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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여자

백승권 |2005.06.07 00:01
조회 1,102 |추천 0
지금까지 난 영화에서 수많은 이들을 보아왔다   연쇄살인마를 보았고   사람의 뇌를 먹는 사람을 보았으며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나오는 외계인도 보았다   자신을 살려준 은인들을 나중에는 전부 죽여버리는 이도 보았고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는 아들의 캐릭터도 보았다.   죄없는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어버리는 이도 보았고   야구 배트와 삽자루로 피와 살점을 튀어가며 때리는 사람도 보았다.   드릴로 사람의 이마를 구멍내는 사이보그도 보았고   사람을 차에 매달아서 끌고다니는 사람도 보았다   쓰레기 분쇄기에 사람을 거꾸로 집어넣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대부분 고개를 돌리거나 그냥 아무생각없이 쳐다보다가 시각적인 충격만   좀 와닿았지 정서적으로 기억될만한 임팩트같은 건 많지 않았던듯 하다.   그저 그 순간만의 놀라움이랄까. 영화의 영화적인 성격. 즉 허구와 과장의   정도에 익숙해 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오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도 분노를 떨칠 수 없는 새파래진   스스로를 보았다. 공포가 아닌 분노였고 그건 인간답지 않은 인간을 증오할   때 생겨나는 흥분과 다름아니었다.   욕이.. 턱까지 치밀었다. 두시간의 영화가 끝나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녀를 아이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처음에 식탁에 앉은 그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한명의 여자와 네명의 아아들   3살 7살 10살 12살 로 보이는. 아버지가 모두 다른 아이들.   여자는 철이 없었다. 젊어 보였고 어린 말투였다. 아이들은 그녀를 위해   기꺼이 저녁식사를 준비했고 집에 돌아올 시간이면 살짝 열어놓은 문을   환영하듯이 열어주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날. 몇십만원 안되는 돈을 놓아두고 새애인과 함께 영영 떠났다.   아니 도망갔다. 그녀가 떠나기 전날 맏이인 소년에게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 나는 행복해지면 안돼? "   소년의 나이 12살.   그 여자를 소년은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그 장면에서 여자를 미XX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날 이후. 소년은 여자를 찾지 않았다. 생활을 해야했다.   네명의 꼬마아이들은 엄마라는 여자가 원하는데로 아무도 학교에 보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학교에 안나가고도 성공한 사람 많아"   그들은 원했지만 보내지지 않았고 세상의 어떤 어른들도 갈곳없이   방안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전처럼 일때문에 바쁘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귀여운 막내 여자아이. 우리나라 어떤 CF에서도 그렇게 예쁜 아이를 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가 즐겨놀던 크레파스는 몽당이 되어 갔고 웃음도 희미해졌다.   자기의 생일날 저녁 막내 아이는 비로소 알았다. 엄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거란걸.   집안은 쓰레기와 냄새로 엉망이 되어갔고 여름은 그들을 피해주지 않았다.   햇볕이 가득 들었고 돈은 떨어져서더이상 빌릴 곳도 없었다. 아이들의 식탁에는   며칠에 한번씩 컵라면이 겨우 올라왔다. 그마저도 이젠 입에 대기 힘든 지경.   아이들의 머리가 자랐고 피부엔 땀이 맺혔다. 12살짜리는 일자리를 원했지만   자주가는 편의점의 알바라도 하려했지만 노동을 인정하는 최저나이는 16세.   그는 점점 어른의 눈빛을 닮아갔다.  그들은 수돗물을 마시며 연명했고   낮이건 밤이건 잠이 늘어갔다. 그리고 어느날. 그냥 햇빛이 맑았던 날.   막내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축 처진 손을 보고 난 병원을 생각했다.   다음 장면은 분명 엠뷸란스가 달려오고 응급실에 실려가서 침대에 눕히는   그런걸거야. 믿고 싶지 않았던 일.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들이 기다린 엄마를 태운 비행기는 오지 않았다.   소년은 아이의 차가워진 몸을  처음 몰래 담겨져 왔던 여행용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낑낑대며 거리를 가로질러 버스를 타고 공항 근처의 잔디밭을 향했다.   비행기의 굉음이 밤하늘을 메울때 소년은 땅을 팠다. 가방이 들어갈만한 깊이의.   구원은 없었다. '엄마'라는 여자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는 끝났다.           '인간'이란 단어가 어느 정도의 범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인 특우의 콧소리로 귀염성 있는 말투를 지녔던 그 여자는   분명 아이들의 친엄마였다. 그리고 살인마였다. 어느 누구보다 잔인한 방식의.   그녀는 항변할 것이다. 내가 목을 졸랐냐고, 가스를 틀었냐고 아님 불을 질렀냐고.   그녀는 자신의 옷가지 화장품을 싸서 집을 나왔을 뿐이다.   이런 망할. 아이들은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죽어갔을 뿐인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생활'을 배우지 못했고, 불가능 했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자가 미웠다. 나쁜 년. 나쁜 년. 그 아이의 널부러진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끝까지 '엄마'라고 그린 그림을 벽에서 떼지 않았는데..    그 여자가 아이를 죽였다. 그 여자가 아이들을 수돗물과 햇빛에 방치했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게 했으며 학교 앞에서 비참하게 서성거리게 했다.   그 여자가 아이의 웃음을 앗아갔고 무더운 날 수돗물만 마시게 했고   라면도 못먹고 쓰러져 잠만 자게 하였으며 결국 그렇게 죽게 만들었다.   여행용 가방에 넣어져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 잔디에 묻히게 했다.   나쁜 년. 이건 '여성'을 향한 폭언이 아니다. 현실에 숱하게 널린   저런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향한 분노이다.   True story.   그래서 더욱 잔인한, 그래서 더욱 슬픈.            #올드보이의 최민식을 제끼고 최연소로 깐느영화제 남우주연에 선정된   소년의 메마른 눈빛에 슬픈 찬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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