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이었던가.
어제 오랜만에 나누었던 너와의 한잔 술 뒤의 여운은 지금 나를 가슴 아릿한 추억으로의 여행에 젖어들게 하고 있단다.
그 시절이 엊그제만 같은데, 우리가 벌써 사십 줄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지만, 지나오면서 겪은 풍상이 만만찮은 걸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구나.
난 사회생활이 힘들고 짜증 날 때는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하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마음이 밝아지곤 해.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 어차피 살아가면서 헤쳐 나가야 할 고민일 바에야 좋은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일이 잘 풀릴 수도 있잖아.
내겐 여태껏 보석처럼 품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근데 역경을 이겨낸 무용담이 아니라 누구나 다 가슴속에 하나씩은 품고 있는 사랑 이야기거든.
아마 너도 기억 날거야.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정말 좋아했던 그 여학생 말이야.
1990년 3월 말, 겨울방학이 끝나고 1학기 개강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캠퍼스, 그러니까 우리가 대학교 4학년이었을 때지.
여학생들이 한손에 책을 끼고 소매를 손등까지 내린 다른 손으론 입을 가리고 캠퍼스를 오가던 기억이 남아 있는 걸로 미루어 그날 아직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기에는 날씨가 매우 쌀쌀했던 것 같아.
수업을 마쳤으니 오후 5시쯤 이었나 보다.
그 때 난 본관을 나와 책을 펼쳐놓고 있었던 교양학관 열람실로 내려가다가 또래의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청바지에 줄무늬가 박힌 흰색 재킷 차림의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단다.
스쳐 지나가는 중에 보았지만 그 순간 제법 많은 시간을 그녀는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었지.
뭐랄까, 뒤돌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아쉬움 같은 거 있잖아.
그리고 며칠 정도 시간이 흘렀을 거야.
너와 난 하교 길에 스쿨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일전에 보았던 그녀가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에 오르더구나.
그날 우린 일주일간의 학습내용에 대한 의견도 나눌 겸 술 한잔 할 셈이었는데,
그녀를 버스 안에서 보는 순간 무척이나 가슴이 뛰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반갑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지.
버스 안이 제법 꽉 찼었는데 그녀는 뒤쪽까지 씩씩하게 비집고 들어와 우리가 앉아있는 좌석 앞에까지 오더군.
그때 그녀를 두고 네가 나에게 살짝 한 말이 “저 여학생, 텔레비전에서 봤던 임수경 닮았네.”
그래, 하지만 임수경이 그녀를 좀 닮긴 했어도 굳이 따지자면 지금 생각해봐도 임수경 보다야 그녀가 더 예뻤지.
그리고 곧 우린 버스를 내리게 되었는데 난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어.
그날 저녁 우린 술을 마셨지만, 난 관심이 온통 콩밭에 쏠려 있던 터라 오늘 버스 안에서 보았던 그녀가 기억나느냐고 짐짓 관심이 없는 척하며 물어보았단다.
결혼을 약속한 예쁜 연인이 있었던 넌 대뜸 “그 여학생이 대단하구나. 니 마음을 잡아 흔들다니 말이야.”
뜨끔하여 그게 아니라고 발뺌했지만,실은 술 좋아하고 주위에 남자 동료만 들끓었던 내가, 그 나이 그 상황에 여학생한테 마음을 뺏겼다는 자체가 나를 잘 아는 이들에겐 흥미로운 사건이었는지도 몰라.
그때 이후 그녀는 내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지.
글쎄 학교에 가기만 하면 그녀가 눈에 띄는 거였어.
캠퍼스 안에서는 먼발치에서도 시야에만 들어오면 그녀임을 금방 알 수 있었으니 대학교 4학년 졸업반 복학생이 다섯살이나 적은 어린 여학생을 두고 그만 짝사랑의 늪에 단단히 빠지기 시작한거지.
도대체 작년 3학년 복학했을 때는 일년 동안 단 한번도 눈에 띄지 않더니, 학창생활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고 사회진출을 위해 마음의 여유도 부족한 이때에 나타나 강철 같은 나의 결의를 허물어뜨리고 있는 그녀로 인해 안달이 날 지경이었어.
하지만 학교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은 그런 작은 고민을 덮고 나의 일상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지.
난 당신이 참 좋습니다
당신이 좋다보니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참 좋아보입니다
당신이 참 좋습니다
당신 혹 아시나요
당신을 알고부터 달라지고 있는
나의 일상생활을... ... .
