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아침
성현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내 귓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사방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봐! 당신 뭐야!”
낯선 목소리였다. 나는 어렵사리 샛눈을 떴다. 나의 안구 새하얀 불빛이 비쳐졌다.
“으으윽”
나는 밝은 불빛에 눈이 부셔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때서야 상대는 불을 치웠다. ‘경비’라고 쓰여진 모자를 쓴 뚱뚱한 60대의 남자가 심술궂은 얼굴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당신 여기서 뭐하는거야!”
“예? 예!”
나는 당황스러웠다.
“왜 이곳에 있냐고.”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친놈이잖아!”
경비원은 두리번거리는 나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다시 눈이 아파왔다. 화사한 아침햇살이 쏟아져 내렸고, 상쾌한 아침 공기가 쾌쾌한 냄새로 찌든 나의 몸을 씻어주었다.
난 멍청히 15동 앞의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은 잔디밭 한구석에 있는 시멘트 덩어리를 향하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고 분명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뒤돌아서 경비아저씨에게로 다가갔다.
“아저씨 중요한 일이에요. 성현이의 아버지를 불러주세요.”
29. 어둠 속의 성현
한강아파트의 경비원들과 경찰들 그리고 성현의 아버지와 나는 함께 15동 지하실로 향하였다. 경비원들과 경찰들의 손에는 전기드릴과 곡괭이 같은 장비들이 들려있었고, 모두 초조한 표정으로 나의 발걸음을 따라서 지하실속을 더듬어 갔다. 플래시가 비치자 어두운 지하실 벽들에 그려져 있는 성현의 그림들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성현의 아버지는 그림을 보자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 그림을 성현이가 그린 것이라고?”
경찰 중 한 명은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
“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의원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흐……음. 서……성현이의 그림이 맞는 것 같소.”
“그럼 수색을 계속하겠습니다.”
나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보이자 경찰들은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하실 안은 조명이 들어와 환하게 밝아졌고, 이제 또렷이 사물의 모습을 판가름 할 수가 있었다. 축축한 지하실 바닥, 지저분한 쓰레기들, 벽에 그려진 낙서와 그림들, 내가 어제 잠이든 매트리스, 그리고 벽 한쪽에는 문제의 문의 그림도 드러났다.
“이곳이냐?”
경찰은 문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른들은 장비를 들고 벽으로 다가가 허물기 시작했다.
“서……성현이가……너에 대해 이야기 많이 했었다.”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벽을 두려운 듯이 바라보던 성현의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저에 대해서요?”
“그래, 네가 한강민이 맞지?”
“……”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이도……너 정도로 자랐겠지.”
그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매일 TV에서 비쳐지던 자신만만한 거물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 창백하고 겁먹은 늙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쿵!”
마침내 시멘트가 모두 걷어지고 단단해 보이는 철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난 아파트 잔디밭을 보면서 12년 전 성현이 한말을 기억해 냈다.
“한강아파트 지하실은 아파트가 지어질 때부터 전쟁을 대비해서 방공호로 만들어졌어. 그래서 미로같이 되어 있고, 곳곳에 식량 저장고나 탄약 보관소가 있지.”
성현은 신난다는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었다.
“그래?”
“응, 국민학교 때는 친구들하고 그곳에 비밀아지트를 만들기도 했었어. 15동 지하실에 있는데. 지금은 들어가는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렸지.”
“섭섭하겠군.”
“하하하! 아니야. 어른들은 그곳에 못 들어가게 막아버렸지만 내가 누구냐?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냈지. 잔디밭에 보면 종종 환기구가 있는 데가 있잖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것의 용도가 궁금했던 참이었다.
“그곳이 그 식량저장고하고 연결되어 있는 거야. 좀 힘들기는 하지만 사람 한 명 정도는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어.”
