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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우-4 (-5일째-)

붉은여우 |2005.08.15 06:32
조회 1,119 |추천 0

 -4일째(금요일)-

  수연은  아침이  되어도  영  눈이  떠지지  않았다.   오늘이   면회날인데,  들어온지  일주일이  지나야  면회시켜준다니  수연은  자신에게  해당되진  않는  날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졌지만,  간호원에게  면회가  가능하냐고  물어보자,

" 가족이  오더라도  의사선생님의  승인이  있어야  되니까  선생님께  제가  물어볼께요."

라고만  대답하고   간호사실로  들어가 버렸다.

  ' 오늘  그가 올까?  엄마는  오실까? '

" 졸라.  자.자꾸  졸르면 해줘.  의사 선.선생님을  붙잡고  졸라.  차.찾으러 가자.  졸르라니깐." 

하며  풀죽어  앉아 있는  수연에게  유림이  자꾸  힘을  주고  부추켜 준다.

  수연은  자신이  이  병동을  나가는 날,  자신에게  가장 고마웠던  사람으로  유림언니를  기억할거 같았다.  단지  먹을 것을  심하게  밝혀서  보기  안좋지만  그 또한  그 언니의  천성일거라 생각했다.

 

  면회날이어서인지  11시 50분  정도가  되어야  나온다던  식사가  11시 25분에  나왔다.

드디어  12 시,  면회시간이  되자  수연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2시  정각,  병동의  문이  열리고,  반쯤은  체념하고  병실에  앉아 있던   수연에게   유림이  소리지르며  병실로  뛰어들어  왔다.

" 수.수연아,  와.왔다."

내 이름 철자도  가끔  더듬거리며  말하는  유림이었지만  그 반가운 소식에  수연이  문 앞으로  뛰어가니  184센티미터의  훤칠하고  영화 배우같이  잘생긴  창훈과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수연은  그의  가슴으로  뛰어 들어가  간호원실  앞인줄도  모르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의  양복 앞 품이  수연의  눈물로  축축히  젖어갔지만  그는  수연을  조용히  안아주며  달래주었다.

" 자. 자 그만울어.  일찍 오려고  서둘러서  왔는데.  엄마도  같이 왔으니  그만 울어.  저기 가서 앉자."

  창훈은  중앙 홀의  TV 앞,  소파가  있는 곳으로  수연을  달래며  이끌고  가서  앉혔다.

" 흑흑. 왜  날  여기에  뒀어?  미치는 줄  알았단  말이야!  "

" 그러길래  왜 그랬어.  아무튼  이번에  마음을  다  안정시키고  나가야 해."

" 병실 사람들  얘기 들으니까  보통  보름에서  한달이면  나간다던데..."

" 어이구, 그런  정보수집까지  하고 있었어?  이제  내가  곁에 있을께.  걱정마...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도  많이 가져왔어.  잘 먹고  어서  기운 차려야지. "

수연은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 감자튀김, 고구마, 군밤, 귤,  음료수... 등을  바라보면서  목이  매여  계속  눈물이  나올뿐 이었다.

" 나  언제 나가?  일반 병실로  옮겨 주면  안돼?  이젠  다시는  죽는다는  생각 안할께."

" 안돼,  의사선생님이  네 가슴속에  뭉친 것들이  많아서  이번에  충분히  상담하고, 마음을  다 치유  해야 한다고  하셨어.  이번에  푹 쉬다가  완전히  다 낫고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어...수연아, 알았지?"

" 여긴  남자병실도  있고,  창을  보면  창살뿐이고,  벽에도  아무것도  없고, 갑갑해서  미칠것  같단 말야.  이상한 사람도  있는 것 같고."

" 괜찮아.  여긴  그런 곳 아니야.  너도 알잖아.  대학 병원의  14층 일뿐이야.  진짜  이상한 곳은  면회도  잘 안시켜 주고,  묶어놓고,  외진 곳에  있어.  여긴  우리집도  보이잖아.  정말이야.  딴 생각 말고  이번에  푹 쉬면서  몸 나을  생각이나  해."

" 그래도  첫날  정신 못차리고  있을 때보단  눈빛이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안심이 돼."

수연의  엄마는  안심된다는  눈초리로  수연을  바라보며  수연의 손을  잡고  자꾸만  어루만져 주었다.   시간이  2시 되어가자   점심 시간이  지나서  창훈이  직장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수연의 엄마도  같이  일어서서  따라  돌아갔다.

 

   창훈과  수연의 엄마가  돌아가고 나서야  수연은  비로서 웃을 수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선  자신의  이런  상황때문에  창훈이  자신에게  묶이게  된 것 같은  죄책감이랄까...무거움도  함께  떠올랐다.

