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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5)우리 친구하자.

瓚禧 |2005.06.22 10:32
조회 2,396 |추천 0

   

이상한 관계



 

(5)우리 친구하자.



“왜 내 염장 지르려고 전화한거야? 아니면 너 없이 힘들어 할 내 모습이 보고 싶어서 전화 한거야? 도대체 무슨 적의로 전화를 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탁- 소리가 나게 핸드폰 플립을 닫아버려도 이미 머리끝까지 치민 화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정말 최악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결혼을 해 신혼여행지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그런 소소한 보고들은 듣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상현에 관한 기억들이 담긴 뇌의 일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만한 녀석이 신혼여행지라고 전화까지 해서 고해바칠 거는 뭐람.


“진짜, 지랄 같네!”


영효가 머리를 양손으로 마구 헤집으며 욕지거리를 했다. 욕을 해도 해도 분한 화는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변두리 그 계집애가 전화를 해서 뒤집어 놓는다고 하면 이보다는 덜 화가 날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가, 박상현 그 사람이 직접 전화를 해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런 말을 초라한 병원복 차림으로 듣고 싶지도 않았다.


“인생 진짜 뭣 같네!”


그래도 다행인 게 정말 상한의 말처럼 돈이 많은 부잣집 똥강아지인지, 남자는 여자를 위해 독실을 얻어주었다. 다른 환자의 방해를 받지 않고, 여자는 미친 듯 욕을 하고, 침대가 상현인 마냥 두들겼다. 두들길수록 영효의 주먹만 시큰거릴 뿐이었다.


“뭐하냐?”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여자를 뜨악한 눈빛으로 흘겨보며 물었다. 그였다. 똥강아지. 부잣집 똥강아지. 남자는 벽에 슬며시 기대어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 혼자만의 굿판을 꽤 오랜 시간 본 표정이었고, 포즈였다. 모델처럼 벽에 기대어 고개를 45도 각도로 틀어 그녀의 행동들을 방관자의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그만 쳐다봐. 나 멋있는 거 다 아니깐.”

“무, 무슨 소리야! 너 같은 것, 트럭 째 가져다 줘도 트럭만 가지고 다 내다 버린다!”


여자가 남자의 말에 정색하며 대꾸했다. 사실 남자가 멋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싸가지 없었던 남자의 행동들 때문이라도 남자에게 그 사실을 바로 알릴 생각은 없었다. 여자의 생각을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남자가 여자를 쳐다보았다. 영효를 꿰 뚫는 듯한 눈빛이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거 아는 독심술이라도 하는 거 아니야?’


“너 방금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지?”


남자가 태연히 영효가 어지럽힌 베게를 바로 놓으며 물었다. 남자의 물음에 영효가 멈칫하자, 남자가 키득대며 웃었다.


“너 진짜 웃긴다. 반응한번 즉각적이다. 그냥 한번 해 본 말인데 네가 그렇게 나오면 더 놀리고 싶어지잖아. 그래. 영양실조 땅꼬마. 링거는 다 맞은 거야? 오늘 퇴원이지?”


남자의 말에 영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얼굴을 보던 남자는 또다시 키득거렸다.


“아씨! 기분 나쁘게 왜 웃어!”

“큭 …….큭…….미안 미안. 근데 말이야. 너 그 표정 못난이 삼형제에 나오는 표정 같아. 양 볼에 심술이 덕지덕지 달라붙어서는…….큭큭……. 참기에는 너무 가혹한 표정이다.”

“너? 죽을래?”


여자가 베게를 들고 일어나 남자의 머리를 퍽- 쳤다. ‘그만 생각해! 그만 생각하란 말이야!’ 라고 방방 뛰는 여자를 피해 병실 구석으로 도망가면서 남자가 말했다.


“어떻게…….머리 대땅 큰 거랑, 주근깨 송송 박힌 것 까지 똑 같다. 똑 같아.”


베게를 들고 쫓아가는 여자를 뒤로 하면서도 남자는 연신 여자를 놀려댔다. 맨발로 남자를 때리러 한참을 쫓아다닌 영효가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녀가 잡기에 남자는 너무 빨랐으며, 키가 컸다. 키가 크면 다리도 길고 다리가 길면 걸음 보폭도 자연적으로 커지는 만고 진리의 법칙을 여자는 새삼 되새기고 있었다. 영효의 두 걸음이 그의 한 걸음이었다. 지친 영효를 보던 남자가 피식거리며 ‘옷 입어. 퇴원하게.’라고 말하며 병실을 나섰다.


“진짜 웃긴 놈이네. 평범하게 생기긴 해도 내 평생 못난이 삼형제 닮았다는 소리는 처음이다!”


영효의 기억 속에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못난이 삼형제의 얼굴이 몽실 거리며 떠올랐다. ‘제길.’거리며 영효는 그 구름들을 없애려 팔을 들어 머리 위를 휘휘 저어댔다. 남자의 빈정거림에 기분이 상하기는 했지만, 여자는 그래도 그로 인해 상현의 기억을 잠시나마 지울 수 있어서 그가 조금은 고마웠다.

