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강간 범죄화에 대한 고찰
1. 서론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부부강간 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서울고등법원의 하급심 판결에서 동거하는 남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시한 이후이다. 이때 방론으로 “두 사람이 법률상 부부였다 하더라도 한쪽이 강제로 관계를 하였다면 강간죄에 해당한다.”라고 설시한 것에 주목1)할 필요가 있다.
2001년에도 부부강간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여론의 반대에 의해 좌절되었다. 하지만 부부강간을 범죄로 규정하기 위한 위환 논의는 끝없이 이어졌고, 2004년 8월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성관계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폭력을 쓰며 성행위를 강요한 남편에게 ‘강제추행치상죄’를 적용해 직영2년6월에 집행유예3년을 선고2)하며 부부간 강제추행을 인정했다.
이 사건 이후 부부강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지난 8월 말 한국여성개발원 주최로 열린 ‘여성폭력 방지 종합대책 시안 공청회’ 후에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남편과 아내 사이에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법적으로 제기되었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남녀의 의견이 대립구도를 보이며 격렬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2월 가정폭력특례법에 부부 강간죄는 도입되지 않았고3) 다시 2005년에 들어 부부강간을 가정폭력특례법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2005년 6월 4일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가정폭력의 범주에 ‘배우자의 강제에 의한 성관계’(부부강간)를 포함시키는 내용의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가정폭력의 정의에 ‘성적 위해’라는 문구를 새로 넣고, 가정폭력 범죄의 범주에 ‘강간과 강제추행, 준강간’ 조항을 포함시켜 이른바 ‘부부강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법안을 준비한 홍 의원은 “형법상의 강간죄에 의해서 아내 강간을 처벌한 사례도 있지만, 가정폭력 범죄가 가해자의 처벌뿐 아니라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보호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가정폭력 범죄의 범주를 확대한 것”이라고 밝혔다.4)
부부강간을 범죄로 규정하는 조항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나 그 취지가 잘못 알려져 “부부간 강간법이라. 마치 남편만 발정난 짐승으로 취급하는가.”, “너무나 과격한 입법을 진행시키고 있군요.”5) 등 남성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2. 부부강간의 정의
사례를 통해 부부강간의 정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ㅈ(35)씨는 지난 4월 의사인 남편을 성폭력특별법상 강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남편은 별거 중인 아내를 힘으로 눌러가며 2~3차례나 성관계를 강제했다. 남자는 심지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내의 옷을 찢어 벗긴 뒤 성관계를 강요했다. ㅈ씨는 남편과 현재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수치심과 모멸감을 견디다 못한 ㅈ씨는 남편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뜻을 굳히게 됐다.6)
가정폭력 방지법 개정안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부부강간이란 “배우자의 강제에 의한 성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의 강제란 암묵적으로 ‘폭력을 동반한 물리력’을 의미한다. 부부강간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질 수 있으나 최협의의 경우 ‘혼인 생활을 지속할 의사가 없는 부부 사이에, 둘 중 한 사람이 나머지 사람에게 물리력을 동반한 성관계를 강제한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사례의 경우에는 현행 형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위의 1997년과 2004년 사건의 경우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이 난 경우이기 때문이다. 97년 사건의 경우 헤어지자고 하며 성관계를 거부하는 여성을 남성이 구타하고 강간한 사건이었고, 2004년의 경우도 부인이 이혼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남편이 팔을 꺾고 강제로 추행했기 때문이다. 부부강간과 관계되는 가장 중요한 판례 중 하나인 1970년 3월 판결에서 대법원은 “아내가 간통죄 고소를 취하한 뒤 부부간에 새 출발을 하기로 약속한 경우에는 설사 남편이 폭력을 써서 강제로 간음했다 해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7) 즉, 결혼 생활을 지속할 의사가 있던 부부 사이에서의 강간은, 법적으로 강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4일 국회에 상정된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은 현재까지와는 다른 방향성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황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크게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해 보자. 현행법과 판례를 종합할 때, 이제까지는 범죄가 아니었던 “혼인관계를 계속할 의사가 있는 상황에서 남편의 물리력이 동반된 강제적 성관계”는 범죄가 아니었고 그 경우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여러 이유로 당장 이혼을 할 수 없는 경우 가해자인 배우자과 생활반경을 같이 하면서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되어야만 했고, 그러면서도 본인이 강간을 수용한다는 암묵적 동의를 본의와는 다르게 드러내는 것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 또 이혼의 의사가 있다고는 해도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배우자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고소를 해서 법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존재했다.
