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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24)

운운 |2005.10.13 18:22
조회 959 |추천 0

 

                                      

 

 -나를 부르는 소리(1)-

 

 


 


‘어찌하여... 그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지금껏 이런 일은 없었는데... 벌써 이틀을 넘기다니... 분명히 무슨 사단이 난거야.’

‘혹여 큰 변을 당하기라도 한 게냐?........묵운아!’


  이런 저런 걱정으로 창문 앞에 선, 화란 부인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며칠 전 자신이 하북팽가로 잠입시킨 묵운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평소 그녀의 화사한 가면은 싹 걷힌 후다.

화란부인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하듯, 화려한 방안의 공기도 잔뜩 무겁게 바닥을 짓누르고 있었다. 열어둔 창으로 시원한 가을바람 한줄기가 불어 들어와, 그녀의 전신을 휘감고는 사그라졌다.

펄럭이는 금빛의 장삼.

화란부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틀 전을 회상했다. 그 날 밤, 자신의 명(命)으로 왕국주는 작약과 한영을 초로의 중앙 탑 꼭대기 방으로 데리고 왔었다.







“어서 오게나.”

“소인 왕수훈, 명을 받들어 손님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화란부인!”

“수고했네.”


“어서오세요, 작약 어르신, 그리고 위소저.”


  작약과 함께 방에 들어 선 한영은, 마치 황제의 궁(宮)처럼 화려한 내부의 전경에, 잠시 동안 넋을 읽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채로운 색깔의 휘장들과 보옥들이 그녀의 눈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방주인의 목소리에, 한영은 곧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곤 창 앞에 서 있는 중년 여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있던 왕국주는, 화란 부인의 눈짓과 함께 뒷걸음질로 그들과 멀어져 다시 방밖으로 사라졌다. 이제 방안에는 오직 세 사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영과 작약을 차례로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던 화란부인의 얼굴에, 잠시 동안 이채로운 눈빛이 흘렀다.


“반갑습니다. 어르신, 이번이 처음으로 뵙는 거지요? 높으신 존함은 많이 들었습니다.”

“나도 자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클클. 아이들이 이곳, 초로의 여주인을, 화란부인이라 부르더군.”

“예에. 그리고 .......위소저도 반갑습니다. 여기 기녀들은 모두 이름을 버려야겠어요. 신궁 위소저의 아름다움에 비하면요. 마치 봉우리를 막 틔울, 화려한 붉은 장미와 같군요.”


“...케, 케엑!”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한영은, 자신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던 화란부인의 갑작스런 칭찬에, 그만 사래가 걸려 헛기침을 내뱉었다. 당황한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던 화란부인은, 의외라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다시금 유심히 한영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새삼스레 작약도 옆에 선 한영을 다시 한번 올려다보았다. 늘씬한 키와 완벽하게 굴곡을 이룬 몸매. 그리고 윤택이 흐르는 약간 검은 피부와 딱 달라붙은 붉은 경장은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약간 올라간 깊은 눈매와 도톰한 입술은, 차가운 그녀만의 매력과 함께, 뭇 사내들의 시선을 확 끌만큼, 충분히 도발적이었다.


‘과연, 소군과 같은 여인을 곁에 둔 비형랑이, 충분히 호기를 부릴 만 하구나.’


마음속으로 한영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한 화란부인은, 이번에는 작약 쪽을 향해 돌아서며 반갑게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제 아이들 중 하나에게 큰 은혜를 내려 주셨다 들었습니다.”

“은혜는 무슨....... 뒤를 잘 돌봐주게. 불쌍한 아이이니.”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 할 말씀이지요.......!”

“부탁은 무슨.... 그리고 나보다는 저 아이들이 더 고생을 했지. 나야 단지 육신의 상처를 치료한 것뿐이네.”

“......위소저와 또 다른 소년 하나도 함께 있다 들었습니다만......?”

“굳이 아직은 어린 아이를 ....... 여기까지 대동할 필요는 없는 게지.”

“네에. 그렇군요....... 아무튼 이곳 초로의 주인으로써, 크신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의선 어른.”


  내심 의문의 소년을 직접 만나보길 기대했던 화란부인의 얼굴에, 얼핏 실망한 기색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계속되는 화란부인과 작약의 인사치레를 곁에서 듣고 있던 한영은, 신경질 적으로 한마디 툭 내던졌다.


“그자가 누구입니까? 말씀해 주시지요. 가련한 저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도 화란부인이 아닙니까?”

