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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서강대 교수 인터뷰

장창환 |2005.09.03 07:38
조회 271 |추천 0


인 터 뷰-1     " 문학의 숲을 거닐다 "   .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        


울창하고 싱그럽게 우거진 문학의 숲을 거니는 동안 몇 번

이고 눈을 감고 머릿속을, 마음속을 정리했다. 

 

알록달록한 색연필을 양손에 쥐었다 놨다 수차례 반복하

며 행여 줄이 삐뚤어질까 한껏 정성을 들여 그었다.

 

펜팔을 하는 기분이란 바로 이러한 설렘이 아닐까.

 

눈빛 마주하며 서로의 목소리를 섞는 것보다 7.5배 정도는

더 낭만적인 것 같다.

어느새 이 사람과 한껏 가까워진 뿌듯함이 밀려오는 시간,

장영희 교수가 펴낸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하드커버 안

쪽을 들여다보던 그 순간이 그랬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앉아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읽다가,

이내 침대로 옮겨가 베개를 등뒤에 받치고 읽더니, 엎드려

도 보고, 팔을 번쩍 들어도 본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시선만은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홀로 또 일방적으로 몰래몰래 장영희 교수의 마음을 들여

다보는 기분이란 참으로 쏠쏠했다.

 

책을 덮고 나니 ‘생후 1년 만에 1급 소아마비 판정을 받아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두 차례의 암 투병까지 꿋꿋하게 이

겨낸 장영희 교수’라는 저자의 프로필보다도 ‘인간 장영

희’가 언니같고, 엄마같은 모습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2시 40분에 봅

시다. 내 방으로 와주겠어요?” 그녀였다.

 

방송사 인터뷰 스케줄 때문에 여의도에서 출발한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교수보다 먼저 그의 연구실

에 도착했다.


알록달록한 풍선들과 리본, 꽃들이 자칫 적막할 뻔

한 주인 없는 방을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액자들에 담긴 장 교수와 그의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가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그려줬을

장 교수의 캐리커처,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도 리

포터처럼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곧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장영희 교수가 방에 들어

섰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길을 잘못 들어섰지 뭐야.


어서 앉아요.

 

커피 마실래요?” 라며 허겁지겁 리포터를 챙긴다.

 

매주 수요일마다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그였지만 누

구보다도 낭랑한 목소리와 시원한 웃음소리를 자랑

했다.

 

높은음자리의 즐거운 멜로디처럼 장 교수는 자신의

삶을 축복이라 여기며 즐기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곁을 늘 따라다니는 ‘장애인’과 ‘암

환자’라는 꼬리표는 참으로 무색해 보였다.

 

도대체 그 밝은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전 의도적으로 마인드컨트롤은 하지 않아요.


<희망은 본능적인 힘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면 희망이란 어디선가 슬며

시 나타나죠>

제가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힘든 투병 생활을 하면서 얻은 건 아무리 힘든 어

려움이 닥쳐와도 결국은 극복하고 말 것이라는 확

신 이예요>

 

그렇게 장애와 병은 저를 강해지도록 훈련시켰죠.”


<<넘어지면 일어서는 스칼렛...>>

 

2001년 안식년을 맞아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보스

턴에 머물던 장영희 교수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

연히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가까운 친지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완치를 했다고. 하지만 2004년 가을

덜컥 그 암의 흔적이 척추암으로 전이됐다는 진단

을 받았단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또 한번 넘어졌지만 곧바로 일어설 자신을 믿었다.

 

“신이 저의 재기를 위해 쓰러뜨리는 거라 생각했어

요. 이미 이렇게 넘어져본 적은 수십 번 있었으니

늘 넘어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죠.

 

<바로 일어설 준비도 했고요>

 

” 이미 어렸을 적 어머니 등에 업혀 초등학교를 다

닐 시절부터 그는 단단한 벽 앞에 맞서 싸우며 살아

왔다.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상급학교 입시에 응시조차

막았던 그 두터운 벽을 아버지 장왕록 박사의 필사

적인 노력으로 허물어냈단다.

