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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의 수호신! [세이기븐, 다이어, 솔라노]

에릭칸토나 |2007.03.13 14:55
조회 291 |추천 0
뉴캐슬의 수호신, 영원한 수문장. Shay Given

지난 뉴캐슬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결이 펼쳐진 1월 1일, 새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려진 것일까.

뉴캐슬 서포터들 사이에서 유난히 이름이 연호되는 선수가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한 선수를 비추었다.

세인트 제임스파크를 가득 메운 5만명의 관중들이 모두 기립박수를 하며 입장한 선수는 바로 뉴캐슬의 NO.1.

Shay Given, 기븐이었다.

400경기 출장의 위업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는 날 달성한 그는 뉴캐슬 팬들에게 보답하겠다는 의지로 가득차 있엇다.

그 경기 기븐은 놀라운 선방으로 팀의 2:2 무승부를 이끈다. 이번 시즌 유달리도 부상이 많았던 기븐이기에

이 날의 경기는 매우 의미가 컸을 것이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 최대 5만명가량 수용가능하다.

●아일랜드의 어린 소년, 젠가를 동경하다.

셀틱 글래스고의 유소년 팀 훈련장, 유달리도 분주한 어린 선수가 있다. 나이또래에 맞지 않게 놀라운 선방으로

그 날 실시된 모의훈련의 팀 승리를 이끌었다. 수수한 미소로 자신이 젠가를 존경한다고 말하던 그 소년.

이 소년이 후에 젠가와 마주볼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갈수 있을지 누가 알았을까.

기븐은 셀틱 유소년팀에서 놀라운 두각을 나타내며 케니 달글리쉬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블랙번 감독으로 부임한

케니 달글리쉬는 기븐을 영입한다. 그러나 블랙번의 키퍼 팀 플라워스에게 주전경쟁에 밀리며 스윈든, 선더랜드로

임대생활을 하게 된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기븐은 대단한 플레이를 GK 최고의 유망주라는 명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케니 달글리쉬 감독에 뉴캐슬 감독에 부임하던 1997년, 뉴캐슬로 이적한다.


어린 시절, 그가 동경하던 젠가의 모습

●힘들었던 경쟁, 오히려 약이 되다.

뉴캐슬로 이적한 기븐은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은 스티브 하퍼와 수문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치르게 된다.

초반에는 밀리는듯 했으나 98년 FA컵 결승전 출장을 분기점으로 하여 많은 경기에 출장하는가 했으나 99~00시즌

다시 한번 주전자리를 하퍼에게 내주고 만다. 이에 상심하였던 것이었을까. 기븐은 팀 훈련도중 장기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이적요청을 하였으나 달글리쉬 감독의 적극적인 만류로 이적요청을 철회한다. 기븐은 두고 두고 이때의

이적요청만큼 한심한 일이 없었다고 회상하곤 한다.

01~02 시즌 하퍼의 부상을 분기점으로 기븐은 전 경기에 출장하고 프리미어리그 베스트 11 골키퍼 부문에 선정된다.

그리고 2002년 그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는 월드컵 시즌 5년 재계약을 체결한다.


멋지게 상대의 공을 쳐내는 기븐

●마침내 정상에 자리에 우뚝 서다.

셰이 기븐은 그 후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의 선방을 하여 굉장한 명성을 쌓는다. 물론 가끔의 클리어링

실수가 정상의 자리로 가는 그의 발목을 잡은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차 경험이 쌓여가며

그 가끔의 실수도 하지 않게 되었다. 2003년 2월에 선더랜드전, 케빈필립스의 슛을 막으며 보여준 선방은

2003년 최고의 선방으로 뽑히게 되는 영예를 누렸고, 이어서 2003년 4월, 뉴캐슬 소속 선수중 가장 A매치를 많이 치룬 선수가 된다.

지금은 램파드에게 넘어갔지만 03~04시즌 막바지에는 프리미어리그 연속출장기록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음지는 있었다. 자신의 나라 아일랜드가 2004유로 예선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정상급 스트라이커 에르난 크레스포의 맞대결!

●국가를 위하여, 하지만 뛰지 못한다.

자신의 국가를 위하여 뛰고 싶지만 그는 뛸수 없었다. 자신의 팀 동료들이 유로 무대에서 실력을 뽐내는걸 구경할뿐..

