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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예감 - 제 2 장 - 쥐구멍에 볕들다 [2]

유즈나 |2005.11.22 03:00
조회 535 |추천 0


제 2 장

쥐구멍에 볕들다

 

 


1

 

 


 “젠장!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욕이 절로 나왔다. 하늘을 향해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날씨가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덕을 부리냔 말이다. 눈부시게 화창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지는가 싶더니, 그야말로 퍼붓듯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던 중에는 기분 좋을 만큼 맑다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렇게 돌변해버리다니……. 핸드백을 머리에 올려 비를 막아 보려 했지만, 그 작은 핸드백에게 기대하기에는 애초에 버거운 일이었다. 내 몸은 순식간에 흠뻑 젖어 버렸다.

 

 “하늘까지 나를 저버리는구나!”

 

 부질없는 원망을 내뱉으며, 약속 장소인 카페를 향해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익숙지 못한 하이힐을 신은 탓에 걸음걸이가 불편했지만,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은 것은 그나마 내게 허락된 작은 행운이라고 할 만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기막힌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를 향해 달리는 동안 조금씩 잦아든 빗줄기는 내가 카페에 도달하자 거짓말처럼 멎어버린 것이다. 흠뻑 젖은 생쥐 같은 몰골로 선 내 앞에서, 세상은 언제 그런 시련을 주었냐는 듯이 밝고 화사하기만 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만 이 모양이다. 모처럼 공들인 머리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버렸고, 화장이 어떻게 되었을 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온몸에서 빗물을 뚝뚝 흘리며 카페에 들어섰다.

 

 “어머, 언니!”

 

 은혜가 난감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손짓을 한다. 그녀의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자,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언니, 흠뻑 젖었네요. 오늘 소나기 온다는 일기예보 못 들었어요? 우산 갖고 왔어야죠.”

 

 그런 일기예보를 했단 말이지? 생각해 보니 어제는 화실에서 쫓겨났다는 절망감 때문에 텔레비전도 안보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었다. 일기예보는 당연히 못 봤지. 그러고 보면 내가 그렇게 빗속을 뚫고 달리는 동안, 나와 같이 갑작스런 비에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던 것 같다.

 

 ‘일기예보를 탓할 수도 없겠네. 쳇, 결국 또 내 잘못이란 말이지?’

 

 괜스레 심통이 나서 누구를 향한다고 할 것도 없이 혼자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언니. 화장실에 가서 손 좀 봐야겠는데요.”

 

 그녀의 손에 이끌려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의 커다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참담함이 나를 짓눌렀다.

 

 손질이 잘됐다고 희희낙락하던 머리는 흠뻑 젖어 축 가라앉은 체 제멋대로 얼굴과 목덜미에 들러붙어 있었고, 젖고 얼룩진 옷에 대해서는 말하기도 괴로웠다. 얇은 옷감이 젖어 속옷까지 보일락 말락 하는 것은 차라리 악몽이라고 할 수 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사람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다니……비참한 기분만 아니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았다. 그나마 화장만은 무사하게 버텨 알록달록한 얼굴이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내 옆의 은혜는 나와 너무나 극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단정하고 예쁜 모습인가! 언제나 완벽하게 찰랑거리는 부드러운 생머리와 속이 들여다보일 듯이 투명한 피부, 한 듯 안한 듯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과 바람 불면 날아갈 듯 하늘하늘한 몸매. 거기에 어울리게 입은 연두색 원피스는 그녀의 피부를 돋보이게 해주면서 더욱 풋풋하고 신선해 보였다. 그 뿐인가! 차라리 연예인 지망이었다면 이해가 갈 텐데(그만큼 예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나랑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공부도 잘해서 현재 유명대학 약학과 4학년이다. 무슨 일을 해도 사건과 사고가 따르는 나와는 달리 언제나 차분하고 침착한 몸놀림에 지극히 여성스러운 성격, 거기다가 결정적인 것은 마음씨까지 천사 표라는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완벽해도 되는 건가?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불공평할 수는 없는 거다!

