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준 선생님에게 -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 ![]()
선생님, 감사합니다.
처음엔 좀 더 연륜있으신 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상담시에도 마음으로부터 다가가지 못했지만,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서... 이곳에서 이루어진 상담들을 통하여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전 선생님의 앞에서 작은 거울로 만든 미로 속에 서있는 아이였어요.
하나의 문을 찾기위해 스스로의 마음 깊이에서 부터 문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어야 했고, 문득 문득 보이는 거울에 비친 불안한 한 여자도, 아이도 아닌 저를 보아야 했죠.
출구를 찾으면서 너무 힘들어 너무 많이 울어야 했고, 너무 많이 제 가슴속의 얽히고 설킨 살덩이와 뼈 사이를 헤집어도 보고, 거울에 비추어도 보아야 했죠.
그러나, 그것을 몰랐어요.
한 번의 울음이 터질 때마다... 얽혀있고, 뭉쳐있던 응어리 하나들이 녹아진다는 것을...
아직도 많은 눈물들이 제 속에 남아 있겠지만, 지금 제 가슴 속의 응어리들로 인한 고통들은 적어졌어요. 선생님의 짧은 추임새같은 대답과 질문들로, 늘 혼자 허공에 퍼뜨리는 독백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죠. 아주 많이... 그러나 그 독백같은 이야기들의 과정에서 아픔이 녹아지고, 조금씩 작아지고, 정리되는... 치유의 기쁨을 전 이렇듯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된 것 같아요.
선생님은 제게 있어 바람직한 상담자 였음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좋다' 는 표현만으로 표현이 안되어서 '바람직한' 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합니다.
얼마전 읽었던 시 중에 앙드레 셰니어의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갖고 있다.' 는 시가 제 마음에 가까이 오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 인간은 누구나~...... 깨닫게 된다.' 는 이 프랑스 시인의 시처럼 제가 저의 고뇌와 고통을 가지듯, 사람들도 자신의 고뇌나 고통을 각자 짊어지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매일 매일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 앞에서 내 영혼의 껍질들이 하나씩 벌고 벗고 있는 듯이 느껴질 때도 있어 가끔 당황스러웠죠. 그 당황스러운 부끄러움은 '의사선생님' 이라는 그 이름안으로 사라질 때가 많죠. 가끔씩 일어나는 저의 두근거림도 미로의 출구를 찾기 위해 선생님과의 시간을 기다린 아이같은 심정이었을지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어도, 죽음 속의 삶에서... 두더지 굴에 들어가 잠을 자다 일어나 빛 속으로 나와야 하는 여우처럼 힘들게 땅 밖으로 나와 눈부심 가운데에서 눈을 떠야 했어요. 초록의 숲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우는 아직도 조금은 그 빛이 눈부셔서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아직도 삶의 눈부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 많겠죠... 조금씩, 조금씩 눈부심에 익숙해지려고 해요.
선생님의 조언이 힘이 됐어요. 많은 말이 아니었어도, 비록 짧고 간결하게 한 두 마디씩 던져진 질문들이지만, 미로의 힌트가 되어 제 마음 속의 갈등을 다시 살펴보고, 정리해서 미로를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앞으로의 삶에서 다시 미로같이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경험을 소중히 할래요. 도망가는 모습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어요.
저는 현실을 마주보려 해요. 아직도 마주보기 두렵고, 약한 부분들이 있지만 저 자신을 믿고, 일어서서 두 발로 걸어나갈 거예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겠지만, 도움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래요. 언젠간 제가 그 도움이 되주면 되니까요.
앞으로도 조금씩이나마 가슴 속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는 만큼만 선생님을 뵙겠지만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제 최선의 마음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선생님의 도움, 가슴에 새길께요. 감사합니다.
- 한 명의 우울증 환자로서보다, 한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한 해의 끝에서... -
- 이 수연 드림 ![]()
편지를 맡기고, 점심을 먹고도 느리게 가는 지루한 시간속에서 3시가 조금 넘어 담당의가 <면담실>로 수연을 불렀다. 담당의가 얼굴 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채 물어왔다.
" 이제 퇴원하시는데 기분은 어떠세요? "
" 좋아요. 요즘 저희 병실 아시죠? 욕설이 오가는 소란스러움들에 조금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집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도 많이 가라앉고 들뜨네요."
" 편지를 잘 읽었고, 이수연씨 마음속의 덩어리들이 이젠 많이 작아진 것을 느낄 수 있어 제 마음도 많이 기쁘고 안심이 됩니다. 이제 나가실텐데 계획은 세우셨나요?"
" 현실에 하나씩 적응해 가야 겠지만, 우선 푹 쉬고 싶어요. 다음에 상담실에서 다시 뵐 이후에나 계획들을 세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새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어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열심히 해보고 싶고..."
" 그래요. 다시 뵙겠지만 차후에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더라도 상담을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좋아지셨지만 아직은 마음에 힘든 일이 더 있을 거예요. 당분간 약도 계속 복용하시고... 혹시 오시는 것이 정 여의치 않을 때는 친구를 사귀어 보세요. 친구와 가볍게든, 깊이든 타인과의 대화와 사귐도 좋은 방법의 하나이고... 너무 빠지지만 않는다면 종교 생활도 괜찮고, 새로운 일에 열심히 전념해 보는 것도 좋겠죠. 이수연씨, 하나의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도 있는 겁니다. 좋은 만남들을 가져 보세요... 편지의 후미에 있는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더 편안해진 모습을 기대해 볼께요. "
" 네, 그간 수고많으셨어요. 선생님의 도움에 감사드려요."
