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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10화> 덫

바다의기억 |2005.12.30 12:27
조회 10,008 |추천 0

2006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05년의 안 좋았던 기억들은 모두 잊고

 

행복했던 추억을 다시금 새기며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모두 잊자. =========================

 

 

방학을 앞두고 기말고사가 한창인 어느 날 이른 오후.


그녀로부터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올래?=

-민아-



최근 그녀가 시험 준비로 바빠 자주 만나질 못했기에


이번 초대는 거절할 수 없는 기회였다.



약속 시간은 다섯 시 반.


4시가 조금 넘어 수업이 모두 끝난 난


연습실에서 들려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남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연습실.


M&L 공연 이후 종종 모습을 나타내던 김씨와 허씨가


마주앉아 문제내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김씨 - 부피가 2V로 바뀌는 자유 팽창에서 엔트로피변화는?


허씨 - 큭....먼저...음....


김씨 - 캬하하... 모르면 대라.



=짜아아아아악!!!!=



무....무슨 손목 맞기를 하는데


따귀 때리는 소리가 나냐....



허씨 - 크헉......


김씨 - 아이구 손가락이야....자, 문제 내라.


허씨 - 크윽.....이원자 분자의 자유도에 대해 설명하시오..


김씨

- 운동성분 x, y, z 3 가지에


횡 회전, 종 회전, 진동성분 2가지....총 7가지.



허씨 - 각각을... 여...영어로!


김씨 - Translation, rotation, vibration... 파하하... 쪼잔한 놈..



언뜻 봐도 김씨의 일방적인 공세로 보이는 둘의 판도.


김씨... 생각보다 공부 열심히 하는 타입인가 보다.



김씨 - 단열 팽창에서 기체가 한 일을 V의 함수로 나타내면?


허씨 - 마, 마이너스...


김씨 - 오호. 그건 당연한거고. 그 다음은?


허씨 - nRT.....에.....ln (Vi/Vf) !!!


김씨 - 아깝다....(Vf/Vi) 다. 대라.


허씨 - 잠깐, 잘못 말한.. 크앗?!



=짜아아아아아아악~!!!!= 



허씨 - 으허허허허허허.....



이제 실성한 듯 웃기까지 하는 허씨의 양쪽 손목엔


맞은 자리만 계속 맞았음이 분명한 두 줄의 손자국이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눈가에 촉촉이 고인 눈물에


더 이상 맞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결의가 빛나는 허씨.


이번에야 말로 복수를 하겠다는 듯


열심히 책장을 넘기던 허씨가 김씨에게 물었다.



허씨 - 온도 T에 표면적 A를 가진 물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김씨 - 표면적에 비례하고 온도 4제곱에 비례...에휴...누가 모르냐 그걸.


허씨 - 그래... 그 법칙을 발견한....


김씨 - 스테판!


허씨

- 어허, 아직 안 끝났어...!


으음....그... 스테판은..... 몇 년도에 죽었는가?



......... 두둥.



김씨 - 미친~ 야!! 뭐야 그게!


허씨

- 지난번에 인공위성 문제에서도


최초 발사 년도 적으면 추가점수 줬잖아.



김씨 - 그건 상황이 다르지!


허씨 - 암튼~!!! 대!! 모르면 대!!


김씨 - 아오... 씨.... 더러워서... 그래 까라! 까!



=쫘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김씨 - 크허허허헙~!!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맞아주기엔


그 위력이 너무 강렬했는지


김씨는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는 반격.



김씨 - 헬륨의 기화열은?


허씨 - ...그거야 당연히 문제에서 주는 거잖아


김씨 - T라고만 주고 실제 값 대입해서 풀면 추가점수 줄지도 몰라.


허씨 - 인간적으로 그건 아니다..응?


김씨

- 어이구.... 그러는 넌 퍽이나 인간적이었다.


모르면 대~. 응?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허씨 - 그, 그딴 게 어딨어~!!


김씨 - 이런 걸 보고 지 무덤을 팠다 그러는 거야!



어느새 자기공부도 잊고


학구열(?)에 불타오르는 둘을 구경하는 사람들.


