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스탠드.[제31화]
한일자로 꽉 다물어진 준희의 입은 좀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앞에 앉은 오형사라 불리 우는 경찰은 제차 주민등록번호를 물어왔지만 준희 혼자만이 바득
바득 고집을 피웠다.
준희를 제외한 태후, 윤희, 혜미, 지민의 집엔 이미 통보가 갔고, 끝까지 말이 없는 준희로 인해 경찰은 한계에 다 달은 듯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그때 혜미가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해 보라며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었다.
태후의 눈빛이 강렬하게 이글 거렸지만 혜미는 못 본 척 무시하고 오형사 게 번호까지
눌러가며 수화기를 건네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이 준희 너 보호자는 네 선생님이다.
집안에 알려질게 두려우면 사고는 왜 쳐?”
“제 보호자가 곧 준희 보호자 에요. 쓸데없이
선생한테 전화해서 오라 가라 하지 마세요!”
승하와 전화통화를 시도하던 오형사가 준희를 향해 비아냥거리자,
곧 승하의 행차를 알리는 오형사의 암시에 태후는 못마땅한 말투로 툭 쏘아 붙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굳게 입 다물고 있는 준희를 쳐다보던 태후는 이제 서야 취기가 가셨다.
“여기가 무슨 연애장소야?
이것들이 정신 못 차리네.”
매우 신경질적인 오형사의 말에 대꾸를 하려던 태후의 말은 경찰서 문을 열고 들이닥치는
그의 형으로 인해 깊숙이 입안으로 삼켜져 버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혜미와 지민, 윤희의 보호자가 들어왔다.
혜미와 지민의 부모님은 딸의 얼굴을 살피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다짜고짜 준희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또 네 년이구나, 먼저도 우리 애를 반병신
만들어 놓더니 이번엔 일확천금을 준다 해도
내가 반드시 네년을 쳐 넣고 말테다.”
“기가 막혀서 우리 혜미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얘는 어려서부터 매 라는 걸 모르고 자란 얜데, 나도 한번
손 안대본 우리 애를 네가 몬대 함부로 손을 대?”
몹시 흥분한 지민이 엄마의 말에 혜미의 엄마도 덩달아 준희를 몰아붙였다.
갑작스런 엄마들의 등장에 시끌벅적한 시장 통을 연상시키는 경찰서 안은 승하의 등장으로
그나마 잠시 고요해 졌다.
승하는 담당경찰 오형사와 인사를 나눈 뒤 사건경위를 전해 듣고 준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준희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미동 없이 앉아만 있었다.
“안녕하세요? 권 선생님.”
“아네, 혜미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혜미의 어머니와 태후의 형이 번갈아가며 승하에게 인사를 건 냈다.
지민이 어머니도 대뜸 끼어들었다.
“저 학생 선생님이신가요?”
“네, 제가 준희 보호자 입니다.”
“학생교육 똑똑히 시키세요. 도대체 얼마나 못 배웠으면
저 모양 입니까? 우리 애 보이죠? 벌써 이게 두 번째 라고요.”
“아줌마 딸 저한테 맞았어요. 주제도 모르고 까불 길래 제가
손 좀 봐줬습니다. 그러니까 준희한테 몰아 부치지 마세요.
오히려 아줌마 딸한테 맞은 건 준희니까 깜방 들어갈 년은 아줌마
딸이니까 못 배운 것도 아줌마 딸이라고요! 아시겠어요?”
악을 쓰고 말하는 태후의 말에 잠시 이곳에 정적이 감돌았고, 태후의 형은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그러자 지민이와 혜미의 엄마는 딸들에게 돌아서며 사실이니? 라고 물었고 그녀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혜미와 지민이는 이구동성으로 준희에게 맞았다고 주장했다.
“기가 막혀. 정말 이것들 수준이하네.”
준희와 함께 입을 다물고 있던 윤희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다시 이곳의 분위기를 쇄신
시켰다.
“얘! 너 입으로 너 가 똑똑히 말해봐.
그리고 너희 부모님은 언제오시니?”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도 만지듯 혜미의 엄마는 손가락 끝을 이용해 준희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물어왔지만 준희는 계속해서 아무 말도 없었다.
“걔네엄마 술 또라이 에 노름꾼이야.
어디서 또 술 처먹고 노름판에서 허우적대고 있을걸.”
혜미의 말에 누구보다 오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고, 모두다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화를 참지 못한 윤희가 혜미의 얼굴에 손을 올려 부친 그 순간,
태후가 주먹으로 경찰서안의 거울을 깨버렸다.
‘쨍그랑’소리가 태후의 입을 통해 거친 욕설과 함께 들려왔다.
“다시 한번 지껄여 봐. 두 번 다시 입도
벙긋 못하게 아작 내 버릴 테니까!”
으름장을 놓는 태후의 행동에 지민이와 혜미 그리고 그녀의 엄마들은 놀란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아니, 지금 여기가 놀이턴 줄 알아?
이게 무슨 짓이야? 죄다 쳐 넣기 전에 얌전히 굴어.”
오형사의 윽박에 승하는 발끈 했지만 감정을 자제하며 참고 또 참았다.
혜미 엄마의 말이나 혜미의 말에도 화가 났지만 그는 선생 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좋든 싫든
감정을 숨겨야 하는 현실에 비탄을 했다.
“너, 부모님 오시라고 전화해.”
오형사가 이번엔 화살을 준희에게 돌려 부모님의 호출을 명령 했지만, 아직도 미동도 않고
말이 없는 준희는 처음과 같이 들은 척 도 하지 않았다.
