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전화를 받은 남편이 시골 친척이 우리집에 한번 들린다면서
그분이 오면 대학생 아들내미 등록금 한번 내준다고 했다고 하길래
의아해서 그게 무슨 소리야?...... 하니
남편이 총각시절 오촌 당숙님 하던 공장에서 일하고
그 공장이 부도나서 5개월치 월급 못받은걸 지금 와서 그돈을
주기도 그렇고 해서 아들내미 등록금 한번을 대신 내준다 한다고 한겁니다
그렇게 행운?은 체어맨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사업 실패후 오랜 고생끝에 이제 렌트카 영업으로 사업 성공을 일궈 냈다며
찾아온 오촌 당숙 내외는 초라한 집을 아랑곳 않고
잘 자란 우리애들 손을 붙잡고
" 어쩌면 애들이 이렇게 훤하게 잘 자럈냐?"..... 하시며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점심을 대접할려고 하니
나가서 먹자며 차를 타고 나가 적당한곳을 지정하니
싼곳이라며 맛있는거 사주고 싶었다며
비싼곳을 골라 들어갔습니다
음식값만 19 만원 .......
그렇게 비싼 점심도 처음이었지만
남편 친척에게서 그런 환대도 처음이었습니다
오촌 당숙님 돌아가시고 나니
괜스리 부모 일찍 잃은 남편이 안쓰러워
" 당신 부모님 일찍 잃고 어떻게 살았어?".......... 했더니....
말하기도 싫은지 웃기만 합니다
남편은 어린시절을 남달리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라
어머니는 겨우 남편 9살에 돌아가시고 재혼했던 아버님 마저
남편이 13살에 돌아가셨다 합니다
설상 가상으로 형제가 6명이나 있었지만
형제복도 없었는지?
태어나자마자 둘은 죽고 남편이 태어난후
누나도 12 살 무렵 죽었고 그리고 남동생 하나하고
재혼한 어머니에게서 난 여동생하고 셋이 남았는데
아버님 돌아가시고난후..... 재혼한 어머니 마저 자식들 버리고 재가한후
셋 남은 남매들 배를 곯다 못해 땡감을 따다먹인 남동생 덕분?에
창자가 뒤틀려 여동생 마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후 동생과 단둘이 남아 어린 형제들이 고생한건
눈으로 볼수 없었지만 그 참상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서울에서 공장을 차리고 일해달라는 당숙을 따라 올라가
선풍기랑 밥솥을 만들어 착실히 돈 모을 무렵 공장이 부도가 났다 합니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가는 당숙을 따라 내려가
큰 당숙집에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논도 사서 농사를 짓다가
논을 팔아 경운기 탈곡기랑 그런 기계를 사서
지금의 영농 기계화를 이뤄 남의 일도 해주며 악착 같이 살때 저를 만났습니다
이런것도 한때인지 운이 없는 남편인지?
일하러 다니는 와중에 같이 일하던 남편의 친구가 기계속으로 팔이 끼는 바람에
기계를 다 팔아 치료비로 쓰는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순진했던 저 .........
그깟 돈 없어도 사람 성실하고 착하니 언젠가는 잘 살겠지 하는 일념에
아무것도 없는 남편과 결혼을 망서리지 않았습니다
기계를 팔아 치워 겨우 건진 70만원으로 20년전에 겨우 결혼식만 올리고
방 얻을돈도 없어 친정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그후 열심히 일을 했지만
빚만 없다뿐이지 형편은 나아지기도 힘들었고
그 와중에 하나남은 남편의 동생마저 사고로 세상을 떴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아 몸부림치던 남편의 눈물......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후 사업에도 실패 했엇고
애들키우면서 닥치는대로 살아오며 힘겹게 살아왔지만
남의 돈 공짜로 한번도 바란일 없이 정직하게 살아왔다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밀린 월급 대신이라하며
돈 300 만원이 들어오니........ 견물 생심이라고
마음이 또 달라지는겁니다.......
애들에게
"아빠가 어려서 부모없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친척이라고 일 시켜먹고
5개월 월급 안준걸 이제와서 준다고 하면서 겨우 300 만원이니?
그동안 이자는 얼마고? 지금 월급으로 따져도 5개월분이면 얼마야?
하니..........
" 엄마 그래도 양심이 있는분이잖아?"
" 아빠도 포기하고 있던 돈이구 막막로 그렇게 세월이 지났는데
안줘도 되는돈 아니야? 준다는것만도 고마운거지....."
아 그렇구나!!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구나?
정말 남의돈 욕심 안내고
내 힘껏 벌어 사는걸로 자부심 갖고 살았는데
안받을수도 있는돈 들어오니 이렇게 욕심이 또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에
애들 앞에서 얼굴 들기가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