그에게는 악몽같은, 잊을수 없는 유로였다고 회상한다. 이어 2006년 월드컵에서도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낙담한다.

"저에게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요. 국가를 위해 뛰다보면 언젠가는 국가대항전에 나갈수 있겠죠."


부상으로 신음하는 기븐, 헤어우드 두고보자!

●4년의 재계약, 팀을 버리지 않는다.

얼마전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기븐에게 타 클럽이 접근한 일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 초 일류급 키퍼를 누가 가만히 놓아두겠는가.

그러나 기븐은 모든 소문을 정리하고 뉴캐슬과의 4년계약 연장에 동의했다. 그가 뉴캐슬을 위해 8년을 뛰는 동안

들어본 타이틀은 단지 인터토토컵. 그럼에도 그는 팀을 버리지 않았다. 타이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이기에.

"컵이요? 많이 아쉽긴 하죠, 그러나 제게는 그런 타이틀보다도 뉴캐슬에서 뛴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걸요."


수수한 미소의 그

8년전 주전경쟁을 못해 애태우던 어린 선수의 모습이던 그가 이제는 클럽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누구보다도 더 대단한 활약으로, 누구보다도 더 성실한 태도로, 누구보다도 더 충성스러운 자세로...


비오는 SJP, 누구보다 더 믿음직한 기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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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의 여름이적시장이 막바지에 이르던 어느날, 뉴캐슬 기자회견장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난다.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갈채, 1시즌 동안 아스톤 빌라로 이적되있었던 노비가 돌아왔다.

많은 환영속에 등장한 솔라노는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다시 한번 이곳에서 제 마지막 커리어를 장식하고 싶습니다."



color="0000cc"> ● 페루의 축구신동에서, 페루의 영웅으로 이르기까지

1974년 12월 12일, 페루에서 그가 태어났다. 비록 시골 작은 마을에 살며, 아버지는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간 그였다.

그리고 솔라노는 자신의 처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축구를 시작한다.

이미 12살때 솔라노는 tv에 출연할 정도로 놀라운 축구신동이었다. 그런 기대를 받는 몸이었기에 그가 18살에

스포르팅 크리스탈에 이적했을때 국민들의 성원은 남달랐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보카주니어스로 진출, 초최한 삶에 찌든 페루국민들의 희망으로 자라난다.

어느덧 20살을 넘긴 솔라노는 더 이상 축구신동이 아니었다. 이미 19살때부터 국가대표로 출전하였으니

24살때 까지 그는 50회가 넘는 국가대표 출장을 기록할수 있었다. 그런 그는 클럽과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며 1998년 여름, 뉴캐슬로 이적한다.



●잉글랜드 축구무대의 첫 페루인, EPL 외국인 선수의 별이 되다.

1998년 7월 1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솔라노의 기자회견이 시작됬다.

기자회견에서 잉글랜드 무대에 페루인 최초의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말마따마나, 그는 그 해 훌륭한 활약을 펼친다.

그리고 해가 지나 01/02 시즌, 솔라노는 좌측의 로랑 로베르와 환상의 호흡을 이루며 개인 스탯으로는

37경기 7골, 전 경기 52경기 12골을 기록하고 어시스트 갯수만 해도 무려 11개였다. 그 후로도 무서운 크로스능력을

발휘하며 뉴캐슬 부동의 주전을 차지하였다. 물론 이 시즌 뉴캐슬은 4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였다.



●산넘고 물건너의 대표팀, 불화를 일으키다.

잦은 대표팀 차출로 롭슨의 불만을 사게 된 솔라노는 국가대표팀 차출을 거부하는 롭슨과 말싸움을 일으켰다.

로베르, 벨라미와 잦은 불화를 일으킨 롭슨경은 03~04시즌 5위로 챔피언스리그행이 좌절되며 솔라노를 빌라로 이적시킨다.

그리고 롭슨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임한다.



●새로운 감독, 그를 다시 부르다.

04~05시즌이 끝난 05~06시즌 여름 이적시장, 수네즈가 엄청난 폭탄영입을 벌였다. 밀너를 빌라로 임대시키는 대신

솔라노를 재영입한것, 엄청난 결정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노쇠화가 진행되가는 그가 무슨 역할을 할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기우에 불가했음을 솔라노는 실력으로 다시 한번 증명시킨다.