“지금당장 집에 전화해서 부모님 오시라고 하라고!”
“제가 준희 보호자 입니다.
저한테 말씀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반응 없는 준희로 인해 화가 나는지 오형사는 수화기를 들고 툭툭 쳐대며 소리를 지르다가
느닷없이 끼어든 승하로 인해 인상을 찌푸렸다.
들어와서 인사를 나눌 때부터 승하에게 풍겨오는 술 냄새나 그의 옷에 묻은 여자 화장품
잔여물은 그가 선생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참나, 술 쳐 먹으며 계집애 끼고 노는 것도
선생 이라고 대접을 바라는 거야?”
오형사는 콧방귀 뀌듯 혼자말로 낮게 읊조렸지만 분명 승하가 들으라고 한 소리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승하는 아주 또렷하게 들었지만 뭐라고 대꾸할 반박의 여지는 없었다.
“민간인도 보호 못하고, 그저 허물벗기기에
급급한 것도 민주경찰 이라 할 수 있나?”
조용한 가운데 오형사에게 일침을 가한 사람은 준희였다.
여태껏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준희는 승하를 향한 오형사의 비아냥거림에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 툭 내던지고 말았다.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뭐가 어쩌고 어째?”
“왜요? 제 말이 틀리기라도 했습니까?”
앉은자리 에서 팔과 다리를 꼬고 거만한 행동으로 오형사를 향해 묻는 준희의 물음에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기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남의 일에 콩 나라 배나라 하지 말고 네 부모나
불러들여 어디 얼굴 좀 보자 어떤 인간인가?”
“함부로 사람 무시하는 경찰이란 인간보다.”
“이 준희!”
오형사와 신경전을 벌이는 준희의 말을 승하가 중간에 잘랐다.
그런 식 으로 사람 성질을 긁지 못해서 승하가 참고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준희는
거침없이 느끼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을 했다.
“준희야..
네 체면까지 깎아가며 똑같은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솔직함이 때론 독이 될 수도 있어. 나만 아니면 그만이야.”
“아, 그래서 선생님도 참으셨던 거군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그렇죠. 선생님?”
승하를 향해 몸을 돌린 준희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고 승하는 그녀의 웃음에 넋 나간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여과 없이 들어냈다.
매력적인 준희의 웃음은 승하뿐 아니라 태후까지도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권 선생님, 문제 해결하고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습니다.”
끼어들 틈이 없는 준희와 승하의 사이에 태후의 형 강후가 승하에게 제의를 해왔고, 승하는
그제야 생각 난 듯 혜미와 지민이 부모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후와 함께 합의를 해 나갔다.
* * * * *
“너무 예쁘다.”
“내가 본 신부 중에 최고야!”
대기실에 앉아 방긋 웃고 있는 혜원은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몇 십분 후면 한남자의 여자가 되어야 할 행복한 순간인데, 지금 그녀의 곁엔 신랑이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신부보다 먼저 도착해 하객을 맞이해야 했지만 승하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불안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미스코리아 마냥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더니 입 주변에 경련이
일어 더 이상 아무 감각도 없었다.
머리 속이 텅 비어가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이대로 일어났다가는 쓰러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앉아 있으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혜원은 살짝 고개를 내밀어 밖의 동정을 살폈지만 승하의 부모님만 보일뿐 그의 머리카락 한 올 조차 볼 수 없었다.
“신랑이 너무 늦는다.
시댁식구 말로는 길이 많이 밀린다는데
그건 너무 뻔한 거짓말 아니니?”
혜원이 친구가 시계를 보며 짜증스럽게 말을 하자, 그녀는 더욱 불안한 마음과 떨리는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바깥의 그의 아버지는 식장에 와서 지금까지 핸드폰만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혜원인 친구에게서 핸드폰을 건네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생각과 달리 승하의 중저음이 들려오자 혜원인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고는 대기실안에
있는 친구들을 밖으로 내 보냈다.
“혹시 사고라도 났나. 걱정이 돼서요.
어디쯤 오고 있어요? 많이 늦어요?”
태연한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묻는 혜원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혜원아!]
“오빠,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와 줘요. 제발.
제발 와줘요. 오빠가 올 거라고 믿어요. 그때까지
나 여기서 한발 짝도 움직이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 꼭 와줘요.제발.”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혜원의 음성은 이미 눈물과 슬픔, 절망으로 물들었고 거의 비굴에
가까운 그녀의 태도에 승하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정. 신. 차. 려!]
냉정한 말투에 비웃음을 실은 그의 음색은 혜원이 에게 충분한 상처였고, 아픔 이었지만
혜원인 그에 굴하지 않았다.
“지금 내 모습이 나 조차도 흉하고 싫지만
이게 내 사랑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오세요.”
혜원은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미 두 눈에 눈물이 흥건히 고였지만, 그녀는 애써 참으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예정 시간보다 30분이 지나 버렸고, 지금의 상황을 알리 없는 사회자는 눈치 없이 계속해서
신랑입장을 외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회자가 유명 개그맨이라 길어진 30분의 시간을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하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시간을 지체 할 수 없는 노릇 이었다.
혜원은 몇 번의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음을 추스르고 쉽지 않았던 결정을 내리기로
굳건한 다짐을 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나와 신랑입장을 외쳐대는 식장 안으로 혼자 유유히 걸어 들어가
사회자를 밀쳐내고 단상 앞에 서서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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