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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구미호 (4) : 정화

니르바나 |2005.06.21 17:12
조회 320 |추천 1


 


구九미尾호狐



정화


인어, 그녀를 보고 있으면 무심코 떠오르는 단어다.

확실히, 170센티를 가뿐히 넘기는 늘씬한 키에 현역 모델들도 부러워 할 만큼 완벽한 보디라인을 갖추고 있는 그녀에게 인어만큼 어울리는 단어도 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몸매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중국 전통의상인 진홍색 치파오(旗袍, China Dress)를 입고, 다리를 꼬고 있어 치마 옆으로 벌어진 트임으로 살짝 내비치는 각선미는 매력적이다 못해 위험한 도발로 느껴질 정도다.  어떤 면에서는 위화감을 줄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어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반기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곳, 스카이라운지를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연인과 동석을 하고 있는 남자들조차 슬금슬금 곁눈질로 그녀를 훔쳐보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수컷들의 관심’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웨이트리스에게 딸려 보낸 와인과 칵테일이 담긴 잔들이 테이블을 메우고 있었지만, 어느 하나 비워진 것이 없었다. 그로 인해 접근을 시도했던 일부의 남자들은 실망을, 또 일부의 남자들은 어쩌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누군가’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스카이라운지에 들어온 지 30분가량이 지났을 때,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웨이트리스들의 익숙한 멘트가 들려왔다. 폭포수처럼 허리까지 길게 흘러내린 흑단 같은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서클렌즈를 끼었는지 은은하게 푸른 기운이 감돌아 이국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그녀의 눈동자가 소리 없이 출입문으로 향한다. 그때까지 무심한 시선으로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그녀를 지켜보던 남자들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곧 일부는 질투를, 또 일부 남자들의 눈동자엔 부러움과 묘한 패배감이 비쳤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는 잘 생긴 20대 중반의 남자였다.

거의 190센티 정도 되어 보일 만큼 키가 크고,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균형 잡힌 체격에, 선이 굵어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남성미가 물씬 풍겼고, 사자의 갈기처럼 정돈되지 않고 어깨 위로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갈색의 머리칼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의 상대로 어울릴 만큼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번엔 스카이라운지 안의 여자들이 탄식을 흘렸다.

“후우, 오래 기다렸어?”

그가 당당히 그녀의 테이블에 합석을 하자, 경쟁에서 밀린 자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부, 늦어서 미안. 오늘따라 차가 너무 밀려서…….”

남자는 그녀를 ‘사부’라고 불렀다. 외견으로 봐서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다소 건방진 말투와는 달리 여자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여자는 아무런 대꾸 없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심한 시선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자신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나무라는 눈빛 같았다.

“에이, 미안하다니까. 정말로 차가 밀렸어. 오늘 금요일 밤이잖아. 요새는 5일제 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아서 주말보다 더 하다고. 좀 이해해주라.”

여자의 표정이 바뀌지 않자, 남자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를 부렸다.

“정말 화났나 보군. 알았어, 진짜로 미안.”

남자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합장을 하며 꾸뻑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물끄러미 보더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듯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내가 당부한 일은 어떻게 되었지?”

표정만큼이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다. 남자는 쌀쌀맞은 여자의 말투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알아봤는데, 특별히 연착만 하지 않는다면 내일 정오 정도에 도착을 한다던데. 근데 말이야, 도대체 그 친구가 누구야? 사부 성격상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신경 쓰진 않을 것이고, 그냥 궁금해서…… 괜찮다면 말해주면 안 돼? 혹시, 사부를 버리고 도망간 옛 남자친구라도 되는 거야?”

남자의 장난스런 물음에 여자가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며 서릿발 같은 한기를 내뿜었다.

“시호! 혀를 잘못 놀려서 영원히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싶어?”

“아이쿠, 사부! 나의 실수! 정말로 쏘리! 앞으로 조심할게. 그러니 제발 용서를!”

농담을 건넸던 남자―시호는 본전도 못 건지고 얼른 꼬리를 내리며 용서를 구했다.

“이번 한 번 뿐이야. 또 다시 같은 일로 나를 자극하면 가차 없이 단죄하겠어.”

“알았어, 주의할게. 아니, 이젠 정말로 안 그럴게. 후우, 사부는 한 번 화나면 정말 무섭다니까. 그런데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는데도 여긴 사람들이 꽤 많네? 주말이라 그런가.”

시호는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심스럽다는 투로 내뱉었다.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자를 훔쳐보고 있던 남자들은 시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호는 그다지 위협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그들을 비웃어줬다. 선이 굵고 워낙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시호의 의사는 아무런 여과 없이 100퍼센트로 전달되었고, 그로 인해 독주를 마셔가며 버티던 한 무리의 남자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라운지 중앙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그들은 시호보다 키는 작았지만 절대 꿀리지 않을 만큼 체격이 건장했고, 한 사람도 아닌 다섯이나 되어서 상황에 따라선 완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였다. 복장도 무슨 유니폼처럼 똑같이 검정색 정장을 걸치고 있어서 왠지 건전하지 않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호텔의 뒤편으로 유흥업소가 많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조직폭력배들 일 것이다.

 

        

 

“새끼가 눈빛이 마음에 안 드네.”

