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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바로 알자.. 그는 패배를 두려워 했다???

가슬~ |2005.09.20 16:55
조회 709 |추천 0

그는 효율적 전쟁을했다

즉~

절대 지지 않는 싸움을 했던 것이다

절대 적을 뒤쫓아 전멸 시키는 작전을 하지 않았다

언간히 하구 맛만 보여주는 싸움을 했던 것이다

물론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하물며 쥐가 고양이를 모는데..

다친 고양이라 하여 어찌 뒤돌지 말라는 법은 없겠는가

하지만 그는 적어두 희생은 줄이는 막음으로 적당한 승리란 명성을 얻었다

그가 부산을 가기 두려워 함도 여기에 있다

 

그는 과연 병사를 사랑하여 부산 출정을 거부 했을까

아님 패배를 두려워 하여 부산엘 가지 않으려 했을까

 

그의 부산 진출 거부는 바로 여기에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 이유 또한  결코  그가

왜적이 뱃길을 이용 한양 입성 또는 물자 수송을 불가능 하게 막았다는 내용을 부정 한다

 

당시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해양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은 더욱 그리 하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전쟁으로 피패의 일로를 걸었을뿐  범선을 개발하여 대양으로 진출 하려는 구상은 하질 못했다

아이러니 하게두 3면이 바다인 우리와 섬나라인 일본 또한 배의 개발엔 극히 무심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교역으로 또는 태종, 세종의 대를 거치면 판옥선이란 전투함을 개발 하기에 이르른다

 그것이 다~였다

 

당시 세계적으론 범선이 유행 했었다

하지만 우리나 일본은 돛은 있었으나 그의 추진력을 극대 살리지 못하는배.. 즉 거의 인력에 의거한 노를 저어 가는 형식을 택했던 것이었다

 

실제 도성으로 곡물등 세를 거두워 들일때 당시 또는 역대 조정에선 바다를 도는 뱃길을 이용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우리들 생각에 지형이 험하고 산맥이 있는 육로보다 바다를 돌면 훨씬 수월 했을텐데...

하지만 그것은 노를 저어 부산이나 전라도에서 서울로 온다는게 얼마나 힌든 것임을 알기에 그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또한 왜 굳이 부산에 상륙을 고집 했을까..하는 이유도 이 원인에 기인한다

인천으로 배를 바로 대지 않았던점...

이순신이 기다리고 있어서는 결코 아니다

 

이순신의 부산 출정 거부도 여기에 있다

부산 까지는 하루 길이 빠듯하다

부산을 공격할순 있지만 돌아오는 길이 밤이었기에 기습에는 치명적이다

기다렸다 공격을 한다면???

밤에는 포를 쏠수 없다

군대를 갔다온 이라면 야간 사격을 어떻게 하라는걸 배웠을 것이다

그냥 들구 갈기라는...

야간에 총에 맞아 죽는 확률은 그야말로 소발에 밟혀 죽는 쮜꼴..

 

단연 단병전 밖에 될수 없다

조총의 위력은 십분 발휘될 것이며 조선 수군은 단병전에는 그야말로 쥐약이다

물론 쪽수로두 몰리는 수세..

또 있다

하루종일 노만 저어도 지칠대로 지칠 지경

여기에 어찌 또 전투를 감행할수 있겠는가

 

비단 이순신 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던건 아니다

당시 모두 알고 있었다

 

원균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술 퍼마시고 잔게 아니라 최대한 부산 인근 포구에 배를 붙이고 일찍 잠을 청했다

그의 계략은 이러했다

새벽 일찍 출발하여 부산을 치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는것

그러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부산 인근으로 배를 대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원균이 우둔한게 아니라 첩자가 화근 이었다

일명 정보전의 패전이 그것이라것

 

조정의 입장은 이러하다

물론 조정도 이 상황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은 일본에서 부터 들어오기에 정말 지칠대로 지친 지경

한산에서 출발 하는거와 일본에서 출발 하는것

어느쪽이 더 지치겠는가

만일 이들을 포구로 몰구서 육지의 아군과 합세하여..

즉 육로로 도망갈 통로를 열어주고 이들을 몬다면 모두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주할 것이다

그러면

육지에 배복해 있던 아군이 이들을 섬멸하면 된다

그 수가 얼마이든 상관이 없다'

이미 바다에 빠져 육지로 올라간 이들에겐 병장비란 없다

 

그야말로 초전박살을 낼수 있던 기회

조정에선 이순신 이라면 능히 가능하게 만들 사람 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하지 않았다

 능히 가능한 작전 이었음에도 자신들의 희생을 더욱 중요시 여겼던 것이었다

일명 명령 불복종 이란 것인데...

과연 이순신이 무엇을 두려워 했던가

 

당시 조선에서나 일본에서나 위와 같은 경우로도 해전이 그리 필요 없는 전투였다

무의미한것..

그저 희생만 내는 싸움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몇차례 까불고 있다..란 식으로 갔다가 일본은 더 이상 해전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조정에서는 실 이용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선 전쟁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수 있는 부산 공격만이 최선 이었다

 

정유재란시엔 상황이 절실박했다

분명 끝낼수 있는 전투였고 이순신의 도움이 절실했다

정말 왕이 애원했다 시피 하지 않았던가

 

이순신이 부산에 갔더라면 막대한 희생을 치루긴 했어도 그들을 박았을 것임이라

필히 해냈을 것이다

7년이 아니라 3년으로 끝냈고 명백한 조선의 승리 또한 이순신의 이름으로 끝냈을 것이다

 

왜란 도중 이순신의 전투에서 마지막 노량전을 제하면 단병전을 벌린 일은 거의 없었으며 당병전에 대비해 만든 거북선 또한 기동의 차질만 생겼을뿐 그리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사망??이란 믿을수 없으며 아마도 초야에 묻혔을 것이란 추측이 지배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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