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응, 저 아저씨는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보지? 아…!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 그런 도끼눈으로 보지 말라고요!’
“아, 아가씨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가주님께서 아시면 경을 칠 일입니다. 월아야, 넌 뭐했냐?”
“집사님, 자, 잘못했습니다!”
하녀는 즉시 장하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선실 바닥에 조아렸다.
“장 집사, 그만 두어요. 월아는 잘못이 없어요! 내가 우겨서 하는 일이니까. 그만 월아는 일어나 거라. 공자님께 마저 드려야지 않겠느냐!”
“예예, 아가씨!”
다시 정민에게 숟가락 세례가 이어지자 장하걸의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새나왔다.
“어휴! 큰 아가씨 다음부턴 월아나, 명아를 시키십시오. 가주님의 꾸지람 소리가 벌써 제 목을 조여 옵니다.”
“호호호, 알았어요! 집에 돌아가면 조심할게요.”
“조심하는 게 아니라 다신 이러시면 안 돼요!”
“알았다니까요, 호호호!”
결국 장하걸은 고개를 저으며 포기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모든 건 가주의 몫이니까 자신은 적당히 눈치를 보며 살림이나 잘 살피면 되는 것이다.
‘후우, 우 형님이 알아서 다 잘 챙기시겠지. 나야 본가에 돌아가면 하인들이나 잘 챙기면 끝 아닌가!’
장하걸은 하려던 말을 포기하고 선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여자라면 저런 남자를 놓치기 싫었겠지. 뭐 머리털이 없어서 그렇지, 저 정도로 잘생긴 남자는 진짜로 드물지. 게다가 여자보다도 더 고운 피부라니…! 아 맞다, 환골탈태! 호, 혹시 아가씨도 눈치 챈 거 아니가?’
장하걸은 다시 선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큰아가씨의 얼굴이 붉게 상기 되어 사내를 안은 채로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앞의 시녀는 정민의 한 팔을 붙들고 어쩔 몰라 하고 있었다. 장하걸의 눈에 보이는 사내의 뒷목과 귓불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장하걸은 어떤 상황인지 이해는 가지만 큰 아가씨의 젖무덤에 빤질거리는 머리를 묻고 있는 정민에게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아, 이럴 수는 없는 거야!’
그릇이 다 비워지자 정민을 다시 침상에 뉘려고 했는데 고개도 제대로 못 가누는 나무토막 같은 사내의 몸을 여자 둘이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힘을 못 쓰고 정민을 끓어 안고 민망한 자세로 같이 누워있는 꼴이 된 것이다. 장하걸은 당장 달려들어 정민을 일으키며 혹시 음흉한 맘을 먹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인정사정 보지 않고 팔을 꺾었다. 이어 요란한 비명소리가 선실 안을 가득 채웠다…가 아니고 장하걸을 멀뚱하니 쳐다보며 눈만 굴리며 아주 조용했다.
“…!”
‘어, 아니네! 흥, 참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이거지. 그럼 어디 다시 한 번 이렇게 했는데도 참을 수 있나…!’
이번에는 아예 손가락 하나를 골라 부러져라 꺾었다.
“…!”
‘이 보슈, 난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그러다 팔이라도 빠지거나 손가락이 부러지면 당신이 물어 줄 거여?’
“장 집사, 뭐 해요!”
“네, 네에?”
“꼼짝도 못하는 사람을 그렇게 거칠게 다루면 어떻게 해요!”
“제, 제가 너무 힘을 주었군요! 공자님, 용서하세요. 제가 아주 서툴러서요, 헤헤헤!”
“…!”
정민은 환하게 웃으며 옆구리 갈비뼈 사이를 지그시, 그것도 아주 아픈 곳을 손톱을 세우고 지그시 누르며 부측해주는 아저씨에게 미소를 띠워주었다, 짝퉁선녀님과의 어색하고 부끄러운 자세를 해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사내의 미소가 장하걸은 왠지 자신을 비웃는 걸로 보였다.
‘흥, 이놈은 바람둥이 도령이 틀림없다. 이렇게 뻔뻔하다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본가에 들어가기 전에 네놈의 가면을 벗기고야 말겠다. 두고 봐라!’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다시 침상에 누운 정민은 옆에서 말을 하는 짝퉁 선녀에게 전혀 무슨 말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눈을 맞추고 그냥 미소만 지었다. 그나마 다행히 넋 나간 침은 흘리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야 말이 아니더라도 눈짓이라도 할 텐데! 이럴 줄 알았다면 중국어 회화 책…! 맞다, 그게 있었지.’
정민은 중국에 올 때 공항에서 산 중국어 회화 책을 생각해냈다. 비행기 안에서 자지 않고 훑어본 것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다행이 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하하, 조금만 기다리시라 선녀님!’