당신을 생각하면
웃음이 많아지고
당신을 생각하면
삶이 조금 여유 있어 집니다
<작자미상 ‘난 당신이 참 좋습니다’중에서>
그러한 날이 계속되다가 더 이상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고만 있을 수 없어 짝사랑중인 나의 마음을 같은 과 1년 후배 oo에게 털어놓았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고마운 그 후배는 그녀의 신상을 금방 파악해서 알려줬어.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88학번인데 무슨 과 3학년이라는 등.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그건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어.
사랑에 눈멀면 무모해진다잖아.
어쨌든 기뻤어. 이제 나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알리기 위해 편지를 쓰는 거야.
도저히 말을 걸 용기는 안 나고, 그렇다고 소개팅 형식으로 추진했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을 것 같아서 진심을 알리려면 고전적 연애수법인 편지쓰기가 나에겐 가장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거지.
군대시절 여중생의 위문편지에 답장 써본 이후로 여자에게 편지 써본 적이 없었지만 정성껏 내 마음을 담았어.
혹시 이편지가 그녀와 날 대단한 인연으로 연결시켜 줄지도 모른다는 비장함과 설렘을 안고 말이야.
주소는 그녀가 속해있는 학과로 적어 보냈지. 며칠 후 수업이 없는 일요일을 택해 난 각과 편지함이 놓여있는 단과대학 복도로 가 보았어.
편지 보내고 한참이 지났으니 만약 내가 보낸 편지가 거기 없다면 그녀가 가져간 것이고 그냥 있다면 아직 그녀가 내 마음을 읽지 못한 거지.
죄지은 것도 아닌데 누가 날 볼까 왠지 두렵기도 했어.
긴장된 마음으로 편지를 하나하나 들춰내는데 내가 보낸 편지가 나왔어.
아.......그런데, 편지가 이게 뭐야!!!
봉투가 길게 찢어져 있고... ... ,
내 편지를 누가 고의적으로 찢어보고 그냥 편지함에 내버려 둔거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정신이 아뜩해지고 다리에 힘이 쫙 빠졌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너무해.’
‘아냐 차라리 잘됐어, 그냥 공부나 할 것이지 내 팔자에 무슨 연애를... ... . ’
아마 그때가 꽃피는 사월 말쯤 됐을 거야.
그날 난 무척이나 탄식하며 캠퍼스 빈곳을 휘청거리며 걷다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른다.
슬픈 가슴은 눈물로 채워지고
서러운 마음은 술로 달래도
허망함에 쓰러지는 영혼이
얼마나 슬프고 큰 고통인가를
그대도 알겠지요
그대도 사랑해봤을 테니까
<윤석구의 ‘그대도 알겠지요’중에서>
편지사건 이후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과 여학생 후배들이 내 앞에서 그녀를 두고 “선배, oo과 걔 말이죠. 얼굴만 하얗지 뭐... ”어쩌구 저쩌구 입방아를 찧어댔지만 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예전 같으면 부끄러워 할 만도 했겠지만 워낙 충격적인 사건을 이미 겪은지라 단련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니, 그녀를 좋아한다는 대명제 앞에서는 그 어떤 감정조차도 뒷전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또 한달쯤 지났을 거야.
수업이 있는 날에만 학교에 나오는 등 애써 그녀를 내 마음속에서 밀어 내려고 했지만, 우연히 책가방 밑바닥에 찌그러져 있는 그 찢어진 편지를 다시 읽고 마음 한켠에서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어.
‘그래, 그냥 있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안돼 보여.’
이번에는 그녀의 집으로 그 찢어진 편지를 동봉하여 보내게 되었단다.
그러고는 열흘 쯤 지난 후, 그녀에 대한 정보를 처음 알려준 그 후배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수업이 있는 강의실 맞은편 빈 강의실에서 그녀와 첫 상봉을 하게 되었지.
쿵쾅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좀 떨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주저주저하며 묻더군. “누구세요?”
“저...oo과 .....라고 하는 데요”
이름을 말하는데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 예”
5분도 안되었던 짧은 첫 만남 때 그녀의 모습이 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걸.
그때 그녀가 상황을 대충 알겠다는 듯 실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쳐다보며 의아해 하기도 하는 그모습,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퍼뜩 생각났었어.
그날 난 완전히 고양이 앞에 쥐 같았지만 한번 만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단다.
그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대면까지 했으나 그 이후로 쉽게 만남의 기회를 주지 않았어.