나 또한 이 싸움의 결과가 궁금했지만


그녀와의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기억 - 저 이만 들어갑니다.


연출 - 아, 그래. 시험 끝나고 보자.



과연 그녀가 어떤 음식을 준비했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룰루랄라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중간에 서있던 남자 셋이 줄에서 빠져나와


줄 끝으로 가서 다시 서는 것이 보였다.



뭐지? 앉아서 가려고 자리 가늠하는 건가?


아니면 새치기했다가 밀려났나?



대수롭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는 광경에


난 미간을 조금 찡그리며


그들보다 몇 자리 뒤에 줄을 섰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진 않았기에


난 두 번째 도착한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단지 내 얼마 앞에서 자리가 다 차버린 탓에


전철역까지 서서 가야한다는 게 흠이지만...



남1 - 그지? 맞지?


남2 - 확실해.... 아까도 봤잖아.



아까 줄에서 빠져나왔던 남자 셋은


버스 맨 뒤에 있는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날 보면서


킥킥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계속 신경을 건드리던 그 불쾌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체를 드러냈다.



남1 - 야... 그런데 진짜 싸가지 없게 생기지 않았냐?


남2 - 원래 뭘 해도 베이스가 돼야 하잖아.


남3 - 킥.... 원래 본업이 그쪽 아냐?


남1

- 가서 대출상담 한 번 해볼까?


100원만 빌려주세요~~. 쿡.



남2 - 야, 그러다 신체포기각서 쓴다, 관둬라.



소곤거린다고 하기엔 좀 큰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떠들어대고 있는 셋.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들이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기억 - ........



마냥 듣고 있기엔 몹시 기분이 상한 난


냉랭한 눈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다 들리니까 적당히 하라고...



남1 - 오... 씨X, 눈빛 죽이는데? 레이저 나오겠어, 아주.


남2 - 아이 무서워~ 아이 무서워~.



하지만 아예 씨도 안 먹힌 듯한 그들의 반응.


어차피 곧 내릴 버스인데다


일이 커지면 그녀와의 약속에 늦을 수도 있었기에


난 그냥 개가 짖으려니 하고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한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들 중 창가 쪽에 앉아있던 사람이 나를 불렀다.



남3 - 저기요, 저기요.


기억 - .....


남3 - 요즘 사채 쓰면 이자가 얼마나 돼요?


남2 - 킥! 야야~!



그렇게 대놓고 시비를 걸며


자기들끼리 좋다고 킥킥대는 녀석들.


이런 놈들은 어딜 가나 꼭 있는 걸까.



기억 - ....... 내려.


남3 - 예? 저요?


기억 - .... 내리라고.


남3 - 아유, 저 아세요? 언제 보셨다고 초면에 반말이세요?


기억 - 까지 말고 내려, 아님 다물고 있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나도 그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맞으면 아픈 게 사람이고,


쪽수엔 못 당하는 게 싸움이다.



단지 상대가 갑자기 세게 나오면


십중팔구 스실스실 수그러드는 게 이유 없는 시비질이었기에


그쪽에 도박을 걸었을 뿐이다.



남3 - ..... 어유~ 한 대 치겠네?


기억 - 그러니까 알아서 좀 다물라고.



슬슬 위험해지는 듯한 분위기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주춤주춤 자리를 피했다.



어떻게 할 거냐....어떻게...



혹여 일이 터져도 선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잔뜩 촉각을 곤두세운 채 녀석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둘이 남자3을 말리기 시작했다.



남2 - 야야, 관둬, 관둬.


남3 - 아니, 쟤가 내리라잖아~.


남1 - 솔직히 건드리긴 네가 먼저 건드렸잖아, 인마.



같이 신나게 킬킬대던 놈들이


서로 말리고 타이르려 드는 게 좀 뭐하긴 했지만


아무튼 내 도박은 성공한 듯 했다.


다행이다...



이제 조용히 그녀의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녀석들 사이에서 나온 한 마디가


귓가에 푹 박히듯 들려왔다.



남3 - 아오, # 같네..