 퇴원 수속을 밟고 나오자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영효를 향해 불어 왔다. 푸른 나뭇잎의 향기를 머금은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려, 영효는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은 채, 한동안 그렇게 서있었다. 그녀가 바람의 끝자락을 느끼며 두 눈을 떴을 때, 영효 앞에는 키가 멀대 같이 큰 남자가 여자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을 무시하며 걸어가는 영효의 뒤를 바짝 남자가 따라 붙으며 물었다.


“원래 인생을 그렇게 코믹하게 살아?”

“뭐? 코믹이라고? 웃기네. 난 진지하고 진중한 사람이야.”

“근데 왜 그렇게 코믹하게 굴어? 네가 진지하고 진중한 사람이라는 말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 병실에 같이 있던 정의감에 불타던 슈퍼 아저씨는 왜 안 오냐?”


영효의 뒤를 바짝 따라 붙어 걸어가며 그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영효가 뒤를 획 돌아 남자를 쏘아 올려다보았다. 정말 키가 큰 남자였다. 영효가 올려 다 봐야 할 지경이었다.


‘상한이 보다 더 큰 것 같네.’


영효와 그의 어깨차이는 족히 20cm는 넘어보였다. 그런 남자가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아오니, 여자는 순간 괜스레 기분이 상했다.


“아씨! 그렇게 바짝 붙어 오지 마. 가뜩이나 키 작은데 너 때문에 더 작아 보이잖아. 그리고 그 슈퍼 아저씨는 바쁜 사람이야. 그리고 내 인생이 코믹하다는 건 더 이해가 안 된다. 나도 알고 보면 상당히 진지한 구석이 있는 여자라고!”


영효의 팩 쏘아붙이는 말에 남자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환하게 웃는 것 보다 미소를 짓는 것이 더 매력적인 남자였다. 얼굴 가득 환한 기운을 품으며 영효를 향해 웃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영효가 바닥을 쳐다보았다. 주책 맞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박영효. 너 뭐하는 짓이야. 너보다 5살이나 어린 녀석하고 뭘 하겠다고 가슴이 뛰긴 뛰냐.’


자책을 해도 한번 뛰기 시작한 가슴은 백 미터 달리기를 끝내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모양이었다. 뛰는 가슴 고동소리가 들릴까봐 영효는 팔짱을 껴 가슴을 안았다.

 빠르게 앞서 걸어가는 영효를 따라잡은 남자가 영효의 걸음을 막고 섰다.


“아씨. 도대체 왜 그러냐고!”

“넌 아씨가 입에 붙었냐? 계집애가 조신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지. 그래서 누가 데리고 가냐?”

“데리고 갈 사람 많으니깐 걱정 하지 마! 누가 너한테 그런 걱정 해달래? 너 진짜 웃기는 놈이다.”

“그래. 나 웃기는 놈이다. 나 웃기는 놈이어서 그런지 웃기는 너 보니깐 친구 먹고 싶어지네? 우리 친구 먹자!”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남자가 내민 하얀 살결의 손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살결이 얼마나 흰지, 힘줄이 다 들어날 지경이었다.


‘무슨 사내자식 손이 저모양이야.’


영효는 순간 뭉툭하고, 두껍고, 까맣기 까지 한 자신의 손을 내밀기가 민망스러워 두 손을 뒤로 숨겨버렸다. 그런 영효를 보던 남자가 영효의 팔을 억지로 끌어당겨 손을 마주 잡았다. 남자의 손이 몸에 닿자, 조금 진정됐다 싶었던 가슴이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젠장. 이번엔 마라톤이네.’


조금 전 백 미터 달리기로 끝냈던 가슴은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었다. 억지로 잡은 손을 개구지게 흔들던 남자가 말했다.


“너 핸드폰 좀 줘봐.”


남자의 말에 여자가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자의 핸드폰을 이리 저리 보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 지금 바쁘니깐, 나중에 보자. 전화번호 외웠다. 011-9175-0920 맞지? 간다!”


남자는 뒷걸음질치며, 여자의 전화번호를 외우고는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남자를 쳐다보다 여자가 뒤를 돌아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세상에 저 핏덩이 같은 녀석하고 친구를 먹고, 참…….’


후회를 해 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 진작 그 녀석이 말을 놓았을 때부터 따끔히 혼을 낼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분명 기분이 한참 나쁘고, 신경질 까지 나고, 또 방방 뛰어야 할 상황인데도 그녀는 이상하게 차분한 마음에 애써 돌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상현이 때문에 내성이 생겨서 그래. 내성이......”


영효는 이상할 정도로 잔잔한 자신의 마음을 상현 때문이라고 치부하며, 또다시 밀려오는 상현의 기억들을 몰아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영효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상한이 운영하는 B&G마트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퇴원인데 그에게 들려 퇴원 인사라도 건네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자가 가게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자, 상한이 정색하며 그녀를 반겼다.


