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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그녀 {#12사랑해서 더 슬픈 일}

이야기 상자 |2005.05.20 01:40
조회 1,458 |추천 0

"어머 요나씨 어떡하니?"
 유정은 코가 먹은 소리를 하며 마치 요나가 걱정스러워 미치겠다는 듯이 말했다.
 "뭘요?"
 요나는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나는 이미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혹시나 결점을 알고 싶어 미국에 있을 때 파트 타임으로 일했던 디자인 샵의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보낸 상태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잖아."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짜증스러웠고, 그 눈길을 느꼈는지 유정은 헛기침을 했다.
 "아니. 요나씨 우리 사장님에게 관심 있는 거 아니었어?"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일일이 남에게 보고해야할 의무는 없었다.
 "대리님이 그런 건 아니구요."
 요나의 말에 사무실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킥킥 거렸다.
 유정도 요나의 말에 당황해 했다.
 "내..내가 언제에?"
 하지만 유정의 더듬거리는 말투와 한 톤이 올라간 목소리는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면 그만이지 왜 말까지 더듬으시는 데요. 저 일하느라 바쁘거든요. 저 일해도 괜찮겠죠."
 
 요나는 유정에게 K.O승을 걷었다는 것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에게 애인이 있다구? 아니야 그는 분명 나에게 없다고 말했잖아.
 만약에 아니라면 다도 모르는 사이에 애인이 생긴 거라면...
 그렇다면 그에 대한 감정을 접어야만 했다. 유신 같은 사람이 애인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일은 없겠지만 애인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상처인지 요나는 잘 알고 있었다.
 -네 김유신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고 감미롭게 흘러 나왔다.
 나도 그를 좋아하는데...
 -여보세요?
 요나가 말이 없자 유신은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저예요."
 -음. 말해.
 "어... 그게.. 아니에요. 그냥 해봤어요."
 -아무 할 말도 없어?
 "글쎄요. 오늘 아직 열 번다 못 채웠잖아요."
 사실 요즘은 굳이 열 번 다 하지 않아도 유신은 별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요나는 묻고 싶었다.
 애인 있어요? 그럼 난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오늘 저녁에 밖에서 밥 먹고 들어갈까?
 "약속 없어요?"
 -응. 어때?
 "좋아요. 어디서 볼까요?"
 -일 끝나면 연락해 같이 나가자.
 "그래요."
 그에게 애인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도 그와 함께 할 시간에 설레어 하는 자신의 자존심을 욕하고 싶었다.
 
 유신은 요나의 목소리가 기운이 빠진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아침만 해도 기분 좋아 보였는데.
 "머리 스타일만큼 감정 변화도 다양한 건가?"
 유신은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요나는 모양새라 봐야 별것 없지만 그래도 그에게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우리 사장 애인 있다면서?"
 "응. 전화 오면 날리도 아니래. 무표정한 그 얼굴이 환하게 빛이 난다잖아."
 "정말? 누군지 부럽다."
 여자들의 수다에 요나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요즘 계약을 다 지키지 않아도 별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아 씁쓸했다.
 요나도 그녀가 부러웠다.
 "여보세요."
 -나야 일 끝났니?
 "응. 상연이구나."
 -왜 목소리에 힘이 없어?
 "몰라. 감기 기운이 있나봐."
 요즘 감기는 기상천외했기 때문에 핑계거리로 딱 좋았다.
 -약은 먹었어?
 "아니. 그런데 왜 전화했어?"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복터졌네.
 "오늘은 안되겠다. 선약이 있거든. 미안. 다음에 해."
 -그래. 기운 좀 내.
 "응."
 -지금 어디에 있어?
 "회사 로비에."
 생각보다 일이 빨리 마무리가 되지 않는지 유신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에게 애인이 있다는 소리가 왜 이렇게 그녀의 인생을 참담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생각보다 더 그녀의 마음에 그를 많이 담은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요나는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상연아? 놀랐잖아. 여기는 웬일로 왔어?"
 상연의 손에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감기약 주려고. 몸 이 정말 많이 아픈 거 아니야. 사람이 손짓을 해도 모르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상연은 조심스럽게 요나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았다.
 "열은 없다."
 "응. 아직 초기여서 그런가봐. 약 안 사와도 되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뭐."

