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12월 25일 성탄절이며 일요일입니다.
저는 내일 남자친구랑 아버지 산소 대전 신탄진에 갈겁니다.
제가 사는곳은 경기도 일산이구요....
2003년 1월 말경.. 제나이 그때 22살이였습니다.
친한친구의 생일파티로 흠뻑 술에 취해 귀가를 하였죠. 아빠 엄마께서 그러시더군요.
넌 누굴닮아서 술을 그리도 잘먹냐고. 나(아빠)하고 엄마는 술한잔도 못먹는데..
넌 도대체 누굴 닮은거냐 기집애가 되가지고 그게모냐 지금 시간이 몇시냐
그말에 고개를 푹 숙이며 속으론 또 잔소리 하네 어우 짱나 그러며 방으로 휙 하니 들어가서
부모님 다 주무시는걸 확인하고 친구와 문자를 보내묘, 방안에서 담배를 피고있었죠.
그다음날 주말에 서적및준비물을 사야한다는 거짓말을 해가며 아빠한테 돈 13만원을 가량을 타내어
정작 본인의 지갑은 몇천원 남더군요.. 그 돈으로 백화점에서 가서
자켓을 하나샀지요. 기분 좋더군요. 새옷을 사니... 귀갓길에 옷을 몰래 숨겨 들어왔죠.
아빠가 말씀하시길.. 왜 인제 들어왔니? 엄마랑 강화갔다와서 이것저것 사왔단다.
너도 먹어. 이 굴 먹어보렴 아주 신선하고 맛있단다. 굴이였습니다. 12시를 향해가는 시간에
초장에 굴 찍어먹으면 그담날 얼굴 붓는다며 아빠께 핀잔을 주었죠. 왜 먹기 싫은데 강요하냐고
(솔직히 부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다음날 새로산 자켓을 입고 학교에 갈 생각이였거든요)
그래서 아주아주 친절하지 못하게 불친절하게 굴을 마치 똥씹는 얼굴로 먹었습니다.
그다음날 2월1일 새로산 자켓을 입고 정말 경쾌하게 발걸음 가했죠.
이히 애들이 이뿌다고 하겠지? 그래 내가 봐도 옷이 이쁘네 이뻐..
오빠한테 전화가왔습니다. 아빠가 쓰러지셨다면서요.. 병원으로 오라고
속마음은요 아~ 나 새로산옷입고 자랑해야하는데 아 짱나
그러며 다시 집으로 향해서 병원에 있다시니 수건및 슬리퍼 생필품좀 싸고 다시 집을 나섰죠
고속터미널에 있는 모 병원까지 가는 그 전철안에서 친구랑 수다를 떨며 도착햇죠.
엇.. 응급실에 있는 아빠가... 엇 (앗 글쓰면서 눈물이..)엇 아빠가요
머리위에는 286시대 컴퓨터같은게 막 있고요(의료기계 겠죠.,,,) 입에다 호수를 꽂으시고
아빠시던데요.. 근데 아빠를 왜 보니까 잘못했단말이 먼저 나왔는지.
제가 오전11시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땐 모가 몬지를 모르는 상황이라..
우선 병원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엄마오빠나 및 외갓댁 친갓댁 모두식구들이..
밥먹고나서 누워있는 아빠 발바닥을 한없이 지압을했어요. 그런말 있잖아요.
죽은 송장도 발에 침을 놓으면 산다는말이요. 그만큼 발이 혈액순환이 잘되야 좋대잖아요.
평소에 무좀있는 아빠발 가지고 화장실 슬리퍼 따로 신자 및 아빠발이 조금이라도 물건을 밟거나
내 옷을 밟고 지나가면 썽질/버럭/ 내던 저였어요. 모땐딸이죠..
아빠가의 혈압과 심장박동수 두개가 나오는데 오르다가도 떨어지고 떨어지다가도 오르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기도도했어요. 불자라서 부처님께 기도했어요.