“언제 퇴원한거야?”

“지금 바로 오는 길이야. 근데 인사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인사는 무슨……. 일단 여기 앉아.”


상한이 가게 앞에 쳐 놓은 파라솔 의자를 당겨 주며 그녀를 앉혔다. 그리곤 아이스크림 두개를 꺼내 들고 그녀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토마토 맛의 아이스크림 봉지를 벗겨 속살을 들어내면서 ‘오늘은 왜 초콜렛 아이스크림이 아니야?’ 라고 묻는 영효에게 상한이 ‘넌 환자잖아.’ 라고 말했다. 상한은 초콜렛 아이스크림, 영효는 토마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둘은 나란히 앉아 한낮의 여름 햇볕을 받아내고 있었다.


“덥네. 더워.”

“완전 여름이니깐 덥지. 게다가 지금이 한참 더울 3시 경이잖아.”

“동남아도 더울까?”

“동남아도 당연히..........”


동남아도 당연할 것이라고 말하려던 상한이 입을 다물었다. 동남아는 상현과 주리가 간 신혼 여행지였다. 영효의 물음에 차라리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것이라 상한은 생각했다. 입을 다문 상한이 화제를 돌려 말했다.


“요즘 꼬마 애들 얼마나 개구진지 몰라. 나보고 아저씨래. 나이래 뵈도 장가도 아직 못 갔고, 30도 안 넘었는데 아저씨라니. 소심한 아저씨 가슴 많이 상했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영효의 관심을 끌려던 상한은 그녀의 굳은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오늘 상현이한테서 전화 왔더라. 신혼여행지에 잘 도착해서 오늘 한국으로 돌아갈까라고. 그러더라. 나쁜 자식. 그런 보고를 왜 나한테 하냔 말이야. 이제 겨우 마음을 잡고 있는데…….”


쓸쓸하게 말하는 여자의 얼굴에 눈물이 고여 마른 아스팔트 위에 톡 하니 떨어졌다. 그녀의 눈물을 남자는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상한은 영효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신도 지금 주리에게 전화가 온다면 분명 여자와 같은 마음일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말없이 여자의 눈물을 손으로 훔쳐내었다.


“다 큰 처자가 울면 지지라니깐.”

“흡…….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이건 눈의 반사적인 반응이라고 내가 안구건조증 때문에 그런다고 몇 번을 말해……. 그리고 지지라는 말은 올바르지 못한 말이야.”


영효가 상한의 말에 스프링처럼 반박하며 말했다. 영효가 아직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얼굴을 손으로 대충 문지르며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울던 어린 계집아이가 눈물 닦고 아이스크림을 베어 무는 것 같이 천진스러웠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기운내 친구.”


남자의 입에서 친구란 단어가 영효가 뜨악한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분명 서로 암묵적으로 친구와 비슷한 관계에 처해지기는 했지만, 남자의 입에서 친구란 단어가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친구란 단어 하나에 얼마나 확실한 관계가 되어버리는가? 여자는 남자의 배려에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순간 남자의 어깨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의자를 상한의 곁으로 붙이면서 영효는 살며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녀의 기대어진 작은 머리칼 사이로 상한의 손이 쓱쓱 지나갔다.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헤집어 주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영효는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걸 좋아하는 여자였다. 미용실에 가면 항상 미용사들의 손길 때문에 스르륵 잠이 드는 그녀였다. 그의 나긋한 손길에 여자는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여자의 머리가 벌떡 세워지면서 영효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환한 대낮이었던 시간이었는데, 주변은 어둠으로 둘러싸여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영효가 옆에 있는 상한을 보며 물었다. 상한은 그녀가 기대었던 어깨를 두들기며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잠들었었어. 그대로 잠들어서 이제 일어난 거야.”


상한은 그녀가 기대었던 오른쪽 어깨가 어지간히도 아픈지 살짝 찌푸린 인상을 피지 않은 채, 말했다. 그의 말에 영효가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파라솔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미안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해. 많이 아파? 아씨. 어쩌지?”

“쿡. 좀 앉아. 어쩌긴 어째.”

“장사도 못했지? 그치?”


영효의 말에 남자가 파라솔 테이블 위에 놓은 돈과 동전들을 내 밀었다.


“애들이 사가지고 오면, 여기서 계산 했어. 뭐 그래도 장사 못하지는 않았어. 걱정하지 말고 좀 앉아.”


남자가 영효의 팔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진짜, 미안해. 진짜.”


영효가 두 손으로 비는 시늉까지 해 가며 말했다. 영효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친구끼리 뭐 그런 것 가지고 미안하다고 말해? 미안할 것도 아니야.”


그의 말에 영효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남자를 쳐다보았다. 지는 노을이 남자의 얼굴에 스며들어 그의 얼굴이 붉은 홍조를 띄고 있었다. 친구끼리라는 그의 말에 여자는 남자가 더욱 믿음직스러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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