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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25

allcross |2005.12.09 08:46
조회 570 |추천 0

 

25.


과음한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통에 눈을 떴다.

지금 누워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해 내는데 몇 초가 흘렀다.


누운 채로 방문 밖에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바닥에 벗어 놓았던 바지와 윗도리를 몸에 꿴다.


가만히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인기척 없는 덩그라한 정적만이 온 집안을 감싸고 있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분홍 종이 위에 영어 필기체같이

길게 흘려 쓴 필체의 글자들이 씌여 있었다.


‘미래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러 가야 해. 아침을 만들어

 놓으려다가 더운 음식을 주고 싶어 갔다 와서 하기로 했어.

 가급적 빨리 올께. 먼저 일어나게 되면 조금만 기다려줘.’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유를 꺼내어 컵에 따라 마셨다.

숙취와 갈증이 조금 물러난다.


시계를 쳐다보니 9시가 채 안 되었다.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줄기에 머리를 한참동안 갖다대었다.


벽에 걸린 타월로 하체만을 가린 후 욕실에서 나와

로션을 쓰려고 서영의 방으로 향했다.

화장대를 두리번거렸으나 수십 여개의 화장품에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문득 화장대 구석에 놓인 로켓형 목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서영이 평소에 자주 목에 걸고 다녔던 것이다.

목걸이에 달린 로켓은 납작한 타원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호기심에 집어 들고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로켓은 지름이 갓 5cm가 넘을 듯 말듯하고 옆 모서리는 상당히 얇았다.

금도금 이외엔 다른 장식이나 보석이 붙어있지 않아 겉면이 매끌매끌하다.

서영의 다른 장신구에 비하면 굉장히 수수하고 보잘 것 없었다.

다른 화려한 보석도 많은데 왜 이걸 주로 몸에 지니는지 의아할 정도다.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아 있던 자리에 다시 놓으려는데 문득 옆 모서리의

걸림쇠가 눈에 들어왔다

살짝 비틀어보니 로켓 뚜껑이 열린다.

뚜껑을 손가락으로 밀어서 열어 제쳤다.


내부 바닥 면과 로켓 뚜껑 안쪽에 각각 사진이 한 장씩 붙어있었다.

바닥 면엔 여자의 상반신 사진이, 뚜껑 면에는 남자의 사진이 각각 붙어있었다.

상당히 오래된 듯 색이 바래져 있었다.


갑자기 흥미가 생겨 화장대 전등을 켰다.

밝은 빛에 두 사람의 윤곽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여자는 20대 초, 중반으로 보인다.

가슴이 패인 몸에 아주 딱 붙는 분홍색 상의를 입고 있다.

무슨 복장인지 의아했다.

갸름한 얼굴에 큰 눈을 가진 미인이다.

낯익게 보이는 이유는 서영을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서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뚜껑 안쪽 면에 붙은 남자 사진을 살펴보았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 사진이다.

여자 못지않게 아주 잘생긴 얼굴이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반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목구비가 작은 사진 안에서도 돋보인다.


양면을 펼친 로켓의 한 쪽 면씩을 각각 차지한 두 남녀의 사진이

내 시선을 한참동안 붙잡는다.

 

둘 다 엷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몹시 쓸쓸하고 처연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문득 로켓 뚜껑을 천천히 닫았다가 다시 열어본다.

내 손동작에 따라 두 사람이 서로 맞붙었다가 다시 떨어진다.

나는 무엇에라도 홀린 양 이 동작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 순간 딸깍하는 문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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