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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둘에 얻은 딸

큰가방 |2005.12.11 11:55
조회 438 |추천 0

마흔 둘에 얻은 딸


어느 날 많은 눈과 함께 찾아온 추위는 우리 곁을 떠날 줄을 모르고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길가의 한쪽 귀퉁이에 모여 있다 지나가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빼빼마른 나뭇잎 사이로, 지난 가을 하얗고 고운 머릿결을 바람에 휘날리며 지나가는 길손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억새의 머리가 모두 뽑혀 누렇게 변해버린 채 솜털 몇 개가 남아있는 앙상한 가지 사이에서, 시골마을 들판 쪽파 밭에서 쪽파 수확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들이 피워놓은 밭 한쪽 귀퉁이 푸른 색 연기를 휘날리며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사이에서,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아 하얀 잔설(殘雪)이 남아있는 높은 산골짜기에서, 그리고 이제야 밭에 심어있는 배추를 뽑아내어 겨울 김장을 서두르는 아낙네의 손끝에서 추위는 우리를 바라보고 빙긋이 웃고 있습니다. “12월은 정말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의 시작인가?”하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저는 빨간 오토바이에 행복이 가득 담겨있는 우편물을 싣고 달려온 곳은 오늘 우편물 배달을 마지막으로 하는 마을인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화당 마을입니다. 그리고 화당 마을의 네 번째 집 마당으로 멀리 도시에서 보내온


현금등기 우편물 한통을 배달하려고 들어서면서“빵! 빵!”하고 오토바이 소리를 내 봅니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습니다. “어? 할머니께서 어디 나가셨나?”하는 마음으로 “할머니! 할머니~이! 어디계세요?”하고 큰소리로 불러보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이상하다! 옆집으로 놀러가셨나?”하고 다시 옆집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가 “할머니! 할머니~이!”하고 불러보았지만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오늘은 마을 할머니들께서 모두 쪽파 밭에 일을 하러가셨나?”하고


할머니 댁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골목길로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아저씨~이!”하고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더니 바로 제가 찾고 있던 할머니께서 쪽파 밭에서 일을 마치고 급히 달려오셨는지 아직도 흙이 묻어있는 두툼한 잠바를 입고 머리에는 눈 만 보이는 모자를 쓰고 손에는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의자를 들고 활짝 웃으며 반갑게 저를 부르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할머니! 어디 다녀오셨어요?” “이~잉! 파일(쪽파 수확)좀 하고 오니라고!”하시더니


입을 저의 귀 가까이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로“근디 우리 딸한테 돈 왔제?”하십니다. “예! 인천에서 돈을 보냈데요. 할머니 먼저 집에 가 계세요. 저 금방 뒤 따라 갈게요.” “잉! 알았어!”하시며 할머니께서는 급히 집으로 향하십니다. 저는 다시 할머니 댁으로 들어가 “할머니! 오늘은 쪽파 작업이 일찍 끝나셨나 봐요?”하였더니 “오늘은 한나절만 하고 왔어!”하십니다. “오늘은 돈을 얼마나 버셨는데요?” “오늘은 한나절이라고 만 5천원 주데!” “그럼 하루 일하면 얼마나 받으세요?”


“하루 일하면 빨리 끝나면 2만 5천원 줄때도 있고 조금 늦게 끝나면 3만원도 주고 그래!” “우와~아! 할머니 부자 되겠네! 그런데 할머니 몸은 아픈 곳 없이 건강하세요?” “안직은 아픈 데가 없은께 이라고 파일(쪽파 작업)을 하러 다니제! 으디가 아프고 그라문 일을 하러 다니것어?” “아픈 곳 없이 건강하시다니 정말 좋은 일이네요! 그런데 인천에 정아영 씨는 누구 되세요?” “으~응~ 우리 막내딸이여! 내 막내딸이 보일라에 기름 넣으라고 돈을 보낸다고 그라데 지가 안 보태줘도 아직은 괜찮한디


내 막내딸이 이라고 나를 생각한단께!” “그러세요! 따님이 직장에 다니시나요?” “아니여! 애기 둘 낳고 살림하고 산디 뭔 돈이 있다고 나를 이라고 생각해 싼가 몰르것어! 아저씨! 잔 들어봐! 내가 우리 막내딸을 마흔 두 살에 낳았어! 그래서 내가 이것을 중학교나 보내놓고 죽을 란가? 고등학교나 보내놓고 죽을 란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데! 그란디 벌써 나이가 올해 마흔 살이여! 참! 세월이 빠르기는 빠르데!”하시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그러면 올해 할머니 연세가 여든 두 살이시겠네요?”