나중엔 부처님 하나님 예수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께 다 빌었어요. 귀신한테도 빌었어요.
아빠 가져가지말라고..
선생님께서 계속 회진(?) 하시면서 대략 오후 6시경에 말씀하시더군요,
식물인간도 힘들다. 뇌에 산소가 너무 공급되지않았다. 119에 실려오기 전부터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아빠는 술 담배 안하셨던 분이세요. 정말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며 아침형인간이셨습니다.
어딜가나 부지런하며, 생활력이 강하며, 사람좋다고 말씀하시구요...
아빠께서는 아빠상가 옥상에 올라가셔서 기지개도 펴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시죠.
아빠는 그날도 2월2일 그날도 어김없이 옥상에 가셨다 내려오는 계단 2층에 앉아계셨다 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아저씨께서 걸터 앉은 아빨 보고 "이봐 왜 여기 앉아있나......."하면서 어깰 치셨는데
그대로 곤두박질 치셨답니다... 그때 상가분들이 아빠의 열손가락을 바늘로 따도 피 한방울 안나오고
열발가락 모두 따도 피 한방울 안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중 부분을 바늘로 따니까
아빠께서 거친 한숨을 푸~~~~~~~후 하고 내뱉으셨답니다. 그리곤 119..)
그러면서 올라가시더군요. 중환자실로...
아빠몸이 차갑습니다. 입술이 어느새 파래져있습니다... 눈을 마주칠래도 아빤 딴곳을 보십니다.
손을 꼬잡구 귓볼을 꼬잡아도 아빠가 하지마~ 이런말을 안했습니다.
선생님과 위료진 분들께서 tv에서만 보던 기계로 아빠에게 충격을 가하셨는데...
계속 삐---- 소리만 나는거예요. 충격을 줘도 아빤 사망했단걸 가족모두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과정인가봅니다. 제가 아빠 몸에 손을 대니 그 기계가 콩딱콩딱 띠는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이만큼 그 기계가 민간하며 예리합니다.
제가 손을 아빠 몸에서 떼니 다시 삐----- 거리더라구요..
그리고 아빠를 아빠를요.. 쩌기 가시도록 했습니다.
눈물 아직도 멈추지 못합니다. 아빠만 생각하면...
아빠 상가 분 앞에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 자녀분(딸)이 우리아빠같은 사람이 자기 아빠였음 좋겠다고 할정도로 저희 아빨 좋아하는데요.. 저보단 1살 어리구요..
그 아이가 꿈을 꿨대는데 우리아빠가 상하 하얀색 옷을 입고 환하게 웃우셨답니다..
그걸 저는 2월3일날 들었습니다. 그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 해주시더군요..
또 오빠 여자친구가 꿈을 꾸었는데 인사를 드리러 집에 왔는데 아빠는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오빠여
자친구를 맞이했다고 하네요. 정작 저는 못꾸었는데요..
전 그렇게 49제까지 보내며.. 49제는 절에서 하며 비용이나 시간 모든것을 올인했죠.
정말..이게 잘한건가요. 아빠 돌아가셔서 푸짐한 상 차리면 정작 그거 누가먹나요.
산 사람이 먹지 않나요... 그렇게 산거 반성하게 되더군요..
후로 술과 담배는 100% 접촉안합니다. 그리고 아빠 가시기 전날 아빠께 거짓말해서 타낸돈
13만원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백화점 가서 환불을 했죠..
그리곤 2월28일 밑고끝도없이 취업을 하여, 아침엔 회사 저녁엔 식당 아르바이트로 주말엔 편의점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슬픔을 달랬습니다.
일부러 잠자기전에 아빠얼굴을 떠올려서 일부러라도 꿈에서라도 아빠를 만나고 만지고 대화나누는게
정말 하루하루 낙이였습니다. 정말 아빠 꿈을 꾸기 위해 갖은 애를 써가며 아빠를 그리웠습니다.