하지만 솔라노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뉴캐슬의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수네즈는 윈터브레이크 이후 해임되었고,

뉴캐슬 유소년 팀 감독 출신의 글랜 로더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다. 로더는 후반 막판 놀라운 7연승을 구가하며 팀을

인터토토컵에 진출시킨다. 로더의 밑에서 솔라노의 입지가 더욱 커진것은 말할것도 없었다.

06~07시즌 시어러가 은퇴했다. 이 일로 뉴캐슬의 캡틴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어러의 다음주자로

솔라노가 지목될것을 의심치않았다. 그러나 이게 왠일인가. 캡틴의 자리는 파커가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위해 태어난 영혼.

솔라노가 주장자리를 받지 못했을때, 필자와 그 주변인들은 당혹을 금치 못하였다. 솔라노가 성을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솔라노는 역시 뉴캐슬의 영혼이었다. 그는 아무런 불만 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해 냈다.

캡틴이 아니였지만 더 캡틴다운 활약을 보여주었고, 팀이 부상으로 신음할때 강철체력을 자랑하며 버티어냈다.

윙 자원이 부족하면 윙의 역할을 수행했고, 윙백의 자리가 없어지면 윙백의 역할을 수행했다.

솔라노 그는 뉴캐슬 그리고 SJP를 지지하는 영혼들을 위해 태어난 자였다.



●음악을 좋아한 사나이,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솔라노가 SJP에서 시간을 보낸지 어언 8년차, 그는 지금까지 들어본 컵이라고는 오직 인터토토컵 뿐이다.

또한 국가대표로 13년을 뛰는 동안 단 한번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였다.

그의 동료들이 하나 하나 월드컵 준비를 할동안 그는 매우 외로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는다. 자신만을 믿어주는 페루국민들, SJP의 영혼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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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X-Mas, Toon Army!"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시작되기 바로 전, SJP에서 모두의 가슴속에 들어와 박힌 말이다.

12월 24일, 토튼햄과의 중요한 경기, 경기 7분여만에 모든 중계카메라들이 8번의 등번호를 비추었다.

그리고 8번의 등번호를 지닌 선수는 유니폼을 들어올렸다. 수줍은듯 얼굴을 가리고 달려가는 선수는 바로 No.8 키에론 다이어.

툰 아미들에게 잊을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수줍은듯 얼굴을 가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내는 산타다이어

●잉글랜드의 희망, 한 시대를 풍미한 특급 유망주.

"키에론 키에론 다이어~! 골!!!"

98년도 입스위치와 더비 카운티의 경기, 입스위치의 장내 아나운서가 경기 9분여만에 꺼낸 말이다.

이 날 다이어는 자신의 이름을 잉글랜드 전역에 내비친다.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감독들이 불과 19살의 소년에 집중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다이어는 98~99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그리고 내노라하는 명문팀의 관심을 받게 된다.

조콜과 함께 여름 이적시장 최대어로 떠오른 다이어는 말했다. "이번 시즌 입스위치를 떠나겠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은 그를 꼭 올드 트래포트로 데려오고 싶어했고, 인테르의 모라티는 그를 무슨수가 있더라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인터뷰했다. 상대적으로 미미한 관심이지만 뉴캐슬의 바비 롭슨경도 관심을 갖는다.


입스위치 시절 다이어..?

●명문팀의 관심, 그러나 내 길은 오직 뉴캐슬.

명문팀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던 다이어는 충격적인 이적을 하게 된다. 피구의 엘 클라시코 더비의 이적도 아니고

캠벨의 북런던 더비의 이적도 아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뉴캐슬을 자신의 둥지로 선택한다.

그리고 시작된 99~00 시즌. 다이어는 불과 20살이라는 약관의 나이로 8골, 11어시스트를 기록한다.

그나마 출장한 경기가 20여경기라고 볼때 실로 엄청난 기록이었다. 더욱이 윙,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 가능했다.

비록 작지만 탄탄한 근육질의 몸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는 상대수비수의 혼을 빼놓았고, 기술적인 몸싸움은 상대 수비수를 곤란하게 했다.