머리를 해병처럼 유난히 짧게 자른 사내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다. 그는 시호의 사부에게 집요하게 와인을 보냈다가 계속 거절을 당했기 때문에 버젓하게 그녀와 함께 있는 시호가 무엇보다 거슬렸던 모양이다.  

“마음에 안 들면, 들게끔 가르침을 줘야지. 안 그래?”

오른쪽 눈 바로 밑에 상흔이 있는 또 다른 남자가 한 마디 거들고 나서자, 테이블에 함께 있던 남자들은 모두 동의한다는 듯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자리를 박차며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처럼 느릿느릿 시호 쪽으로 다가왔다.

“생긴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호빠에서 돈 있는 가스나들이나 후리는 새끼 같은데, 싸가지가 너무 없구만. 인간이 저리 버릇이 없으며 안 되는 법이지. 그걸 또 그냥 보고만 있어도 안 되는 것이고.”

폭풍전야. 일순 긴장감이 감돌며 라운지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너무나 험악한 분위기 때문에 누구도 자리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라운지의 직원 하나가 몰래 호텔 보안실로 상황을 알리려고 인터폰을 들었지만 남자들의 사나운 눈빛에 겁을 집어먹고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만일 무리하게 연락을 취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만큼 눈빛에 강렬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사부, 어떻게 하지?”

시호가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이런 상황이 귀찮다는 목소리다.

“결자해지. 뿌린 사람이 거둬.”

너무나 매몰찬 대답. 시호는 손가락으로 코를 긁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사부답군. 그럼 조금 시끄러워도 돼?”

그녀가 시계를 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5분 줄게. 그 안에 끝내.”

“5분? 그건 너무 길잖아. 사부, 날 너무 무시하는걸.”

시호가 볼멘소리를 냈지만, 이미 그녀는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매정하게 계산서를 들고 라운지 캐시어로 향했다. 또각또각, 하이힐로 바닥을 울리며 걸어가는 그녀 앞을 해병처럼 머리를 바짝 깎은 남자가 음흉하게 웃으며 가로막는다.

“……?”

그녀가 말없이 바라보자, 남자는 거의 민둥산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머리를 스윽 쓰다듬으며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내가 그렇게 성의를 보였을 때는 무시를 하더니 고작 저런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나 상대하고 말이야. 이거 너무하잖아. 내가 그만한 노력을 보였으면 적어도 이름 정도는 알려 줘야지. 안 그래?”

“이름? 대가가 비쌀 텐데.”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냉랭한 태도를 더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콧대가 높은 여자일수록 함락시키는 재미가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침대 위에서 함께 뒹구는 상상을 하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비싸면 비쌀수록 재미가 더 한 법이지. 어때? 저런 애송이보다야 나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더 좋은 거 아냐? 내가 다른 걸 몰라도 ‘그 짓’만큼은 타고났거든. 어차피 그쪽도 재미 보려는 거잖아. 같이 홍콩 가자고. 크흐흐흐.”

남자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움켜쥐며 경박스럽게 흔들었다.

“내 이름은 정화, 이제 대가를 치를 각오는 되어 있겠지?”

“오오,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예쁜걸. 좋아, 얼마든지 치러주지. 어디서 치를까? 여기 호텔도 방은 많은데, 지금 예약할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시호의 사부, 정화가 가볍게 눈웃음을 치더니 남자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 전에 내 제자랑 대화를 나눠봐.”

“제자?”

남자는 그제야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시호의 버릇을 고쳐주겠다던 자신의 일행 모두가 바닥에 널브러져서 고통스럽게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시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사람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었다. 남자는 당황스러웠다. 사실 그들은 인근 유흥가에서 제법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조직폭력배였다. 워낙 잔인하고 거칠기로 유명해서 관할 경찰서에서도 가급적 마찰을 피할 정도였고, 군대도 특수부대나 해병대를 나온 강골들이다. 그런데 단 한 사람에게, 그것도 기척도 못 느낄 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한 것이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뭐야, 너…….”

남자는 처음에 보였던 자신감과는 달리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저 머릿속으로는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부, 말했지? 5분은 너무 길다고.”

시호가 눈을 찡긋하며 남자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며 자신의 사부, 정화에게 걸어갔다. 그러나 정화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눈빛으로 시호와 바닥에 쓰러진 남자들 번갈아 보더니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멀었어.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

“쳇! 가끔은 인정을 좀 해주라고. 사부는 점수가 너무 짜. 시걸이 녀석한테는 관대하면서 매번 나만 갖고 그러다니, 정말 너무해. 제자사랑을 좀 고르게 해줘.”

정화는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시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시걸은?”

“아아,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있었네. 그 녀석, 사부한테 잘 보이려고 야행(夜行)에 나섰어. 그게 어디더라?”

시호는 습관처럼 코를 긁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정화는 표정이 돌변하며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시걸이 야행을? 그걸 왜 지금 말해! 빨리 서둘러.”

정화가 계산서에 달린 클립에 지폐를 껴서 캐시어의 직원에게 던지듯이 건네고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가자, 시호는 뭔가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때까지도 머리를 짧게 자른 건달은 넋이 나간 얼굴로 라운지 중앙에 우두커니 서서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뭔가 잘못 되었어, 잘못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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