 

 젖은 몸에 느껴지는 한기가 가뜩이나 기복이 심한 내 기분에 폭풍 같은 직격탄을 날렸다. 갑자기 초라한 내 모습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치솟았던 것이다.

 

 “어, 언니, 왜 울어요?”

 

 당황해 하는 은혜를 바라보며,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서 있었다. 갑작스런 자괴감에 이미 흠뻑 빠진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 솔직히 은혜와 내가 친하게 지내는 건 이상한 일이기는 해. 그녀와 나를 비교해 보라. 이유야 어찌 됐든 난 대학 진학도 못하고, 직장도 없고……무엇 하나 꿀리지 않는 게 없잖아? 그녀가 나와 만나면서 창피해하는 것이 당연하다!(어느 새 그녀가 나를 창피해하는 걸로 난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서러움의 강도는 점점 더 거세지며, 눈물은 빗물보다 나를 더 흠뻑 젖게 했다.

 

 “언니, 진정 좀 해요. 화장까지 얼룩지잖아요. 울지 마요. 왜 그래요? 추워요?”

 

 그녀의 말에 나는 흐느끼며 대답했다.

 

 “은혜야(훌쩍)……미안해. 나도 예쁘게 꾸미고 나오려고 했는데(훌쩍)……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훌쩍)……미안해. 창피하게 해서(훌쩍)……정말 미안……(훌쩍).”

 

 “언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창피하게 해서 미안하다니……그게 무슨 소리에요?”

 

 “네가 그랬잖아(훌쩍). 예쁘게 좀 하고 나오라고……. 그 동안 내가 형편없이 하고 다녀서(훌쩍)……네가 민망해하는 것도(훌쩍)……당연하지 뭐(훌쩍). 그런데 오늘도 이렇게 망가져 버리다니……(훌쩍).”

 

 “뭐예요? 언니, 내가 예쁘게 하고 나오라는 게 창피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언니도 참, 언니가 어디가 어때서 창피하게 생각해요?”

 

 “그럼 왜?(훌쩍) 예쁘게 하고 나오라고 신신당부했잖아…….”

 

 은혜는 콧물을 훌쩍거리는 내게 휴지를 건네주며 기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그건……사실 오늘 언니 소개팅 시켜주려고 만나자고 한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예쁘게 하고 나오라고 한 건데…….”

 

 “소개팅?”

 

 갑자기 눈물이 멎고 눈이 반짝거렸다. 언제 그렇게 서러웠냐는 듯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쉽게 단정 짓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만큼, 기쁨에서 슬픔, 슬픔에서 기쁨으로의 전환이 재빠른 것이 나의 특징이다. 이것을 장점이라고 해야 하나, 단점이라고 해야 하나?

 

 “네, 제 사촌 오빠 소개시켜 주려고요. 너무 부담 가질까봐 미리 말 안했던 건데……잘못한 거예요?”

 

 반사적으로 시선이 거울을 향했다. 아까의 비참한 몰골에 얼룩진 화장과 벌겋게 부어오른 눈까지 가세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오늘은……오늘은 안 되겠다. 다음으로 미루자, 응?”

 

 은혜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곤란해요. 사실 언니 들어오기 직전에 오빠한테 거의 다 왔다고 전화 왔었거든요. 지금쯤 벌써 도착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울 속의 내 모습과 화장실 창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 이런 모습으로 소개팅을 할 수는 없어. 차라리 탈출하자! 그러나 은혜가 이미 낌새를 눈치 챘는지 내 손을 붙잡았다.

 

 “언니, 어떻게 손보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일 거예요. 언니는 기본이 되잖아요.”

 

 음, 물론 내가 기본은 좀 되지. 얼결에 그녀의 말에 동감하다가 다시 화들짝 놀라 말했다.

