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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사랑 (25장/ 붉은 겨울.. 두번째) <실극화>

추림의 풍 |2005.10.13 09:32
조회 275 |추천 0

"쨍그랑! 퍽! 퍼석......!"

 

"아아아악......!"

 

유화와 유진은 방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넋을 잃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틀째, 유미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딘가 다녀오고 나서 유미는 하루동안 침묵을 지켰고 다음날 정신이 나간 환자같은 행동

을 보였다.

 

폭력적이고 서둘렀으며 초조해했다.

그리고 방안을 초토화 시키기라도 하듯 무척 거친 행동을 보였다.

 

화장대에 올려진 모든 물건이 깨지거나 흐트러졌고 옷가지를 모두 꺼내 찢어버리고 내던

져 버렸다.

 

스트레스...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서 오는 몸부림이다.

 

유미가 저런 모습을 보인적이 딱 한번 있었다.

이년 전, 어느날. 그날도 그랬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유미야! 너지금 이게 무신짓인줄 알어? 너 미쳤어?"

"언니 왜 그래? 하지만 무서워!"

 

유화가 야단을 쳤고 유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유미에게 다가갔다.

 

"나가! 나가란 말이야! 혼자있고 싶어!"

 

소리를 지른 유미가 방안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얼굴을 멍하니 목표없는 허무의 저편에 두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니야... 믿을수가 없어... 절대 아니란 말이야!"

 

중얼거리다가 아픈 마음을 그대로 반영이라도 하듯 힘껏 소리친 그녀는 머리채를 감싸쥐

고 흐느껴 울었다.

 

"흐흑... 아닐거야! 아니라고 말해줘! 아니지 그렇지?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보란 말이야!"

 

유화는 유미에게 무슨 일인가가 생긴것을 예감했다.

동생은 냉정하고 정신력이 강했다. 내적으로는 무척 지적이고 서글한 면이 있지만 절대 나

약한 편은 아니었다.

 

"유미야...? 너 무슨일이니? 언니하고 이야기좀 하자 응? 다 들어줄께 말해봐."

 

유화가 다가가 유미를 감싸안았다.

 

"언니... 언니... 나 어떻해? 모르겠어! 힘들어! 흐흑!"

 

유화에게 힘없이 몸을 부딪혀가며 유미의 서글픈 울음 소리가 길게 울려 펴졌다.

 

*            *            *

 

1993년 2월 9일 화요일. 저녁 아홉시 반경.

 

추림은 오랜만에 야근을 해야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신입 사원들이 입사하고 나서 그들에게 실습과정을 교육시키는 일

이 겹쳐 늦어진 것이다.

 

오늘로 벌써 이틀째다.

날이 풀리려는지 지난주보다는 날이 푸근한듯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날은 추웠고 거리는 얼어 있었다. 밤이라서 더 그런지 몰랐다.

 

집에가서 얼른 씻고 쉬고 싶었다.

유미에게 연락이 없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기다리기로 했다.

벌써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무슨일이 생긴것은 아닌지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선주는 지난주 금요일에 돌아갔다.

안정이 되자 저 자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나보다. 그러다가 지선이 찾아오고 다음 날 그

녀는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을 배웅하면서 그녀가 평범한 날들을 보내길 빌어주고 당부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이 편하지가 않았다.

 

지선의 말로는 집에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처음있는 일이라고 했다.

당연히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유미에게 전화라도 해야할까라는 생각으로 길을 따라 걷다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길위엔 을씨년스런 기운이 가득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거치는 길위에 위치한 자동차 학원쪽을 바라보다가 추림의 얼굴에 이상한 기운이 어렸다.

학원 앞 도로에 두대의 승용차가 세워진 채 라이트를 깜박거리고 있었다.

 

외제 승용차다. 검은 두대의 세단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들이고 그 중 한대는 구형 벤츠 같

았다.

 

예감이 이상했다.

기분탓이려니 하면서 그곳을 거의 다다랐을 때 두대의 승용차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내

리는 모습이 보였다.

 

다섯명이다.

거의 코앞에 다다랐을때 그들의 손에 무언가 들린것을 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하려 들 때였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내며 추림의 몸이 휘청거리며 180도 회전했다.