식당에서 서빙하면서 가족끼리 나와 어떤 아저씨가 "어이 아가씨 우리 공주님 앞접시좀 하나 갖구와"
그러는데 눈물이 핑그르 도는데 그 아저씨 면상에다가 앞접시 던져버리고싶었습니다.
그리도 지금도 싫어하는 프로그램은 아빠의 도전이라는 tv프로그램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오십대 중반 아저씨들의 얼굴을 보죠, 혹시 우리 아빠랑 약간이라도
비슷하게 생기시면 말이라도 건네보고 싶어서요..
......일하면서 사랑은 찾아오나요.. 지금 남자친구를 2004년8월에만나서 현재도 교제중입니다.
그리고 2004년 12월에 대전 신탄진에 갔습니다. 아빠 산소에..
그런데 묘가 많이 생겼더군요. 그간.. 그 묫자리는 우리집 조상들 묘로 다 저희 핏줄 묘져..
아빠 묘에 백세주과 아빠가 평소에 즐겨드시던 과자를 두고 아빠 묘 여기저기
잡초를 뽑았습니다. 두팔벌려 아빠한테 안겨 한참을 울었습니다.
남친을 뒤 돌아 보며 절 달래주며.. 인사(절)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리를하며 돌아오는 길에 사지가 욱신거리며 너무너무 아팠습니다.
장거리라 피곤하고 너무 추워서 몸살감기인줄 알았습니다.
그날 집에 와서도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그날 새벽에 응급실에 갔습니다.
링거 맞고 돌아왔지만 하이튼... 응급실 갈정도였음 살짝 마니 아팠답니다..
그리고 2005년 구정 좀 못되어서 엄마 오빠 나 이렇게 3명이서 아빠한테 갔습니다.
어머.. 제가 묘가 새료 생겨서 아빠를 몰라보고 엄한 묘에다가 술 대접하고
과자 드리고 초 제거하고..그래서 아빠가 화나셨나봅니다.
그래서 엄마랑 오빠가 말하더군요. 니가 그날 이유없이 아픈게 정말 아빠가 혼내킨거라고..
어찌나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오는데 ..엄마앞에서 눈물을 꼭참았습니다.
그리고 12월25일 갈겁니다. 아빠 대접하기 위한 음식을 가지고 갈겁니다.
설레입니다. 아빠를 보러가는게 설레입니다.
아빠를 만질수는 없어도 아빠랑 대화를 나눌수는 없어도 아빠와의 교감을 상대적으로 할순없어도
저 혼자 일방적으로 아빠한테 할려고 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 아빠아빠 불러도
대답 않으실꺼지만 인제 제가 아빠한테 일방적으로 할려고 합니다.
든 사람 자린 몰라도 난 사람 자린 안다고 하는말이 맞네요.
현재도 회사다니고 알바를 하는데요. 귀가후 쓸쓸히 혼자 있는 엄마를 보니 속상하더군요.
그래서 2달전에 남자친구가 엄마께 애완견 한마리를 사줬어요.
많은 위안이 되나 봅니다..
저는요 정말 대표적인 케이스 입니다. 살아생전에 잘해라 돌아가시면 후회한다.
정말 너무 익숙해서 익숙한 말들이여서 중요한걸 모르나요. 절실함, 깨달음이 부족한가요..
내일 아빠를 뵙기 전 숙연해지고 싶어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은 그가 없어지고 나서 깨닫게되는데요.
없다고 그사람의 존재가 없다고 그사람과의 추억도 없어지는거 아니죠.
전 망각의 동물 인간이기에 잠시라도 아빠를 잊고 살까봐 그게 걱정이 됩니다.
아빠가 눈에는 안보이지만 못만지지만 아빠를 잊으면 안될꺼같습니다. 그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살고 싶지는 않아도 남겨진 사랑하는 사람들 위해서라도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않을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