 "둘이 뭐해?"
 상연의 손이 요나의 손에서 미쳐 떨어지기도 전에 미진이 나타났다.
 "뭐하던 너하고 상관없잖아."
 상연은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회사 로비에서 연애질이라니. 아무리 요나 네가 이사님의 조카라고 해도 좀 그렇지 않니? 특히 이사님의 조카라면 이사님 체면을 생각해야지."
 요나는 "허"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너 말조심하라고 했지. 그런 거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잖아."
 상연이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요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유신씨가 네 것이 안될 것 같으니까. 옛 약혼자에게 꼬리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미진도 사내에 도는 소문을 잘 알고 있었다.
 미진은 유신이 자신의 남자가 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가 요나의 남자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회사 안을 벌거벗고 뛰어 다녀도 좋을 만큼.
 그녀의 감정이 왜 그런지 몰랐다.
 그저 어릴 때부터 모든 걸 다 가진 요나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심과 열등감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았지만 미진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유신씨? 요즘 비서는 상사에게 그런 식으로 호칭을 하나 보지. 그것도 네 직속 상사도 아니잖아."
 "뭐 어때. 돈 닮아 지는 것도 아닌데."
 요나와 상연은 미진의 뻔뻔함에 어의가 없었고, 특히 상연은 미진의 그런 모습을 진작에 보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너 요나의 인생에 훼방 놓지마. 그랬다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미진의 눈은 독살스럽다 못해 표독스럽게 변해 상연을 노려보았다.
 상연은 그 눈빛은 예전부터 미진의 눈빛이었지만 자신이 그걸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네가 뭔데? 넌 요나를 버린 사람이야."
 "그게 누구 때문인데."
 상연은 할 수만 있다면 미지의 뺨이라도 때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잃어났다. 그렇게 말했지만 미진 만을 탓할 수 없다는 게 그를 처참하게 만들었다.
 "네 사랑이 깊었다면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걸 다 나에게 떠넘기지마. 나요나 넌 자존심도 없니. 널 무참히 버린 사람에게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다니. 네 정도 위치면 상연이 보다 더 좋은 조건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잖아."
 "마치 걱정해 주는 것 같다. 너만 아니었어도 우리 인생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거야."
 미진은 전혀 반성의 기미도 없었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게 우리 운명이었던 거지. 다시 우리가 만난 것처럼."
 미진의 목소리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 꼭 그녀의 말이 맞는 것처럼.
 "다들 뭐해요?"
 그때 유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신만이 아실 것이다.
 "사장님. 퇴근하세요?"
 "네. 그런데 세 사람 아는 사이가 보죠?"
 말은 다른 사람에게 했지만 눈빛은 요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네. 오래 전에 알던 사이었어요. 그런데 요나가 한국에 돌아오고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미진의 목소리에는 뭔가 더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요나와 상연은 그런 미진을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잘못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들의 인생에 엇갈림을 만든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닌 운명이었다는 듯이 말하는 미진의 뻔뻔스러움이 치를 떨게 만들었다.
 "가지."
 "네?"
 요나는 갑작스러운 화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밥 먹으로 가자니까?"
 "네. 상연아 다음에 보자."
 "으응. 그래."
 이번에 상연과 미진이 충격을 받을 차례였다. 그들은 미진이 유신과 나가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나 농담 아니야. 요나 인생에서 사라지지 못할 거면 방해라도 하지마."
 미진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왜? 어쩌면 내 방해가 너에게 득이 될 지도 모르는데도."
 "무슨 소리야?"
 상연은 할 수만 있다면 미진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너도 요나가 유신씨에게 가는 게 싫은 거 아니야? 그렇다면 우린 목적이 같은 거네."
 "난 너하고 목적이 같지 않아. 그리고 너 같이 치사한 방법을 쓰지도 않을 거야."
 미진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과연 그럴까. 요나가 네 것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버리겠다고. 너 정말 로맨티스트구나. 하지만 그런 네 마음을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 같아. 가지고 싶으면 뺏어야해. 참고 기다린다고 해서 그 사랑이 널 알아주지는 않으니까."
 미진을 로비에 남겨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미진은 어쩌면 진심으로 상연을 사랑했을 지도 모른 다는 자각에 다리까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단지 요나에 대한 질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전에 상연이 요나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 미진을 강타했다.
 
 "손에 든 건 뭐야?"
 요나는 차에 그가 물어 보기 전까지 자신이 봉투를 꼭 쥐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 이거요. 감기 약이요."
 유신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찼다.
 "왜 감기 걸렸어?"
 "아니요. 몸이 좀 피곤해서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상연이가 사왔어요."
 유신의 눈에 질투가 어렸지만 밖을 내다보는 요나는 볼 수 없었다.
 "그런 건 나한테 말해도 되잖아. 그런데 몸이 많이 안 좋으면 집으로 갈까?"
 "아니요. 그냥 가요. 입맛이 없어서 좀 다른 게 먹고 싶었거든요."
 "그래. 그런데 세 사람은 언제부터 알던 사이야?"
 요나는 그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들의 악연의 시작을 말하면 꼭 다시 그 악연이 되풀이 될 것 같아 무서웠다.
 "상연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고, 미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어요."
 유신은 앞을 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참 긴 인연이네."
 네. 악연이죠.
 "그런데 상연인가 하는 남자하고 손 비서 분위기가 좀 이상하던걸."
 "...."
 요나는 유신의 통찰력에 놀랐다.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요."
 "그래."
 유신은 다행이 더 이상 그들 세 사람의 관해서 묻지 않았다.
 유신은 궁금했다. 도대체 그들 셋은 무슨 연결 고리로 엮어져 있길 래. 그런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며 이야기했는지 물어 보고 싶었다.
 왜 상연은 손비서의 얼굴을 보며 경멸을 담았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정말 몸이 피곤해 보이는 요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당분간은 그 궁금증을 덮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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