“........!”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묻는, 한영의 날카롭고 당당한 눈매가 화란부인의 놀란 시선을 되받아쳤다. 태연하게 한영을 응시하는 화란부인의 눈빛과는 달리, 지금 중년 여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일이 알려짐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 이해득실(得失)을 치밀하게 계산해 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 버릴 만큼, 놀랄만한 작약의 음성이 이어졌다.


“문주! 자네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네. 이야기 해 보게나.”

“....어찌?”


  문주라니! 당사자인 화란 부인은 말할 것도 없었고, 놀란 한영의 눈동자도 크게 떠져, 작약을 내려다보았다. 작약은 그저 지긋한 눈빛으로 화란부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순간- 처음으로 화란부인의 가면은 산산이 깨어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침착하지 못하고,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원의 정적을 타고 흘렀다.


“의선 어른! 무...슨 말씀이신지.... 일개 기루의 주인일 뿐인 제가 어찌, 무, 문주라니....!”

“내 이미 오래전에, 초로의 주인인 여장부가 하오문(下午門)의 문주 직을 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네.”

“.....아!”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왜 진작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원래 하오문 이라하면, 무림에서 그 존재가 검은 장막에 가려져있었다. 문파의 구체적인 위치나, 그들을 이끄는 구심점인 문주가 누구인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던 것이다.

소매치기, 도둑질, 매춘업 등에 종사하는 최 하류 인생들로 구성된 문파 - 하오문.

밑바닥 인생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무림의 그 어느 조직보다도, 빠르게 유통되는 정보망을 가진 단체였다. 사람들은 구파일방의 하나인 개방의 정보력이 중원에서 제일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더 방대한 정보가 살아 움직이는 곳이 바로 이곳 하오문이었다.


‘양지에서만 움직이는 개방보다야, 음지에 뿌리내려 양지로 뻗어가는 하오문이, 정보력은 한수 위겠지!’


한영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기루를 드나드는 무림의 거물들, 그리고 심지어 황성(皇城)과도 친분이 깊은 초로의 여주인과, 의문속의 하오문의 문주라... 묘하게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현답(賢答)이다!


  순간 방안의 기운이 급속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의 사람 좋은 인상의 화란부인이 내뿜던 기가 훈훈한 순풍이었다면, 지금은 한 층 거세며 숨겨진 힘이 느껴지는 폭풍이다.

끼이익- 끼이익-

화란부인의 기운에 반응한 불사조가 그녀의 황금빛 장삼위에서 날개 짓을 퍼덕이고 있었다.


‘헉! 저것은!! 어찌하여 장삼위에 수놓인 봉황이 날개 짓을......?!’


  기이한 소리를 울리며 펄럭이는, 화란부인의 황금빛 장삼을 보고 놀란 한영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완벽한 변신! 분명히 같은 얼굴인데, 결코 동일 인물이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화란부인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치 잘 다듬어 놓은 인형같이 차갑고 소름끼치는 모습이다.


“역시! 의선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군요! 하하하하!”


그녀의 웃음소리는 묘한 파공이 되어 한영과 작약의 주위를 옥죄어 왔다.


‘윽! 대, 대단하다!’


한영은 내심 감탄하면서도, 몸을 보호하기위해 급하게 진기를 끌어 올렸다. 화란부인과 같이 절정고수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그녀의 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영의 이마에서부터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때 작약은 말없이 한영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쏴아아-

순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원한 바닷물과 같은 기운이, 열에 들뜬 그녀의 몸을 진정시켜 주었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 한영은, 천천히 작약을 돌아보았다. 허나 작약은 그저 무심한 눈길로 화란 부인을 응시한 채, 더욱 그녀의 손을 꽉 잡을 뿐이다.


“흐음....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나, 장삼에 갇힌 새가 구슬피 울고 있구나.....”

“불새...입니다. 하오문의 문주가 지켜야내야만 하는 것이자 또한 반드시 전해야 할 것이지요.”

“.......”


화란부인은 말없이 천천히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이미 폭풍의 기운은 싹 거두어들여진 후다. 그녀는 한영의 바로 앞에 서서,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한영 역시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그 눈빛을 당당하게 되받아쳤다.


“내가 그자를 알려주면, 위소저는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거지?”


화란부인은 문주라는 제2의 신분이 밝혀진 후, 더 이상 한영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영은 그녀의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아이라면서요? 아까의 인사치레는 모두 거짓이었던가 보네요? 당신의 휘하에 있는 아이가, 잔인하게 짓밟혔다고요. 어찌 보면 난 당신을 대신해서 처단해주겠다는 것이고.”

