있던 와인잔을
바로 앞에 도자기로 장식된 분수대에 던져 버렸다.
‘쨍그랑.’
깨어진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승하는 한손을 주머니에 질러놓고 한쪽발로 분수대를 힘껏 차 버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 바람에 분수대도 물을 뿌리고 넘어지며 와장창 깨어졌다.
잠시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은 승하의 돌발적인 행동에 멍해져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의 약혼녀가 나를 다시 힐끗 쳐다봤다.
그녀의 눈은 교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에 놀라워했고, 그만 시선을 접고 승하의 뒤를
따라 나가려했다.
난 내 어깨에 올려진 태후의 손을 툭 쳐버리고 승하 뒤를 따라 나가는 그의 약혼녀를 잡았다.
“제가 가보도록 할게요.
잠시 음식이라도 들고 계세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뒤로하고 난 빠르게 승하의 뒤를 따라 나갔다.
난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이 준희, 왜 그를 따라 나가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냥 있어서는 안 될 거 같아.
내 마음이 그렇게 시켜.’
내 자문자답은 어떤 정답도 얻지 못하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내내 맥박이 조금씩 빨라져왔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승하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날 돌아다봤고, 난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오해 하지마. 태후아이 아니니까.”
나도 모르게 내입을 통해 나간 그 말이 나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
어째서 왜 내가 승하에게 이런 구차한 변명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관심 없어, 그게 누구 아이든.”
냉소를 머금고 내뱉는 승하의 말이 어느 순간 비수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이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비웃음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이 준희. 그럼 넌 무얼 바라고 그를 잡은 거지?’
내 머리 속에서 외친다. 외치고, 외치고, 또 외친다.
하지만,
‘모르겠어.’
메아리쳐 돌아오는 똑같은 대답은 나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적어도.......”
돌아서는 승하의 발길을 다시 잡았다.
그는 내 말에 돌리려던 발길을 반쯤 다시 나에게로 돌아 세웠다.
“어느 정도 내가 당신 안에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틀린 생각 이었나봐. 우습게도.”
승하 앞에서 자꾸만 나약해지는 내 자신이 스스로 못마땅하고,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는 사랑과 미움이 고루 섞여 복합적인 감정을
미묘하게 내뿜는 스스로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 ***** ***** *****
태후가 여자친구라며 준희를 자신 있게 소개 했을 때, 그는 이성이 마비되고
심한 질투로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었다.
마음 같아선 태후의 얼굴에 주먹을 가격하고 싶었다.
생각 같아선 준희의 손목을 잡아끌고 나오고 싶었지만, 다행이 그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자극의 변화 보다, 사유하는 감각적 능력이 더 발달한 냉철한 인간이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화는 폭발하고 말았다.
의기충전 한 태후의 행동과 말에 그는 하지 말아야할 말을 내뱉고, 또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저질러 버렸다.
태후의 아성을 무너뜨리듯 들고 있던 잔을 깨부수고, 한껏 예쁜 모양으로 장식된
도자기 분수대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우스운 볼거리를 제공한 자신이 한심스러워 책망도 하고 한탄도 하며 미련
없이 그곳을 빠져 나왔다.
어느 샌가 그의 뒤를 따르는 준희로 인해 승하는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고
2주 만에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수척해진 그녀의 얼굴과 말라버린 몸은 곧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곧, 승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눈도 의심했다.
지금 그의 앞에서 가녀린 여성의 모습을 연출해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자가
정말 그가 알고 있는 준희가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준희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변명하듯 말을 꺼내는
준희의 모습에 그는 안아주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차 올랐다.
하지만, 계속 마음과 상관없이 튀어나오는 그의 말은 준희 에게도 승하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치유가 되기도 전에 소금을 뿌려 염증을 만들어냈다.
“준희야 이 준희.”
등을 돌리고 돌아서는 준희를 승하가 불러 세웠다.
그리고 승하가 그랬던 거처럼 그녀도 천천히 반쯤 돌아섰고, 그는 처져있는 손을 들어올려 서서히 준희 에게 내 밀었다.
“이리와.”
