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창원군의 저택.
창원군은 지금 자신의 저택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자객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의 집에도 매일 적포청의 군사들이 에워싸고 있기에 오히려 밀담을 나누기가 어려워지므로 해서 그는 지금 출타를 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따르고자 하는 적포청의 장수를 그는 애써 물리치고 자신의 측근들과 사병만을 거느리고 집을 나섰다.
황도의 어느 기방.
창원군이 도착해 안내 된 기방의 어느 밀실에서는 이미 그의 밀지를 받은 각지의 제후와 관료들이 모여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죠. 나리!”
“적포청의 군사들 때문에 오히려 내가 불편하게 되었네.”
“혹, 그들이 이상히 여긴 것은 아닌지요?”
“그럴 것을 대비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정기적으로 기방을 들리고 있으니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네. 무엇보다 군사 미란이 없는 마당에 그들의 정보망을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오늘은 어인 일로 우리를 모두 불러 모은 것입니까?”
“이미 말한 대로 미란을 비롯한 함덕, 유란이 죽었네. 그리고 이서기마저 죽게 되었으니, 지금 황제는 그 전력의 상당부분을 잃은 것이네.”
“허나 용에는 아직도 많은 맹장들이 있습니다. 조금 이른 것이 아닙니까?”
“머리가 잘리면 몸은 자연히 죽게 되어 있네.”
“허면, 나리께서는 이 참에 적극적으로 정적을 제거할 요량이십니까?”
“그것은 아니네.”
“그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암살자를 찾아낼 요량이네.”
“나리?”
창원군의 이 말에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이미 알려진 정보대로라면 그 암살자는 틀림없이 그들 자신에게도 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암살자가 누구이든 어차피 이제 그는 영웅이 아니네.”
“…”
“그러니 내가 그를 찾아내어 이용하려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응할 것이네.”
“허나, 그가 거절한다면…”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면 될 일이네. 지금까지 정황으로 보아 그는 황제와 원한이 있는 자이니 그의 수족들과 관계가 깊을 듯 싶네.”
“하지만, 그냥 관망만 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대처가 아닙니까?”
“내 판단에 그 암살자가 비록 영웅은 아니나 큰 자임에는 틀림이 없네. 그러니 황제가 그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적룡에게 어차피 희망은 없는 것이네.
“그렇다면,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 틈을 파고들자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적극적인 방법과 소극적인 방법을 모두 준비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바로 거사를 할 것이네.”
“허면, 저희는 어떤 준비를 하면 되는 것입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오늘 동지들을 모두 부른 것이네.”
그날의 야합은 그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경계를 해도 엿듣는 자 하나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밤 그들의 야합은 무림 맹주 최무귀의 비영에 의해 감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최무귀는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패림의 최무귀의 저택.
그는 지금 비영의 보고를 받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계속 관망만 하는 것입니까?”
“그래… 그래야 할 것 같구나.”
“현재의 용에 실망하신 것입니까?”
“글쎄다…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나 자신도…”
그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도대체 누구일까? 전국시대를 호령하던 천하의 맹장들을 차례로 주살하는 그 암살자는…’
#18
적포청.
예고장이 또 다시 날아들었다. 연속되는 암살자의 이러한 대담함에 맹장들은 모두 경악하며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중앙군 사령관인 정찬우(鄭燦宇)장군을 암살하겠답니다.”
“이런 변괴가 있나?”
“정말 이자는 어떤 자란 말인가? 도대체…”
그들은 또 다시 대책을 마련하기에 분주했다. 그리고 정찬우는 극구 반대했지만, 무비가 황제 적룡에게 청하여 어명으로써 그의 저택과 그 주변에 1천 여명의 군사를 비밀리에 배치했다.
“이래서야 비밀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비밀을 지키는 것 보다 장군이 살아있는 것이 더 중합니다.”
“장군?”
“정장군! 나는 이 사태를 냉정히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무비의 이 말에 정찬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밀을 최대한 유지는 할 것이나 그것으로 인해 장군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허나, 차후에 제가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는 저도 장담 못합니다.”
“그 심정은 알고도 남습니다.”
적포청.
예고된 날이 아직인지라 다른 장수들이 정찬우의 저택에 있는 사이 무영은 적포청에서 그 동안의 사건을 통해 얻은 정보로 범인을 찾을까 하여 골몰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지난날 전란의 패전국의 장수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지만… 이러 대담한 일을 벌일만한 장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저 전란이 맹장들과 검을 겨루어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도대체, 어디의 누구란 말인가?’
그가 이러한 생각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때에 적포청을 수랑이 찾았다. 며칠 동안이 충격적이 사건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던 무영은 수랑을 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그래서 그녀의 청을 받아들여 그녀와 함께 잠시 산보를 하기로 했다.
