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2부 8막 : 복수자 #01~#02

J.B.G |2005.12.19 11:46
조회 245 |추천 0

#01

빙백.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만 적령은 한참 동안은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말이 없었다. 그리고 순순히 양의찬의 지시에 따라 치료를 받으며 재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소동은 마음이 아팠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저분… 너무 위태해 보여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길을 멈출 수 없는 운명이다.”

“가여운 분이군요. 정말…”

“그래…”

 

적령을 안타까워하는 제자를 보며 양의찬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너에 비하면 나는 너무 잔인한 사람이구나… 이제는 의원이라 할 수 조차 없다. 나는…’

 

적령은 가장 먼저 망가져 버린 눈을 시술 받았다. 비록 시력까지 회복 된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는 정상인처럼 보였다.

 

“내 재주로는 여기까지네.”

“이것으로 되었네.”

“이곳은 북방이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남방인의 안구를 쉽게 구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북방인의 안구를 이식했네.”

“이것도 나쁘진 않군. 초록색 눈이라…”

“전 좀 무서워요. 양쪽 눈의 빛깔이 틀리다니…”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눈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해요. 이래서는 두 마음을 가진 사람 같아요.”

“어차피 사람의 마음의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란다.”

“적령님의 의지요?”

“그래. 내 의지…”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적령은 계속해서 피부를 이식 받았다. 그리고 잘 맞추어진 골격과 근육을 단련시켰다. 그녀의 재활 노력은 각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 정도로 극한에 달한 것이었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보이느냐?”

“네…”

 

소동은 적령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정도의 훈련 양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가 바로 내가 이 산을 내려갈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니라.”

 

적령은 체력이 회복되자 곧바로 검술 연마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어 같은 계절이 돌아 온지가 벌써 다섯 번째가 되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마침내, 결심을 굳힌 적령은 어느 날 양의찬과 독대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양의찬은 그녀에게 큰 나무상자 하나를 내어 주었다.

 

“이것이 무엇이지?”

“뜻을 이루려면 무기가 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 동안 쓰던 이 검으로도 충분해.”

“물론, 그 검도 북방의 일류장인에게 만든 것이니 부족함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이것을 가져가게.”

“어떤 무기이기에…”

 

적령은 양의찬이 내어 준 나무 상자를 열어 보았다.

 

“이건?”

 

그녀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그녀가 12년 전에 사용하던 귀절도와 그녀의 등에 박혔던 남편인 철기주의 잘려나간 용화였다.

 

“무려 12년 동안 주인 잃은 이 무기를 내가 보관하고 있었네. 그래서 이제 주인에게 돌려주려 하네.”

“역시, 당신은…?”

“숨기지 않겠네. 난 북방의 군사라네.”

“…”

“마음이 바뀌었나?”

“훗… 천만에. 나는 내 길을 갈 뿐이야.”

“역시 그런가?”

“앞으로 내가 만들 사태를 당신이 어떻게 이용하든 나는 관여하지 않겠소.”

“북방은 이미 정벌의 준비가 끝났네.”

“그렇다면, 내 역할만 남은 것인가…”

“아마도…”

 

적령은 귀절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이를 드러낸 그 검을 집어 드는 순간 온 몸의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이제 너만이 내 유일한 벗이구나…’

 

그녀는 다시 용화를 집어 들며 말 했다.

 

“너도 이제 곧 주인을 찾아주마!”

 

제국력 1351년.

적령은 마침내 12년 동안 숨어 지내던 빙백에서 하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지난날의 복수자 적령이었을 때 보다 더욱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진홍의 망토는 마치 피로 물들인 듯 했다.

 

‘모두 죽인다! 모두…’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산산이 깨어져버린 마음을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산을 하산하는 그녀를 소동이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적령님…’

 

용국.

용마일대의 한 작은 성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말을 달려 성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정보는 틀림없는 것이냐?”

“네! 성주님! 놈들의 은신처가 있는 산이 틀림 없습니다.”

