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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1화> 얼음마녀

바다의기억 |2005.08.29 01:07
조회 34,610 |추천 0

나름대로 보람찬 주말을 보내고

 

내일부터 다시 암담한 한 주가 시작됩니다.

 

주 5일제 이후 월요병이 더 심해진 듯.

 

그래도 주 5일제라 행복합니다.

 

============================= 월,화,수,목,금요일만 빼고 ===========================

 

 

며칠 후


그럭 저럭 중간고사가 마무리되고


대학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예전에도 말한바 있듯이


한 학기 내내 딸랑 세 과목만 신청한 채


럭셔리 라이프를 즐기던 난


시험이 끝나건 말 건


평소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리던 몇몇 친구들은


술과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며.....


.......


평소와 별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뭐 ... 친구들이야 제쳐두고...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그녀와 관련한 일체의 행동들이었고


그 중 전화번호 알아내기는


시급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었다.



날도 적당히 따땃미지근 하고


하늘도 푸르딩딩 높고 맑은 화요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만날 기대감에 잔뜩 부푼 채


서양음악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두 개의 공학적으로 Fitting된 면상이


불쑥 튀어나왔다.



김씨 - 호오라... 과연.... 얼굴색이 완전 폈는데?


허씨 - 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커플부대의 면상이냐?



위아래로 쭈욱 스캔을 뜨는 듣한 녀석들의 눈빛에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는 것을 느낀 난


한 발짝 물러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따지듯 반문했다.



기억 -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인데 그래?


김씨 

- 오호, 능청 떠는 거 봐라 아주 그냥


뱃속에서 구렁이가 군오징어랑 트위스트 추는 게 보인다. 응?



허씨

- 시치미를 씹어 먹어도 이미 소문 쫙 났어~.


네가 공주랑 사회대 앞에서 에에, 에에에, 에베레베레레....했다고.



‘백설공주와 공대찌꺼기’의 여파로 인해


그녀는 강의실 안에서 공공연히 공주라 불리고 있었고


그 인기 또한 상당했기에


수학시험 날 있었던 일들은 이미 소문이 퍼진 듯 했다.



김씨 - 너 시험장까지 같이 들어갔었다며?


허씨 - 대체 어디서 만났기에 그렇게 된 거야?


김씨 - 설마 벌써 한 지붕 밑에 사는 건?


기억 - ...... 노코멘트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나였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쏟아지는 스캔들에


‘그냥 아끼는 동생이에요.’


‘존경하는 선배일 뿐이에요.’


라고 변명하는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하지만 그녀가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 지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아무튼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 상태로 수업을 마치고


룰루랄라 연습실로 향하던 중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 두드리며 다가왔다.



안군 - 여.


기억 - ....? 아, 선배.


안군 - 요즘 민아랑 잘 되간다며?


기억 - 예?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다지 뭐랄까....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며


갑작스레 친한 척을 하는 그의 행동에


난 몹시 꺼림칙한 거부감을 느꼈다.


예전에 흐지부지 넘어가긴 했지만


민아와 몹시 친해보이던 그...


그와는 더 이상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안군 

- 이렇게 소문이 날 정도면 이미 보통 사이는 아니라는 건데...


재주도 좋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강의실에서의 일은 그렇다 치고


대체 누가 어떤 소문을 냈기에


그의 귀까지 이야기가 들어간 걸까?


난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말을 아끼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기억 - .........



하지만 안군은


묵묵히 갈 길을 재촉하는 내 반응에 아랑곳없이


왠지 신경 쓰이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안군

- 뭐... 이미 알지도 모르지만


민아가 걔가 한 때 ‘영문학부의 얼음마녀’로 악명을 날렸잖아.


그 난공불낙의 요새가 무너졌다는 데


귀가 혹 하지 않을 수가 있나...


뭐, 아무튼 힘내라. 파이팅이다. 응?



다시 한 번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잰 걸음으로 앞서 가버리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의도지?


태클? 조롱? 호기심? 응원?


게다가 영문학부의 얼음마녀는 또 뭐야?



그렇게 길을 걷던 중


안군은 연습실이 아닌 다른 곳에 볼일이 있었던 듯


다른 길로 향했다.



내가 연습실에 도착했을 땐


김양과 회계가 서로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보며 바닥에 앉아있었다.


서로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은근히 강한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에


난 둘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기억 - ...뭐하고 있어요?


회계 - 내기.


기억 - 무슨 내기요?


회계 - 누가 더 오래 담배를 안 피우나.


기억 - ..... 며칠 됐는데요?


회계 - 어디보자.... 15분 지났다.



담배를 안 피우는 나로선


두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가뜩이나 창백한 인상이


파리하게 떨리고 있는 김양의 얼굴을 보자


상황의 심각성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회계 - 기억아, 앞에 와서 아무 말이나 해 봐라.