오른쪽 어깨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추림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땅바닥을 굴렀다.

 

"크흑!"

 

조금전의 고통보다 더 심한 통증이 등판에서 느껴지고 머리가 어질거렸다.

다섯 명중 두놈이 손에 든 각목으로 느닷없이 공격해 온 것이다.

 

"누구? 뭐야?"

 

뒤로 몸을 기다시피 하면서 추림이 그들을 훓어 보았다.

멀리서 비춰드는 가로등 불빛에 그들의 모습이 구분되었다.

 

두명은 정장이고 세명은 토스카나와 가죽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건달은 아니다.

옷차림이 세련되고 머리 모양이나 행동들이 그렇다.

 

어깨를 움켜쥔 추림이 눈에 힘을 주며 그들을 경계한 채 학원과 도로를 경계지은 담벽에

등을 붙혔다.

 

"흐흥. 제법 하는데?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걸? 넌 여기서 죽거나 병신이 되면 돼!"

 

한 놈이 비웃고 각목을 허공에 휘두르며 입을 열어 말했다.

이해할 수 없다. 퍽치기인가 했지만 말도 안된다.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놈이 자신같

은 사람을 털리는 없고... 자신이 원한을 맺은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은 아니다.

 

추림은 그들 중 한 명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자동차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는 무척이나 장신이다.

족히 185센티는 나갈듯한 키에 몸은 마르지도 비데하지도 않은 늘씬한 체형이다.

어디선가 본듯하지만 그건 아니다. 누군가를 닮은듯하다.

 

저놈이 이 일의 주재자일 것이다.

닮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

 

"말해라. 이유가 뭐냐? 하는짓은 양아친데 모습들은 귀공자들이다?"

 

추림이 곧 있을 일을 예감하면서 가장 먼저 접근해야 할 목표를 정하며 말을 걸었다.

 

"흥! 입다무는게 좋을거야. 빨리 끝내지! 야! 그냥 조져버려!"

 

차에 기댄 장신의 사내가 소리치자 네놈이 다가왔다.

어설프다. 연장쥐는 법도 모른다. 하지만 힘이 있고 이들은 네명이나 된다.

 

"흐압!"

 

한놈이 추림의 옆구리를 공격해 들어 오면서 기성을 토해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냉정해진 얼굴로 놈의 공격을 피해내며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빡!

 

놈이 휘두른 몽둥이가 벽을 때리자 거친 소리가 차가운 허공에 길게 울려 퍼졌다.

추림의 오른다리가 한 발 앞으로 전진함과 동시에 놈에게 접근했다.

다른 한놈이 다시 몽둥이를 휘두르며 다가왔다.

 

추림은 처음 그놈의 가슴을 왼손으로 움켜쥐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그대로 얼굴을 이마

로 들이 박았다.

 

뻑!

 

"컥!"

"으음!"

 

놈의 공격을 피하고 역습이 성공함과 동시에 다시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다시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한번의 공격과 한번의 피습. 비겼지만 손해다.

 

입을 악다문 추림은 다시 몽둥이다 날아오자 눈을 부릅뜨고 팔로 방어하기로 했다.

머리나 어깨, 가슴에 타격된다면 끝장이다.

 

공격받는 이유야 모르지만 일단 살고 봐야한다!

 

"뭐야? 죽이란 말이야! 개새끼들아!"

 

추림의 저항이 의외로 거칠자 장신의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욱!"

 

팔을 들어 날아온 몽둥이를 막았는데 나무가 아니다. 쇠파이프다.

다행히 비껴맞았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 들었다.

 

"크흡!"

 

억눌린 비음을 토하며 추림의 발이 허공으로 날아 오르며 춤을 추었다.

쇠파이프를 직격시키고 신이 난 놈이 다시 공격하려는 찰라 추림의 다리가 허공으로 비산

하며 놈의 복부에 틀어 박혔다.

 

"쿡... 컥!"

 

놈의 허리가 구십도로 꺽어지면서 휘청거렸다.

칼 찌르기 수법! 발가락을 펴 공격했으니 아마 지독한 허무감과 무기력증에 빠질 것이다.  

두놈이 순간적으로 무기력해지자 추림에게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추림이 어깨와 등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내며 팔을 주물렀다.