  오후  3시가 되자  회장이라는  청년이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와  서예를  한다며  사람들을  불렀다.  창훈에게  보낼 카드를  만들 생각으로  나갔지만  카드와  볼펜 몇 개, 반짝이는  핑크,오렌지 풀 두개 뿐,  가위와  색종이도  없었다.  아마도  가위 등을  줄 수 없었던 것은  사고가  날까  신경쓰여서 그럴 것이다.   수연은  창훈에게  줄 카드를  만드려니  무엇을  써야 할지... 망설임만  가득 생겨  결국  카드를  만들지 못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약을  먹고  앉아 있자니  저녁 6~8시에  두 번째  면회 시간이  돌아왔고, 

" 수연아! " 하시며  수연의  엄마가  병실로  쑤-욱 들어오셨다.

" 엄마?...  엄마!... 창훈씨는?"

" 같이 안왔다.  퇴근하고 오니까  이따  오겠지"

수연의  엄마는  들고오신  보따리를  요술 보자기를  푸시듯  하나씩  열어서  수연에게  보여주었다.

진한 흑장미색의  내복 상.하의  한 벌과,  홍시감  3 개, 여기선  깎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과. 배. 단감을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예쁘게  깍아오셨던  것이다.  거기에  복숭아  통조림, 수연이  좋아하는  식혜 한병까지  넣어오셨다.  

  수연은  눈물이  핑 돌았지만  자신의  엄마에겐  늘 그랬듯이  고마운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목이 매였다.  외국이나  영화에서는   잘도  서로  안아주던데...  어릴때부터  해보지 않던 일이라  쑥쓰러워서도  못하고  엄마의  까칠하니  주름진 손만  잡았다.

  " 엄마,  미안해... ...  내가  잘못했어...  이젠  죽는다는  생각 안할께... 정말..."

  " 그래... 그래야지... "

수연 엄마의  주름진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연 엄마는  연신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수연의  손을  마주잡고,

"  네  속에  맺힌 것 있으면,  다 털어버려라.  이번 기회에.  네가  하자는 대로  할테니... 몸 건강하게  있다  나와.  에미가  누구 보고 살겠냐.  너네들만  보고 사는 걸. 에미  생각해서라도  이젠  그런  흉한 생각 하지도 말고..."

"... 응(흑흑)..."

  수연의  엄마가  돌아가고,  면회 시간이  다 끝나가도록  창훈은  오지 않았다.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의  망설임이  느껴져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금  느껴지는  날이었다.  

  8시가  넘으니  간호원이  환자들을 불러  혈압을  재고는  약을 주었다.  약을  먹은 후  약 탓인지,  만남에  대한  하루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 오늘  선생님을  못봤네.  이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내가  너무  말이  심했던 걸까?  다음에  만나면  사과해야겠다.  내일은  오시나?  아, 졸리네..'

 

  -5일째 -

  수연은  이제  조금씩  이  병동생활에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어제  가족들의  면회가  수연에게  안정감을  더욱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일요일에  또 온다고  했으니  오늘만  지나면  오겠지  하는  희망이  생겨서 인지  조금 더  기운이 났다.

오늘은  아침부터  조금  부산스러웠다.   긴 머리의  예쁜 얼굴을  했던  거식증 환자,  키 큰 아가씨  명숙,  단지  음식을  너무  안먹어서라는  이유로  들어왔던  명숙이  10 일 만에  그녀의  엄마, 오빠가  데리러 와서  퇴원하고,  50대  중반의  아줌마가  들어오셨다.  수연은  왠지 기분이  야릇했다.  침대가  새로이  바뀌고  또  같은  모습으로  정돈되어  새 주인을  맞는  모습이...

 

   수연은  차분히  자신의  병실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수연이 있는  병실은  1403호로써,  두 개의  여자 병실 중,  주로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여자들만 

모아 놓은 것 같은데,  침대는  여섯이지만  사람은  다섯이었다.  수연을  포함해서. 

1403호의  첫 번째 환자는-  '이 지임 할머니' 인데   나이는  74세로(고생이 많으셨는지,  나이보다  10년은  더 들어보임)  키는  153cm나  될 정도로  작고  마른  체격에  말수가  없는 반면,  운동 삼아  가끔 일어나서  걸어다니실 때  계속  웅얼거리신다.   그럴때면  간호원이  가끔씩  들여다 보면서, "할머니,  뭐라고 하셨어요?"  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간호원에게  주기도문  외우는  거라고  하시지만  손과  입술의  떨림이  있고,  약간의  치매 증상도  있는 것 같았은데...유림이  '가벼운 치매와  중풍' 인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식사 때와  어쩌다  일어나  병실 안을  걸어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이  주무시기만  한다.