“내 이번에야말로 놈들을 소탕해서 꼭 중앙으로 진출하리라.”

 

그는 지금 한참 그 악명을 떨치고 있는 한 산적의 무리를 쫓고 있었으며, 용의 관군은 지금 첩보병의 정보대로 산중에 자리잡은 산적 무리를 소탕하기 위해 말을 달리고 있었다.

 

“저곳입니다.”

“우선, 이곳에서 대기한다.”

 

그들은 은밀히 산중에 은폐를 하고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마침내 척후병이 돌아왔다.

 

“어찌 되었느냐?”

“저… 그것이…”

“왜 그러느냐?”

“이미 모두…”

“뭐?”

 

척후병의 보고에 놀라 용의 관군이 산적들의 소굴에 도착했을 때, 그 부락은 이미 모두 끔찍하게 참살 당한 후였다.

 

“이… 이럴수가…”

 

관군은 그들의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놀라 구토를 하는 자가 속출했다. 그 광경은 너무나 두려운 것이었다. 산적들의 사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으며, 가축 하나 살아 남은 것이 없었다.

 

“성주님!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뭣이?”

 

보고를 받고 성주가 황급히 달려가 본 그 산적은 마치 가위를 놀린 듯 공포에 떨며 제 정신이 아니었다.

 

“…”

“뭐?”

 

그는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 살려줘.”

“헉!”

“살려줘…”

 

성주는 크게 놀라 다시 되물었다.

 

“이… 이놈! 여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산적은 계속 치를 떨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 인간이 아냐…”

“인간이… 아니라고?”

“귀…귀신이야. 붉은… 귀신…”

 

성주는 놀라 그의 말을 되뇌었다.

 

“붉은… 귀신?”

 

마침내, 붉은 귀신이 용이라는 거대한 통일제국을 향해 다시금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것이었다.

 

 

 

#02

적령은 신분을 숨긴 채 중림부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다름아닌 처연(凄淵) 이었다. 두 사람은 길게 쏟아져 부서지는 폭포의 중턱에 자리잡은 한 정자에 마주앉아 있었다.

 

“도저히 제 눈을 믿을 수가 없군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네.”

“그렇군요.”

“자네가 초류향을 나와 목경부의 정부인으로 들어간 줄은 꿈에도 몰랐군…”

“저도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겠지…”

“…”

“…초란은…?”

“그 아이의 일을 물으러 오신 건가요?”

“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두 분 장군님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몇 달을 통곡하다시피 하더니… 결국, 남방의 땅에 한을 품은 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남방에 한을 품은 채라…”

“제게는 그리 보였습니다.”

“…그런가…”

 

폭포의 물보라가 안개처럼 일어나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응?”

“아직도… 복수자 이신가요?”

“아마도… 더욱 붉게 물들었다고 보아야겠지…”

“…”

 

적령의 이 답에 처연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한기가 밀려왔다. 그것은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물 안개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절 찾은 진짜 이유는 무엇이죠? 단순히 란이의 안부를 묻기 위함은 물론 아이겠죠?”

“…”

“…”

“예원(藝原)에 아는 자가 있는가?”

“…예원 이라…”

“…”

“역시… 하실 생각이군요.”

“그렇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가 없네.”

“…”

“있는가?”

“소개장이면 되는 것입니까?”

“황도인 천산에 소속된 예원이어야 하네.”

“다행히 초류향(草流香) 시절에 안면이 있으니, 그곳의 원장(原長)에게 소개장을 써 드리지요.”

“미안하네.”

“…”

 

물 안개는 끓임 없이 일었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미 용무가 다 끝난 두 사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두 사람은 두 사람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장군님.”

“왜 그러는가?”

“주제 넘는 이야기인지 모르나…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도 소용은 없을 것이네.”

“그래도 들어주시겠습니까?”

