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MY WAY
1
“으갸갸갸갸갸갸갸갸!!!!!!!!”
괴상한 고함소리와 함께 몸을 잡아 늘일 듯이 기지개를 켰다. 장시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본 탓에 눈이 시렸고,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손목도 심하게 혹사당한 상태였다. 온몸이 뻑적지근하고 피곤했다. 그러나……기분만은 날아갈 것 같았다. 왜냐고? 드디어, 드디어 나의 처녀작을 완성한 것이다!
지난 한 달,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이 일에 매달렸던가! 정말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비디오가게에서도 글을 쓰는 데 빠져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하기 일쑤였고,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정말 미친 듯이 글을 써댔다. 지섭 오빠와 데이트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하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려나? 다행히도 지섭 오빠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이해해 주었다. 물론 데이트를 자주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지만…….
그리하여 완성된 나의 작품은……어느 정도 나를 만족시켰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 사실 나는 그것이 굉장한 걸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난 아무래도 작가 체질인가 봐. 글 쓰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 줄은 몰랐네. 아, 첫 작품이 이 정도 수준인 걸 보면……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나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희희낙락했다. 드디어 내가 재능을 갖고 있는 일을 찾았고, 또 그것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완성시켰다는 생각을 하니 어찌나 황홀한 기분이 드는지……. 지금이라도 뛰어 나가 온 세상을 향해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대하자, 밖으로 뛰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자동적으로 가라앉았다. 그만큼 몰골이 말씀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스로 분발하자는 의미로 이마에 질끈 동여 맨 누리끼리하게 바란 천 쪼가리 밑으로 며칠 동안 감지 않아서 떡 진 머리가 마치 기름이라도 발라놓은 듯 했고, 누렇게 뜬 얼굴빛과 쾡 한 눈빛은……정녕 폐인의 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일단은 좀 자야 할 것 같다. 그 다음은 그간 묵은 때를 벗겨내서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야지. 그런 뒤에 자랑을 해도 늦지는 않아. 자자, 일단은 자야 한다.
그러나 피곤하면서도 흥분한 탓인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결국 잠을 잘 생각을 포기하고 일어나 앉은 나는 지섭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소 긴 신호음이 들린 후에야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나의 전화임을 알고 반가움에 밝아진 그의 목소리.
“아영이구나. 오빠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바빠요?”
“아무리 바빠도 아영이랑 통화할 시간은 있지. 사실 촬영하다가 잠깐 쉬던 중이야. 아영이는 어때? 글은 잘 되가?”
“음, 사실은……나 드디어 글 끝냈어요.”
“정말? 와, 이거 축하할 일인데? 내가 가서 축하해줬어야 하는 건데……어쩌지?”
지섭 오빠는 지금 촬영 때문에 부산에 내려가 있었다. 앞으로 이틀 후에나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었던 것이다. 요즘 잘 나가는 뮤직 비디오 감독답게, 그의 스케줄은 빡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데이트를 위해 시간을 내는 그를 보면……그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괜찮아요. 방금 글을 끝내서 나도 많이 피곤하니까, 오빠 올 때까지 푹 쉬어야죠. 돌아와서 실컷 축하해주는 거죠?”
“그럼, 물론이지. 아, 글 쓴 거 너무 궁금하다. 완성되면 보여주겠다고 한사코 못 보게 했잖아. 당장 보여주는 거지?”
“기대하고 있어요. 엄청난 명작을 보게 될 테니까.”
“하하, 이거 아영이 유명해지기 전에 사인이라도 받아놔야 되려나? 이거 궁금해서 못 참겠는 걸? 오늘 저녁에 읽게, 지금 메일로 보내 봐.”
“일 하느라 정신없으면서, 그거 읽을 시간이 되겠어요? 내 글은 정신 집중하고 읽어야 되는데…….”
“걱정하지 마. 시간 내서 열심히 읽을게. 그러니까 꼭 메일로 보내줘야 해, 알았지? 어쨌든 올라가는 데로 그동안 못했던 근사한 데이트나 하자.”
그와 통화를 끝내고, 나는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써야 했다. 이 두근거림은 지섭 오빠 때문이 아니었다. 그와 통화를 하며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드디어 나의 글을 사람들의 평가에 내맡겨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물론 내게는 무척 만족스러운 글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난 천부적인 작가인 걸?”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내가 천재 작가라는 것은 지구가 도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이라고……. 일단 출판사에 글을 들고 찾아가기만 해봐라, 모두들 내 글을 출판하려고 야단일걸? 이제 ‘불운을 몰고 다니는 여자’라는 별명은 ‘슈퍼 콩알’만큼이나 머나먼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것이고, 나를 사고뭉치 취급하던 사람들은 내 책을 읽으며 나를 존경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전화벨 소리가 나의 끝도 없이 가지를 쳐 나가는 공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창 좋은 기분에 빠져 있는데 누가 방해를 하는 거람? 발신자를 확인하니 은혜의 전화였다.