  두 번째로,  '정유림' 으로  33살의  너무 좋아서  들뜬다는 병, 조을증 환자로  일명 '조증' 이라고도 한다.   미용사로,  굉장히  잘 들뜨고  명랑하며  말이  빠른 대신,  잘  더듬는다.  대인 관계는  원만해서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며,  처음  수연 엄마의  부탁을  받아서인지  유독  수연을  챙겨주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으로  자려고  누웠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  돌아 다니면서  움직이는  천방지축인  모습에  의사도  너무  들떠있다는  말을  하는데도   회진을  도는  의사만  만나면,

" 원래  내 성격이  이런데,  자.자꾸  선생님들이  들떴다고  해요.  워.원래  이래요.  명랑하고. 말도 잘.잘하고." 라고  설명을 하는데,  나이에  비해  무척  순수하며  기독교인임을   매우  강조한다.

  세 번째로,  이 병실에서  제일 어린 '지아' 이다.  매우  귀여운  느낌을  주는  이제  20살난  아가씨이다.  동거하던  남자로부터  너무 심한  구타를  당해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묶여서  들어왔다고  한다.  여리고  심약한  성격으로  말을  좀  웅얼거리는  경향이  있는데,  음식을(특히 빵)  좋아해서  계속 '빵순이' 라고  유림이  놀리기도  한다.  계속  먹기만  하든지, 자든지... 밥 타러 가는  정도의  좁은 행동반경을  보이는데  예쁘지는  않은데도  귀여움과  보호본능을  일으킨다.

   네 번째로, 오늘  아침에  들어오신  '김옥순' 아줌마이다.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로,  약을 먹은 (수연과 같은) 이유로  중환자실에서  하룻밤  자고  왔다고  한다.  성격은  대가  좀 세 보이고,  체격이  좀 있는, 약간은   성질이  있어 보이는  아줌마로,  고향은  충청도이고,  유림이  '언니, 언니' 하며  잘 대해줘서인지  들어온지  하루만에   식사도  잘하고  적응을  매우 잘해서  수연을  놀라게  하는  아줌마다.

 

   이 병실 보다는  조금 작은  옆 병실인  1402호에는  세 명의 환자가  있다.

대학교수까지  했다는  4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있는데,  온 몸의  화상으로  말을  잘 못한다. 

늘 입을  벌리고  있고,  화상 자국을  간지러워 하면서  옆 사람에게  등을  긁어달라고 하는  4개월째  입원해 있는  환자이다. ( 이 아줌마를  볼때면  수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런  아줌마도  있는데... 나는  어떤가' 하는  자기 반성이 들 정도로  이  아줌마는  차분하게  자기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 번째 환자는,  늘 울고 있기만 하는  수연과  같은  우울증의  병명을  가진  젊은 아가씨로,  웃는 모습  보기가  매우 어렵지만,  웃으면  구름 속에  해가 비치는 것 같이  맑고 귀엽게  생겼다.  

세 번째 환자는,  30대 후반의  이혼하고  아이가  없는  여자로, 노래  춤 등  노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 하는 것,  담배 피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병동의  남자 환자  한 명에게서  같이 살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좋아하는데,  싫지 않은  표정으로  보아  생각 중 인가 보다. 

 

   그 밖에는  목욕실과  간호원실, 노래방,  중증 환자를  격리하는  안정실,  면담실이  있고,  중앙에  있는  홀을 지나면  남자  병실들이  2-3개 있다. (강제적인  것은 아니나, 남자는  여자 병실을,  여자는  남자 병실을  못다니게 하는 분위기 인데  '회장'이라는  이 사람은  왠지  예외로  간호원들이  묵인하고 있다.  간호원들과도  '누나, 누나'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환자들간의  분위기를  잘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 인것 같다 ) '똘마니의  회장' 임을  자청하는  24살의  청년으로 (수연과  동갑이다) 사회 진행, 노래,  기타,  춤에  능숙하고,  돈 쓰고  놀기를  좋아해서  카드를  2 천만원  넘게  써서  그의  어머니가  정신차리라고  들여보냈다고 한다.  벌써  4개월째라고 한다.  여자들의  쇼핑 중독 같은 것 인가보다.  남자도  그런다는 것을  수연은  처음 알았다. 