2004년 겨울에는 강간과 같은 중대하고 심각한 범죄가 보호처분만으로 해결이 가능한 가정폭력특례법8)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배우자를 강간한 다른 배우자를 즉각 형사처벌하지 않으면서도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을 최대한 보호 하는 동일한 효과를 가진 부부강간을 가정폭력특례법의 범위에 포괄해야 한다.9)10)
이 경우에 강간당한 한 배우자는 각종의 ‘임시조치’에 의해 보호받고, 강간한 배우자는 형법의 적용을 받기 이전에, 법원이 가정보호 사건을 심리한 결과 일정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보호처분을 부과 받을 수 있다.
①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행위 제한(40조 1항 1호)
③‘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사회봉사 및 수강명령,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호관찰(40조 1항 3호, 4호)
④'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보호시설에 감호위탁(40조 1항 5호), 상담소 등에 상담위탁(40조 1항 7호), 의료기관에 치료위탁(40조 1항 6호)
이 경우에 한 가지 한계점은 남게 된다.
그것은 한국 현행 형법의 강간죄 조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으로, ‘협의의 폭행, 협박’에 의한 강제적인 성교가 강간으로 처벌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사실은 거의 ‘최협의의 폭행, 협박’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강간하는 경우에도 상당한 ‘폭행, 협박’을 행사해야 강간죄가 성립하는데, 배우자를 강간하는 경우에 상당한 ‘폭행, 협박’이 없으면 강간죄로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가정폭력특례법이 명문으로 ‘폭행, 협박’에 대해 대폭적인 개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정안에서의 부부강간의 정의도 ‘폭행, 협박을 통한 강제적인 성관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형법의 ‘강간’죄 조항을 수정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바, 가정폭력특례법을 위해 ‘폭행, 협박’의 정의를 수정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3. 외국 관련 법규
3. 1. 영미형법상 ‘아내강간11)의 면책’
영미 형법상 ‘아내강간의 면책’ 법리는 수백 년간 확고부동하였다. 그 근거는 17세기 영국의 매튜 헤일 판사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혼인계약의 조건에는 아내는 남편이 원할 때는 언제나 성교에 응한다는 철회할 수 없는 동의가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은 1980년대 초까지 미국 형법상 강간죄의 핵심원리 중 하나였고, 영국의 경우도 1990년대 초까지 아내에 대한 강간은 “불법적인 성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강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신부가 혼인 시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였다거나 성적 폭력에 동의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부부 중 일방이 혼인계약을 파기할 수 있으므로, 혼인 중의 성교에 대해서도 당연히 동의를 철회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상대방이 취할 수 있는 조취는 강간이 아니라 이혼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1984년 ‘people v. Liverta 판결’에서 피고인은 별거 명령을 받은 상태에서 아내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 받았다. 이 때 법원은 “강간은 피해자의 신체적 염결성을 침해하고 장기간의 심각한 육체적 ․ 정신적 피해를 종종 초래하는 모멸적 ․ 폭력적 행위이다. 혼인증명서가 남편이 형사면책을 갖고서 아내를 강간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파악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기혼 여성도 미혼여성과 똑같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라고 설시하였다.
영미의 코몬 로가 ‘아내강간의 면책’을 정당화했던 근거는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이라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아내강간의 면책’을 정당화하던 조항은 완전히 폐지되었으며, 강간죄의 객체 또한 ‘법률상의 아내를 제외한 부녀’에서 ‘타인’으로 변화함에 따라 배우자 양쪽 모두 혼인 중에도 자신의 ‘신체적 염결성’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어떤 주도 ‘부부강간의 면책’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오레온주를 필두로 20개의 주에서는 ‘면책’을 완전 폐지한 데 반해, 나머지 주들은 ‘면책’을 제한적으로 혹은 조건부로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첫 번째 경우는 부부가 사실상 또는 법적으로 별거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만 ‘부부강간의 면책’을 인정하지 않는 주인데, 켄터키를 포함한 4개의 주가 여기 포함된다. 이 경우는 폭력이나 강제가 아닌 실제적인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배우자의 폭력적인 성관계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
두 번째는 폭행, 협박이 행사되는 경우에는 ‘면책’을 부정하고, 비동의 간음의 경우에는 ‘면책’을 인정하는 주인데,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16개의 주가 있다. 국내법에는 현재 ‘비동의간음’과 관련된 조항이 없으므로, 폭행, 협박을 부부강간의 구성요건으로 보는 이 법을 국내에 적용하게 되면, ‘부부강간의 면책’을 전면 폐기하는 것과 같다.