승승장구를 계속하던 다이어는 유로 2000에 뽑히기 직전이었으나, 평생 그의 발목을 잡은 부상과 함께 국가대표의 꿈은 사라지고 만다.


솔라노 어부바~

●계속되는 부상, 타락의 길로 빠져들다.

유로 2000이 시작되어 자신의 동료들이 마음껏 기량을 뽐낼때, 다이어는 재활센터에 있었다.

그 후 복귀하였으나 몇경기 뛰지 못하고 다시 십자인대파열이라는 부상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친정팀 입스위치와의 경기때,

다시 한번 종아리 피로골절의 회복을 위해 2번의 수술과 재활치료를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이 슬럼프의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술과 마약에 손을 대고 만다. 당연히 이 일로 다이어는 바비롭슨의 큰 꾸짖음을 듣게 된다.


다이어의 아찔한 부상장면

●2002 월드컵, 다시 한번 날아오르다.

부상에서 돌아온 다이어는 01~02시즌 그럭저럭의 활약을 펼쳐주며 2002년 월드컵 멤버 23인에 포함되게 된다.

그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부모님, 그의 재능을 높이 사던 팬들까지도 정말 기쁜일이 아닐수 없었다.

월드컵에서 몇경기 출장하지는 못하였지만 출장할때마다 공격 포인트 1개씩은 꼭 기록해주는 다이어는 다시 한번 그의 재능을 펼치려 한다.

02~03시즌은 한번의 잔부상으로 단 3경기를 결장했을뿐 35경기에 출장하며 많은 활약을 펼친다.

시어러가 결장했을 때에는 대신 주장완장을 달고 뛰었기도 했다. 시어러가 결장한 에버튼전에서는 주장완장을 차고 2골을 기록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친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다이어

●다시 한번 찾아온 슬럼프, 그러나 좌절하지 않는다.

04~05시즌 , 다이어는 감독 바비롭슨과 불화를 일으킨다. 자신이 선호하는 포지션인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배제하고

자신을 라이트윙으로 기용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잘못한 것은 다이어였다. 당연히 툰 아미들은 그를 나무랐고 그는 쫒겨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다이어의 진심어린 사과로 이 일은 흐지부지 되었고 바비롭슨은 자진사퇴하고 만다.

05~06시즌, 다이어는 다시 한번 긴 슬럼프에 빠진다. 윈터브레이크가 지난 아스톤빌라전, 팀원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날 홈에서 경기마저 0:3으로 대패한 뉴캐슬이었기에 서포터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다시 한번 다이어는 큰 꾸짖음을 당했지만, 수네즈는 다이어의 공격적 재능을 높이 사 4년간의 계약 연장을 체결하였다.

계약 연장을 체결한 다음날, 그에게 햄스트링 부상이 찾아온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늦은 시간 넘어진 것이다.

"그 날 경기까지는 괜찮았어요. 그리고 저는 감독님께 괜찮다고 말했죠. 하지만 트레이닝을 하다 깨달았어요. 또 햄스트링이라는걸.."

약 1년간의 부상을 당한 다이어는 다시 한번 서포터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다이어와 보이어의 주먹다짐.

●세인트제임스파크에서의 7년, 부활하다.

"저는 이 곳에서 7년이나 있었어요, 또 햄스트링이 찾아왔을때는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저는 은퇴할수 없어요.

7년동안이나 저를 기다려준 서포터들, 동료들을 등질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키려는 듯 06~07시즌 11월에 돌아온다. 파커 대신 주장완장을 차고.

12월 토튼햄전부터 1월 에버튼전에 이르기까지 3경기 연속 골에 힘입어 국가대표팀에도 다시 한번 승선했다.

SJP에 머무른 기간은 7년, 보여준 것도 적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정상의 자리에 오를것이다.

아직까지 보여준것이 적기에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이 남지 않았을까.


Happy X-mas D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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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선수들의 발동작 하나하나가 나의 가슴을 뛰게하고,

뉴캐슬 서포터들의 외침이 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서포터인 그들이 나를 살아 숨쉬게 한다.

뉴캐슬이 비록 우승횟수가 적어도, 현재 리그순위가 낮아도 상관없다.

장담한다. 내 인생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한.. 뉴캐슬에 대한 내 사랑은 식지

않는다.

화이팅. 뉴캐슬, Forever Newcastle United & The Mag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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