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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아래 한편의 드라마 주인공이 되버렸네요.

혼잣말 |2005.10.29 13:06
조회 435 |추천 0

저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인 흔히들 말하는 고삐리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힘들게 살아온 나름대로 철없이 살아온 인생을 장황하게 적어볼 생각입니다.

우선 이글은 한편의 소설은 절대 아니라는걸 알아주시고,

제 고민을 들어줄 사람들을 찾기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저희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성격문제, 아버지의 도박, 바람으로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이혼을 하시고

어머니는 위자료 한푼 못 받은채, 동생과 제 양육권만 가지고 이혼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가 저희한테는 무척 잘해주셨습니다.

허나 그는 놀이동산에 갈때도 단 한번도 가족과 간적이 없었으며

놀러간다고 하면 친척들을 불러서 데리고 갔었습니다.

저희 형제는 즐거웠을지 모르나, 어머니는 그게 얼마나 싫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던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어릴때 고아로 자라서, 어떻게든 저희를 먹여 살려야 겠다는 생각에

힘든 택시와, 노래방사업을 벌이시다가 중학교 1학년때 망하셨죠,

어머니는 택시 회사 직원들에게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를 많이 당하시고,

저희는 저희대로 아버지 없는 자식, 또 친구와 싸우는 일이 생기면

호로자식이라는 소리를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었지만, 제가 그런 욕을 듣는건 괜찮았지만

동생과 어머니가 그런 치욕을 겪어야 했다는게 가슴아팠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세가족은 눈칫밥 먹으며셋방 살이를 해야했고,

어머니는 제가 몰래 자는척 하면 동생과 서로 이불 싸움을 하다 잠든

우리형제의 이불을 덮어주시며 눈물을 훔치시고 밤을 아픈몸을 누이시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셋방살이에 형편은 전혀나아지지 않고,

저는 중학교 2학년때 친구가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서 눈이 한쪽이 실명위기라는

청천 벽력같은 소릴 듣게 되었습니다.

현재 지금도 수술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수술비를 원래 가해자 측에서 대줘야 하는데,

그냥 뻗댈꺼라는 식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입원비는 지금주고 수술비는 나중에 주겠다고 해서, 법무사에 공증(각서)를 받으러 가자니깐,

양심적으로 믿어달라더라구요. 누가 믿겠습니까. 형제도 못믿는 세상에..

양심적으로 믿어주지 않으면 뻗댄다고 해서 참 억울 하게 있어야만 했습니다.

언젠가 법적 싸움을 하겠지만, 현재는 서로 잠잠한 편입니다.

무리한 돈을 요구하는것도 아니고 치료비만 달라는데, 그것마저 그럴때

아버지가 많이 생각 나고 원망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니까 이렇게 만만하게 본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눈다친 이틀뒤 아버지가 왔습니다.

6~7년만에 보는 아버지, 친아버지.. 허나 나는 볼수 없었습니다.

검사전이라 피가 한쪽눈에도 전이될까봐 안대를 벗을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부를 만져보니 아버지도 도박 빚때문에 도망치며 산다고 그 피부도 많이 거칠어져있었습니다.

바보같이 형제들이 자신을 다 버렸는데도, 자신을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는 형제를 피붙이라고 큰아버지와 동생들을 챙겨왔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원망했던 말을 많이 쏟아부었고,

아버지가 그렇게 처음으로 제 앞에서 눈물 흘리시며 미안하다고 빌었습니다.

허나 아직 바란난 그 여인(제 새어머니)와는 같이 살고 있는것 같더라구요..

(실은 이혼뒤 양육권을 인계받은 어머니가 힘들어서 잠시 저희 형제를 석달간 버린뒤

에 다시 찾아서 지금의 가정을 꾸리고 살고있습니다. 그래서 새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여전히 어머니에게는 미안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같았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말.. 저는 따돌림을 당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법적 싸움문제가 학교까지 번지기에, 이렇게 되면 선생님들도 피해를 보게되기에

이리 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학교 축제를 나가서 노래를 하게 되었고,

친구들이 "임창정"(글쓴이가 좋아하는 가수)하면 "ㅇㅇㅇ"으로 알아줄만큼 유명세를 탔습니다.