“언니, 축하해요. 드디어 글을 끝냈다죠? 방금 오빠랑 통화했어요.”
“아, 고마워. 이 고마움은 내가 유명작가가 되도 결코 잊지 않도록 하지.”
나의 진지한 감사 인사를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은혜는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
“언니가 쓴 글, 너무 기대 되요. 언니는 워낙 재미있으니까, 글도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저도 보여주시는 거죠?”
“으, 응. 물론이지.”
“그럼 저도 지금 메일로 보내주세요. 마침 오늘 할 일도 없는데, 열심히 읽고 평가해드릴게요.”
“알았어. 오빠한테 보낼 때 같이 보내지 뭐.”
“참, 그리고 오빠하고 얘기했는데……이틀 후 오빠 서울 올라오면, 그 때 저도 같이 보면 안 될까요? 저도 언니 글 끝낸 거 축하해주고 싶은걸요. 혹시 둘이 시간 보내고 싶은데 방해되는 거 아니라면 말이에요.”
“축하해주면 나야 고맙지. 여러 명이 축하해주면 분위기가 더 살잖아.”
“그럼 그 날 더블 데이트하면 되겠다. 승우 오빠랑 같이 나갈게요. 언니, 그럼 이틀 후에 봐요.”
헉! 이게 뭔 소리? 내가 의도했던 건 이게 아니라고! 여기서 갑자기 승우가 왜 튀어나와?
“아니, 은혜야……그 날은……!”
서둘러 은혜를 만류하려 했으나, 이미 전화는 끊긴 후였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한 기분으로 전화기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뒤늦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또 다시 승우와 마주치게 되다니!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가장 꺼리는 일이라고! 축하받을 자리에 그 녀석을 데려온다고? 그 녀석이 잘도 축하해주겠다. 분명 나의 천재성을 깎아내리려고만 할 걸? 어떤 트집이라도 잡아서 내 기분을 망쳐 놓을 것이 틀림없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글을 쓰느라 바빠서 녀석과 부딪힐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녀석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역시 은혜와의 사이를 방해해서 떼놓는 수밖에……. 그 동안 잠시 접어 두었던 정의로운(?)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됐다. 자, 이제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한다고. 은혜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교묘하게, 저 사악한 승우 녀석을 타도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녀석보다 더 지능적이고 치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당장으로서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아, 무기력하게 머리를 쥐어뜯는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에 감기는 기름 낀 머리카락의 감촉이 과히 상쾌하지는 않다.
“그래, 그래.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나의 창작력이 글로 다 빠져나간 상태라고. 일단 사람 꼴을 좀 찾은 뒤에 생각이란 걸 해야지. 걸작소설을 쓴 내가, 승우 녀석 하나 없앨 창조적인 방법을 찾지 못할라고.”
그렇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섭 오빠와 은혜에게 내 원고를 첨부한 메일을 보냈다. 이렇게 벌써부터 나의 원고를 기대하고 있으니, 그 기대에 부응해줘야겠지. 그리고 일단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출판사에 글을 투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만약……정말 만의 하나 내 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지? 또 다시 불안감과 초조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물론 나의 천재성을 의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천재들은 수두룩하지 않던가! 나의 앞서가는 감성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시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묻혀 버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부와 영예와 존경이니까!
한참을 착잡한 기분으로 고민하던 나는 친구 경숙이에게도 글을 보냈다. 나의 주변인 중 가장 냉정한 판단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게 냉정하다 못해 상처를 주는 일도 허다했지만, 포장되지 않은 진실만을 말해 줄 것은 틀림없었다. 메일을 보낸 후,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웬일이냐? 요즘 글 쓴답시고 연락도 안하더니만?”
“드디어 글 다 끝냈다. 방금 메일로 보냈으니까 한 번 읽어 볼래?”
“읽어주는 수고비는 안주냐? 나의 칼날같이 예리한 비평을 듣고 싶은 거잖아.”
보낸 메일을 취소하고픈 충동 때문에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칼날 같다는 점만은 인정하지만……솔직히 쓴 소리를 할 게 틀림없는데, 그걸 일부러 듣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냈다.
“내일 만나서 밥 살게.”
“음, 그 말은 내일까지 다 읽고 평가해달라는 말이로군. 알았다. 내일 보자.”
그녀와의 짧은 통화는 왠지 나의 기운을 쏙 빼놓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의 기를 빼앗는 구미호가 아닐까? 그렇게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자리에 누웠다.
경숙이에게 기를 빼앗겨서 그런 건지……자리에 눕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겨 왔다. 그리고 스르륵 꿈나라로 빠져 들었다. 은혜의 전화 때문에 못다 한 공상이 마음껏 펼쳐지는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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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네요.
올 해 초 결심한 일들을 하나도 못이루어낸 것 같은데 벌써 올 해도 1년 밖에 안남았다니요~
여러분들도 설마 저와 같은 생각에 심란하신 건 아니겠죠?
최소한 올 해 안에 이 글 만큼은 완결시켜야겠네요^^
11월의 마지막 날을 의미있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모두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