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 이전에 한번 언급했듯이 난 사실 산토리니에 왕창 실망했었다…
사실, 내가 그 동안 만난 그리스 사람들도 좀 무섭다 싶을 때가 있을 만큼 전혀 안 상냥하셨지만,
산토리니는 정말 압권이었다.
내가 이날 입때까지 나 혼자도 별 어려움 없이 별에 별 나라를 싸 돌아 댕길 수 있었던 건, 좀 모순
이지만 내가 여자고, 또 내가 많~이 짧다 보니 내가 어려 보이는지, 보통 사람들은 내가 뭘 묻거나
곤경에 처하면 다들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싸가지 뉴요커와 한국 젊은 남자들 빼고.
뉴욕 것들 중엔 워낙 왕 싸가지들이 많아 그렇고, 내 경험에 비추어 한국 총각들은 자기 여자친구,
가족, 이쁜 여자 또는 장애인/할머니 외에 다른 여자들에겐 친절에 좀 인색하다. 뭐, 내 남친이
첨보는 여자들에게 항상 친절하길 바라는 한국 여자는 하나도 없을 테니 결국 쌤쌤인가 ?) 그런데…
이 사람들은 쩜 심하다.
피라 시내에서 산토리니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는 버스 터미널의 유일한 안내원인듯한 할아버지는
인상을 왕창 구기고 안내 부스에 앉아 줄담배를 펴 대며 관광객들이 뭘 물어볼라 치면 인상을 더
심하게 구기시고 귀찮은 듯 담배를 든 손으로 게시판을 가리킨다. 혹시… 내가 아시안이라고 깔
보는 거 아냐 싶어 눈에 힘 빡 주고 함 붙어, 말어 하는데, 가만 보니 이 노인네,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공평하게 불친절 하시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이번엔 여행사에 가서 페리 표를 사려고 하는데,
우와… 여행사에 앉아있는 아줌마들, 어쩜 한결같이 귀찮게 왜 물어보느냐는 투로 겨우 대답한다.
기분 왕 잡쳐 다른 몇 곳에 들러봐도 다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개중에 그나마 좀 덜 불친절 한
곳에서 표를 사긴 했는데, 산토리니에선 아무도 날 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 구긴다….
내가 묵은 호텔 주인 아줌마도 으찌나 드세시던지.. 말 잘못 했다간 호텔에서 쫓아 낼 듯이 무섭게
굴지 않나, 내가 어딜 봐서 숙박비 안내고 도망가게 생겼다고…. 짧게 묵을 거면 선불을 내라지 않나,
오로지 돈 받을 때만 빵긋 웃으신다.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런디야… 혹시 산토리니 사람들, 전부
성격 파탄자들 ??? 이런 심각한 고민을 하며 일몰이나 보려고 혼자 이아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이아는 보통 피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거나 오토바이를 빌린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도 하는데, 산토리니 섬이 작기도 하지만, 크리티에서 만난 Jacek에 의하면,
피라 시내에서 자기 걸음으로 한 시간 반쯤 걸어 이아에 도착해 일몰을 봤다고 하니, 내가 걸음이
느리지만, 그때 내가 있던곳이 시내가 아니고 이아 가는 길에 있는, 옛날 귀족들의 예쁜 저택이
많아 멋진 빌라들이 많은 이메로비글리 구경을 마친 뒤라, 늦어두 시간 정도 슬슬 걷다 보면 이아가
나오겠지, 그리고 일몰 보고 거기서 버스 타고 피라로 돌아오면 딱 맞겠다 싶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천천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어라… 이거 디띠 이상하다… 세시간 반을 가도 이아는
보일 생각도 않고, 이아 가는 차는 이미 다 노친 거 같고, 일몰은커녕 산길 중턱에서 캄캄한 밤이
되게 생겼다…
띄엄띄엄 산 중턱의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은 이런 인적 드문 산길에 왠 쬐그만 동양 여자애가 혼자
땅거미 지는 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걷고 있으니 뭐가 이상하다고 생각 했는지, 지나가는 차 마다
크락숀을 위협적으로 울리고 지나간다. 나보고 조심하란 소린가.. 차도에 피해 길 옆으로 옮겨
걸어도 계속, 지나가는 차 마다 빵빵거린다. 첨엔 우쒸 하고 열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가로등도
없는 산길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니까 슬슬 겁이 난다… 이아의 일몰이고 나발이고, 아무래도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려야 피라에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지 않겠다 싶어 발길을 돌리긴
했는데, 해가 떨어지니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은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어두워 지고, 아무래도
비수기라 마지막 버스 시간이 변경됐는지 버스는 시간이 지나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내 간이 아무리 자주 배 밖으로 나온다지만… 우찌 멍청하게 Jaeck말만 믿고 여길 걸어왔나 백만
번쯤 후회를 하며 길을 걷는데, 낡은 승용차 한대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또 크락숀을 울린다…
그렇지 않아도 열 받는데, 우쒸…. 하며 지나가는 차 뒤 꽁무니를 째려 보는데, 갑자기 그 차가
길가에 선다 !