“후후후. 그건 내가 초로의 주인인 화란이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지금의 나는 무림의 정보를 관리하는 하오문의 문주다.”

“그, 그런!”


순간 한영은 말문이 막혔다. 허나 그녀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또한 초로의 주인인 화란역시, 그 일을 함구에 붙여둠은 당연하다. 해루는 일개의 기녀일 뿐이지. 그러나 상대는 거대한 세력이다. 함부로 싸움에 끼어들었다간,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

“.......!”


주먹을 꽉 쥔 한영의 양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의 차분한 눈동자엔 점차 분노한 빛이 완연해졌다.


“하오문의 문주? 초로의 여주인? 웃기는 소리! 똑 같군요! 비겁한-!”

“하하하하. 나를 비겁하다 하였느냐? 어울리는 말이군!”


화란부인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었다. 저기 앞에서 퉁퉁거리고 있는 한영을 보자니, 꼭 과거의 자신 같았다.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한영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여전히 입은 꾹 다문 채였다. 역시 하오문의 문주는 여장부(女丈夫)였다. 지금까지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작약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문주, 내가 대신 대가를 치르도록 하지. 무엇을 원하는 겐가?”


순간 화란부인은 놀란 빛을 띠면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작약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세상과는 인연이 없으실 것 같던 분께서, 어이하여 제게 정보를 사려 하십니까?”

“클클...... 내 아이들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지.”


화란부인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한영을 흘깃 쳐다봤다. 당사자인 한영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작약을 보았다.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아려 오는 것 같았다.


“제 조건은..... 일이 끝나고 나면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흐음.. 좋네.”

“아니, 무슨 부탁일지 물어 보지도 않으십니까?”

“쉬운 일이라면 조건으로 내걸지도 않을 테지. 나중에 들음세. 클클”

“.......! 그럼, 이것으로 거래는 성립되었습니다.”


“그자가 누구에요?”


성격 급한 한영이 대뜸 화란 부인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금 그자는 하북팽가의 현 가주의 남편이지요. 공동파 장문인의 제자이기도 하구요. 서문탁이라는 자입니다.”

“어찌, 정파의 놈이........! 쯧쯧쯧...”

"....흐음!”


과연 초로의 여주인 화란부인이 함구령을 내릴 만 했다. 오대세가중 하나인 하북팽가와 구대문파 중 하나인 공동파라.... 거대한 세력임에 틀림없었다. 허나 이야기를 듣는 한영의 표정은 다시없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하...북팽가 놈들이란 말이지.....!”


신궁 위한영. 20년 전의 혈사를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는 그녀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작약의 표정도 더 없이 신중해졌다. 화란부인은 이미 모두 짐작한 반응인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왕 한 배를 탄 이상 자신이 아는 최대한의 모든 정보를 작약과 한영에게 제공했다. 금루국주에게 보고를 받은 최근의 정보와 그들의 근황까지.







“부인-! 소인 왕수훈 들었사옵니다!”


깊은 상념 속에서 화란부인을 깨운 이는, 다름 아닌 왕국주였다. 부인의 뒷모습이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왕국주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부인, 그분들이 내일 새벽 일찍 길을 떠난 다고 하옵니다.”

“그래?”


화란부인은 빙그르 돌아서며 왕국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서찰이 쥐어져 있었다. 화란부인의 눈짓에 왕국주는 서둘러 그녀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어인 서찰이신지요? 그분들께 전할까요?”

“그리 해 주게. 흐음....... 내가 그들을 만난 것도 벌써 이틀이 지났군. 그들은 그 후로 그간 무얼 하던가?”


왕국주는 화란부인에게서 건네받은 서찰을 소매장삼 자락 깊숙한 곳에 잘 넣어 둔 다음,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것저것 정리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무사님과 작은 공자님은 홍루 각에서 두문불출이라 무엇을 하시는 지 알 수가 없었고, 의선님은 주로 누루에서 해루를 돌보셨습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셨다고, 내일 아침 새벽에 급히 떠나 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구나. 왕국주가 한 번 더 수고하게. 하북성까지는 이틀은 꼬박 걸리니, 혹여 하루는 노숙을 해야 하실 지도 모르겠군. 여비나 기타 필요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준비해 드리게나.”

“예. 부인 걱정 마십시오.”


왕국주는 들어 올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방 밖으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화란부인은 다시금 근심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홍루각의 붉은 기와를 간질이는 해질녘이다.

마당에서는 작약과 도화가 열 댓 개의 짐 꾸러미를 흰둥이의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야호는 변함없는 일행의 짐꾼이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매달아요. 우리 흰둥이 무거워요! 나머지는 제가 들게요!”

