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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동안 사랑하기 (3) - 연어 -

레몬파이 |2005.06.15 02:00
조회 764 |추천 0

Robson street(롭슨 거리)에 우리가 머물기로 한 호텔이 있었다.

 

" 호텔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뭐 좀 사갈까? 아니면 우선 짐을 풀고 나서 좀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나갈까?"
불과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마치 예전에 우리가 연인이었을 때처럼, 일상적이고도 자
세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 룸 안에 작은 키친이 딸려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
" 맞아. 스위트 룸이니까. 여기 스위트 룸은 그게 참 좋은 거 같아. 작지만 방안에 키친이
있다는 거.."
" 어때?   전망은 좋아?    몇 층이야? "
" 어제 전화로 말했잖아. 잊었어?  9층이야. 907 호. 그리고 넌 908호."
우리는 그런 사이가 되어있었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의 같은 호텔에 머물면서도 함께 방을
쓸 수 없는 건전하고 밋밋한 사이.

 

" 그나저나 그림은 잘 있겠지?"
" 그럴거야...."
" 아무튼 그거 신경쓰느라 서울에서부터 내내 껄끄러웠어."
" 고생했어."
그는 아주 잠깐 입가를 씰끗하며 웃어보였다.
" 가져오긴 했지만 먼지가 많이 끼었는데 어쩌지? 전에도 말했지만 도현씨 전화받고 나서
액자를 끼웠을 땐 이미 벌써 먼지가 앉을 대로 앉아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겠더라구.."
" 일단 호텔에 들어가서  상태를 확인해 보자."

 

헤어졌던... 그리하여... 2년 반 남짓 이라는 꽤 긴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밤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내내 미뤄오기만 하던 손톱 손질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군데 군데 벗
겨지고 뭉개진 투명색 메니큐어를 막 벗겨내기 시작하던 밤 10시경이었다.
T.V 소리에 묻혀 몇 번인가를 놓쳤다 듣게된 전화벨 소리. 왠지 특별한 예감이 드는 이상
한 울림으로 전해져 왔다.
벨이 거의 열 번도 넘게 울릴 때까지 나는 그냥 그 소리를 들으며 전부터 지워야지 하고 생
각해 두었던 전화기 위의 빨간 볼펜 자국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랄까! 왠지 수화기를 들면 뭔가 아주 혼란스런 세계로 들어가게 될 듯한 막연한 예감에
사로잡혀 망설이고 있었다고나 할까?            

 결국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아들어 지금의 나를 이 낯선 땅의 한 호텔로 이끌고야 말았다.

" 여보세요?.."
긴 시간이 흘렀어도 단박에 구별 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
갑자기 내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낮고도 하얗게 어디론가 가라앉는 나
른한 기분, 그러나 가슴은 몹시 출렁거리는..........

 

 


" 안에 물은 있어?"
" 두 병쯤? 호텔에서 아침마다 바꿔놓는 거야. 호텔로고가 찍혀 있다는 거 말고는 여느 물
과 똑같아."
" 지금 그거 유머야?"
" Maybe.."
그가 아직 간직하고 있는 썰렁한 유머 감각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지만, 왠지 싫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두 번, 혹은 서너 번, 그런 무자비한 썰렁함으로 나와 주변인들을 차갑게 얼려버
리던 그의 재미없는 말놀이는 마치 때가되면 날아드는 각종 청구서들 처럼 규칙적이기까지 하였다.
" 이틀 전에 왔을 때부터 마시던 물이 아직도 남아있어. 난 역시 지중해 물 이외엔 잘 맞지
다 않나 봐."

 

지/ 중/ 해/.
문득 그의 입에서 나온 지중해 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울컥 마음이 출렁거렸다.
그리스라는 단어보다는 훨씬 덜 하지만, 여전히 아린 기억으로 남아있는 서늘함의 대상  지/중/해/.
아! 그 푸르고 누부시던 한 여름의 바다는 잘 있을까?
신타그마 광장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면 도착하던 나의 사랑 카보이프 해변은 여
전히 아름다울까?
아직도 발음하기 어려운, 그래서 늘 헷갈리는 이름의 바다. 나는 가끔 그 곳에서 바다 수영
을 즐겨 하곤 했었다.

" 짐만 풀고 일단 나가자. 뭘 먹던 이게 우리들의 첫 저녁식사 잖아."
" 그래 좋아."
" 뭐 먹고 싶은데? "
" 글세.........."
" 간만에 우리 수블라끼 먹을까? 너 그리스에서 떠난 후론 잘 못 먹었을 거 아니야."
" 못 먹었다기 보다는 잘 안먹게 되었어."
내가 너무 의미를 담아 말했던 것일까? 그의 얼굴에 잠시 고요함이 번진다.


" 음.... 음....... 연어 어때? 캐나다에 왔으니까 연어는 먹어 봐야지 않겠어?"
다소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한건 그의 얼굴에서 그런 고요함을 걷어내고 싶은 조급한 마음 때
문이었다.

사람들.. 특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겐 그 맛보다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특성과 그에 어울리는 많은 의미로 알려진 연어.

 

 그날 저녁,우리는 연어를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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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랑도 가끔은 연어를 닮은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여러 가지의 설명보다는.. '연어' 라는 그 이름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대상!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아름다운  연어의 기억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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