하지만 난 그녀의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괜찮았다.
‘기다리는 거야.’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은 채 심기일전하기 위해 주말을 이용해 부모님이 계신 고향엘 갔단다.
사과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지고난 뒤의 과수원일은 매우 바빴었지.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다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어머니께서 나에게 물으셨어.
“내가 일전에 윗동네 보살할멈에게 물어보니 너한테 여자가 있다고 하던데, 너 정말 여자 있냐?”
얼떨결에 난 “예, 있어요...."
"근데 아직 나이가 어려서... ... .” 라고 우물쭈물 대답했단다.
그 보살할머니는 동네 아줌마와 할머니들에게 점을 봐주며 연명하는 무당이었거든.
신내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3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점괘가 나왔다고 해서 어머니는 그 무당에게 쌀도 몇 됫박 갖다 주며 좀 친하게 지냈는데,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자 돌팔이라며 발걸음을 끊었다가 그 즈음 관계를 회복하였다고 하더라.
어머니께서는 “그 할망구가 이번엔 제대로 맞췄구나. 어쨌거나 여잔 나이보다 성격을 제대로 봐야한다. 니가 빨리 돈 벌어서 걔 졸업할때까지 학비대면 좋겠네 뭐” 하시면서 반기셨다.
그 때 난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망하였어.
내년 가을이면 그녀를 어머니에게 인사시키고,
빨간 부사 사과향기 가득한 이곳에 데리고 와서 코스모스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저 제방둑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아, 무당 할머니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무덥던 대학 4학년의 여름방학이 어느덧 끝나고 2학기 개강,
그리고 가을은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고, 벌써 연말이 왔다.
그해 12월 9일엔 서울에 첫눈이 내렸었지. 그때 내가 사는 하숙집은 한옥이었거든.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었을때 마당에 굵게 내리던, 나의 미래와 그녀에 대한 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듯 것 같은 축복의 서설로 알았어. 바보같이... ... .
아쉽게도 시험과 사랑 모두를 쟁취하지 못한 난 그녀에 대한 미련을 차마 정리하지 못한 채 새해가 오기 며칠 전 서울을 떠났어.
내 대학생활의 기억을 모두 차지해버린 그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잊어야지. 아마 잊혀질 거야... ... .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이어지고, 난 계속되는 도전과 패배에 아파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 무엇일까.
세월이 가도 그녀에 대한 기억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는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 .
그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은 계속 커져만 가고, 그렇다고 별다른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세월은 자꾸 흘렀어.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 겨울, 난 당연한 듯이 무엇에 이끌리듯 자원하여 그녀가 사는 수원으로 발령을 받아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
그녀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퇴근 후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전철역에서 세 시간 넘게 무작정 기다린 적도 있었어.
그런데 말이지....
단지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나 그리던 서울에 다시 돌아왔는데... ..
그녀는 나를 만날 이유가 없는 거 같았어.
무지개를 좇는 듯한 그녀를 향한 여정은 내 나이 스물아홉을 넘기면서 드디어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단다.
사랑이 먼저인지
그리운 게 먼저인지
사랑해서 보고픈 것인지
보고픔에 사랑이 깊어진 것인지
잘 알진 못해도
가난뱅이 가슴으로 사는 것 보다야
아픔이라도... ... .
가슴 한켠에
한 사람쯤 몰래 품고 살아감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작자미상 ‘보고픔인지 그리움인지’중에서>
사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대면한 기억을 더듬자니 다시 대학 4학년 시절로 거슬러 가게 되는 구나.
6월 말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학교 도서관에 갔다 귀가하는 길에 학교앞 전철역에서 갑자기 그녀를 보게 되었어.
그때 난 그녀의 건너편 승강장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청색 반바지가 너무 잘 어울리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어.
놀란 가슴을 잠시 진정시키고는 잰걸음으로 역 계단을 오르내려 또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몇 마디 대화를 시도했지.
의도하지 않았던 내용의 전혀 실속 없는 질문과 답변 같은 거 있잖아.
빗나간 질문에 짧게 대답해버리는 그녀 때문에 나는 무슨 말을 계속해야 할지 몰라 멋쩍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감상하듯이 약간은 미소를 띠며 시선을 딴 데 두고 있었지.
근데 그녀가 갑자기 내 뒤에 있던 일단의 남학생들에게 말을 거는 거였어.
복학생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그녀의 과 동료였던 것 같았는데,
일행이 있는 줄 몰랐던 난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이 두 달 전 찢겨진 편지사건의 내막이 들통 난 것 같아 창피한 마음에 황급히 인사를 하고 돌아섰었지.