그 후, 휠씬 편안해진 표정과 미소로 사소한 이야기들을 한 두 마디 더하고 상담을 마무리한 후, 병실로 돌아오니 많은 말들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4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4시 20분이 조금 넘은 시각, 인터폰 벨이 울리고, 수연의 엄마와 오빠가 들어섰다. 한 손에는 부탁한 치킨 2마리와 한손에는 과일(사과. 귤) 과 음료수를 사들고, 간호원실과 병실 사람들에게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며 나눠주었다. 그 음식을 받을 자격을 가진 이는 퇴원하고, 이제 지아밖에 남지 않았지만... 수연은 옷을 갈아입고, 퇴원수속을 거친 후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 엄마, 나 내 아파트로 가고 싶어."
" 집에 좀 있다 가면 안되겠니? 내일이 신정인데..."
" 그냥 당분간 혼자 지내보고 싶어. 엄마가 자주 오면 되잖아. 구정설에는 갈께요. 아버지 제사도 있고."
" 휴-, 그래라. 그래. 의사선생님도 너 편한대로 해주라더라. 네가 편하면 그렇게 해라."
" 창훈씨 짐은?"
" 네 새언니와 가서 창훈이 짐 -옷들과 책장, 책상, 컴퓨터- 들을 정리해서 이삿짐차로 실어 보냈다. 또 나오는 것 있거든 네가 알아서 택배로 보내던지 하고..."
" 네... 순혜 아줌마는 뭐라고... 하셔?"
" 뭐라고 하겠니... 자기 아들이 딴 여자 좋아해서 결혼 못하겠다는데... 나쁜 놈... 저도 집에 가서 그렇게 말했나보더라... 순혜가 펄펄 뛰었지. 그 여자 누구냐고... 아냐고... 난들 알겠냐만은... 네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더라. 너 이뻐해서 며느리로 들어온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 죄송해요. 힘든 일 부탁해서..."
" 됐다. 이젠 다 끝난 일인걸... 인연이 아닌게지..."
잠시 차 안에 정적이 흐르고, 세 사람은 말없이 수연의 아파트로 향했다. 20층 높이의 5층에 있는 수연의 아파트에 도착해서 번호키를 누르자 '찰칵' 하고 문이 열렸다.
연한 노란색으로 산뜻하게 꾸며진 거실이 현관에서 한 눈에 들어왔다.
" 엄마가 혹시 몰라 냉장고에 너 좋아하는 반찬이랑, 김치, 장조림 해서 갖다 놓았다. 우선 가스렌지 위에 아픈 후라 너 소화 안될까봐 닭죽 끓여 놓았으니까 이따가 데워먹고... 혼자 있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먹어. 그러지 말고 지금 먹을래? 닭죽 데워줄까?"
" 엄마는... 점심 먹은 것도 아직 소화 안됐어요. 배 안고파요. 이따가 알아서 먹을께요."
" 그럼 커피라도 마실래? 커피 마셔도 되지? 이젠 몸 좀 어떠냐? 약 더 안먹어도 될까? 아까는 퇴원시키느라 정신이 없어서 간호원에게 묻는다는 것이 그만 깜빡했다. 아직도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
" 괜찮아요. 다 나았어요. 그러니까 퇴원했죠. 조금만 더 푹쉬면 더 좋아질거예요. 약도 3일분 더 주신 것 같고..."
" 그래... 내일이 신정인데, 영 썰렁하네... 엄마가 여기서 며칠 지낼까?"
" 엄마, 나 혼자 쉬고 싶은데... 오늘은 가셨다가 편할 때 전화주시고 다시 오세요. 네?"
수연의 엄마는 한숨만 나오는지 긴 한숨만을 내쉬다 명환이 수연이 쉬게 가자는 소리에 일어섰다.
" 그래. 내일 네 새언니랑 다시 오마. 바람이 차니까 집에서 나올 생각 말고... 지연이도 같이 오면 좋겠는데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아침에 나가서 밤에나 들어오니 엄마도 얼굴을 볼 수가 없어. 학교도 방학했구만... 저녁 거르지 말고 꼭 먹어라. 그럼 내일 오마. 잘 먹고, 잘 자야 정신도 건강하단다. 그래, 쉬어라 엄마 간다. 문 잘 잠그고."
어린아이를 혼자두는 양, 걱정스러움을 담은 불안한 표정으로 수연의 엄마는 글썽거리는 눈으로 자꾸 뒤돌아 보면서 나올것 없다며 들어가라고 손짓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가족을 배웅하고, 다시 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오면서 수연은 번호부터 바꾸었다. 창훈이 올리야 없겠지만...
하얀 이태리 장과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킹사이즈의 침대 하나, 보조테이블과 화장대 하나가 다인... 밤색의 고급스러운 가구로 꾸미고 싶어한 창훈과 깔끔하고 밝은 신혼집처럼 꾸미고 싶어한 수연의 의견 차이로 수차례 다투면서 꾸민... 환하고 밝은 인테리어의 침실이었다.
수연은 새삼스레 아파트를 둘러보다가 3 개의 방 중에 나중에 아이방으로 쓰려고 하얀 구름이 있는 하늘빛 색으로 도배된 아이방으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울컥 울음이 치밀어 올라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 참을 울어버린 후, 자신의 침실로 들어와 침대위의 연한 초록의 꽃밭속으로 몸을 던졌다. (1부- 병동생활 끝. )
(* 붉은 여우의 한마디-
에구 에구, 전 단숨에 써버리는 편이라, 5장 정도의 분량을 다 치고, 버튼을 잘못건드려 맨 위 파란 창 밑의 '뒤로' 표시를 눌렀더니 몽~땅 날라가 버렸어요.
새로 다시 치려니 집중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끊기기도 하고 해서 다시 새로 올리느라 시간이 걸렸네요. 2부-새로운 생활은 며칠 더 구상하고 올릴께요. 기다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