철문이 열리자, 어둠 속으로 빛이 빨려 들어갔다. 어둠은 빛에 의해 부인되어졌고 감추어진 것이 하나씩 드러났다. 처음 만들어 질 때 걸어두었던 태극기와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들, 반공포스터들, 아이들이 남기고 간 자신들의 소중한 추억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 그리고 한쪽에는 아기처럼 웅크리고 있는 성현의 주검이 있었다.
30. 장례식
“이번 연예인 마약 복용사건은 재미교포 3세와 미국유학생들을 통해서 국내에 밀반입 된 것으로 조사결과 일부 연예인들은 오래 전 부터 상습적으로 복용하여 중독상태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영화배우이자 가수로 유명한 김준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학생인 친척을 통해서 마약을 복용한 것을 알려졌습니다.”
나는 멍하니 병원 휴게실의 TV를 바라보았다. 브라운관을 가득 메운 김준의 얼굴은 가깝게도, 멀게도 느껴졌다, 고등학교 시절의 같이 히히덕 거리며 놀던 준이의 얼굴이 그대로가 맞는데 어찌 보면 나하고는 전혀 상관 없는 신문의 가십기사에서나 나오는 타인으로도 느껴졌다.
성현의 영정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진짜 그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반갑기도 한 얼굴이었으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진짜 성현이가 이렇게 생겼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갖다 놓는다 한들 내가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묘한 죄책감에 사로잡혔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슬프기는 했지만 무언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모든 게 너무나 몽롱하고 또한 너무 현실적이었다.
“여기 있었구나.”
누군가 내 곁에 앉았다.
“으응, 장례식장이 너무 시끄러워서.”
성현의 아버지는 조용한 장례식을 원했지만 주위사람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거물 정치인의 외아들이 죽었으니 수많은 조문객들이 밀려오고, 몇몇 잡지사에서 취재까지 나왔다.
“뭐, 장례식이 다 그렇지.”
민우는 시니컬하게 말하였다.
“강민아, 참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태영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이런 식으로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동안 뭐하고 지낸 거냐? 연락도 안되던데……”
민우가 물었다.
“그냥, 지금은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너희들은?”
“뭐, 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어.”
민우가 말했다.
“난 삼수까지 했잖아. 군대 갔다 와서 이제 아직도 공부 중이야.”
태영이 멋쩍어하며 웃었다.
“잠깐 밖으로 나가서 담배나 피우자.”
“그래.”
민우의 제의에 우리 모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밖으로 나갔다. 민우는 우리를 끌고 인적이 없는 병원의 으슥한 곳으로 가더니 담뱃불을 부쳤다.
“너네 들만 알고 있어라.”
민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운을 떼었다.
“무슨 일인데?”
나와 태영은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성현이의 사인 말이야…..”
성현이는 부검결과 환기구로 올라가다가 발을 헛딛어 목뼈가 부서진 것으로 밝혀졌다.
“사인이 뭐가 어떤데?”
“목뼈가 부러져서 죽은 것은 사실인데, 그 원인이 있어. 이건 비밀이니까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특히 친한 애들이었으니까 알려주는 거야.”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에게 다음 말을 독촉하였다.
“사실 시체 옆에서 다량의 ‘엑시터시’가 발견되었어. 알지? 알약으로 된 마약 말이야.”
“뭐?”
“오늘 뉴스를 보니까 준이가 고등학교 때 부터 상습 복용했다고 했잖아. 아마 준이와 함께 마약을 했던 것 같아.”
“정말이야?”
“응,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어. 성현이 아버님은 이 사실을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게 비밀로 덮어버리셨고.”
민우의 아버지는 병원의 원장이었다.
“왜? 왜! 성현이가 마약을 먹은 거야!”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야, 조용 하라니까.”
“이건 말도 안돼!”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너의 기분 나도 알아. 하지만 어떡하냐. 그것이 현실이고 사실인걸. 나도 이해가 안 돼. 왜 성현이 같은 애가 그런 짓을 하다가 죽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거지. 우리 다섯이서 즐겁게 놀던 때가 엊그제 일 같은데……”
태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게 말이야.”
민우는 다시 담배를 한 개피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흐린 겨울 하늘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