쬐끔 겁을 먹었지만, 티 안 내고 꿋꿋하게 내 길을 가려고 씩씩하게 그 차를 지나치는데 차 안에
있던 턱수염이 더부룩한 산도적 같은 거구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며 “너 여기서 혼자
위험하게 뭐 하는 거냐 ?” 하신다. 그래, 위험하지… 나도 내가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는데….
“으응…. 저… 피라로 돌아가는 길인데, 아무래도 마지막 버스 시간을 잘못 알아 노친 거 같아…”
이 산도적 아저씨는 대뜸, 자기도 피라 가는 길이니까 태워다 주겠단다. 내 경험상, 한 덩치 하시는
분들이 체구는 좀 험악해 보여도 대체로 착하더라. 물론 인상이 “몹시” 드러분 분들은 주로 얼굴값
하지만, 험악한 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해 안되게 순진하고 착한 아저씨들도 많더라… 어짜피 이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도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닌 고로, 저 아저씨 함 믿어 보지 싶어 일단 신세 지기로 했다.
이 아저씨는 내가 한국인 이라니까 자기는 인천이랑 부산에 와 본 적이 있단다. 아저씨는 젊었을
때 외항선을 타고 전 세계를 누볐던 그리스 선원이었단다. 지금은 배를 타는 대신 이아에 카페에서
기타도 치고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아저씨는 여름 내내 돈 많이 벌었으니 자기도 이제 곧 내년
시즌이 시작 할 때까지 휴가를 갈 작정이라며, 피라에 도착 할 때까지 내내 큰 소리로 유쾌한 노랠
불러줬다. (솔직히 고백 하건 데, 이 아저씨 젊었을 때 가수 안 하고 배 타길 잘 한 거 같다.)
이 아저씨가 넘 친절 하시게도 날 호텔까지 델다 준다고 하는 바람에… 본시 친절이란 건 도가
지나치면 부담스런 법이라 극구 사양 했지만, 차로 30분 넘게 걸리는 거리를 걸어갈 수 있단 말만
믿고 혼자 걸어 갈 만큼 내가 멍청하단 걸 아신 터라… 아저씨는 내가 그 늦은 시간에, 버스도 없고
택시도 없으니, 호텔 있는 곳까지 외진 밤길을 또 혼자 터벅터벅 걸어갈 까봐 그랬는지 끝까지
호텔로 데려다 주겠다고 우겨서 날 호텔 입구에 정확하게 떨궈 주고는 행운을 빌어주며 돌아 가셨다.
차 타고 오면서 산도적 아저씨한테, “내가 어디가 좀 이상해 보이나 ? 왜 산토리니 사람들이 나한테
이렇게 불친절 하냐”고 물어봤더니 아저씨 말이, 산토리니 사람들은 원래 천성이 낙천적이라 불친절
하거나 무뚝뚝하진 않다고 하신다. 그렇담 그 낙천적이고 친절한 산토리니안들은 관광시즌 끝나서
전부 휴가 가 버리고, 쫌 상태 나쁜 사람들만 남아 있단 소리 ??? ㅋ.ㅋ.ㅋ.
암튼, 내가 이 아저씨를 못 만났다면 아마 난 정말 산토리니 사람들은 전부 성격 이상인줄 알았을
거다…. 내 생각인데, 산토리니 사람들은 쉽게 친해지긴 힘들지만, 한번 친해지면 격이 없는 좋은
친구가 되는 사람들은 아닐까 ?
암튼, 이 산적 아저씨, 담 번에 산토리니에 오면 자기가 노래 불러 줄 테니 꼭 자기네 까페로 놀러
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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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사람들은 이렇게 산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하얀집을 짓고 산다. 어느분 리플처럼
절벽위의 하얀집에 사는 괴팍한 사람들 같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