“저런, 괜찮아, 클클. 영물이 괜히 영물인 줄 아느냐! 이놈은 집채만 한 불곰도 예사로 짊어지고 다니는 놈이니! 그런 걱정 할 것 없다. 클클클”

“그, 그럴까요?”


“멍! 멍멍!”

(주인이 힘든 것 보단 낫지! 내가 든다, 주인! 괜찮아-)

“헤헤헤”


도화는 흰둥이의 우렁찬 짓는 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야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녀석의 휘날리는 하얀 털이 소년의 얼굴을 따끔거리게 했다.


“이런! 저리 좀 비켜봐! 이 녀석아- 마지막 보따리만 엮자꾸나. 옳지! 되었다!”

“이제 다 된 거면, 이 것 풀어줘도 되죠? 할머니?”

“오냐~ 클클클”


도화는 흰둥이의 어깨에 걸린 큰 줄을 벗겨내면서 말했다. 그들은 아까 전부터 짐이 든 보따리들을 엮어서 흰둥이가 짊어지기 편하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잘 엮어졌으니 이대로 벗겨두었다가, 내일 일어나서 출발할 때, 바로 짊어지고 떠나면 될 터였다.

후우. 

큰 숨을 내쉰 작약은 홍루각을 한 번 쓰윽 둘러보았다.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떠나야 한다니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선님~ 시키신 일을 다 했어요! 공자님 저는 이제 무얼 하면 될까요?”


  전각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달려 나오는 이는 다름 아닌 소소였다! 소군아씨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소소는 이보다 더 신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요즘 모두의 화젯거리인 소공자(小功子)일행을 곁에서 모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허락까지 얻은 일이니!

노모나 홍루는 해루를 돌보러 누루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이곳 홍루각에서 소소가 귀한 손님들을 시중을 들어 준다니,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또한 요 며칠간은 도화일행과 함께 노모나 홍루도 몹시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해루에 관한 일 만큼은, 모두들 쉬쉬하며 소소에게는 비밀로 했다.


“소소누나~ 나랑 같이 우리 누나 마중갈래요?”

“무사님이요?”

“네에~ 할머니 다녀와도 되죠?”

“그래, 해지기 전까지 들어 오거라. 내일 먼 길을 떠나니 오늘은 일찍 자 두어야지.”


작약은 마지막으로 보따리 속의 약재들과 기구들을 잘 살핀 후 허리를 쭉 피며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소는, 노파의 우두두둑하는 뼈 소리에 놀라 헛바람을 집어삼켰지만, 도화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에구구, 늙으면 죽어야지.. 쯧쯧. 에구 허리야..클클”

“에엣~ 할머니도! 저 다녀올게요!”


도화가 막, 소소의 손을 이끌고, 홍루각 앞의 큰 길로 나설 무렵 이였다.

한영은 아마도 해루를 보러 노모의 전각에 다녀온다 했으니, 이 길로 쭉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마터면 깜작 놀란 소소는 쿵! 하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너는 소소가 아니냐! 네가 여기 웬일이냐? 하하하! 혹여 소군이가 보내기라도 한 게냐?”

“헉! 비형랑 나으리!”


‘난원에 계실 나리가 어찌하여 이곳에 오신 걸까?! 아! 혹여 이를 예상하신 아씨가 나를 여기로 보내신 겐가?! 아아- 틀림없구나!’


소군은 머리 속으로 재빠르게 계산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확신을 했다. 비형랑과 관계된 일이라면 몹시 중요한 일이었다. 눈치 빠른 소소는 누구보다도 소군아씨가 귀히 여기시는 분이 비형랑 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멀 그리 놀라는 거야?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구나! 하하하하하!”


소군이 보내기라도 했느냐는 낯선 청년의 호통에, 도화와 작약이 놀란 얼굴로 소소를 주시하고 있었다. 당황한 소소는, 작약과 도화 그리고 비형랑을 번갈아 보며,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어요, 나리~ 전 그저 손님들이 궁금해서... 그리고 마침 홍루도 일손이 부족하다 하여 도움을 청하였고, 그리고 으음...!”

“하하하. 됐다. 어서 소군에게 가 보거라. 널 찾는 것 같으니!”

“네, 네에? 아씨가요?”

‘이를 어쩐다! 분명히 아씨는 비형랑 나리와 관계가 있어 나를 이리로 보낸 것 같은데...... ’

“허허 지금 달려가지 않으면, 소군한테서 불호령을 떨어질 텐데?”