3. 2. 1997 독일 형법개정과 ‘부부강간’
1997년의 제 33차 형법개정 이전의 독일 형법 제177조는 강간죄에 있어서 “혼인 외 성교”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기에, 남편에 의해 폭행 ․ 협박을 사용한 강간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강간죄로 처벌되지 않았다. 1997년 독일 형법은 개정 시, “혼인 외 성교”라는 구절은 삭제되었고, 강간죄의 객체에 법률상 배우자가 포함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에도 아내강간의 문제는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었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혼인과 함께 종료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동의되고 있었으나, 여러 반대 요소들에 의해 아내강간에 대한 형법개입이 큰 실효를 거두기 힘들 거라는 판단 하에, “혼인 외 성교”라는 문구는 지속되어 왔다. 이 여러 반대 요소들은 지금 현재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반론들과 거의 유사하므로 이후에 함께 확인하도록 한다.
3. 3. 일본 형법의 ‘아내강간’
일본의 경우 “혼인 외 성교”라는 제한은 없지만,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나지 않은 한 강간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판례 또한, 법률상으로 부부라고 하더라도 혼인이 실질적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아내강간’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통상의 혼인관계에서 남편이 폭행 ․ 협박을 사용하여 처를 간음한 것에 대한 강간죄 성부 판례가 없는데, 최근 학계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 논거는 현대 영미형법, 신 독일형법등과 유사한데, 혼인관계가 계속적인 성적 관계를 시인하는 제도라고 해도 그 성적 교섭을 언제나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상호의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2)
3. 4. 캐나다와 네덜란드
캐나다에서는 1983년 형법 개정을 통해서 성폭력 범죄에서 혼인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부강간을 가장 폭넓게 인정하는 나라는 네덜란드인데,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폭행·협박뿐만 아니라 신체에 대한 비자발적인 성적 삽입도 강간의 처벌 대상이다. 비동의 간음죄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4. ‘부부강간’에 대한 부정론과 잘못된 이해
4. 1. 부부강간 부정론
4. 1. 1. 동거의 의무
민법 제 86조 제 1항에 따르자면, 민법상 부부는 동거의 의무가 있고, 동거 의무는 성생활을 함께 할 의무를 내포하는 것이며, 성생활의 결함이 이혼사유가 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처에 대한 강간죄는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13)
그러나 동거의 의무와 성생활의 의무를 인정한다고 해도, 배우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행할 수 있는 행동은 이혼이지 강간이 아니다. 동거의 의무는 강간수인의 의무나 신체에 대한 권리 포기라고 볼 수 없다.
4. 1. 2. 혼인의 프라이버시
혼인에서의 프라이버시의 권리는 너무도 근본적인 것이라서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대하여 법체계가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인의 프라이버시는 부부간의 동의에 의한 행위에 적용되는 것이지 성적 폭행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부부간의 폭력이 혼인의 프라이버시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부간의 강간 역시 혼인의 프라이버시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14)
혼인의 프라이버시와 관계되는 부차적인 의견으로, 부부강간의 범죄화는 부부간의 화해를 불가능하게 하고 가정의 평화를 깬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에서 강간죄는 친고죄이므로,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보호를 목적으로 법에 먼저 호소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가정의 평화를 깨트리는 게 아니라, 국가는 강간에 의해 파괴된 가정과 그 구성원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강간을 당하고도 참고 지내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은 여성을 가정에 귀속, 결합시키고, 여성을 사물화 하는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4. 1. 3. 강간 발생 증명의 어려움
수많은 합의에 의해 성교를 해온 부부이기 때문에 강간을 증명하기 힘들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부강간이 처벌의 대상이 되면 이혼소송에서 유리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 아내들이 가짜 강간고발을 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가짜로 고발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모든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거부될 수는 없다. 형법의 임무와 형사소송의 임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15) 무엇보다도, 위에 언급했던 대로 부부강간의 경우는 상당한 폭행 ․ 협박을 동원하는 강제적인 성관계이다. 배우자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입증이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만약 부인이 거짓으로 고발했음이 드러난다면, 역시 무고죄로 처벌받게 된다.