정민은 눈을 감고 회화 책을 한 장, 한 장 떠올리면서 회화를 익히기 시작했다.
“공자님은 어쩌면 이렇게 백옥으로 조각해 놓은 것 같이 생기셨습니까? 소녀의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 군요.”
“에구, 아가씨도 못하는 말이 없으셔요. 아가씨, 이제 밤이 깊었는데, 쉬셔야죠!”
“호호, 공자님은 깊이 잠이 드신 것 같구나. 그래서 해본 말이다. 솔직히 너도 공자님이 맘에 들지 않느냐?”
“에이, 아가씨도 참! 여자가 쉽게 할 말 같지는 않은데요.”
“호호호, 그런가!”
“장 집사가 아가씨 걱정이 큰 것 같아요. 그만 쉬시죠!”
“아니다, 이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맘이 편해지는 구나. 이대로 좀 더 있겠다. 넌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쉬도록 해라.”
“예, 장 집사에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하녀가 나가고 선실 안에는 정민과 짝퉁선녀님만 남았다.
“월아야, 화 아가씨는 어찌하고 계시냐?”
“아직도 그 공자님 곁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래, 참으로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오늘은 누가 화 아가씨 당번이냐?”
“네, 정아입니다.”
“음, 알겠다. 가서 쉬어라!”
장하걸은 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자신의 선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어이구 머리야! 어렵군, 어려워.’
정민은 발음이 밑에 쓰여 있었지만 중국어에 있는 사성 때문에 실제로 듣는 건 어려울 거란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에이 잠시 머리를 식혀야겠다. 어! 이, 이건….’
정민은 자신의 입을 조심스럽게 만지는 손길을 느꼈다.
“푸, 풋!”
짝퉁선녀의 손길이 정민의 입술뿐만 아니라 얼굴 이곳저곳을 만지며 잔잔히 웃는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이럴 때 눈을 뜨면 안 되겠지. 아이고, 간지러워라. 그, 그만… 으응!’
정민은 낮에 느꼈던 똑같은, 아니 비슷한 기를 가진 자가 다시 접근하는 것을 느꼈다. 낮에 왔던 자보다 더 은밀하고 조심스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지닌 실력이 더 나은 것으로 보였다. 정민은 낮에 했던 것처럼 즉시 살기를 뿌려 물리치려다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짝퉁 선녀가 너무 가까이 있어 아까와는 다르게 큰 충격을 받는 것이 염려 되었다.
‘어떻게 한다? 저놈에게만 살기를 느끼게 하면 될 텐데, 방법이 없을까?’
정민은 점점 다가오는 자만 놀라게 해서 도망치게 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얼굴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정민의 처지를 알고 비웃기리도 하듯 대담하게 짝퉁선녀의 선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제기랄 놈! 약 올리고 있네. 저놈에게만 살기를 보낸다, 저놈에게만 살기를…, 저놈에게만…, 그래 그거다!’
정민은 과거에 읽었던 책을 떠올리며 책 되새김질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자로만 된 책이 떠올랐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읽어본 기억에도 없는 심법이니, 보법이니, 경공이니 하는 황당한 내용만 쓰여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덮어 놓았는데 ‘어기살인(御氣殺人)’이란 문구를 떠올렸다.
문자 그대로 기를 다스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인데, 책 내용은 특이하게도 간단하게 몸에 지닌 기를 발출하여 사람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와 상대의 기를 공명시켜 상대의 기를 자신의 기처럼 다스리고 그기를 폭발시켜서 스스로 죽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쓰여 있었다. 실재로 이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려면 몸에 쌓인 내공의 수준이 육 갑자 이상이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어라, 공명이라고 했나! 후후, 기도 일종의 파동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상대의 고유 주파수만 찾을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구만. 문제는 육갑자면 삼백육십 년이란 소린데, 내게 그런 내공이 내게 있을 턱이 없잖아. 그럼 이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네…, 아니지 아까 그놈처럼 놀라게는 할 수 있을 거야. 죽이는 게 다는 아니잖아.’
육갑자란 내공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그 방법을 이용하면 지금 다가오는 자를 놀라게 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 되었다. 정민은 즉시 책에 적혀있는 대로 몸속의 기라는 것을 움직여 보았다. 책의 내용대로라면 지난밤에 자신이 들고 있던 칼에서 푸른 광선이 발출된 것이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시도해 보려했다. 뜻대로 안된다면 짝퉁선녀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낮에 했듯이 살기를 뿜어대면 되니까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의 기를 움직여보았다.
‘어, 어라, 이게 뭐야? 네게도 진짜 내공이라는 게 있네! 허, 그런데 이건 바위에 새겨져있는 문양의 이동형식하고 비슷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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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