“맡으신 사건은 어때요?”
“그냥… 사건이 커져서 고생을 좀 하고 있어요.”
“그래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던데…”
“그것은 이 사건이 어명으로 비밀리에 조사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요?”
“…”
“도대체, 어떤 사건이길래…”
“미안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네…”
“…”
자신의 이 말에 수랑이 안색이 어두워 지자 무영은 조금 당황했다.
“저… 하지만, 이제 곧 잡게 될 거예요.”
“어떻게…”
“범인은 대담하게도 범행 날짜와 시간을 통보해 오고 있어요.”
“그런데도, 잡지 못한단 말이에요?”
“네. 부끄럽게도…”
“…”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 지난번에는 그 대담함에 놀라 미처 대처를 철저히 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범인에 예고한 장소에 비밀리에 1천 여명의 정예병을 진을 짜듯이 산개해 배치했으니까요. 범인은 그 덫의 크기를 모르고 뛰어들다가 틀림없이 걸려들 거예요.”
“네…”
“그리고, 그 덫의 겹겹마다 지난날의 맹장인 정찬우 장군과 함께 다른 맹장들이 지휘를 할 거예요. 장군께서는 지난번 사건은 허를 찔려 그 대처가 미흡했으나, 이제는 진지하게 전란의 시대와 같이 전략적으로 임하는 것이라 했어요. 반드시 그 자를 잡아들일 거예요.”
“전략적 접근이라…”
“네. 이제는 전쟁이에요.”
“좀… 두렵군요.”
“이런… 제가 한심한 얘기를 했군요.”
“네?”
“수랑 낭자와 오랜만의 만남인데 이런 이야기나 하고…”
“전 괜찮아요.”
“아무튼,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죠.”
“네.”
그렇게 나란히 황도의 거리를 걷고 있는 두 사람을 무영의 아버지인 제상이 목격했다.
‘응?’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제상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밤.
예원에 수랑을 찾아 한 손님이 들었다. 그를 맞은 예원의 원장인 서운량은 그를 황급해 안으로 안내했다.
“제상께서 어인 일로 이 야심한 밤에 발걸음을 하신 것입니까?”
“그 아이를 불러주게.”
“네?”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인가?”
“…!”
제상이 누구를 찾는가 하는 것은 서운량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랑은 지금 무영과 만나기 위해 출타 중이었다.
“그 아이는 지금 출타 중입니다.”
“기다리겠네.”
“돌아가 계시면 제가 그 아이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기다린다 하지 않았는가?”
“…”
제상이 오늘 밤 반드시 수랑을 만나고자 함을 깨닫고 서운량은 어쩔 수 없이 제상이 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 자정이 넘은 시각에야 수랑이 돌아왔다. 마침내 수랑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서운량은 급히 수랑을 불렀다.
“나를 무슨 일로 부른 거죠?”
“저… 제상께서 와 계십니다.”
“…”
“기다린 지 여러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걱정 말아요.”
그리하여 수랑은 제상 무린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높으신 분께서… 어찌 소녀같이 하찮은 신분을 찾으신 것입니까?”
“높고 낮음을 논하고자 온 것이 아닐세.”
“…”
“내 돌려 말하지 않겠네. 내 아들과는 그대는 어떤 사이인가?”
제상의 이 말에 수랑은 주저 없이 답했다.
“무영 장군과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 입니다.”
“…그래…”
“혹, 소녀가 부족한 것입니까?”
“내 그대에 대해 모르니 부족하다 아니다를 논할 수는 없을 것 같군.”
“…”
제상의 이 신중함과 함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다만, 그 아이가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만은 알았으면 하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솔직하게 말하겠네. 지금 그 아이의 눈을 흐리지 말게.”
“제가 있음으로 그분의 눈이 흐려지는 것입니까?”
“이 늙은이의 노파심일세. 혹, 자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동안 더 큰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 아이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네. 그러니…”
“잘 알겠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사건이 잘 마무리 되기까지 소녀가 그분을 찾는 일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현명하게 판단해주어서 고맙네.”
“별 말씀을…”
“그럼, 그대의 말을 믿고 나는 이만 가겠네.”
“살펴 가십시오. 나리.”
그것은 적령과 무린의 사실상의 첫 만남이었다.
‘대화를 해 보니 더욱 강렬한 여인이 아닌가? 도대체… 도무지 이런 곳에서 무희를 할 여인처럼은 보이질 않는다. 제대로 된 여인이라면 우리 집안에 크게 길한 일이지만… 이 불안함은 도대체 무엇인지…’
제상은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