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의 반올림The# no_1[6시35분]
해윤은 설레는 기분으로 쥬얼리를 빠져나왔다.
"서연아 저녁먹지 말고 기다려! 줄게 있어. 6시까지 갈께 알았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해윤은 손에 들린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동
그란 링위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해윤을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상자를 닫아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서둘러 차의 시동을 걸고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고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길이 많이 막히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약속시간에 늦을 것만 같아 해윤
은 거리상은 좀 멀더라도 얼마전 개통한 외곽의 순환도로를 타기 위해 차 머리를 돌렸다. 서연에
게 청혼을 할 생각으로 해윤의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오늘따라 신호대기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신호가 바뀌고 시내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그리
멀지 않을 때 깜박이도 켜지않은 채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그는 반사적으로 핸들의 옆차선
으로 돌려야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브레이크를 밟은 시간조차 없었다. 차는 끼어드는
차의 뒤 꽁무니를 박으며 옆차선으로 뱅그르르 돌았고 옆차선에서 달려오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결국 해윤이 타고 있는 차 운전석의 문짝에 심하게 부딫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해윤은 점점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이봐요! 이봐요!"
누군가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해윤은 눈을 뜨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야해요.. 기다리는데.. 기다리고 있을텐데.."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의식을 애써 끌어 모으며 해윤은 구조요원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의 팔을
마직막 남은 온 힘을 다해 붙들며 새 소리를 내었다.
"이봐요 정신차려요!"
손목에 찬 시계의 분침이 7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해윤의 눈에는 어깨 밑으로 찰랑이는 머리를 휘날리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연의 모습이 스
쳐지나갔다.
'기다릴텐데.. 기다리고 있을텐데.. 빨리 가야하는데 내가 가지 않으면 그녀가 슬퍼할텐데..아파
할텐데..'
하지만 해윤은 더 이상 소리를 내어 말할 수가 없었다. 희뿌연 안개가 서연의 모습 마져 삼켜버
렸다.
"왜 아직 안 오지? 차가 많이 밀리나?"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그는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단 한번도 기다리게 한 적이 없는 그
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서연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그가 마음에 들어하던 시계. 서연은 주머니 속의 선물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 난생처음
선물이란 걸 샀다. 매번 받기만 했지 그에게 주는 선물은 처음이었다. 선물이란 주는 사람의
마음까지 행복하게 해준다는 걸 서연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가 눈여겨보던 시계를 사 선물상자
에 담고 그를 기다리는 시간 모든 것이 행복했다. 행복이란 결코 자신과 함께 할 수 없는 무형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인생에 해윤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로 인해 우울하던 메마른
서연의 인생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서연은 계속해서 시계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자신을 기다리게 할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시
계 분침의 숫자가 7을 가리키는 순간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머리가 어지러웠
다. 늦는 그에 대한 짜증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두려움이 엄습했다. 불길한 무언가가 심장을 조여
와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닐거야. 그럴리가없어. 그는 와. 그는 분명히 와. 날 기다리게 하지 않아. 날 기다리게
할 사람이 아니야. 그는 꼭 올거야' 하지만 해윤은 그녀에게 오지 않았다.
"서연아 저녁먹지 말고 기다려! 줄게 있어.6시까지 갈게 알았지?"
아직도 힘있고 우렁차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있는데 해윤은 서연의 옆에 없었다.
어느 봄날 따스한 햇살처럼 다가왔던 해윤은 한여름같이 찬란한 인생의 불꽃은 선물하고는 저무
는 가을 시린 가슴을 남김 체 거짓말처럼 서연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거짓말처럼...
그에게 주기 위해 샀던 시계가 3년동안 빛을 보지 못한체 서랍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추적이는 비가 서연의 심장을 갉아 먹고있었다. 서연은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인
상을썼다. 가슴속에 뭍어 두었던 해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서연은 오래되어
삐그덕 거리는 서랍장을 열고 오래전 그에게 주기 위해 샀던 시계를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시계
는 그 날의 약속시간을 35분이나 지난 6시 35분에 멈춰있었다. 서연은 아직도 그 날의 소식을 믿
을 수가 없었다.
예외없는 그의 늦음에 초조함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서연아"
"어. 동규야 왠일이야? 혹 해윤이에게 무슨일이 있는거니?"
"저..그게.. 서연아 너 아직 해윤이 기다리고 있지? 밖에서 떨지말고 어디라도 들어가 있을래?
나 지금 다 와가거든?"
"무슨소리야? 니가 여길 오고 있다고? 해윤이는? 말해봐 해윤이가 아니고 왜 네가 오는데?"
"서연아.."
"빨리 말해! 무슨일이야?"
"................"
"서동규! 나 피말라 죽기전에 빨리 말하란 말야!"
서연은 동규에게 화를 낼 문제가 아니란걸 알고 있었지만 초조함이 극에 달해 이성을 마비시키
고 있었다.
"휴~ 서연아 해윤이 못 와."