 

    간호원들은  3교대  근무로  2명씩 근무하는데,  남자 간호사도  한 명 정도 있고, 친절한  사람과,  무뚝뚝하고  차가운  이들이  섞여 있다.  수연은  여러 종류의  사람이  섞인 곳에서  간혹  이상한  이들도  많이 올텐데  늘 웃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간호원실 옆 병실('안정실'-증상이  제일 심한 사람을  가둬두는 곳)에서  한 사람이  나왔는데  이 병실,  저 병실을  기웃거리며  협박성의  말을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더니  오늘은   점심이 되자  한바탕  '살기 싫다'고  난동을  부리다  진정제를  맞고야  조용해 지는  모습을  보았다.   수연은  그런   이들의  모습이  무서웠고,  자신이  죽고싶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의  마지막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

 

  수연은  어제  엄마가  면회시 가져와서  간호사실  냉장고에  보관했던  음식들을  가져다  병실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나니  '커피 타임' 이  되어  간호원실에서  커피가  모두  한 잔씩  돌려  모두 기분좋게  마시는  평화롭다 못해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들어온 날부터  유난히  수연에게  쌀쌀한  김연순 간호원이  류성준 선생님이  면담실로  불렀다며  수연을   샐쭉하니  쳐다보며  말했다. 

 

  수연은  규칙적인  발걸음으로  어제보다는  훨씬  안정된 마음으로  <면담실>로  들어섰다.

" 선생님, 오늘은  바쁘셨겠어요.  아까  소리지르던  환자때문에 "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담당의가  입가로  살짝  낯선  미소를  퍼트리며  잠시  아무말 없었다.  

그의  미소를  처음  보면서  수연은  왠지  눈이  떼어지지 않아  '저 사람도  웃을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잠시 묘해졌다. 

" 오늘  기분은  어떤가요?   많이  좋아보이네요.  건강은  어때요?  잠은  잘 자나요?  뭐,  현기증 같은 것도 없고? "

" 네, 많이  편해졌어요.  신체적으로도  건강을  되찾은 것  같고요.  잘 자고, 잘 먹고, 현기증도  없고."

" 오늘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나요?  약을  먹기  전의  기분이라든가... 약을  먹고 난 후의  기분이라든가.."

그는  여전히  낯선 미소를  입끝으로  살짝  띄운 채  질문을  했다.

" 죄송했어요.  그 때는."

" 괜찮아요.  이해하고 있고."

" 제가  약을 먹고  죽는 순간에  누가  떠올랐는지 아세요? ...그이  였어요.   전 제가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을  안해봤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를  좋아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에...  제게  마지막  남은 감정은  배신감 뿐이었는데... 그가  떠오르다니... 그  사실에  몹시  놀랐고,  아직도  그 생각에  가끔  모르겠어요.  제 감정을.  그  감정의  마지막에서  여러가지가  섞여 들어갔지만   모든  감정을  정리하면서  약을 먹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닌가봐요.  감정들이  정리된 것이... 오늘 들어온  저희 병실  아줌마는  약먹고  죽을 때  아무도  생각이  안나더래요.  어제는  하루종일  일기를  썼어요.  오늘 오전까지요.  노트를  신청했는데  어제  들어왔기 때문에  4일치를  써야 하니까 바빴죠.  일기를  쓰면서  마음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그이와  엄마의  면회로  더 안정이  되었고,  그간의  제  생각도  정리하면서  쓰고 있어요.  글을  쓰다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시간도 잘 가고,  마음도  많이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아요."

" 글 쓰는 것을  좋아하시나  보죠?  그런쪽으로  나가보시면?"

" 아뇨.  자기  만족뿐이지  전문적으로  쓸 실력이  안된다는 것은  저도  알죠.  그  정도로  주제파악 못하는  공주병은  아니거든요"

  담당의가  조금  소리를  내며  환하게  웃자   그의  은빛 안경너머로  눈 주름이 지며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보고  수연은  자신도  같이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 전 선생님께  선입견을  많이  가지고  있었나 봐요. 석기학 박사님에서  선생님으로  바뀌고  형식적으로만  30분씩의  상담시간을  그냥  보내버린 것도요.  선생님께선  굉장히  젊어보이시거든요.  실례되는  질문일지 모르지만요,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어느 쪽이세요?  ."

" 전문의 입니다.  마지막 과정이죠."

" 퇴원하고도  선생님과  계속 이어서  상담을 하게 되나요?  "

" 퇴원하시고  얼마동안은  제가 할테지만   다른  분이 하시게 될 것  같네요. "

" 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 어린 시절의  상담은  지난  두 번에  이어서 이야기해 볼 것이 있나요?"

" 글쎄요.  지난 상담들 때  한 것이  다예요.  더  이야기할 것이  지금은  안 떠오르네요."

" 그럼,  오늘은  약혼자와의  이야기를  해보죠."

"... 이야기 할 것이  많네요...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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