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식의 세계에는 두 넘이 살고 있다.
평소에도 그 넘들은 자주 투닥거리지만..
그 넘들이 요즘따라 싸우는 소리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내 일평생 남에게 상처주고 살아 본 일이 없기에 그 넘들의 대화를 일부 여기에 옮겨 볼까 한다.
------------------------------------------------------------------
▷ 천사 : 야~ 너 요즘 이혼 생각한다며.
▶ 악마 : 그래.
▷ 천사 : 자신이나 있고?
▶ 악마 : 자신은 개뿔이나..솔직히 자신은 없다.
▷ 천사 : 자신도 없으면서 뭐하러 그런 생각을 해
▶ 악마 : 지금 이혼하는게 서로를 위해 좋아. 문제를 질질 끌고 다니다 키워서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헤어지는 것 보다는 서로 배려해줄 여유가 있을때 헤어지는 것도 좋은 것 아니겠어?
▷ 천사 : 객관적으로 생각해봐. 재판상으로도 단순 불임은 이혼 사유가 안돼. 그건 여자의 가슴에 못질을 두번 하는 거야. 그럴 수록 여자를 더 이해해주고 사랑으로 돌봐줘야지. 그럴 자신이 없으면서 뭐하러 결혼했어. 인생의 고비가 올때마다 이혼 생각할래? 내가 보기엔 니가 아직 철이 덜 든거 같다.
▶ 악마 : 그래서? 내가 왜 내 인생을 포기하면서 지지리도 궁상맞게 살아야 하는거지? 그로인해 우리 가족들이 평생 받게 될 스트레스는 생각해봤냐? 이렇게 계속가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항상 불씨를 안고 살아야 하는 거야. 우리 집이 참 관대하고 이해심 많은 집도 아니고 언급을 자제시키는 것도 내가 한계가 있지.. 이번 명절때 안봤어? 또 그렇게 술 한잔 하시고 주사부리듯..며느리를 대하는 꼴을 앞으로 어떻게 봐? 그때마다 너 싸우고 나올래?
▷ 천사 : 이거봐. 그것도 니 능력이야.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몫.. 문제가 커지지 않게 잘 봉합하면서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거..그게 남자의 능력아니겠어? 이번만도 그렇잖아. 니가 그렇게 화낼 필요는 없는거야. 니가 그런식으로 나오면 부모는 더 섭섭하고 며느리 원망만 하겠지? 쟤 때문에.. 우리 아들이 저런 못된 짓을 한다. 평생 부모에게 말대꾸 한 번 안한 내 아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겠지. 너는 좀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이제와서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은 책임전가야.
▶ 악마 : 말은 참 그럴싸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거든? 나는 평소에 분명히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트집을 잡지 말아달라고 누누히 말씀을 드렸어. 직장생활에 불임치료에 안그래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어쩌다 한 번 내려가는 명절기간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해달라고 분명히 강조했어. 자식 생각을 도대체 하는거야 마는거야.
▷ 천사 : 부모 생각은 또 다르겠지. 자제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고 말야. 특히 아버지처럼 술 한잔 드시면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하시는 분에게는 더더욱 힘들겠지. 분명한건 니가 문제를 확대시켰다는 거야. 그러지 말고 다른 대안을 생각해보면 어때?
▶ 악마 : 무슨 대안?
▷ 천사 : 요즘 입양 많이 하잖아.
▶ 악마 : 됐거든? 내가 낳은 자식도 키우기 어려운 판국에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남의 자식을 어떻게 데려다 키워. 넌 참 말을 쉽게 한다. 나는 말야. 너 처럼 말을 쉽게하는 애들 보면 참 위선스럽고 역겨워.
▷ 천사 : 그렇다고 이혼하는 건 그렇잖아. 그동안 니 와이프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도 잘 알잖아. 복강경한다고 배에 구멍내고 그동안 시험관 하면서 얼마나 또 고생했어. 호르몬 부작용으로 털도 많이 나고 몸은 몸대로 불고.. 게다가 너 여자들 난자 채취할때 그 고통 알기나 하냐?
▶ 악마 : 그래도 그건 잠깐이지 평생 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건 더 고통스럽지 않겠어? 게다가 정말 내가 내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 데리고 살아야 할 만큼 그런 사랑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 천사 : 쯧쯧 저 말하는 것 좀 봐. 너 빈말이라도 그러면 안돼. 그런게 어딨어. 그러려면 뭐하러 결혼했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 악마 : 나? 솔직히 장남이라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했고 30을 넘기면 결혼하기 힘들다고 해서 아주 나쁘지만 않으면 일단 결혼부터 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살다보면 정이 드는 거고 그러다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해서 했어. 솔직하게 결혼 전부터 이 여자는 아니다라는 생각 많이 했었지만 내가 마음이 모질지를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뿌리치지 못한게 참 후회가 돼.
▷ 천사 : 참, 자기합리화 한번 수준급이구나. 너란 아이는 무책임하고 철면피스럽다. 생각을 해 봐.
물론 니 집사람이 완벽한 일등 마누라감은 아니야.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점도 많이 있잖아 털털해서 잘 안삐지고 요리 잘하고 니 하는 일에 협조 잘하고 어떻게 하든 너하고 살아볼려고 발버둥치는데 불쌍하지도 않냐?
▶ 악마 : 물론 그런 점도 있긴 해. 하지만 이렇게 문제가 겹치다보니 평소해 잘 참고 살았던 안좋은 점들이 자꾸 부각이돼. 너도 알잖아. 너 우리집 싱크대 한번 봐봐. 이건 게으른 정도가 아니야. 내가 치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안방이며 쇼파며 빨랫감이 일년 열두달 수북하고 곰팡이와 머리카락 투성이인 화장실, 먹다 남은 과자부스러기.. 여름에는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쓰레기 썩는 내..기름투성으로 끈적거리는 주방, 벽지, 냉장고에는 썩은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야채칸, 곰팡이 핀 쏘세지, 햄, 조기.. 으~ 정말 생각하면 내가 사는게 아니다 싶지..