"못..........오다니?"
"사고가 났어."
사고라는 말이 귀속을 메아리치며 서연은 속이 메스꺼움을 느꼈다.
"서연아! 전서연! 야! 전서연 너 듣고 있는 거야?"
".................어.. 어디야? 어느병원이야?"
"성심병원.. "
서연은 내 팽개치듯 휴대폰을 찔러넣고 무작정 도로위로 뛰어들었다.
"서연아 기다려! 내가 데려다 줄....젠장!"
동규는 휴대폰을 뒷자석으로 집어던졌다. 서연이 받을 충격을 알기에 마음이 더욱 조금해 졌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땀이 흔건이 배어 나왔다. 신호가 바뀌기를 초조히 기다리
며 동규는 부디 해윤이 무사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응급수술실로 실려 들어가던 피투성이의
해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서연은 내 팽개치듯 휴대폰을 찔러넣고 무작적 도로로 뛰어 들며 손을 흔들었지만 차들은
무서운 속도를 내며 돌진하고 있을 뿐이었다. 합승이라도 좋았고 아무래도 좋았다. 일분 일초라
도 빨리 해윤이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옷자락을 적시고 있는 비 때문에 마음이 더욱 조급했다.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 것 같이 추적이고 있는 비가 서연의 심장을 갉아 먹고
있었다. 비는 언제나 서연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아 가곤 했다
서연이 두 팔로 차를 가로막기 직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 한 대가 급 정차 했다.
"서연아!"
"어떻게 된거야? 얼마나 다친거야? 많이 다친거야? 망할놈의 차들! 좀더 빨리 갈수는 없어?"
"서연아 진정해."
"아니지? 많이 다친거 아니지? 그래 아닐거야. 해윤이가 날 기다리고 있을텐데.. 동규야 속도좀
더 내봐 응?"
"전서연! 제발 진정하라고!"
횡설수설 하는 흐트러진 서연의 모습에 동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해윤이 자식 괜찮아. 괜찮을거야. 그러니까 진정하라고."
차가 병원앞에 도착할때까지 서연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두 손을 꼭 움켜잡은체 정면만을 응시하
고 있었다.
"이게 다 너때문이야! 이제 어떻게 할거야! 우리 해윤이 어떻게 할거냐고! 내가 그렇게 말렸는
데.. 이제 어떻게 할꺼야 우리 해윤이! 우리 해윤이!"
병원에서 서연을 기다리고 있는건 시퍼런 비수의 칼날을 들이대는 해윤의 어머니였다.
서연의 두 팔을 잡고 이리저리 뒤흔들며 소리치던 해윤의 어머니가 탈진으로 쓰러져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사라지자 동규가 불안한 듯 서연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걱정하지마. 수술은 잘 될거야. 어머니 말씀 마음에 담아두지마. 해윤이가 다쳐서 너무 놀라
셔서 아무 뜻 없이 하신 말씀이야.."
"동규야...."
"그래"
"나... 무서워.. "
"걱정하지마. 해윤이 자식 분명 아무일 없었던 듯이 일어날거야.."
하지만 힘겨운 수술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해윤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연은 정옥의 분노
로 해윤의 병실 문앞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한번만. 한번만 해윤이 좀 만나게 해 주세요 네? 어머니!"
"조용히 하지 못하겠니? 내 자식을 이렇게 만들 걸로도 부족해 그 애를 망칠 생각이니? 양심이
있는 아이라면 다시는 우리 해윤이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처음부터 난 네 우울한 눈빛이 싫었
어. 네 눈빛이 우리 해윤이를 갉아 먹고 만거야! 그러니 다시는 해윤이 앞에 나타나지 마 알았니!"
서연은 굳게 잠겨진 병실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연아..."
"다은아.."
"바보야 왜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어. 너 정말 전서연 맞아? 밥은 먹은거야? 해윤이가 깨어나기
전에 네가 먼저 죽겠다 이 바보야! 이게 며칠째야.. 그만 집에 가자!"
"아니.."
"바보야 너 정말 어쩌려고 그래?"
"해윤이 두고 나 아무데도 못가. 아니 안가. 실은.. 사실은 다은아. 나 불안해. 나 무서워. 어머니
말씀처럼 나 때문에 내 불운한.."
"전서연! 헛소리 그만해! 너 또 그 재수타령이야? 그런 쓸떼없는 생각 하려거든 밥이 나 먹어 이
바보야!"
다은은 서연을 와락 끌어안으며 눈물을 삼겼다.
"해윤이 곧 깨어날꺼야.. 해윤이가 어떤애인데. 네가 이러고 있을거 걱정되서라도 깨어날거야 해
윤인.. 난 해윤이 믿어."
병실앞에서 싸늘한 냉대와 무관심을 고스란히 받으며 지옥같은 한달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고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심때가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서연은 굵어진 빗줄기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야속하기만 했다. 어느덧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장마는 서연 생애의 가장 길고
도 잔혹하리 만치 혹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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