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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3)

운운 |2005.08.17 16:16
조회 1,234 |추천 0

                                      -지상에서 햇살이 가장먼저 닿는 곳(2)-

 

 

 

  

꼬마는 너무나도 설렜다.

가슴속에서 쿵쾅 쿵쾅하며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작은 귀에서도 크게 울렸다. 꼬마의 곱슬머리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고개를 흔들어 머리를 울림을 털어 버리려는 모양이다. 영물인 흰둥이도 제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소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 아빠 이외의 사람을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부모이자 선생님이었고 흰둥이가 유일한 친구였으며, 산짐승들이 동네 주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손님>을 마중 나가는 길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엄마, 아빠처럼? 키가 클까, 작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말을 할 수 있을까? 흰둥이처럼 멍멍 밖에 못하는 건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팔랑 팔랑 걷는 동안, 어느덧 엄마가 말한 구름골짜기 노루바위가 저만치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왠지 길가의 풀숲이 더 파랗게 보이고, 어깨위로 날아가는 벌이 춤을 추는 것만 같다.






                        *                    *                   *







두시진 전인 오늘 아침의 일이다.

아침 식사 중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차례 티격태격 하던 아빠와 엄마의 작은 말싸움도, 밥그릇을 뺏어버린 엄마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꼬마는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던 엄마표 사랑의 상징인 계란 부침을 서툰 젓가락질로 조심스레 찢어서 살짝 엄마, 아빠의 밥그릇에 올렸다. 그리고 해맑게(?) 씩 웃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식을 앞에 두고, 밥그릇을 둔 상에서 다투다니, 교육상 안 될 일이지!’


냉기를 흘리던 엄마도, 풀이 죽은 채 끝까지 궁시랑 거리던 아빠도, 고무된 눈길로 사랑스러운 자식을 잠시 보곤, 한술에 밥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아들, 아침 먹고 나면 도원을 지나서 저기 아래 구름 골짜기에 다녀 오거라.”

“도원 밖으로요?”

“그래, 구름골짜기 까지 내려가면 손님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 시진 후 출발하면 네 걸음걸이로 볼 때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게다.”

“손님? 사람이 오나요?!!!!!!!! ”


단영은 조용히 미소로 화답했다.


“정말이요? 정말이요?? 누가와요??”


벌써부터 뺨이 발갛게 상기된 도화는 눈을 토깽이처럼 동그랗게 뜨고, 재차 물으며 재잘 거렸다. 그 틈을 타 한 조각남은 달걀부침을 향해 뱀 같은 젓가락을 스르륵 들이밀던 백아는, 단영의 철통수비 ‘젓갈방어 신공’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남은 밥그릇에 물을 들이 부어야만 했다. 단영은 사수한 달걀부침을 도화의 입안으로 밀어 넣는 치밀함을 잊지 않았다. 백아는 야속한 마눌을 째려봤다. 단지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의 몸부림이지만. 그렇게 그들만의 조촐한 아침식사가 끝났다.






                        *                    *                   *






도화는 저만치 구름고개에 서있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도화는 한동안 말을 잊고 그 대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동안 소년은 사람들은 전부다 남자라면 아빠처럼 마르고 키가 작거나, 여자라면 엄마처럼 뚱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도 희고 주름도 있고……. 그때까지도 도화는, 사람은 전부 두 가지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자신처럼 어린 아이와 다 큰(?) 엄마 아빠의 모습.

젊은 처녀의 모습을 태어나서 오늘 처음 보는 도화는 어리둥절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은 어깨와 무릎이 훤히 들어나는 몸에 딱 달라붙는 화려한 붉은 색의 경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멋지게 재련된 물소 가죽으로 된 조끼와 한쪽 어깨에 메어진 커다란 활까지!

그녀의 모든 것들이 어린 도화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리기에 충분했다.


“네가, 도화니?”

“네. 제가 도화에요. 저희 집에 오시는 손님이신가요?”

“손님? 그럴지도……. 부모님은?”

“여기 천외봉 꼭대기 저희 집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여기 있는 흰둥이는 제 친구구요!

 부모님 성함은 「위단영」과 「진백아」입니다!”

“그래.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구나. 날 안내해 주겠니?”

“네!! 그러려고 여기까지 내려온걸요.”

“......고맙구나.”


올라가는 길 내내 소년은 연신 싱글거리며 수다스럽게 쫑알거렸다.

옆에 있던 흰둥이도 ‘그렇지, 그렇지? 흰둥아!’ 라고 꼬마가 추임새를 요구할 때 마다 ‘멍!멍!’ 하며 리듬을 타며 짓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말없이 있을 때는, 화가 났을 때의 엄마의 냉랭한 느낌이 비슷했다. 그러나 무관심한척 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간혹 대답까지도 해주는 것이 아닌가! 도화는 마냥 이 손님이 너무 좋았다.

흰둥이와 지낸 세월이 7년이지만 흰둥이와는 한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낯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 또한 소년에게는 처음 이였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한번씩 희미하게 웃는 손님의 미소가 어린 눈에도 몹시 예쁘게 보였다. 그 미소를 자꾸 보고 싶은 도화는 자꾸 자꾸 손님에게 쫑알거렸다. 이마위로 흐르는 땀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엄마 아빠 자랑을 하고, 어제 심은 복숭아나무 자랑을 하고, 흰둥이와의 생활을 - 재미있었던 일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두 사람과 흰둥이의 배경이 되는 주위 풍경이 점차 바뀌고, 산길을 반 시진 쯤 올라왔을까? 흰둥이랑 둘이 내려올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 길인데, 벌써 저만치 앞에 집을 둘러싸고 있는 복숭아밭이 엉덩이를 내보이고 있었다.


“복숭아밭에서, 아니지 우리 엄마는 도원이라고 부르는 곳이에요! 엄마 말로는 저기가 정말 위험한 곳 이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저기서 놀아서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소년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끌쩍였다.

그리고 손님을 향해 충고를 잊지 않는 도화였다


“여기서는 제 손을 꼭 잡아야 해요~! 아님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여기 손-!”

“......”


도화는 손님을 향해 고사리 같이 작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순간 멈칫 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작은 꼬마의 손을 잡았다. 그저 작은 꼬마의 손을 잡는 일일 뿐인데, 순수하고 따뜻한 성의를 받는 일일 뿐인데도, 한참을 망설이는 그녀였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 본 일이 언제였지…….’


도화는 작은 손가락에 더 힘을 주어 손님의 손을 꽉 잡았다.

녀석의 손이 참 따뜻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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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다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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