“그래! 내가 올해 여든 둘이여! 그래도 아직은 내가 아픈데 없이 건강한께 지가 생각 안 해줘도 된디 이라고 생각해 싼단께!” “그럼 위로 언니와 오빠는 몇 분이나 되세요?” “위로 언니 둘하고 오빠 둘하고 있어!” “그럼 언니와 오빠는 할머니 생각을 안 하시나요?” “으째 안하간디 즈그 언니나 오빠들도 나를 얼마나 생각한다고! 그란디 막내딸이 제일 생각을 해 싼단께! 지난번에도 겨울이라고 나 춥지 마라고 옷을 사서 보냈드란께! 막내 사위 혼자 벌어먹고 살려면 즈그도 힘이 들것인데


나까지 이라고 생각해 싼께 어쩔 때는 사위가 미안해 죽것어!” “정말 그러시겠네요! 할머니 여기 2십 만원이 맞는지 세어보세요!”하며 편지 봉투 안에 들어있는 돈을 꺼내어 할머니께 건네 드리자 “아따~아! 안 세어 봐도 맞것제~에! 뭣할라고 돈을 세고 뭣하고 그래~에! 그란디 아저씨는 딸이 몇이나 있어?” “저요? 저는 딸은 없고 아들만 둘 있어요.” “우메! 그래~에! 그라문 안된디 그래도 딸이 있어야 이라고 부모를 생각하고 그란디 딸이 없어 어짜까?” “그러니까요! 제가 결혼할 무렵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니 뭐니 하면서 정부에서 강력히 산아제한 정책을 폈던 무렵이어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가 없었어요. 그 바람에 아들 둘만 낳고 말았어요!” “그랬어? 대차 그때는 그랬어! 그래도 딸이 없어 너무 서운하것구만!” “딸이 없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지요! 그냥 며느리로 들어 올 사람을 딸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어요?”  “정말 그러면 되것네! 근디 가만 있어봐! 내가 아저씨 음료수를 한잔 드려야 쓰껏인디 이야기 하니라고 정신이 없네! 여가 쪼그만 기달려 봐 이~잉!”하시며


방으로 들어가 페트병에 담긴 오렌지 주스를 가지고 나오시더니 “날이 춥고 그란께 그냥 이것 우체국에 갖고 가서 따땃하게 데워서 자셔! 잉!”하십니다. “할머니~이! 아니 이렇게 큰 걸주시면 어떻게 해요? 음료수는 두었다 할머니 심심할 때 드세요!” “왜? 음료수가 너무 커서 그래? 그라문 쪼금 기달려 봐 내가 작은 것 한개 갖고 오께!”하고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이! 지금 뭐하고 계세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조그만 음료수 한 병을 가지고 나오시면서


“아저씨!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어 미안해! 날이 이라고 춥고 그란디 아저씨가 차디 찬 음료수를 자시면 더 추울 것 같아서 물 좀 끓여 이것 좀 디어(데워) 갖고 오니라고 늦었어! 춥고 그란께 어서 자셔! 어서!”하시는 겁니다. 차가운 겨울 날씨 밖에서 조금 기다리기가 싫어 할머니를 재촉하던 저에게 할머니께서는 저를 생각하고 가스렌지에 물을 올려 끓인 다음 음료수를 데워 저에게 권하신 것입니다. “할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를 생각하신 마음 늘 잊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아직도 밭에 심어져 있는 배추 언제 쯤 맛있는 김장김치로 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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