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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제이 보고서kensey

백승권 |2005.08.25 02:57
조회 1,302 |추천 0

"제가 정상인가요?"



킨제이 보고서


"성인남녀 1만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현대인의 성실태에 관한 보고서"

매스컴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이렇다. 필자도 예전부터 이렇게 알고 있었지만

그 두텁다는 이 두 권의 남녀성생활실태 설문자료는 책으로 만나보지 못했다.

이슈가 되었다는 말만 들었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이래서 영화는 때때로

교과서의 역활을 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리암 니슨과 빌 콘돈 감독이

아니었더라면 난 그저 해괴망측한 궁금증을 가끔식 떠올려가며 이 보고서에

대한 진실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무지가 쌓이면 결국 그 자체가 좁은 지식이

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마련. 아얘 모르는 것보다 조금 아는 것이 훨씬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법이다. 묻히기엔 아까운 이야기다. 그는 몽상가가

아닌 학자였고 개인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 아닌 결국 수 많은 이들의

실질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었으니까. 한번 풀어보련다.


그는 생물학자였다. 가부장적이고 강요와 억압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자연을 통해 자유로움을 알게 된 그는 수십년에 걸쳐 100만"종류"의 혹벌을 모으면서

생물의 기이한 다양성에 경탄해 마지 않는다. 그 와중에 부인을 만나고 성생활에서

막연한 갈등을 일으키게 되다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어려움이 입막음

대상이 되어야 하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전공을 바꾸게 된다.

잘못된 상식과 지침으로 가득찬 도서들. 킨제이 박사는 사회적 편견과 그릇된 관념에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작정하고 연구와 조사를 시작한다. 락펠러재단을 겨우 설득해

지원을 보장받고 그를 도와줄 사람들을 모은다. 이제 남은 일은 겉이 아닌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 미전역을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들어간다. 서류로서는 한계가 있는 일.

누구를 믿고 자신의 내부를 종이에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1:1 설문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법을 설득하고 굳게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는 그 가면을 벗는다.

자위, 몽정, 체위, 성기, 애무 등 감춰져 있던 단어들이 질문을 통해 등장하고 대상자들은

처음엔 당황해 하다가 이윽고 진실을 토로한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인정받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들은 익명성을 보장받았기에 마주 앉은 자격이 갖춰진 설문자

에게 스스럼없는 대답을 해주었고 정당한 연구를 위해 모여진 그 측정치들은 책으로 나와

세계를 놀라게 한다.

 


설문의 대답 도중 공통적으로 나온 대상자들의 물음. "Am I normal?"

그들은 내내 두려워 했다. 마치 현재를 사는 우리와도 다름없듯이. 이러한 자신이

정상이 아닌 것은 아니냐고. 킨제이는 그 답을 알아가고 있었고 결국 정상과 비정상이

아닌 보편적이냐 급진적이냐로 나눠진다는 것을 밝혀낸다. 미묘한 부분이다.

어감의 차이로 다 설명할 수 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는 학자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그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살아가는 용기를 주었고 더 많은 이들에게

성생활에 대한 고민들이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인류공통의 주제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의 길을 어찌 함부로 평가할 수 있겠냐만은 모든 일이 그렇듯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지자들이 아무리 많다해도 사회적 분위기의 용납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남성편에 이어 여성의 성생활에 대한 조사 편이 출간되자 사람들은 그를 성문란을

조장시키는 사회악으로 규정하며 몰아세운다. 재정지원은 중단 되고 내부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외롭고 힘든 길이었고 인정해 주는 이는 아내뿐이었다. 그마저도

전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몸에 일부러 생체기를 내면서까지 식지않은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그는 어느 날 울음을 떠트린다. 백발이 무성한 그의 머리카락. 거동이 불편해질 정도로

쇠약해진 그의 손엔 수북히 쌓인 편지가 들려 있었다.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손길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도 그는 재정이 끊긴 탓에

사비를 다 털어 놓고도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흥망이 아닌

절대다수를 위한 마음에 그는 아내를 붙잡고 울었다. 이제 더는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며.

 


진실과 마주치는 일은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고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양면의 얼굴이 되어 다른 표정을 짓고 있냔 말이다. 성생활에

대한 부분은 특히 더하다. 간혹 뉴스의 참고자료로 나오는 것 외에는 우린 이렇다할

정보를 제대로 얻고 있지 못하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로 심의해가며 사회는

아직도 많은 부분들을 말하면 안될 것들로 죄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서 사건이

터지면 맨날 소 도망가고 외양간 보수공사 하는 식으로 뒷북을 날리는게 다반사다.

사회적 분위기는 그 구성원들과 언론 또 상위권력계층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악순환은 많이 완화되었다지만 유고국가라는 굴레는 목에 매인 밧줄 마냥

여전히 기본관념들을 억누르고 있고 여전히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아직도 뒷쳐져 있으며 그릇된 방식과 오해들은 전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새로운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려워 말고 떳떳이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

킨제이의 의도였다고 생각된다. 손바닥을 펼친다고 해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듯이

감춘다고 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결국 답답함과 편견, 새로운 오해들이

그 계보를 이어올 뿐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킨제이의 보고서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비정상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생활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떳떳이 밝히는 일은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나

지금 쓰고 있는 내가 마찬가지듯이 어렵고 또 분위기상 감히 행치 못할 일이다.

죄는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있어서 저질러진다. 안다해도 잘못 안 경우에

우리는 오해를 하고 또 현실을 직시 하지 못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이것이 성적인

경우엔 더더욱. 답을 내려주고 싶지만 식견이 짧은 필자도 겨우 킨제이의 의도를 빌어

작은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어느 편파적으로 한쪽에 편을 드는

일이 아니다. 자연스런 분위기 아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태껏

배운 것을 들춰보자니 그 누가 우리에게 떳떳하라고 앎을 강조했냔 말이다.

알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거나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일이 라는 것을,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와 사회에

대한 반성을 한번쯤 해볼 일이다. 빠른 시일내에 책을 읽어 봐야 겠다. 행동의

변화는 결국 사상과 의식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기에. 이처럼 생활에 밀접한 분야라면

누가 뭐라든 책을 펼치는 일을 머뭇거려서는 안 될 것이다. 멋진 영국배우 리암니슨과

부인역의 로라 리니, 연출을 맡은 빌 콘돈 감독에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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