몹시 괴로워 보이는 회계가 나를 부르자


김양이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그를 제지했다



김양 - 반칙이야!


회계 - 그냥 듣기만 할 거야.


김양 - 이야기 듣는 것도 뭔가 하는 거잖아!


회계 - 크으.... 그런가.



아무래도 두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흡연 욕구 참는 내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한 쪽 구석에 앉아


두 사람의 신경전을 지켜보던 중


내 바로 옆에 놓여있는 담뱃갑과 지포라이터가 눈에 띄었다.



‘팅~. 찰칵.’



무심코 라이터를 집어 들어 불을 켠 순간


귓가에 쨍하는 충격이 느껴졌다.



김양 - 당장 안 꺼어어어어어어~!!!!!!


회계 - 너 이 자식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살기가 번뜩이는 두 사람의 기세에 흠칫 놀란 난


부리나케 라이터를 끄고 원래 자리에 놓았다.



회계 - 하아....하아.... 하아.... 숨을 쉴 수가 없어.....


김양 - 아아.... 살찌는 것 같아.....



겨우 30분 만에 금단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뭔가에 중독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실감한 나였다.



회계 - 으으.... 포기다. 기억아, 거기 담배 좀 줘라.



빈손으로 담배를 잡은 모양을 만들어


입 앞에 대고 뻐끔대던 회계가


먼저 승부를 포기한 듯 내게 다가왔다.


담배를 받아들고 김양에게 간 그는


먼저 입에 담배를 꼬나문 뒤


담뱃갑을 툭 흔들어 그녀에게 마지막 한 개비를 건넸다.



회계 - 야, 돛대다. 내가 졌다.



김양이 담배를 받아들자


고개를 돌리고 라이터에 불을 켜는 회계.


김양은 뭔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라이터를 꺼내들어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김양 - 후우....



장장 30분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 보내듯


길게 연기를 뿜어내는 김양.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



회계 - 에베베베베~ 페이크지롱~~!!!!! 내가 이겼다~!!



회계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한 손에 들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다.



김양 - .........


‘치익.’


회계 - 끄아아아악!!



김양은........그런 회계의 혀 위에


아무 망설임 없이 피우고 있던 담배를 비벼 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차마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바닥을 구르는 회계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시니컬한 한 마디를 날렸다.



김양 - 치사한 새끼.


회계 - 어더더더더더!!



회계는 성큼성큼 연습실 밖을 향하는 그녀를 향해


의미 불명의 단어들을 늘어놓았지만


내가 봐도 당해 싼 경우였다.



그렇게 둘의 싸움이 끝나고


방금 안군과의 만남으로 인해


찝찝한 기분이 남아있던 난


김양의 뒤를 따라 나갔다.



연습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비상계단에서


못다 피운 담배를 태우고 있는 그녀.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냄새만 맡아도 인상을 찌푸려지는 나였지만


그녀에겐 담배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 - 저.... 선배.


김양 - 응?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라고 세뇌를 시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는 그녀.


분위기가 이정도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물러설 법도 했지만


나에겐 꼭 풀어야할 의문점이 있었다.



기억 - 민아가 ‘영문학부의 얼음마녀’ 였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라고 했다간


‘아니.’ 라고 대답해 버릴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난 바로 본론으로 진입했다.



김양 - 하아....



그녀는 =귀찮은데 귀찮은데 귀찮은데...=


라고 온몸으로 소리치며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담배를 난간에 비벼 껐다.



김양 - 그냥.... 아무리 꼬셔도 반응 없음. 그거야. 됐지?



=더 이상 묻지 마.’ ‘귀찮아.’ ‘왜 그걸 나한테 물어?=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에선


위와 비슷한 뜻을 가진 수많은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내겐 마지막 질문이 남아있었다.



기억 - 안군 선배도 그런 시도를 했었나요?


김양 - ...... 응. 가서 담배 좀 사다 줘.



‘이 정도는 당연한 거야.’


‘설마 싫다고 내빼는 건 아니겠지?’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사념의 덩어리가 흘러나오는 그녀.


그녀가 말 수가 적은 건


이런 특유의 포스로 상대를 밀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



기억 - 뭐 피우시는 데요?


김양 - 솔.


기억 - 예 알겠습니다.



천 원짜리 두 장을 받아들고 빙글 돌아서는 나를


김양이 깜짝 놀라며 덥썩 잡아 세웠다.



김양 - ....농담도 못하냐?


기억 - ......예?


김양 - .... 하아... 아니다. 말보로 레드로.


기억 - 예.



대체 뭐가 농담이었다는 건지...


김양의 개그 센스는 내게 너무 High한 것 같다.



뭐 어찌됐건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안군과 민아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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