아마도 당분간 왼팔은 사용하기 힘들것 같았다.

 

"말해라! 말하면 보내준다! 날 너무 웃습게 보는군! 겨우 다섯명이서 날 테러해? 이새끼들

다 죽여주지!"

 

허세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기세싸움이야 말로 싸움의 시작이고 끝인 것이다.

놈들이 잠시 추춤거렸다. 손쉽게 끝날 일이었는데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이다.

 

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당하는건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이새끼들이? 죽여 죽이란 말이야! 너 경춘이 빨리 안 일어나!"

 

장신이 다시 고래고래 악을 썼다.

추림에게 복부를 얻어맞은 놈이 얼굴을 하얗게 질린 채 꿈틀거렸다.

 

경춘? 멍청한 놈들! 이런 테러를 저지르면서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다니. 아마추어도 아니

다.

 

"씨발! 이거 안쓰려고 했는데! 이거 써도 되지?"

 

한놈이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춤에서 무언가 꺼내들었다.

그것을 바라본 추림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일본도! 길이 오십센티가 넘을듯한 소태도다! 미친놈들! 이런 놈들이 더 무섭다.

살상과 직결되는 무기류를 사용하면 죽거나 병신이 되므로 경험있는 자들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른다. 무서움을 알망정 그 결과를 전혀 짐작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 써. 담가버려! 너희들도 새끼들아!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장신의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놈들이 손에든 각목등을 내던지고 허리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 들었는데 잛은

단도등이다.

 

"......!"

 

추림은 더욱 냉정해진 얼굴로 주위를 쓸어보았다.

조용하다. 이렇게 사람들의 모습이 없을까! 이건... 안좋다!

 

"조용히 해결하자! 만약 내가 죽거나 반 병신이 된다면? 너희는 아마 평생 쫒기거나 인생

이 쫑날텐데? 그래도 쓸테냐?"

 

"......?"

"......!"

 

얼굴을 굳힌 놈들은 망설였다. 무지하지 않은 놈들이길 바래야 했다.

어깨와 옆구리를 주물러 통증을 가라앉히면서 추림은 자리를 조금 이동했다.

일본도를 든 놈의 행동 반경에서 벗어나려한 의도다.

 

"우리가 누군지 네놈이 어떻게 알아? 씨발놈아! 야! 저새끼 보내버리고 튀잔 말이다!"

 

장신이 다시 소리치자 망설이던 놈들이 조금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며 의사를 타진

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놈들이 다시 다가오자 추림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알수 있으면 좋겠지만 말해줄 놈들이 아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할까 생각했지만 그러면 이놈들은 더 날뛸

것이다. 도망가거나 제압해야 한다. 둘 중 도망가는 것이 현명하다.

 

"좋아! 한놈은 죽이고 나도 죽지! 네가 먼저 죽을테냐? 아니면 너?"

 

추림이 재빠르게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들었다.

외투를 벗어 주먹만한 돌을 옷에 싸면서 말하자 놈들이 비웃는 얼굴로 다가왔는데 조금 전

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지... 어 저기!"

 

추림이 그말을 하면서 앞으로 튀어나갔다.

추림의 속임수에 넘어간 한놈이 고개를 돌리자 마자 취한 행동이었다.

 

추림의 옷가지가 휘둘러 지면서 네놈 중 한 놈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추림의 옷은 이미 옷이 아니라 살인 무기였다.

 

피앵!

놈이 맞았는지 확인할 사이도 없이 바닥을 낙법으로 구른 추림은 다시 한놈의 다리를 공격

했다.

 

옷가지에 든 돌의 무게는 칼보다 무겁고 파괴력은 배가 강하다.

육체 중 아무곳이나 정통으로 맞는다면 사망내지는 어딘가 부러지고 만다.

 

"으악!"

"억!"

 

두마디 비명이 조금 시간을 두고 들려왔다.

얼굴을 가격당한 한놈은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고 허벅지를 맞은 놈은 주저앉았다.

 

바닥을 구르자 어깨와 등 옆구리에서 지독한 통증이 숨을 막히게 할 정도로 밀려들었다.

바닥에서 일어나려 할 때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느낀 추림이 피하려 했지만 이미 머리에

서 둔중한 통증과 함께 순간적으로 시야가 차단되었다.