▷ 천사 : 야. 이자슥아. 그렇게 지저분하면 니가 치우면 될거 아니냐? 깔끔하고 잘난 니가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렇게 깔끔 떨며 살라고..너 한달에 몇번이나 설거지하고 빨래하냐?
▶ 악마 : 아까도 말했지. 내가 치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처음부터 어질지를 않으면 치울 일도 없어. 먹지도 않는 부식거리를 자꾸 사다 나르면 그거 내가 다 치우라고? 무슨 여자가 장 볼때 냉장고 한 번 안열어보고 장을 보냐? ㅋㅋ. 게다가 통은 또 얼마나 큰지. 무슨 두 사람 밖에 안사는 살림에 먹거리는 바께스로 사다 나르니 그게 다 어디로 가냐고..
▷ 천사 : 사람이란 다 그렇지. 장점과 단점을 다 가지고 있잖아. 너 직장 다니면서 여자들 대해보니까 어떻든? 인간말종 수준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여자들 얼마나 많아. 그런거에 비하면 니 와이프는 무난하다고 생각해. 사람이 털털하면 꼼꼼하지 못하지. 니가 잘 타일러 가면서 원만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고 봐.
▶ 악마 : 그런데 애가 안생기니까 그런게 자꾸 더 신경쓰이는거 같다. 작은 문제도 왠지 자꾸 확대되어 보이고 안좋은 것만 보이고..주변 사람들이 과거에 혹시 중절이나 유산경험 같은 것을 얘기하면 예전에는 설마 했다가도 요즘은 긴가민가해. 난관 폐쇄라는게 사실 그렇게 쉽게 생기는게 아니거든.. 난 결혼하면서 한번도 집사람의 과거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어. 하지만 요즘엔 모든게 다 안좋게 보여. 게다가 신혼 초기에 의도적으로 피임했잖아. 그리고 나서 1년간은 거의 잠자리를 회피했고.. 아마.. 일부러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자꾸 드네.
▷ 천사 : 안좋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야.
▶ 악마 : 아.. 난 다 참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냥 애 하나 보고 살지 뭐. 이랬지.. 좀 지저분하면 어때. 그래 니 말대로 내가 치우고 살면되니까..처음부터 우리집은 결혼을 반대했지만 의외로 사람이 화통하고 시원시원하면 면이 있어서 서로 맞춰가면서 살면 그럭저럭 잘 살거라고 생각했었나봐. 그런데 애가 안생기니까 그런 호감들이 더 적의로 돌변해서 그래서 내가 결혼하지 말랬지.. 하는 말을 이젠 대놓고 하신다. 여동생도 거들고... 참 그런 소리 들으면 내가 너무 괴롭다.
▷ 천사 : 결혼해서 늦게 임신하는 사람들도 많아. 니부터 우선 잘 참고 견뎌나가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섣불리 이혼부터 결정하고 그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할려고 그래? 이혼하면 더 행복해지리라는 보장은 있냐? 재수없이 싸이코한테 걸려서 더 고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재혼해서 더 행복해졌다..라고 말하 사람은 내가 거의 보질 못했거든.
▶ 악마 : 이혼해서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 물론 없지. 그렇다고 해서 더 불행해진다는 보장도 없어. 문제는 내가 받아들일만한 상황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고 봐.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 퇴근하면 집에 와서 편하게 쉬고 싶고 자라나는 아이들 재롱을 보면서 명절때 손잡고 시골로 내려가는 그런 평범한 가정을 꿈꾸는게 왜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냐?
▷ 천사 : 어차피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야. 어느 집에나 다 걱정거리가 있고.. 니가 애를 낳고 산다고 해서 또다른 문제들이 생기지 마란 법은 없는거지. 애가 아파서 재산을 들어먹을 수도 사고를 쳐서 니가 다 짊어져야 할 경우도 있고..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얘기가 괜히 나왔겠어? 애가 있으면 있는대로 또 고통이 생긴다고.. 행복에는 다 댓가가 있는 법이야.. 공짜로 얻으려고 하는 심뽀가 더 한심한 거지.
▶ 악마 : 그래서 계속 무자식을 상팔자로 여기면서 만족하라는 얘긴가? 그런게 겁난다면 결혼이란 걸 아예 처음부터 하질 말았어야지.. 앞으로 생기지도 않을 일을 지레 걱정부터 하고 살란 말인가? 결혼의 정의가 뭐야.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종족보존의 본능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거야. 그것은 법상의 계약으로 외부에 선언된 것 뿐이지. 내가 왜 그런 것 때문에 한평생 멍에를 짊어져야 해?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되는 게 인생의 종착역이야? 누구나 입에 발린 소리는 잘해. 도덕군자인냥 윤리를 앞세우면서도 정작 자신의 문제가 되면 또 그렇게 생각안해. 그게 문제야.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게 중요해. 내가 행복해지면 그것이 곧 효도이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거야. 문제의 불씨를 안고 살다가 그것이 커지면 그때는 서로에게 짐이 된채 헤어져야해.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다른 길을 찾고 싶어.
나도 집사람 힘들고 마음 아프게 할 거라는 거 잘 알아. 잠들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참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 저 불쌍한 사람을 두고 내가 얼마나 행복해지려고 이러나..하지만.. 그래.
이대로 계속 가는 것도 결국은 당신에게 불행이 될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