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한님(桓雄)의 구슬 - 37

내글[影舞] |2005.08.04 10:04
조회 389 |추천 0

한님(桓雄)의 구슬 - 37   - 내글[影舞]

 

“아니야, 아니야! 나라도 자네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별 수 없었을 거야. 그러나 저러나 화령을 막아야겠는데 어찌한다?”

화령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 화령의 원하는 바를 하게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장주님, 우선 방 사범을 만나셔서 이야기를 나누워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군! 당장 방 사범을 불러오게, 어서!”

장하걸은 즉시 장주의 거처를 빠져나와 방 사범에게로 달려갔다. 화령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막고 싶은 건 유벽만큼이나 간절했다. 이유는 그의 딸이 아미파의 제자로 들어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의 딸이 아미파의 제자로 들어간 것이 벌써 십년도 넘는 일이 지만 그때는 자신이 유가장의 집사가 되기 전이었고, 흉년이 들어 먹기 살기 힘들었었다. 유생으로 과거를 나이 사십이 되도록 등과도 못하고 책만 읽던 장하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세 명의 자식들이 배를 곯고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것밖에는 없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얼마 되지 않는 땅을 소작을 주어 거기서 나오는 적은 소출을 가지고 대기근을 이겨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먹는 입 하나라도 줄여 굶어죽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때 우연히 동네를 지나던 여승이 - 무림이 뭔지 모르던 때라 아미산에서 온 승려라고 해서 그저 그러려니 했다. - 열두 살이었던 큰딸 장연을 원했다. 먹기 살기 힘든 때라 입하나 덜기 위해 출가를 시키지는 않겠다는 조건을 달아 그 여승에게 딸려 보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유가장의 집사로 들어오게 되었고 자리를 잡게 되자 제일 먼저 아미산에 사람을 보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곳 장로의 수제자가 되어 무슨 수련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공인줄은 몰랐다. 수련이 끝나면 돌아올 것이란 말만 듣고 말았다. 고승의 수제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출가를 한 것이 아닌가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좋은 일이러니 하고 기다리려 했다. 하지만 아내가 가만있지 않았다. 결국 아내의 성화에 유벽의 어렵게 허락을 얻어 아미산에 가서 직접 딸을 데려오려 했다.

그런데 딸 장연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딸아이가 무공을 수련중이라 만날 수 없다는 것과 이젠 아미파의 정식제자가 되었기 때문에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까지는 일체의 외부인을 만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문제는 그 일정 수준에 도달 한다는 것이 일, 이년이 아니라 십년이 걸릴지 이십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살벌하기 짝이 없는 칼부림이 수시로 일어나는 무림에 발을 들여놓은 딸 때문에 맘 졸이며 살아갈 생각을 하니 끔직 했지만 분위기가 워낙 험악하여 더 이상 말도 더 못하고 돌아서야했다.

이렇게 생이별을 격은 장하걸이 자신의 딸과 같은 또래의 화령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고 생이별의 단초를 제공한 무림인들에 대한 반감도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막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장하걸이 화령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속에 있었으니 장하걸의 마음은 복잡했다.

‘에구, 연아도 벌써 스물두 살이 되었으니 시집갈 나이가 되었구나, 후우! 큰아가씨가 무공을 익히게 되면 역시 그 무지한 놈들의 칼부림을 언제 당하게 될지 모르는데, 막아야해!’

마음이 급해진 장하걸이 방중선을 찾아 달려갈 즈음 유화령은 정민이 쉬고 있는 별채에 들어서고 있었다. 월아와 약간은 어조가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기 연습에 열중인 정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민의 손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옥 부채를 들고 천천히 부치며 월아를 따라 열심히 발음을 따라하고 있었고, 월아는 어색한 발음에 간간히 웃으면서도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여 쉽게 끼어들기가 미안했던 화령은 한숨을 쉬고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앉아 끝나기를 기다렸다.

‘흠, 짝퉁선녀님의 얼굴에 그늘이 졌군. 말썽꾼들을 모두 사라졌을 텐데 또 뭐가 있나? 역시 얼음부채의 위력은 대단하군. 한여름에도 이부채하나면 끄떡없겠어! 그런데 이 그림이 눈에 꽤 익단 말이야. 어디서 보았지?’

