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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께서 5.16혁명을 일으키기 이전, 이전 내각에서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제개발계획이 있어서, 박정희대통령이 아니었어도 지금 이만큼의 경제발전은 충분히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희망사항이요, 결코 “확신”할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본인의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또한 제시하고 싶다. 박정희대통령께서 당시 5.16혁명을 일으켰을 당시에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에서는 물론이요, 동남아시아에서도 최고로 못사는 국가중의 하나였었다. 줄여서 1인당 GNP 78불로서 세계최빈국순위 3위에 당당하게 랭크되었을 만큼 열악한 환경속에서 사는 국가였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1.2 공화국에서 작성한 타스카 계획(1954-1956), 네이산 계획(1954-1959), 경제개발 3년 계획(1960-1962) 등의 경제개발계획도 마찬가지로 성취의욕이 취약한 형식상의 계획서(paper planning on the shelve)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러나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은 계획 자체보다도 실천에 대한 강력한 국민적 의지와 리더십이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보다 부유한 환경속에서 살았던 국가중에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등과 같은 국가들이 속해 있었는데, 지금 현실에서 그들 국가들이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한국사회에 “단 한명”이라도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일단 의문을 먼저 제기해보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 “그렇다”라고 긍정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부적인 항목으로 뛰어들어가, 자신의 마음에 맞는 부분을 놓고 “우리보다 낫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지금 묻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경제수준이 우리보다 과연 낫냐는 객관적인 질문이기에, 여기에 주관적인 답변은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이 지금 이만큼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위에 열거한 개발도상국에서도 다 가지고 있었을 법한 “경제개발계획”을 우리만 지니고 있었기에 이룩할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위의 국가들은 당시 자신들보다 훨씬 못살았던 대한민국에서조차도 가지고 있었던 경제개발계획을, 그들은 수립, 실시하지 않은 관계로 지금 우리와의 경제규모의 갭이 이만큼이나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라는 말인가? 이런 억지를 부릴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본인또한 박정희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그 모든 업적의 백만분의 일도 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박정희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위에 열거한 국가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아나갔어야 함에 대해서는 내 목숨까지 걸어가며, 확신을 한다. 결국 박정희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생각조차 할 수조차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국경제가 성장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라기보다 국민이 열심히 일한 결과이다` 라는 주장은 `북한경제가 낙후한 것은 김일성 부자의 위대한 영도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가 게으르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라는 주장과 꼭 같은 낮은 수준의 오류이다.
왜 그러하겠는가? 이 세상의 그 어떤 유능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북한과의 대립관계, 가난한 국가에서 늘상 찾아볼 수 있는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신과 폭력시위와 범죄의 증가등의 사회혼란을 떠안고서 그 어떤 누구도 국가경영이라는 위대한 사업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최빈국의 국가에서 이젠 어엿한 무역강국으로서 경제강국으로서 서서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바라볼 때, 과연 이것이 한국인의 부지런함에서 나온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어느 유능한 리더의 유능한 경영으로서 나올 수 있었던 현상인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
부지런함만을 놓고 본다면 이 세상의 어떤 국가의 국민들도 대한민국 국민들만큼 부지런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들어와있는 동남아시아인들중에서 과연 그 어떤 외국인노동자가 부지런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은 우리보다 게으르다고 확실히 못을 박아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까? 결국 국민들의 부지런함과 국가경제발전은 동률에서 놓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발전의 틀을 선으로 국민들의 근면성실함을 후로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틀이 있어야 국민들이 그에 맞추어 일을 해서 그만큼의 성과를 볼 수 있다는 결론인 것이며, 그 틀을 제작하는 능력은 국민들이 결코 자체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 확실한 물증이 지금의 한국사회의 3D산업을 떠받들기 위해 이 땅에 유입되어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인 것이다. 그들 국가에도 국가경제발전의 틀은 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불과 반세기도 안되어, 그들은 자신들보다 일인당경제규모인 GNP의 6배나 뒤떨어진 최빈국에 뒤지는 기현상을 목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원이 제 아무리 빼어난 노 젖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선장이 그 앞길을 올바로 제시해주지 못한다면 그 선원의 빼어난 실력도 결국은 의미가 없을 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선원들의 노 젖는 실력도 결국은 배가 존재하는 목적에 필요한 구성요소중의 하나일 뿐이지, 결코 배에서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치로써, 국민들이 제 아무리 근면성실하다 할지라도 그들의 근면성실함을 곧바로 성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리더는 전체 국민의 근면성실함을 무위로 만들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박정희대통령은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 자신도 유난히 돋보이게 만들었지만, 전체 국민들의 피땀또한 대단히 가치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어찌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그의 빼어난 리더쉽과 국민들의 근면성실함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중추역할을 했음에 대해서, 지금껏 그 분을 헐뜯고 매도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돌려먹어, 그 분을 존경해야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