 

그렇게 잠시 즐거웠던 어느 날..

저는 간질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응급실에 실려가서 깨어보니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전에는 어린애들이 하는 단순한 경기인줄 알았던게,

대학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검사를 해보니 0.8mm양성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게되었습니다.

절망에 쌓이고, 나는 그래도 나를 믿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

나보다 더 절망스러워 할 우리 어머니를 위해 절망 하는 표정 없이 괜찮을거라고 하고

그렇게 병원을 나섰습니다.

허나 약물치료로 그렇게 간단히 될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눈을 관리하는 신경(해마라고 하죠)쪽에 물혹이 나서 수술할 경우에는

사망확률이 높은 증상이라네요..

모테신앙인 저는 예전보다 교회를 더 열심히 다니고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남들보다 못한 신앙심이라 할지라도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공부에 취미를 두지 못했고

철없이 굴었기에 할수 없이 실업계로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초..

어머니는 회사 직원부부와 자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달뒤, 직원부부중 부인은 도박에 돈을 다 써먹고 경북 대구로 날라버렸습니다.

그 아저씨와 어머니가 한달뒤 눈이 맞은거죠,

 

나는 어머니께 절대로 반대한다고 하고, 집을 뒤엎어버리고, 눈이 뒤집혀서,

어머니께 생전 처음 욕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동생과 어머니를 집밖으로 내쫒아 버렸습니다.

저는 살림살이까지 어머니께 챙겨서 보내버렸기때문에

동생과 어머니는 그아저씨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저는 제대로 된 밥한끼 먹지도 못하고,

급식소에서 주는 밥과, 아침에 오는 우유 한잔, 저녁에는 친구들이 놀때 몰려서

음식을 뜯어먹으며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같이 살자고 해서 콩가루가 난집안을 아예 물에 타버리게 하는지..

저는 더 이상 어머니와 싸우면 종교적인 계명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에,

나중에 후회할거란 생각에, 자존심하나로 살아온 제 자존심을 억눌러가며,

어머니께 잘못했다고 하며 집으로 들여보냈습니다.

허나 그 아저씨까지 살림을 같이 옮겼습니다.

 

몇일간 대화도 없이 저는 제 방에서 문닫고 컴퓨터만 하는게 일이 되버렸습니다.

전자파가 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걸 알면서도,

노래방,tv,컴퓨터,휴대폰...

전자파가 있는 일은 골라서 하고 재미를 느끼게 되고, 그게 제 생활이 되버렸습니다.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냉전 상태를 유지 시켰습니다.

 

어느날, 동생과 크게 싸운일이 생겼는데, 아저씨께서 무척 화가나셔서 우리 둘을 앉히고

서운한일과 동생과싸우지말라는둥의 일을 장황하게 말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이제 인사정도는 합니다. 아직도 아버지라는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지만,

새어머니껜, 어린맘에 아버지가 시켜서 엄마엄마하고 따랐지만,

저는 이제 한두살먹은 어린애가 아닌데도, 크면 클수록 철없는 어린애가 되가고 있습니다.

 

아픈 상태에서 동생이 혈압을 올리고,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이 싫었고,

내가 왜 이런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밖으로 돌아다니게 되고, 그래서 일분일초라도 밖에 있기 위해 신문배달까지 하고 있습니다.

내게 아버지 소릴 듣고싶어하는, 이사람이 진심으로 우리 가정에 몸담고 싶어하는 이사람을..

나는 이제 내 아버지로 받아들여야 하는걸까요..

 

장황한 글 읽어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구,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겠지만, 완벽을 위해 노력하시구 꼭 성공하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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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설 같다는 분들..

 

저 역시도 제가 살아온 인생이 소설이었으면 하고

 

평범하게 살고싶은 심정입니다.

 

제 심정 모르고 그런 말은 하시지 않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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