 

첫돌을 앞두고 고열로 끙끙 앓던 어린 딸을 보며 무

언가를 깨달은 듯 “소아마비!”를 외쳤던 아버지, 장

영희 교수가 삶을 긍정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든든

한 아버지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딸과 함께 ‘스칼렛’의 공역을 끝내며 주변 사람들에

게 당신의 딸을 ‘스칼렛’같다며 소개했다는 아버지,

 

그렇게 자신을 지켜주던 아버지의 뒤를 고스란히

따라 장 교수는 아름드리 영문학자의 길을 걷고 있

었다.

 

장영희 교수에게서 느껴지는 평화롭고 고요한 힘이

란 필시 그의 동반자였던 밝고 선량한 아버지의 흔

적이리라.

 

그가 한 일간지에 영미 시와 각종 문학 작품을 연재

하면서 곁들인 에세이에 수많은 독자들이 꿈을 품

고, 희망을 품었다. “교도소의 수인들이 제 글을 읽

고 희망을 찾았다는 편지를 많이 보내더라고요.



좁은 공간에서 깊은 사색과 자기성찰을 하는 동안

제가 소개한 작품들이 좋은 자극제가 됐던 모양 이

에요.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가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

면서 저와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제

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 좌절과 실망에 빠져 허우적

대는 시간보다 희망을 가지는 시간이 훨씬 유익하

더라고요.

 

그걸 꼭 전하고 싶었어요” 라며 그는 ‘살아있음’ 자

체가 축복이며 희망이니 절망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희망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조

건이라고 얘기한다.

 

도대체 그의 ‘오뚝이 권법’은 어떤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장영희 교수는 이 ‘희망 찾기’에 있

어서의 문학의 힘을 굳건히 믿는다.

 

<문학은 삶의 용기와 사랑을 가르치고, 삶을 살아

가고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제가 아무리 넘어져도 곧잘 일어나는 모습 역시

그 힘을 증명해주는 거죠>

 

그의 말대로 문학은 우리가 처할지 모르는 위험을

한 발 앞서 감당해준다.

 

그 안의 등장인물들은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살고, 투

쟁을 하고, 승리를 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대리경험을 하고 마음속에 뜨

겁게 번져오는 삶에의 열망을 느끼곤 한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염증을 느끼는 요즘 젊은이들

에게 장 교수는 이런 문학의 힘을 일깨워주고 싶은

듯 했다.

아름다운 이들에 둘러싸인 나는 행운아

 

 

“목소리 또 갈라지잖아~ 앞에 커피 마시면서 해. 아 참, 커

피 마시면 안 되려나?”

 

 

인터뷰 시작 초반부터 옆에 앉아 연신 추임새를 붙이던 화

가 김점선씨가 장영희 교수에게 걱정 어린 말 한마디를 던

진다.

 

짧은 커트 머리에 반바지와 운동화로 편안한 멋을 낸 김점

선씨는 장영희 교수의 뜨뜻한 동료이자 생기 넘치는 벗이

다.

 

“장 교수가 신문에 영미시 연재했을 때 영어공부에 손놓고

지내던 아줌마들이 얼마나 열광적이었나 몰라요.

 

심지어서클을 만들어서 함께 시를 외우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했죠. 그 중에 하나가 나예요” 라는 김점선 화가의 말

에 연구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연재했던 영미시와 에세이를 묶어 책으로 발간하는데 그

안의 삽화를 김점선씨가 그리게 됐다며 서로를 반기는 그

들은 흡사 소녀들 같았다.

 

장영희 교수의 곁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주인 없는 그의 방을 반짝이도록 비추는 작은 소품들,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흔적이 장영희 교수의 인복을 실감케

했듯이 말이다.


장 교수의 글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사랑’에 대해 묻자

그는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범위는 정말 넓어요.