그 후 몇 번의 에피소드가 있긴 했지만 그녀와 마주한 건 그게 마지막이었어.
겨우 세 번의 만남뿐이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가 있던데 보지 않아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제목처럼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깊은 것이라 할 수 있어.
들리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녀에게 못다 한 말을 하고 싶었어.
내가 좋아한 만큼이나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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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씨 잘 계시죠. 절 기억하시는가요?. 저 잘 살고 있어요.
지나온 세월처럼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들겠지만 가끔씩 생각나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
대학 친구들 만나면 그 시절이 생각나 항상 당신 생각을 하게 되고,
이승환의 ‘너를 향한 마음’이란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도 그렇고,
파란 반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를 볼 때도 가끔은 당신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어찌하다보니 결혼도 88학번과 하였답니다. 같은 대학에 다니진 않았지만 ㅇㅇ씨에 대한 나의 로맨스를 대충은 알고 있고 그걸 존중해주는 마음씨 고운 여자랍니다.
지난 봄 이었죠.
아내와 술을 마시다가 취기가 오른 내가 “여보, 실은 내가 대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자가 꿈에 나타나서 당신을 절대 놓치지 말랬어....”
그랬더니 아내가 처음엔 화를 내다가 나중엔 당신을 고마워하더군요.
맞아요. 나의 마음을 끈 아내에게 다가갈 수 있게 용기를 준 사람은 바로 ㅇㅇ씨 당신이었어요.
당신으로 인해 난 오랫동안 인내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결국은 사랑하는 아내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진정 당신은 나의 은인입니다.
ㅇㅇ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또 있어요.
당신도 어느덧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고, 저도 당신의 집이 있는 도시에서 직장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추운 1월 어느날의 겨울이었죠.
제가 당신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정말 너무 보고 싶으니 한번만 만나달라며 일방적으로 띄워놓고 당신의 직장이 있는 종로의 커피숖에서 기다릴 때,
당신은 예상했듯이 모습은 나타내지 않고 전화를 걸어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까닭 모를 감격과 함께 오랜 시간 당신을 향한 번뇌가 씻겨나가는 것을 순간 느꼈습니다.
그 한마디는 그 후 저로 하여금 제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하였고,
하마터면 잿빛으로 남을 뻔한 나의 대학시절을 푸르게 채색시켜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역동적인 삶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보같이 그때 제가 너무 감동한 나머지 대답한 말이 뭐였는지 기억나세요.
“그러실 필요 없거든요.”
그건 정말 실언이었어요.
ㅇㅇ씨, 사실 이글 말이죠. 올해 얼마전에 전국에서 모여든 나와 비슷한 종류의 직장인들이 일주일간 국립ㅇㅇ원이란 곳에서 업무와는 별 상관없는 연수를 받게되었어요. 그런데 첫날 예기치않게 교육생 백일장이 열렸어요. 주제와 글의 형식이 주어지지 않고 자유스럽게 쓰는거였지요. 저는 고민하다가 ㅇㅇ씨 기억이 나서 그냥 편하게 썼어요. 근데 그게 150명의 교육생 중에 2등상을 탔어요. 하여튼 마지막날 전교육생들이 보는데 상도타고 글 내용이 공개적으로 읽혀졌어요. 처음에는 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추억이 남들에게 공개된다는게 끔찍하게 부끄러웠는데, 결국은 이런 공간에 남겨두게 되었지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억누르고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 때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ㅇㅇ씨에게 드릴게 있어요.
당신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강의실에서 처음 본지 두 달쯤 지났을 겁니다.
무작정 집근처로 제가 찾아 갔었죠.
당신은 하교 길 저녁 무렵에 느닷없이 나타난 저 때문에 적잖이 놀랐는데 설마 스토커로 오해하진 않았겠죠.
그리고 그때 가로등 불빛 아래 당신이 안고 있었던 종이 쇼핑백안에 든 게 꽃 같았는데 그것 땜에 제가 마음속으로 의기소침 했던 게 기억나는군요.
저도 당신을 좋아하는 동안 꼭 드리고 싶었어요.
늘 변함없이 이 꽃처럼 당신은 내 가슴속에 피어있었답니다.
이젠 사심 없는 선물이니, 자 받으세요.
신의 가호가 늘 당신과 함께 하길 빌겠습니다.
[흐르는곡] Memories - Daybre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