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remier Bonheur Du Jour Si Mi Caballero - Francoise Hardy
si mi caballero
j"aimerais bien etre
la blanche poussiere
qui suit ton troupeau
si mi caballero
il me suffirait
d"etre ce brin d"herbe
qui colle a ta peau
cette maison blanche
entouree de fleurs
pendant ton absence
est comme un tombeau
si j"etais poussiere
moi je te suivrais
si j"etais brin d"herbe
tu m"emmenerais
je me ferais douce
aux portes du sommeil
je me ferais source
quand brule le soleil
si mi caballero
il me suffirait
sur tes levres seches
d"etre goutte d"eau

나의 주인님, 만일..
나의 주인님..
난 정녕
그대의 양떼를 뒤따르는
하얀 먼지이고 싶어요.
나의 주인님, 만일 내가
그대의 몸에 달라붙는
작은 풀이라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꽃들로 둘러싸인
하얀 이 집도
그대가 없는 동안엔
무덤과도 같았답니다.
만일 내가 먼지라면
그대를 뒤따를 텐데..
만일 내가 작은풀이라면
그대는 나를 데려갈텐데..
그대가 잠이 들때면
조용히 그대옆을 지키고
태양이 뜨겁게 타오를 때면
난 샘이 될 거에요.
나의 주인님, 만일 내가
물 한방울이 되어
메마른 그대입술을 적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요.

1941년 파리에서 태어나 보봐르나 까뮈 등의 작품에 몰입하며
평범한 소녀시절을 보내는데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대학합격 선물로
기타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스스로 곡을 쓰거나
가사를 쓰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노래하는
것 외에 정치학 역사, 독일어 등을 전공하며 자신의 관심분야를
넓혀나가는데 이것이 후에 그녀를 지적인 가수로 또 유명인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지적인 여성으로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그녀의 처녀작은 16살에 작곡한<당신은 길을 갔어요>란 곡으로
당시는 Johnny Holliday가 스타로 군림하던 록풍의 샹송이 한창일때라
오디션에 번번히 실패한다. 그러나 1963년 Vogue사에서 발매한
<Tous Les Garcon Jour:모든 소년 소녀들>가 히트를 하며 그녀는
스타덤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 이듬해 그녀는
<Premier Bonheur Du Jour:청춘블루스>로 대상을 수상하고
올림피아 극장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또한 로제 바딤 감독의 영화 <스웨덴의 성>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한
이후 <마음의 무도회> ('65) 이브 몽땅과 공연한 <그랑쁘리>('66)에
출연하여 섬세한 아름다움으로도 모든 이들을 매료시킨
'66년 산레모 가요제에 <사랑의 밀어>라는 곡으로 입상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모두 활동을 중단하고
일선에서 물러나 새로운 이미지를 변신 시도한다. 아이돌
스타이기보다는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는 예술가이기를 원했으며
자신의 레코딩에 세심한 주의를 기하며 제2의 출발을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