정민은 월아를 따라 중국어를 익히면서도, 분심양위의 수법으로 기를 조절하여 부채의 기능을 시험하고 있었다. 부채의 겉살은 손으로 잡는 부분은 옥으로 되어 있고 ‘빙옥선(氷玉扇)’이라고 음각이 새겨져 있는데 만들 때 새겨진 것이 아니라 후에 누군가가 내공으로 새겨 넣은 것으로 보였다. 나머지는 금속성 물질인 것 같은데 쇠도, 청동도 아니었고 단지 약간 부른 빛을 띠고 있었다. 부챗살은 동물의 뼈로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합죽선과는 달리 종이를 바르지 않은 부챗살 자체로만 되어있어 특이했다. 펼치면 한 폭의 산수만물상이 그려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세 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고 해와 달이 동시에 그려져 있어 특이했다. 게다가 봉우리 사이에 폭포가 그려져 있어 어찌 보면 하릴없이 이것저것 빼먹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걸 집어넣어 짜깁기를 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런 그림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기 부채에서 냉기를 뿜어내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의 한 획, 한 획을 따라가며 다시 그려보고 있었다. 이런 버릇은 오랫동안 의식만 깨어있을 때 생긴 것이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가물가물하던 것도 뚜렷해져 정확한 뜻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책도 그랬고, 백두산에선 본 문양도 그랬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되면 그렇게 하게 되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직 끝까지 해내지 못한 것이 백두산 바위에 새겨진 문양이었다. 지금까지 전제에서 불과 삼분지 일 밖에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무언가 연결 고리가 빠진 듯 연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시작점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작점을 찾게 되면 모든 게 쉽게 풀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윽고 약속된 어학연수 시간이 끝나고 정민에게 화령이 다가 왔다. 물론 월아는 눈치껏 자리를 피한 뒤였다.

“배우시는 게 어렵진 않으신가요?”

“네, 이젠 어느 정도 해볼 만합니다.”

“어서 말을 배우셔야 할 텐데, 그래도 정 공자님은 말을 빨리 배우셔서 안심이 됩니다.”

“그런가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하하하!”

“어머, 이젠 농담까지 하시네요, 호호호!”

‘에고, 웃지 말아요! 그렇게 웃으니 헷갈리잖아요.’

“…!” 

정민은 화령의 웃는 모습에 넋을 놓아버렸다.

“공자님, 어디 아파요?”

“예에! …헤… 하하하, 아닙니다.”

‘역시 짝퉁선녀하고는 안되던 말도 잘 된단 말이야, 흐흐흐!’

‘이쯤에서 부탁을 해볼까! 안 들어 주심 어떻게 하지?’

화령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네에, 부탁이요?”

‘이런 황송할 때가 있나! 무슨 부탁이던 말씀하십시오. 저 하늘의 별이라도 짝퉁선녀님의 부탁 이라면 따오겠습니다.’

“그, 그게 그러니까…!”

‘그만 뜸들이고 말씀만 하십시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는 한번 죽어봤기 땜에 다시 죽긴 싫으니 흉내는 내보겠습니다. 그러니 애만 태우시지 말고 말씀해보세요.’

막상 말을 꺼내놓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쉽게 부탁 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고민에 빠져 망설이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에고, 방 사범님 이럴 땐 눈치껏 딴 곳이라도 가주심 안 되나요?’

“정 공자님, 계십니까?”

“어머, 사범님이 어쩐 일이시지?”

“네,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대충 상황판단이 끝나시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사라져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해요!’

정민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방중선이 들어섰고, 화령을 발견하고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아가씨도 계셨군요!”

“네에!” 

화령은 방중선이 온 것이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보였으나 방중선은 싹 무시하고 두 사람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두 사람이 앉아있는 탁자에 다가섰다. 온 손님을 바로 쫓아낼 수 없는 노릇이라 자리를 권했다. 두 사람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방중선은 한마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두 사람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정 공자님, 절대로 화령아가씨의 부탁을 들어 주어서는 안 됩니다.

- 네…, 네에?

- 화령아가씨는 공자님께 무공전수를 부탁하러 온 것입니다. 장주님께서 절대로 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리 알고 거절하십시오.

-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 장주님께 염려마시라고 전해주시오.

화령은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고개를 끄떡이고는 방중선이 일어서자 황당했다.

‘뭐지? 얼굴만 서로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다니…? 아, 그거! 책에서 봤던 전음술로 서로 이야기하는 거구나. 나도 무공을 익히면 저렇게 될 수 있겠지, 후후후!’

화령은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가 자신의 무공을 익히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속편하게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두 사람이 전음으로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쳐다보고 반드시 무공을 익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중선이 나가자 화령은 아까처럼 주저함 없이 정민에게 무공을 전수 해줄 것을 부탁했다. 자신의 부탁이라면 분명 군말 없이 들어주리라는 걸 예상했던 화령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토라져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너무 심했나! 그냥 가르쳐주는 척하면 서시간이나 같이 보낼걸 그랬어. 그럼…, 흐흐흐! 꿩 먹고 알 먹고 인데, 생각이 짧았군.’  

------------------------------------------------------------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