 

본능적으로 옷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나다가 추림이 무언가에 걸려 바닥으로 나동그라졌

다.

 

"크흑!"

 

단단한 물체가 날아와서 머리를 강타한것 같다. 뜨겁고 끈적한 것이 흘러내렸다.

다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추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바닥을 두바퀴 굴러 일어나려던 추림이 무언가에 부딪히며 휘청겨렸지만 서는데 성공했

다.

아직 앞이 보이지 않았다. 놈들의 기척을 느끼며 시야가 보이는 척, 그 방향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하며 몸을 낮추었다.

 

심각했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힌 뒤통수도 깨진것 같았고,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에 허벅지를 깊

이 찔린것 같았다.

 

이 근처는 철공소 투성이다. 아마 쇠붙이나 얼어붙은 날카로운 얼음일수도 있었다.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피가 흘러 눈으로 들어가 경물이 붉게 보였다.

 

"후욱! 후욱!"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 두놈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는데, 한놈은  일본도를 든 놈이고 마

구잡이로 휘두르며 달려 들고 있었다.

 

두려움이 밀려 들었다.

몸이 엉망이다. 움직임은 이제 극히 제한될 것이고 힘도 절반이상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다. 과거 이런적이 몇번 있었지만 그때는 이렇게 무기력하지 않았다.

도망갈수도 있었고 상대는 기껏 나무 몽둥이만 들었을 뿐이었다.

 

도망가야 한다. 하지만 금새 따라잡혀 린치를 당할 것이 자명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냉정해야 한다.

 

다행이 장신의 사내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놈이 이런 경험이 있던 없던 가세한다면 상황은 최악중 가장 안좋은 결과만 초래할 것이

므로 그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왼팔이 덜렁거리는 느낌에 바라보니 피가 흐르며 감각이 없었다.

정말 최악이다.

 

목이 긴 티셔츠를 벗으며 뒤로 발검음을 옮겼다.

재빨리 혁띠를 풀어 손에 감아쥐었다. 벗은 티는 팔에 두르고 방어할 목적을 대충 갖추었

다.

 

재수가 없다. 피해도 사각진 곳으로 피해버린 것이다.

두놈이 무식하게 달려들었다. 어둠속에서 휘두르는 칼날이 섬뜩하고 사악한 빛을 토해내

는 듯했다. 

 

"흐흣!"

 

어이없는 상황과 돌발적인 일들이 차마 믿어지지 않아 추림의 입에서 갈라진 웃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죽음이 밀려들듯 놈들의 거친 공격이 굉렬하게 눈으로 확대되었다.

 

"으헙!"

"햡!"

 

옷을 휘둘러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일본도의 사내를 방어하며 짧은 도를 든 놈에게 두

걸음 다가갔다.

 

밀린다. 그럴수 밖에 없다. 방어와 공격, 다시 방어를 하려면 회피 동작은 불가피 한것이

다.

 

"테엥!"

 

옷에 든 돌멩이와 일본도가 부딪히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놈이 멈칫거리는 찰나, 추림은 소도를 든 놈의 품으로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크흡!"

 

추림이 내지른 비명 소리다.

소도를 든 놈은 칼이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혁띠를 말아쥔 왼손을 겨우 들어 얼굴을 가격하려는 찰라 왼쪽 허벅지 어림에서 불로 지

진 화끈하고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그 와중에서도 추림은 오른손을 휘둘러 놈의 얼굴을 스쳐 때렸다.

 

"컥!"

 

놈이 뒤로 물러나며 엉덩방아를 찌며 넘어지고 일본도를 든 놈이 추림의 뒤편에 서게 되었

다.

 

추림이 머릿속에 맹렬한 경고음이 울렸다.

 

'죽는다!'

 

이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뒤를 돌 볼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들은 현재의 행동에 몰입해 있고 판단력과 사고력이 본능에 잠식된 순간이다.

 

상대를 물어뜯으려는 본능과 쓰러뜨리려는 목적만 사고하고 있을 것이다.

 

아랫배와 허벅지를 경계짓는 관절주위에 꼿힌 소도가 덜렁거리며 움직임을 방해했다.

왼쪽 다리의 움직임을 포기하고 오른 다리로만 땅을 지탱한 채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

다.