4. 1. 4. 현행법으로도 처리할 수 있고 발생이 미약함.
현행법으로도 처리할 수 있고 발생이 미약하므로 굳이 새로운 조항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경우이다. 앞서 굳이 가정폭력특례법에 부부강간을 포함시킨 이유를 언급하면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한 사이에 발생한 불쾌한 일로 형법상의‘고소’를 하게 되는 것을 두렵고 부담스러워한다. 게다가 잘못된 판례와 선례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나지 않은 경우에 발생하는 부부강간의 대책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소'의 절차를 밟지 않고도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있는 가정폭력특례법에 ‘성적 위해’조항을 삽입한 것은 의의가 크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최근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대상으로 남편으로부터 폭행 뒤 성폭행을 당한 경우를 조사했더니, 62.6%에 이르렀다. 여성부가 지난해 전국 기혼남녀 5916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8.6%가 배우자로부터 성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부부강간이 현실에서 가정폭력의 한 형태로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이런 조사 결과보다 실제로는 부부강간이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부부관계의 일이 굉장히 사적이면서도 은밀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왔기에 말하기가 힘들고, 여성들이 남편한테 성적인 괴롭힘이나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남자 수사관이나 법관 앞에서 얘기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일로 느끼기에 거의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강간 피해자 100명 가운데 4명 정도가 가해자를 상대로 고소를 한다고 한다. 남편한테 강간당한 것을 신고하는 비율은 이보다 더 낮을 수밖에 없다.16)
4. 2. 부부강간에 대한 오해
이상이 법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였다고 한다면, 서론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잘못된 정보습득이나, 혹은 가부장적 인식론의 영향으로 무조건적으로 ‘부부강간 범죄화’를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4. 2. 1. 범죄 구성요건에 대한 오해
그 대표적인 예로 부부강간의 구성요건을 ‘비동의’로 오해하는 것이다. 현행법에서 부부간의 강간이 아닌 타인에 의해 발생한 강간도 어느 정도 이상의 폭행, 협박, 강제력을 입증해야 범죄로 처벌된다. 하물며, 계속해서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맺어 온 부부간의 강간을 얘기할 때 단순 ‘비동의’를 기준으로 삼을 리 없다.
4. 2. 2. 강간 피해자로서의 남성
남성의 위치를 단순한 대당에 놓는 경우가 있다. 남자가 당했을 때는, 법적 보호가 미약하다고 주장하는데,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현행법에서 강간죄의 객체는 ‘부녀’이다. 하지만 가정폭력특례법에서 ‘성적위해’를 정의할 때, ‘강제추행’과 ‘준강간’을 모두 포함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배우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남성이 부인에게 성적 위해를 입었을 때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이 ‘배우자’라는 정의는, 국내에서 아직 부부 관계로 인정되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때, 동성 커플의 부부 관계 양쪽 모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다. 현행법으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제당한 남성은 ‘강제추행’에 기대어 보호받을 수밖에 없지만,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타인’으로 변화하여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강간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4. 2. 3. 지나친 범죄화 우려
부부강간이 법제화되면 많은 남성들이 감옥에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특별법상 보호처분이 있다. 정말 부부강간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경우를 살펴 형사처벌 이전에 사회봉사 명령이나 보호처분을 먼저 내리기 때문에 곧바로 감옥에 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형사처벌 이전에 반성과 교화를 위한 여러 장치가 마련돼 있다.