 

 “안 돼, 안 돼. 이건 어떻게 수습이 불가능하다고. 내 모습을 제대로 봐. 지금 이 꼴로 어떻게 소개팅을 하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사촌 오빤데……. 이런 모습으로 만날 수는 없어. 저 화장실 창문은 너무 좁아서 안 되겠다. 차라리 화장실에서 따로 나가자. 그리고 모르는 사람인 척, 나는 집으로 돌아갈게.”

 

 “언니, 안돼요. 내가 오빠한테 언니 사진 보여줬는걸요. 오빠가 알아볼 거예요.”

 

 당황하게 되면 난 말이 빨라진다. 지금은 그 당황의 정도를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섰다. 내 말은 이제 내 귀로도 알아듣기 힘들 지경이다.

 

 “좋아. 그럼 난 화장실에 숨어 있을게. 오빠 데리고 빨리 카페를 나가도록 하는 거야. 알았지?”

 

 “언니, 마음을 가라앉혀요. 그리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만나 봐요. 우리 사촌 오빠 좋은 사람이라고요.”

 

 좋은 사람이면 더더욱 이런 모습으로 만나면 안 되지! 날이면 날마다 들어오는 소개팅인 줄 아나?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패닉 상태에 빠져 더 이상 말도 안 나오고, 손짓발짓으로 내 뜻을 전달하려 했지만, 은혜는 막무가내였다.

 

 “자, 이 손수건으로 젖은 것 좀 닦아내 봐요. 나는 혹시 드라이 기랑 수건 구할 수 있는지 가게 주인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그녀가 화장실을 나가자마자 나는 창문으로 달려들었다. 창문이 좁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잘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혹시나 엉덩이가 끼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내가 보기보다 엉덩이가 좀 큰 편이라……. 그런 생각을 하며 창문에 다가섰는데, 또 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이 카페는 3층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지는 않더라도 분명 멀쩡할 수는 없겠지? 더구나 나 같은 불운의 여인이 시도할 만한 도박 행위는 아니었다. 그러면 어쩌지? 차라리 화장실 안에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까? 은혜가 설마 날 강제로 끌어내기야 하겠어?

 

 헉,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은혜가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아니, 쟤는 뭔 몸놀림이 그렇게 빠른 거야?

 

 “다행히 드라이 기랑 수건을 빌릴 수 있었어요. 이걸로 머리랑 옷을 말리면 괜찮을 것 같아요. 오빠 와 있기에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해 놓고 왔어요.”

 

 이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래, 박복한 내 팔자에 소개팅으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마음을 비우자, 깨끗이…….

 

 

 


 내가 보기에는 전혀 복구가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은혜의 차분하고 능률적인 손놀림이 마법을 이루어냈다. 그녀가 내 머리와 옷과 화장을 조금씩 손보자, 내 모습은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해보였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꽤 근사했다. 분명한 건 그녀가 나보다 머리를 드라이하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음, 이만하면 괜찮은 거 같은데……어때요?”

 

 감격으로 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혼자였다면 분명 우왕좌왕하다가 화장실 창문에 몸이 껴 대롱거리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정말 멋져. 은혜야,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정말 고마우면 또 울 생각 말아요! 화장 겨우 고쳐놨는데…….”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물을 뚝 그쳤다. 지금 기분으로는 평생 그녀에게 충성하며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 이제 나가 봐요. 오빠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그녀의 웃는 얼굴에 나는 헤벌쭉 따라 웃으며 화장실을 나섰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기대하지 말자. 마음을 비우자……. 나같이 재수 없는 여자에게 성공적인 소개팅이라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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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찾아 온 탕아(?)를 받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낯익은 이름에서 잊지 않아주신 데 대한 감격을 느끼고, 새로운 이름에서 반가움을 느끼게 되네요.

격려에 힘입어, 이번에는 열심히 연재하도록 할께요^^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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