순간 소소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군 아씨가 찾으신다면 무조건 달려가야 했다.


“나으리, 그리고 신선님, 도련님! 저 이만 가볼게요!  내일 뵈어요!”


소소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사라져갔다. 작은 소소의 뒷모습이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도, 비형랑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앞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그는 그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소군은 모르는 일일게다. 어차피 넌 오늘 난초의 매운맛을 보겠구나! 하하!”







“어째서 소소누나에게 거짓말을 하신 거여요?!”

“하하. 소소가 먼저 나에게 거짓말을 하였지 않았니. 중대사에 파리가 끼어서야 되겠느냐!”


  잔뜩 볼이 퉁퉁하게 부은 도화가 뾰루퉁하게 비형랑을 노려봤다. 미소를 띤 그는 가만히, 도화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끝을 알 수 없이 맑고 깊은 우물이 거기에 있었다. 비형랑은 비록 오늘 처음 만났지만, 까만 고수머리를 흩날리는 귀여운 이 소년이 첫눈에 마음에 들어버렸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귀여운 도령이여-하하하!”

“........도화에요!” 

“혹여 신궁 위한영을 알고 있느냐? 난 지금 그를 보러 가는 길인데.”

“어라?? 위한영은 우리.... 누나인데? 누구세요?”

“뭐라? 누나? 위소저는 동생이....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도화가 머뭇머뭇 거리며, 낯선 사내를 보고 막 뭐라고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저 멀리서 벼락같은 호통이 날아왔다. 한참 만에 낯선 사내를 제대로 알아본 작약의 일갈이 이어졌다.

날렵하게 달려온 흰둥이는, 소년을 보호하려는 듯, 도화와 비형랑의 사이에 서서 그를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너는, 네 녀석은 혹여 비형랑이 아니더냐!”

“멍! 멍멍!”


  정작 크게 놀란 사람은 비형랑이었다. 달려오는 흰둥이를 알아보고는, 옳게 찾아 왔구나싶어 반가움을 느낀 것도 잠시였다. 귀신같은 신법으로 날아와 자신의 팔을 잡은 노파를 본 순간, 그는 팔다리에 힘이 쭉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작, 작약 어른....!”

“클클클 맞구나! 맞아! 옳거니!”


철썩-

다 큰 사내의 엉덩이를 힘껏 손바닥으로 두들긴 노파는, 뭐가 신나는지 연신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기세등등하던 비형랑- 아까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다.

잔뜩 얼굴이 일그러진 비형랑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이,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의선 작약은 비형랑과 소군의 사부인 검선과 인연이 깊은 사이였던 것이다.

거의 반신선의 반열에 들어선 그들이니 만큼, 인간세상의 인연에 연연하고 집착을 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가끔 곤륜산에서 서로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주기가 있었다. 서로의 길(路)에 대해서 논하며, 도(道)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은 그들만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때마다 작약은 손녀 현을 데리고 곤륜산을 찾았고, 그 당시 어린 비형랑은 말 그대로 작약의 밥(?)이었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하여, 비형랑의 얼굴이 납빛으로 굳었다.


“쯧쯧- 네 녀석이 요즘 곤륜산의 순둥이 속을 섞인다 하더니, 딱 걸렸구나, 요놈!

 네 녀석의 버릇을 확실하게 고쳐놓을 터이니! 클클클”

“그,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긴 무엇이 아니야? 대낮부터 기루 출입이냐! 이놈아! 곤륜산 노부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겠구나!”


어린시절부터 비형랑, 그의 바람 같은 천성과 큰 그릇을 알아본 사부는 굳이 그를 엄하게 다잡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이치를 깨우쳐 주려 하였다. 허나 괄괄한 성격의 작약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한번씩 그를 볼 때 마다 매섭게 다루었다. 자신의 사부 앞에서도 자유분방했던 비형랑이었지만, 작약 앞에서 만큼은 딱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다.

허나 지금은 노기를 띤 것 같은 작약의 음성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지금 뭐하는 거 에요? 그리고 네 녀석은....?!”

“위, 위소저!”

“누나!”


놀란 표정의 한영이 저 쪽 앞에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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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주 잘 보내셨어요?

저는 매우 바빴답니다(^_^)

근무시간 틈틈히 농땡이(?)를 부리며 글을 쓰고 있어요.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가슴 두근거리는 주말이 빼꼼이 내다보고 있군요!

꼬리말을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다가 지치거나 힘들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지 모르실꺼에요.(^_______^)

 

제 글을 보시는 모든 감사한 분들께

언제나 파안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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