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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될거라 믿으며

추억지기 |2005.08.25 21:48
조회 751 |추천 0

지금 내나이 22. 현 군 복무 중이다.

가끔 이 곳에 들어와 사람들이 올린 이야기를 읽고 진짜일까 소설일까.. 혼자 가려내며

시간을 잠시 죽이다 가곤 한다.

문뜩 내 이야기를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내 추억을 이 모니터 앞에 옮긴다.

.

때는 초등학교 5학년, 3월 말쯤 이사를 가며 전학을 갔다.

그때가 내가 태어나서 10번째인가 11번째 하는 이사이며, 그곳에 터를 잡고

우리가족은 지금 까지도 그곳에 살고 있다.

이사를 간 곳은 신도시 였으며 학교도 지은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반 아이들 수가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 갔을땐 남녀 합해서 한반에 25명 정도였던것 같다.

전학을 와서 한달 두달 지나면서 나와같은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두달 사이 너무 많은 아이들이 전학을 와서.. CA활동이라든가 짝궁도

자주 바뀌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초등학교 5학년 신체검사때 키를 기억하는건

그 아이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전학온 뒤로 1년간 짝궁이 5~7번 정도 바뀌었던것 같다.

난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모두를 그 아이와 짝을 하게 되었다.

우연이나 필연 보다는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짝사랑이어서 참겠다.

신체검사때 내 키가 137.5  그 아이와 .5까지 동일한 키였다.

거기에 그아이와 계속 짝궁을 할 수 있었던건

내 키가 남자 밑에서 7번째였고 그 아이도 여자 아래서 7번째였었다.

그 뒤로 내 쪽에 나보다 키 작은 남자가 한명 전학오면 꼭 여자 쪽도 그러 했다.

우연인지 짝궁을 바꿀때만 되면 그 아이와 내 키순서가 남녀 키순서에 서로 동일 했다.

지금에서 이런게 하나하나 내 추억속에 의미 이지만 그땐 그만큼 의미를 두지 못했다.

CA활동도 그런식이었다. 2학기 CA활동 정하는 시간...

모든 CA활동은 한반에 한사람씩 한가지를 선택한다.

내가 정한 CA는 원예반이었다.. 그때 난 원예가 꽃가꾸고 그런 건지 모르고..

앞에서 설명하는 담임의 먹고 노는 부라는 설명하나로 냅다 손을 들어 버렸다.

그런데 손을 든건 나 혼자가 아니였으며 내 옆에 앉아있는 그 아이도 손을 든 것이다.

또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한반에 한 CA당 한명씩 정하는 가운데 2명씩을 뽑는 CA는 원예를

포함해서 3개 정도 였던거 같다.

결국 같은 CA를 그 아이와 하게되고, 영어학원 또한 그아이와 함께 다니게 되고..

그당시 유행했던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쉬는 시간에 책상에 앉아 날개잃은 천사 노래를 부르며

손동작을 따라해보던 그 아이, 남자대 여자로 점심후 말뚝박이 하면 짖궂은 남자들이 심하게

올라타 울것도 같은데 눈물이 글썽거리다 그 남자아이가 무안해 할까봐 꾹참고 웃는 그아이..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건 초등학교 6학년 반이 갈리고서 이다.

6학년이 되어 짝궁이 바뀌고 서야 저런 우연들이 의미가 생기게 되고 지금까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6학년때 그 아이는 남자아이들의 인기를 많이 끌었으며, 성적도 우수했고, 학생회장도

했었던것 같다.

아마 지금 기억에 그때 그 아이는 내 친구를 좋아했던것도 같다.

그렇게 6학년 1년을 가슴앓이 하던 후

크리스 마스때.. 복도에서 그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한장에,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던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반 아이들이 탄호성이 터졌다.

알고 보니 나만준게 아니라 4명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땐.. 그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몇일후 그 아이가 유학을 가 버렸다.

그 유학가던 날이 정확히 내 생일 이었다. 1월 2일...

아마 전날 난 그 아이와 통화를 한 것 같다.

그치만 그당시 어려서 좋아하는 표현을 장난으로 대신하던 나에게

고백은 어린 반푸러치도 입안에서만 맴돌고 말았던것 같다.

유학을 떠나는 날... 내 생일이라기 보단 그 아이의 유학생각만이 온통 머리속에 박혀

아침일찍 그애 집앞에서 언제 출발할진 모르지만 기다리리라 라고 생각했건만..

전날 잠을 얼마나 설쳤는지.. 난 결국 낮이 되서야 일어나 버렸던 듯 하다.

그후... 그 유학이 이민이 되어 약사였던 그 애의 아버지는 약국을 넘기고 집도 팔고..

가족모두 LA로 이민가 버렸다는 소문만 들었다.

 

이애와의 추억은 여기까지다..

그 뒤로 몇년간 난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

천마리의 학을 몇번은 접어 봤을 것이다.

지금도 4월 1일 만우절이 되면 친구들은 "야 000돌아왔대" 라고 장난을 친다.

아닌거 알지만.. 그애 이름만 나오면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지금에 와서 어릴적 초등학교 137.5의 키에 조그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전부인..

그아이를 아직까지 사랑하는건 아니다.

단지.. 몇년전부턴.. 그아이가 정말 실존인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너무도 그아이가 떠나버린뒤로 그 아이가 아니 그 숙녀가 돌아오기만을...기다렸기 때문에.

그리고 또 몇년이 지난 지금 기억속 그 아이의 모습은 그대로 이지만

내가 좋아했던 그 아이의 추억이 정말 있었던 일이었을까.. 그 아이가 정말 세상에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이젠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것 같다.

다시 그 아이를 보면 설레일까 하는생각엔.. 그렇지 않을것 같다.

단지 보고싶다... 내 삶속에 딱한번만이라도.. 단지 스쳐지나가면서 라도...

나만이 그아이를 알아보더라도...단지 스쳐지가면서라도 내 인생에 단 한번만..

그 아이를 다시 만나길 희망한다.

지금 그아이의 모습이 이쁘고 그렇지 않고는 중요치 않을 것 같다.

단지 내 추억속의 그아이라면.. 지금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정말 내 추억속의 그 아이가.. 동화가 아닌...이렇게 숨쉬고

내 옆에 있구나 하고... 단지 한번만 그 아이를 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번만나는 것도 싫다. 그럼 자꾸 욕심이 생기고 기대하게 되는 거니깐.

어떻게 보면 이젠... 너무 오래 지나..내 마음속에 그 아이가 환상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그래도...꼭 한번 보고싶다.

그 아이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 아이가 없는 공간에서 너무 오래 사랑했기에...

지금은 사랑아닌 추억이기에...

그렇기에 그 추억만 생각하면... 1년을 함께 부딧히고 싸우고 웃었던 그아이..

그 아이가 없는 삶속에 7년을 좋아한... ...

... 이렇게 글로 쓰면서 순간 느낀건데..

내가 그아이를 꼭 한번 보고싶어 하는 이유가..

그 무엇보다...

어릴적 나의 순수함을 찾고싶어서는 아닐까..

요즘들어 부쩍 정말 내게 순수함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긴 글이지만... 이렇게 읽어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솜씨가 없어서.. 뒤죽박죽이지만...

...어릴적 긴 추억을 이렇게 풀어 냈을때...

남들은 어떻게 볼까 하는 궁금도 생기고 해서..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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