 

"크흐흑!"

 

왼쪽 어깨에서 피분수가 솟구쳐 나오고 추림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불에 달군 인두에 지져지는듯한 통증이었다.

 

추림은 바닥으로 그대로 꼬꾸라졌다.

그러면서도 손에든 옷을 휘둘렀다. 마지막 힘이다.

 

일본도를 든 놈이 자신이 가한 공격이 성공하자 기쁨보다는 멍한 공항 상태가 되었는지

움직임을 멈춘채 굳은 얼굴로 추림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든것은 아주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억!"

 

오른쪽 복숭아 뼈 어림을 얻어맞은 놈이 껑충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흡! 크헉! 큭! 흐흐흐......!"

 

추림의 입에서 연신 비명이 새어나오며 차가운 바닥을 기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것을 열불이다. 감각은 없고 팔, 다리 배와 가슴,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

"......?"

 

놈들도 고통스러운지 추림에게 얻어맞은 곳을 매만지며 얼굴을 찌푸린 채 바닥에 나뒹굴

며 꿈틀거리는 추림을 멀건히 바라보았다.

 

"어때? 이새끼야? 이걸 죽일까? 살릴까? 너 이새끼 이정도로 해두지!"

 

장신의 사내가 다가와 추림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거친투로 말하며 실실거렸다.

 

"누...구냐? 이유...를 말......"

 

추림의 입에서 미약한 소리가 피와 함께 흘러 나왔다.

몸 전체가 피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상반신을 적시고 허벅지에서 흘린 피는 하반신

을 적시고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를 뒤집어쓴 추림은 나찰 같은 모습이었다.

가래가 끓는듯한 추림의 음성은 곧 꺼질듯하게 힘없고 미약했다.

 

"형! 어서 갑시다! 누가 보기라도 할까... 기분 더럽네!"

 

한놈이 다가와 추림을 두려운듯 바라보며 말하자 장신의 사내가 입을 실룩거리며 웃었다.

 

"병신들! 이런 놈하나 어쩌지 못하고... 잘들한다! 어쨌든 이새끼 이렇게 됬으니 살던지 뒈

지던지 운에 맡기고... 그래 가자!"

 

놈들은 추림을 뒤로한 채 절룩거리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누구냐? 말해...라!"

 

추림이 조금 힘을 내어 물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어나려 했지만 감각이 둔중하고 정신이 마구 돌았다.

 

"말해줘? 좋아! 나 선주의 오빠되는 사람이다! 네놈때문에 지금 우리집은 난리다! 선주

고것 때문에... 아니 너같은 쓰레기 때문에 평화롭던 집이 개판이 되었단 말이다! 너 이새

끼 다시는 우리 선주 못 볼줄 알아라! 흥 하긴 다시는 보지도 못할테지만......"

 

추림의 짐작이 맞았다.

어디선가 본듯했는데 역시 선주와 무척 닮아 있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면 아마 거의 흡사한

모습일 것이다.

 

"살면 니 운이고 죽어도 네놈의 운이겠지? 흐흐!"

 

가물거리는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바로 코앞인데 그들이 몸을 실은 자동차 엔진 소리가 마치 천리 밖에서 들려오는듯 아득했

고 희미했다.

 

"흐흐흐!"

 

추림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온 몸을 엄습했다. 이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몸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감각 기관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었다.

특히 허벅지 어림에 난 상처는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과다출혈의 위험이 있다.

다행히 어깨는 비스듬히 스친듯 했다.

 

"크흑!"

 

어개의 상처를 확인하려다가 불로 지지는 통증에 비명이 저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상처가 쩍 벌어져 있지만 뼈가 다치거나 깊게 찔리지는 않은듯했다.

 

어디론가 가야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인기척이 없다.

 

'빌어...먹을 동네!'

 

겨우 꿈틀거려 몸을 움직인 추림은 차가운 바닥을 기어 벽으로 다가가 상체를 힘겹게 일으

켜 기댔다.

 

숨을 헐덕거리는 추림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지면서 그의 정신도 흩뜨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추림의 온몸을 잔인하게 할퀴고 지나가는 2월에 벌어진 겨울 밤의 일이

었다.

                                                                                                        (26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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