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모대학교 모학과에서 나를 부르는 말이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부른다. 양아치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뭔 진 몰라도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도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처음 양아치라는 말을 듣게 된 건 1999년 가을이다.
1999년 모대학 모학과에 입학한 후 첫 사랑에 실패하고(물론 100% 이것 때문은아니지만) 재수를 선택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첫사랑... 좋아한단 말 한번 못해보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제 풀에 지쳐 포기한 소심한 학생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와 양아치라는 말은 포함관계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재수를 하는 동안 점점 포함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태어나서 처음 미팅을 했다. 남자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여자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던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나같이 왜 이렇게 이쁜건지...
그 후로 나의 연애관이 바뀌었다.
“여자친구를 사귀다”라는 말의 뜻도 모르고 지내온 나에게 미팅은 나를 불태운 작은 불씨가 되었다. 그 후로 여러 번 미팅을 했지만,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는 번번히 실패했었다. 그렇게 여름을 불태우고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재수를 하기로 마음먹고 학교도 휴학하고, 재수학원에 등록해서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펜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친구들은 학교로 돌아가고, 나는 학원에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자연스레 학원에서 같이 재수하던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그 친구들 역시 미팅을 좋아하는 친구들 이었다. 여지없이 따라 나간 미팅... 이쁘긴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아니, 기술이 부족했다. 무조건 “좋다, 사귀어보자” 라고 말하는 남자와 누가 사귀겠는가? 내가 장동건도 아닌데...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싫고, 나는 나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 일단 친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주 연락하면서 일단 친구처럼 편해진 후에 적절한 시기를 봐서 사귀자고 하는 것이다. 첫 상대는 모 대학 간호학과 학생이었다. 그리 예쁘진 않았지만 꽤 귀여워 보였다. 나름대로 철두철미한 방법으로 사귀는데 성공했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었다. 첫 키스의 상대이기도 했고, 처음 여자와 섹스도했다. 나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친구들을 불러 여자친구와 사귄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은 같이 공부하고 축구하던 친구들이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여자에는 관심이 없던 풋내기들이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여자를 처음 사귀게 되었고, 기타 등등...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동시에 “양아치 세끼...”하며 부러움 반, 조롱 반의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 여자친구에게 흥미를 잃은 나는 헤어지자고 했고, 우리는 사귄지 100일도 되지 않아 헤어졌다. 그 때도 친구들은 똑같은 말을 했다. “양아치 세끼!” 그도 그럴 듯이 여자친구에게 흥미를 잃은 나는 헤어질 준비를 하고 미팅에 나가기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헤어지자고 한 날에 말이다. 장소는 지하철 1호선 신길역 제일 앞 칸. 헤어지자는 말을 하자 그 친구는 울기 시작했고, 나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그대로 지하철에 몸을 싫고 대학로로 향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뭐라 말하겠는가? 당연히 그 후로 나는 양아치가 되어버렸고, 아직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양아치라는 말이 익숙해지면서 나는 점점 더 양아치 같은 행동을 많이 했다. 특히 여자를 울리는 일에서... 모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여자친구를 여러 번 사귀었지만 매번 비슷했다. 철두철미한 작업으로 사귀는데 성공하면 100일이 되지 않아 시들해지고, 헤어지고, 울리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군에 입해하고, 제대했다. 그 후로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은 듯 했다. 복학을 하고나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파릇파릇한 여자들이고, 거의 1년여 동안 여자친구가 없던 나는 물 만난 제비마냥 작업을 걸어야 할 대상을 찾느라 정신없었다. 그렇게 찾게 된 첫 번째 상대에게 작업을 걸던 중 가장 친한 동기 녀석이 나를 막아섰다. 그 아이는 건드리지 말라고... 주저없이 포기했다. 여자는 많고 시간은 쌓여있기 때문에... 두 번째 상대가 바로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이다. 자신 있었다! 누구와도 사귈 것만 같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나에게 후배는 너무도 쉬운 대상이었다. 자주 연락하고, 같이 밥 먹는 시간이 늘어가고, 가끔 술도 마시면서 나에 대한 호감을 쌓아갔다. 그렇게 작업은 착착 진행되어갔고,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연예초반은 나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게 잘 되어갔다. 키스도 무척 빨리했다(1주일정도?).
사실 이 친구는 전에 사귀던 남자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사귀게 된 건 외모(키도 크고, 약간 통통해서 무척 강해 보인다.)와 다르게 여성스러운 면을 느꼈기 때문이고, 그것에 끌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일단 사귀고 난 후 나는 내가 울린 여자들의 원한을 한꺼번에 받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었다. 군대가 사람 만든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예전엔 남들이 뭐라고 하던 신경 쓰지 않고 여자를 울리던 나였는데, 이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남들이 나를 욕할 것을 생각해보니, 학교를 더 이상 다니기 힘들어 질 것 같았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집착이 너무 강한 것 같다. 이 친구가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을 수가 없이 화가 났다. 이 친구는 계속 나에게 이젠 다 잊었다고 말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뒤집어져 있었다. 의처증 증세도 보이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핸드폰 문자 메세지를 확인해서 다른 남자에게 문자가 온 내용을 보고 꼬투리를 잡고, 수첩도 몰래 훔쳐보고, 미니홈피 방명록에 있는 글들도 일일이 다 확인하고... 내가생각해도 미쳐있었던 것 같다. 사름을 의심하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다는 내 자신이 무서워졌다. 그렇게 혼자 탐정놀이를 하면서 틈만 나면 짜증내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이 친구는 더 심하게 나에게 짜증을 내며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가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예전의 양아치가 아니었다. 이 친구와 헤어지면 다른 누구와도 사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매번 뒤를 쫓아가 용서를 빌고 달래고, 화를 풀어주려 갖가지 노력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고, 100일이 지마고, 200일이 지났다. 더 이상 의처증 증세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우리는 별 무리 없이 행복했다. 200일 사귀고 이런 감정이 든 다는 사실이 우습지만, 정이 쌓여버린 듯 했다. 거의 200일 내내 같이 있었다. 다른 남자와 만나서 놀고 있을 생각을 하면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억지로라도 나와 같이 있게 하고, 다른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내가 왜 이 친구와 사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외모에 반해버려서 콩깍지가 씌운 것도 아니었고, 단지 외모와 다른 여성스러움에 사귀기 시작했고, 사귀는 동안에도 싸우기 일쑤고, 금전적인 문제도 그렇다. 내가 다 낸다. 이정도면 끝난 거 아닌가? 뭐가 좋다고 사귀고 있을까??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하루하루 사귀는 날은 늘어만 가던 중. 나는 이 친구에게 얘기를 하려고 마음먹고, 내 생각들을 얘기했다. 솔직하게... 서로에게 바라는 점, 고쳐야 할 점, 그런 얘기들... 그렇게 얘기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만은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1년 남짓 밖에 사귀진 않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만큼 험한 계곡을 지나온 것 같다. 가끔씩 좋지 않은 면을 보일 때가 있다고 서로 얘기한다. 그 때마다 나는 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 노력한다. 문론 완벽히 고쳐지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여자들을 사귀어 오면서 이런 적은 없었다.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이런 얘기들을 서로가 부담 없이 하게 된 후로 싸우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고, 서로 더 많이 좋아지게 된 것 같다.
여자들을 울리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던 양아치가. 어느덧 한 여자를 이해하고, 그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된 게 군대를 갔다 와서 인지 아니면 여자친구를 잘 만나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야. 사랑해! 우리 오래토록 싸우면서 사랑하자!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