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나의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 했다. 담임선생이 구속되어 새로운 선생님이 담임선생으로 배정 받았고, 아주 미묘하게 반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어쩌면 어떤 상황이라는 것은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서 가늠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변해버린 나의 마음이 주위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학교는 더 이상 떠들썩하고 들뜬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마치 앞으로 다가올 입시라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정신 없이 파티를 즐겼던 것 같다. 샴페인은 이곳 저곳에서 터지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술에 취한 채 서로를 얼싸안고 춤을 쳤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파티음식과 숙취로 인한 고생뿐이었다. 그렇다 파티는 그렇게 일찍 끝나버린 것이다.
막연히 명문고에 입학했으니 3년만 잘 버티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중간고사가 끝난 후 성적표라는 팍팍한 현실로 나타났고, 많은 아이들이 그것에 실망하고 겁에 질리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는 벌써부터 입시전쟁의 전투장으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직 그렇게 숨막히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고, 어수선한 수업시간이 차분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나와 미영 말고도 많은 커플들이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점점 무미건조한 일상에 함몰되었고,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몇몇 아이들은 일탈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어긋남도 결국 시멘트와 같은 현실 속에 스며들어 서서히 굳어져갈 뿐이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영과의 일도 그렇고, 삶의 구석에 퍼져있는 부조리에 절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것에 흥미를 잃고 다소 쿨한 상태로 주변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또한 아이들의 나에 대한 평가도 많이 달라졌다. 사실 성현이라는 큰 거목의 옆에서 그의 후광을 많이 받았으나 반에서 나의 정체성은 모호한 상태였다. 난 “한강민”이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성현의 짝, 성현의 친구 정도로만 인식되었었는데 중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것과, 담임선생에게 대든 일 때문에 아이들은 나와 성현을 따로 독립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주변에는 중간의 성적에, 밋밋한 외모에, 평범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난 그들과 어울려 편안한 시간을 보내었고, 이런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성현과는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갑자기 멀어져 버리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나의 절친한 친구였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 김준, 민우, 태영들과 함께 어울려 하교길에 놀기도 하였다. 단, 예전처럼 그와 밀착된 생활은 하지 않았고 나선의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듯이 그와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조건이 두 가지 있었다. 예전에는 미영과 바로 옆 반이라는 것이 아주 유리한 조건이었고, 행복한 일이었지만 이제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둘은 종종 복도에서 만날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녀 앞에서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떨리는 마음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숨이 막혀오고 그녀를 붙들고 무슨 말이든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내가 없다는 듯이 행동하였고, 차가운 그녀의 눈빛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런 나의 고통을 더욱 증폭시키는 조건은 그녀가 유명인이라는 점이었다. 차라리 그녀를 안보고 그녀의 소식을 듣지 않으면 더 빨리 잊을 수 있을 텐데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십상이었고, 때때로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되었다던가, 이번에 미팅에 나간다는가 하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면 그녀가 나를 버린 진심이 의심되어 괴로웠다.
어느 날, 성현은 이런 나의 고통을 알고 있었는지 나에게 조용히 자신이 듣고 있던 이어폰을 건네주었다. 이어폰에서는 조용한 기타소리가 흘러나왔고, 한 남자가 읊조리듯이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나의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
I look at you all see the love there that's sleep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I look at the floor and I see it needs sweeping
Still my guitar gently weeps
I don't know why nobody told you how to unfold your love
I don't know how someone controlled you
They bought and sold you
나는 그대에게서 이젠 잠들어버린 '사랑' 이라는 걸 봅니다.
나의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
나는 바닥을 바라보며, 깨끗이 치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요.
여전히 나의 기타는 조용히 울고..
왜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요.
그 누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요.
그들은 당신을 사고 그리고 팔았습니다.
I look at the world and I notice it's turn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With every mistake we must surely be learning
Still my guitar gently weeps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세상은 흘러가는데
나의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
매일의 실수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배워 가겠지요.
여전히 나의 기타는 조용히 울고..
I don't know how you were diverted
You were perverted too
I don't know how you were inverted
No one alerted you
어떻게 당신이 이렇게 변해버렸을까요.
또한 비뚤어진 길로 빠져들었을까요.
어떻게 당신이 이런 뒤집힌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그 누구도 당신을 충고의 말을 건네지 않았나 보오.
I look at you all see the love there that's sleep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I look at you all
Still my guitar gently weeps
나는 그대에게서 이젠 잠들어버린 '사랑' 이라는 걸 봅니다.
나의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
말없이 나는 당신을 응시하는 가운데
여전히 나의 기타는 조용히 울고 있군요.
당시에는 노래가사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노래를 듣고 있으니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여왔다.
“그 노래 좋지?”
성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응”
난 고개를 끄덕였고, 성현은 워크맨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어 내게 건네 주었다.
“이거 너 가져, 난 집에 CD로 가지고 있거든.”
난 그가 준 음악을 내 방에 가져와 테이프가 닳아버릴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아마 그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비틀즈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