* * * *
연회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이었다.
“권혁호 회장 아들 아냐?”
“맞아, 저기 저 여자 윤정완 장관님 여식 맞지?
어머, 어머 이게 웬일이래니?”
“이거 범상치 않은 일인데 아니 권혁호 회장
아들이 선생이었어? 그렇게 개망나니 짓 하고
다니더니 철들었나 싶었지. 지 버릇 개줘?”
“교복 입은 여학생은 도대체 뭐 길래 그러지?”
혜원과 태후가 뻔히 듣고 있는걸 알면서도 남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위사람
시선 따윈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토해냈다.
혜원은 속았다는 분한 마음에 온몸이 벌벌 떨려왔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준희와 승하의 뒤를 따라 뛰쳐나가려던 태후는 그를 잡고 놔주지 않는 형으로 인해 꼼짝없이 잡혀 있어야했다.
“네가 주인공이야.
그 둘 사이는 나중에 캐묻자.”
태후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는 그의 형의 만류로 태후는 끓어오르는 분을 참고
또 참았다.
‘그래, 어차피 널 휘감은 키는 내가 쥐고 있으니까.
더 이상 날 시험 하지 마. 이 준희.’
태후는 형의 말대로 마음을 고쳐먹고 홀 안의 사람들을 향해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키지는 않지만, 그의 형 강후와 손님들을 대접하고 기자들과 함께 식사도
했다.
“아, 태후씨 아까 태후씨가 선생이라고 불렀던 분
권혁호 회장님 자제분 맞죠?”
태후가 의아한 눈으로 강후를 빤히 쳐다봤다.
“네, 맞아요. 잠시 만요.”
그의 형 강후가 태후를 대신해 대답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권승하씨 학교에서도 여학생한테 인기 많겠네요?
먼저 기자들 간의 모임이 있어서 2차로 호텔 나이트를 갔었죠.
그때 그게 권회장 아들 소유인지도 알았고요. 때마침 거기 있더군요.
주위에 여자가 엄청 나대요. 끊이질 않더라고요.”
“하하. 기억난다. 그날 한 기자가 침 흘리고 쳐다본다고 당신이
막 구박 했던거. 큭큭.”
“어머, 난 침 흘린 게 아니라, 본능대로 따랐을 뿐이에요.
그날 권승하씨 얼마나 멋졌어요 .역시 귀티가 나면서
절로 입 벌어지게 만들더라.”
지난 일을 회상하며 즐거운 듯 희희낙락거리는 기자들의 모습에 태후는 슬슬
짜증이 밀려 왔지만, 애써 참고 밥 먹는데 집중을 했다.
“수많은 여자 퇴짜 놓더니, 기어코 한 여자 낚아채서
스위트룸 들어 가드만 뭘 그때 그 여자도 참 예뻤어.
모델이 따로 없었다니까.”
“맞다, 이기자 그때 권승하 씨가 데리고 올라간 그 여자
춤추는 모습에 뻑 가서 한동안 정신 못 차렸잖아. 하하하.”
“그래, 맞다. 그 여자야. 분명히 그 여자였어.”
한기자의 장난스런 놀림에 이기자는 뭔가 번뜩 생각이 난 듯 손 벽을 치며 두 손을 맞잡고 두 눈을 반짝였다.
다른 기자들 눈이 반짝이며 이기자를 응시 했고, 태후는 의무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뭐가?”
대수롭지 않은 듯 한기자가 연어를 우물거리며 물었고, 이기자는 잠시 태후의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 낯고 조용하게 내 뱉었다.
“그날 권승하 씨와 스위트룸 들어간
아가씨가 좀 전에 교복을 입고 있던 그 여학생 이었어.
틀림없어. 내 눈은 정확 하다고.”
‘콰당.’
이기자가 말을 마친 그 순간 태후는 앉아있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승하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이기자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함부로 지껄이지 마십시오. 남의 사생활이나 캐고 다니는
추잡한 기자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말입니다.”
.
.
.
.
.
con.
오늘은 여기까지 올립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더욱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감 하시고 행복한 오후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