또 부부강간이라는 용어에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부부 사이의 폭행이나 협박 없는 합의에 의한 성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려워할 필요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부부강간의 문제는 배우자를 때리고 협박해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혹은 권력 관계를 확인하려는 저열한 욕망을 가진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5. 결론
이상으로 부부간의 ‘성적위해’를 포함하는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에 포함된 ‘부부강간’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현재 부부강간에 대한 정의는 내려져있지 않기 때문에,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가 된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 현실에 적용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가정한 “폭행, 협박을 통한 강제적 성관계”라는 정의가 혼인 지속 의사와 관계없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부부 강간을 당한 한 배우자가 혼인은 지속하고 싶되 가해자 배우자의 행동을 수정하고 싶다면, 이는 엄연히 가정폭력특례법 속에서 부부강간으로 처리되고 가해자 배우자의 행동은 교화되어야 할 것이다. 혼인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는 강간을 수용하겠다는 의사와 다르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팽배한 한국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성관계들이 조금씩 종식되어 나가기를 바라고,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도 부부강간이 범죄로 규정되지 않은 한국현실을 우려했던 바, 사회 전반의 양성 평등에 관한 교육과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아울러 폭행과 협박의 범위확대 및 저항요건의 완화를 통해, 부부강간뿐만 아니라 형법상의 강간죄 자체에 대한 변화와 반성이 필요하겠고, ‘부녀’라는 단어의 수정을 통해 남성, 트렌스젠더, IS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성적피해를 입을 수 있는 강간의 객체로 규정되어야 한다.
모든 성 정체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차별 없이 받아들여지되, 서로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줄 때, 부부강간은 명목상 존재할 뿐, 조화로운 현실의 성생활에서는 필요하지 않는 법이 될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부부강간이라는 법의 최종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목적은 강간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나, 지금으로서는 너무나도 요원해 보인다.
가정폭력특례법의 개정으로 인해 부부간의 강간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줄어야함은 당연하겠지만, 이 상황이 자칫 진실을 호도한 남녀간의 대결구도로 흘러가지는 말아야 한다.
1) 조국, 『형사법의 성편향』, 박영사, 2001, p. 31.
2) 매일경제(2004. 08. 20) <‘아내 성추행 유죄’ 첫 판결>
3) 경향신문(2004. 12. 01.) http://www.khan.co.kr <'부부강간죄‘ 도입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정폭력특례법에 부부강간을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가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 보호처분만 가능한 가정폭력법으로 강간이라는 중죄를 다루는 것은 경미한 처벌에 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4) 인터넷 한겨레(2004. 05. 02) http://www.hani.co.kr <‘부부간 성폭력 법으로 처벌’> (2005. 06. 10) <“부부강간 처벌해야” 국민 10중 8명 찬성> 참고
5) 내일신문(2005. 05. 04), <‘부부강간’ 입법에 비난 와글와글>
6) 한겨레21(2005. 06. 10.) http://h21.hani.co.kr <국민 81.3% “부부강간을 처벌하라!”>
7) 동아일보(2004. 8. 21) http://www.donga.com <법원 ‘아내 性 추행’ 첫 유죄 선고>
8) 가정의 평화와 안정보다는 도리어 가정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가정폭력이 근절될 수 있는 "환경의 조성"과 “폭력행위자의 교정”을 위해 제정된 특별법.
9) 조국, op cit. p. 27.
10) 금고 이상의 형 등이 예상되는 부부강간은 형법상 강간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1) 현재 크게 이슈화되고 있는 용어는 ‘부부강간’이다. 한국 현행법에서 남성은 강간이 객체가 될 수 없음에도 ‘부부강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강간의 객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결혼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강간을 보다 관계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보므로, 되도록 이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조국의『형사법의 성편향』에서는 ‘아내강간’으로 표기되고 있어 혼란의 소지가 있는데, 영미법 개정 이전에 사용된 경우(즉 강간의 객체가 ‘법률상의 아내를 제외한 부녀’였을 때는 강간의 대상으로 여성만 가능했으므로)와 독일 구 형법, 일본 형법, ‘설시’의 경우는 ‘아내강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부부강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2) 일본까지의 관련 법규는 조국 앞의 책 p. 18-26 참고.
13) 조국, op cit, p. 26 참고. 임웅의 의견 재인용
14) 조국, op cit, p. 21 참고
15) 조국, op cit, p. 30 참고
16) 한겨레21(2005. 06. 10.) http://h21.hani.co.kr <국민 81.3% “부부강간을 처벌하라!”> 참고.
<참고문헌>
조국, 『형사법의 성편향』, 박영사, 2001
<참고 싸이트>
동아일보 http://www.donga.com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 (구 ‘대한매일’의 1997년 사실혼 관계의 강간사건 검색)
인터넷 한겨레 http://www.hani.co.kr
한겨레21 http://h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