전 누군가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다 사랑이라

고 생각하거든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이라면, 서로의 존재 자체가 해롭지 않는 사이

라면, 그 존재 하나로 안심이 되는 사이라면 그건 다 사랑

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아

서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여기는 중이에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 많은 장 교수에게도 고민되는 것이 있단다.


예전보다 학과 규모도 커지고, 수업 규모도 커지면서 제자

들에 대한 꼼꼼한 관심을 쏟지 못하는 점이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무렵엔 한 학생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 사랑을 퍼부었건만 근

래엔 그럴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 참 안타깝단다.

 

영어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생 개개인의 마음과 심리, 세

계관까지도 읽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단다.

 

 “그래도 제가 3월에 강단에 복귀할 때 학생들이 많이 환

영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연구실 안팎에 예쁜 종이 장식과 풍선들을 매달아놓고

‘Happy Birthday!’ 라는 문구를 걸어놨어요. 제가 새로 태어

났단 의미였던가 봐요.”

 

인터뷰 도중 연구실에 잠시 찾아온 한 제자에게 자신의 책

을 선물하며 그 안에 메시지를 적어주는 장 교수의 왼손이

아름답게 빛났다.

 

몸이 불편해 활동거리가 제한적인 그에게 제자들이란 그

렇게 산들바람처럼 상쾌하고 고마운 존재다.

 

잠시 들러 누군가의 소식을 대신 전해주기도 하고, 다양한

화제 거리를 던져주고 가니 학생들과의 소통은 곧 더 넓은

세상과의 소통과도 같다.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에서도 여럿 등장하는 학생들 이야

기를 들여다보면 그의 제자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있다.

 

승리의 행진이 시작된 제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강의 도중

토론 시간에 어느 학생이 던진 말을 귀 기울여 기억해 적

은 것 등의 행복한 이야기도 많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제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다.

 

“제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어느 날부턴가 종적을 감췄어

요. 그리곤 제 연구실 방문 틈으로 쪽지를 끼워뒀더군요.

자신의 뇌가 솜으로 가득 찬 것 같다면서요.

 

키가 하루에 1cm씩 자란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가족의 무관심과 냉대로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였어요.

 

관심과 사랑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

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죠.

 

” 하지만 결국 그 학생을 구하진 못했단다. 그래서 좀 더

지혜롭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던 점이 두고두고 가

슴에 남는단다.


그 학생 이야기를 전하며 장 교수는 한없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가 많은 학생과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이어받는 이

유는 장 교수 역시 맺은 인연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쏟

아 부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서클럽, 소설 한 편의 소박한 꿈

 

“지난번에 부산에 저자 사인회를 갔다가 인디고서

원의 청소년 독서 클럽을 들른 적이 있어요.

 

어린 학생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독후감

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화가 대한민국 전체에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일단 서강대에 독서클럽을 만들려고 합니

다.


교수님들도 벌써 몇 분 섭외 했어요.

 

” 장 교수는 일단 입시 위주의 공부에만 여념이 없

는 청소년들을 위해 독서 클럽을 만들어 운영할 예

정이다.

 

그리고 후엔 ‘어린 왕자’같은 아름다운 소설을 써보

고 싶단다.

 

그의 손을 거친 글귀들은 금새 아름다운 멜로디가

될 것만 같다.

 

얼마 전 수첩을 잃어버려 학생들 연락처부터 지인

들 연락처를 알 길이 없다며 답답해하는 장영희 교

수는 스스로를 ‘기계치’라 부른다.

 

휴대전화에 연락처 저장하는 법을 몰라 수첩만 사

용한다는 ....

 

그, 아름다운 문학을 사랑하며 문학이 지닌 강한 힘

을 믿는다는 그를 만나는 동안엔 최첨단 디지털 시

대 속 아날로그의 따스함을 만난 듯 더없이 푸근하

고 편안했다.

(내일신문:이성실 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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