“…”

 

적령이 침묵하자 처연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

 

“지금의 남방제국은은 통일된 지 십 년하고도 두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혼란스럽습니다. 여전히 용국은 거대한 통일제국의 기틀을 완전히 반석 위에 세워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바다에서는 통제력이 약해진 수군으로 인해 해적이 창궐하고, 내륙에서도 도적떼가 날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중앙군은 제후들을 통제하느라 그러한 문제까지 일일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10년 전에는 변란까지 일어 많은 영웅들이 그 피를 땅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국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중앙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내란을 일으켜 자칫 독립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 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또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중림마저 지난날의 혼란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면서 경제로 많이 침체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이제는 그 기반이 잡혀가고 있으며, 백성들이 다시 웃음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희생이 있음에도 아직 이 나라에는 제국을 통일했던 영웅들이 그 기틀을 버티고 살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장군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장군님께 어떠한 음모를 획책하여 원한을 살 만한 자들이었다면, 지금쯤은 아마도 용국의 수뇌에서 용국을 떠 받치고 있을 자들이겠지요. 그들은 지금 이 제국을 지탱하는 무게를 그 양 어깨에 지고 있는 자들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지금 그들이 장군님에 의해서 일 순간 사라진다면 이 제국은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부디… 제 간곡한 진언을 헤아려 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까?”

 

처연의 말이 끝나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적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허약한 제국이로구나.”

“장군님…”

 

적령은 부서지는 물보라를 바라보며 말 했다.

 

“이 제국이 저 물보라처럼 붕괴되어 한낱 물 안개가 되어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

 

그녀의 이 말에 처연의 가슴은 내려앉고 말았다. 그리고 적령의 목소리는 한없는 냉기를 품고 있었다.

 

“오늘 너는 나를 만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 못하겠다면, 지금 여기서 나는 피를 볼 것이다.”

“…”

“어찌 하겠는가?”

“내일 소개장을 받으러 오시지요.”

“…”

 

적령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처연은 더욱 깊은 시름에 잠기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란아… 도대체, 너는 어디에 있는 것이니? 저분을… 저분을 말려줄 수는 없는 것이니?’

 

처연은 이미 떠나버린 초란과 다시 돌아온 적령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붉은 두건과 망토로 전신을 가린 적령은 목경부의 저택 밖에서 하인에게 전해진 처연의 소개장을 받고 곧 그곳을 벗어났다. 그녀가 그렇게 황급히 목경부의 저택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그녀는 너무나 뜻밖의 부름을 듣게 되었다.

 

“누님!”

“응?”

 

자신을 ‘누님’이라 부르며 그 앞을 막아선 것은 놀랍게도 묘기(妙奇)였다.

 

“저에요. 묘기. 저 모르시겠어요?”

“…”

“누님!”

“물러서라!”

 

적령은 갑자기 살기를 드러내며 묘기를 밀쳤다.

 

“누님?”

“사람을 잘 못 본 게로구나.”

“그럴 리가…”

“물러서라 하지 않았느냐?”

“…”

“물러서지 않으면… 죽인다.”

“…!”

 

묘기가 뜻밖의 갑작스러운 살기에 놀라 물러서자 적령은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내가 잘 못 볼 리 없어. 누님이 틀림 없는데… 어째서…’

 

그 길로 묘기는 현애규(賢愛揆)의 글방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 오다 적령을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잘 못 본 모양 이지?”

“역시, 그럴까요?”

 

묘기의 말에 연기현(然基顯)이 이리 말하자 현애규도 이에 동의 했다.

 

“그럴 게다. 묘기 야. 적령장군은 이미 12년 전에 전사했단다.”

“저도 그리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모습이 너무 닮아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니?”

“확실히… 누님은 애꾸눈 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러니까… 애꾸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누님과 같은 기가 느껴졌어요. 왠지 분노에 가득한… 전보다 더…”

 

그렇게 묘기가 의문을 품은 채 돌아가자 연기현이 현애규에게 말했다.

 

“결국, 큰 사단이 날 것 같군요. 스승님…”

“용의 운명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그렇게 두 사람의 근심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