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제 1화 LOVE IS = ?
“ 오빠~! 나 어른이 되면 꼭 오빠랑 결혼할거야! “
언제부턴가 수줍은 얼굴을 하고서 내게 큰 소리로 말하는 소녀. 처음 그 소녀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당시 10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 한 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가방을 메고 아장 아장 걸어 다니는 초등학생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성인의 반응은… 아마도 나와 같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오빠 왜 나는 안 되는데? 지금은 어리지만 조금만 있으면 나도 어른이 될 거란 말야.”
나는 아무 말 없이 꼬마의 이마에 내 손가락을 가까이 대고 살짝 때리듯 스쳤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나를 째려보듯 올려다보는 꼬마. 난 주머니에 들어있던 사탕 몇 개를 쥐어 주면서 꼬마의 울음을 달래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은 어디 갔는지 환하게 웃으며 마냥 좋아한다.
“ 오빠 아니 삼촌이랑 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야… 왜냐면….”
“ 왜? 왜? 왜?”
참 내가 어린애 데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밀려든다. 그래도 철없이 반짝이는 눈을 하고 서 내가 좋다며 따라다니는 어린애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고. 그래. 아직 어려서 뭘 모르고 이러는 거겠지.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되면 나 보다 더 멋있는 남자들한테 자연스럽게 시선이 돌아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꼬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 이름이 뭐랬지?”
“ 이 은진!”
“ 그래 은진아. 그러니깐 네가 20살이 될 즈음. 은진이가 대학에도 들어가고 키도 나랑 비슷할 때쯤이면 오빠가 은진이 남자친구 돼줄게.”
“ 정말? 정말? 약속한 거다.”
“ 그래. 정말로.”
은진이랑 새끼 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으면서 약속을 했다. 그때는 최소한의 방편으로 이렇게 해 놓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소녀의 심장 속에 담아 놓은 그 약속은 절대적인 듯 했다. 그것을 깨닫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년이란 세월이… 무궁화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이 아니란 걸 내가 27살이 되던 해 처음 알아버렸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학을 했다. 졸업반인 나는 오랜만에 캠퍼스 안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여기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 나무에 기댄 사람. 잔디밭에 누워 참을 청하는 사람. 모두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3년이란 세월 동안 군대에 있으면서 참 여기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 했다.
“ 야~ 김 요한 이 나쁜 놈! ”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뒤 돌아 섰다. 누구지? 누구지? 하며 주위를 살펴 보지만 내가 아는 얼굴은 아무데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하지만 또 다시 여자의 음성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크고 명랑한 그 목소리는 내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 요한 오빠~! 이 나쁜 오빠야~!”
뒤에서 내 두 눈을 가리며 다가오는 여자의 차가운 손길. 그녀의 가슴은 내 등을 살며시 타고 내려왔다. 끝까지 가리고 있는 손을 놓지 않는 그녀.
“ 누구… 세요?”
“ 이봐 이봐~ 그래. 벌써 날 잊은 거야? ”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오빠’ 하며 눈을 가리고 내 어깨에 매달려 있는 낯선 여자. 난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뒤 돌아섰다. 나와 거의 비슷한 키로 내 앞에 서 있는 그녀. 바람에 찰랑 이면서 스치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무척이나 길었고 도톰한 입술에 크고도 선명한 눈빛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인 그녀는 수줍은 듯 가방으로 다리를 가리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비누 향 같이 익숙한 향기로 내게 다가 왔다.
“ 나야! 이 은진. 모르겠어?”
“ 이 은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 아니. 몇 번은 불러본 듯한 이름.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누구지 누구지 하며 고개를 계속 갸우퉁 거리는 나를 보면서 여자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시선 속에 가까이 다가온다.
“ 이봐 이봐 안되겠어! 10년 동안 풀어줬더만. 금새 다른 여자가 생긴 거야? 그래서 날 기억 못하는 거야?”
이 은진. 10년. 그 두 단어가 머리 속을 스쳐 지나면서 어릴 적 만났던 꼬마의 얼굴이 순간 떠올랐다. 얼굴은 내 손바닥 만했고. 키는 내 허리 정도 밖에 안 오는 작은 꼬마가 혹시? 지금 내 앞에 있는. 그것도 아주 예쁜 모습으로 내 눈 속에 가득히 비춰지는 여자가. 그 이 은진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이건 꿈일 거야. 이런 일이 어떻게…. 나는 내 머리를 손으로 쥐어 박고서는 몇 번을 고개를 흔들어댔다.
“ 네가 정말 이 은진이야? 그 꼬마 이 은진? ”
“ 그래. 나야 오빠! 나 약속 지켰다. 10년 후 그러니깐 내가 지금 20살인 딱 만 19세 성인의 모습으로 오빠 앞에 이렇게 나타났으니깐. 난 약속 지킨 거야. 다음엔 오빠 차례야.”
그렇다. 10년 전에 난 어린 꼬마와 그런 약속을 했었다. 10년 후 그 꼬마가 성인이 되어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남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정말 그때는 그냥 했던 말이었는데 하도 때 쓰고 응얼거리던 어린애를 떼어놓으려고 했던 말이었는데. 그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10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이렇게 어엿한 예쁜 성인의 모습으로…
“ 있잖아. 그때는….”
“ 내가 10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오빠가 다니는 이 대학에 들어 오려고 나 무척 노력했어. 오로지 오빠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정말 예쁜 대학생의 모습으로. 어엿한 성인의 모습으로 오빠 앞에 서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그때 그 꼬마가 했던 말. 그리고 지금 은진이의 말. 조금은 알 것 같았지만. 난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이토록 진실되었는데. 나의 마음은 그녀의 이름 하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흔한 일상 속에 아주 작은 일이었으니깐. 그렇게 내 마음은 진실 되지 않았으니깐.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면서도 난 그녀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 은진아! 나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은데….”
순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 째려보듯 올려 다 보는 눈빛이 옛날 그 꼬마의 눈빛과 같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애써 숨긴 채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하지만 그때처럼 사탕을 주면서 달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녀가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이 생긴 거야? 내 약속 따윈 어겨도 좋을 만큼 그런 좋은 사람이 생긴 거야?”
은진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내게 따지듯 말한다. 겉으로는 울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볼을 타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서 바닥에 와 닿을 때는 꽃이 되는 듯 그림이 그려졌다. 그렇게 한 방울 한 방울. 쏟아지는 그녀의 눈물에 어느새 바닥은 화원을 이루었다. 그런 울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난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만 했다.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 말문은 열리지 않았다.
“ ……”
그녀는 내 대답에 아무런 말 없이 뒤 돌아 섰고. 점점 내 시선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작아져 만 갔다. 내 손은 심장의 박동 소리에 맞춰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난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잡을 자격이 없었다. 저렇게도 아름답게 자란 그녀인데. 아무런 의미 없이 했던 내 말 한 마디조차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녀에게 난 남자 친구가 되어줄 자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