남1

- 그래, 네가 참아, 네가.


다음엔 무대에서 입술 쪽쪽 빨다가


므흣이라도 보여줄지 누가 아냐.



남2 - 풋! 야, 심했다.


=퍼어어억!!=



녀석의 말을 듣고


바로 옆 녀석이 웃는 게 빨랐는지


내가 녀석에게 발길질을 날린 게 빨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양쪽 의자를 잡은 채 앞으로 쭉 내지른 발길질에


정확히 옆얼굴을 밟힌 녀석은


의자 깊숙이 푹 처박혔다가


튕겨 나오듯 앞으로 굴러 떨어졌고


난 쓰러진 녀석의 머리를 거듭 차며 욕설을 퍼부었다.



기억 - 뭐 이 X새꺄? 다시 말해봐 @#$@....!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2의 발차기에


가슴께를 차여 뒤로 두어 걸음 밀려났던 난


뒤에 물러서있던 사람들을 로프삼아 앞으로 돌진했다.


바닥에 엎어져있는 남자1로 인해


녀석이 머뭇거리고 있는 짧은 시간


난 몸을 날려 녀석의 면상을 이마로 받았다.



=와작!!=



얼굴을 감싸고 고꾸라지는 남자2 위로 떨어진 나.


눈앞이 핑 도는 후유증을 느끼며


서둘러 몸을 일으키는 순간


뭔가 뺨 근처를 휙- 스쳐지나갔다.



흥분으로 인해 반쯤 마취된 상태임에도


찌릿하게 광대뼈를 훑고 지나가는 듯한 아픔에


한 걸음 뛰어 거리를 벌리고 옆을 돌아보자


버스의 비상탈출용 망치를 들고 서있는 남자3이 보였다.



남3 - .....하아...하아....XX! 덤벼 새꺄!



공격패턴은 파악했다.


강강약 강중강약...


무기를 든 이상 망치부터 휘두르고 볼 건 뻔한 일.


적당히 거리를 잡아 정강이나 낭심을 걷어차고


녀석이 주춤하는 사이에 망치를 든 손을 봉쇄해야한다.



뒷좌석 앞 좁은 공간에서


조심스레 녀석과의 거리를 재보며 대비책을 세우는 동안에도


녀석은 슬금슬금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간다!!!



기억 - ....?!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구두 끝으로 녀석의 정강이를 차려는 찰나


발에 묵직한 추가 걸린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남2 - .......헤에.



한 손으론 코피가 흘러나오는 코를 감싼 채


다른 손으로 내 바짓단을 움켜쥔 남자2.


아찔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흐르며


남자3이 내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빠직.=



얼굴을 가린 왼팔 너머에서


섬뜩한 촉감이 빠른 속도로 온 몸에 퍼져왔다.



기억 - .....끄윽?!!



난 짧은 신음을 흘리며


발목을 붙잡고 있는 남자2의 손목을 떨치고


다시 망치를 휘두르려는 남자3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장창!!=



뒤로 넘어지며 유리창에 처박힌 남자3.


마운트포지션을 차지한 난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질을 퍼부었다.



기억 - 우워! 우워! 워어어어!!



한창 분노의 40콤보를 넣으려는 순간에


뒤에서 내 목을 조이는 남자2의 팔.


난 힘껏 두 발로 뒷좌석을 차내며


녀석과 함께 앞좌석 쪽으로 쓰러졌다.



남2 - 으헉!



밑에 깔리며 쓰러진 남2는


숨이 턱 막힌 듯 내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었고


난 몸을 뒤로 틀며 팔꿈치로 녀석의 머리를 찍었다.



=꿍! 꾸웅!=



팔꿈치와 바닥 사이에 찡기는 두 번의 공격에


완전히 의식을 잃은 듯


툭 꺾이듯 떨어지는 녀석의 팔.


난 묵직하게 쳐지는 왼팔을 감싼 채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 - 하아.....하아..... 하아....



몽롱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봤을 때


흠칫거리며 물러서는 많은 사람들.



어느새 길가에 세워져 있는 버스.


사이렌을 번쩍이며 몰려드는 경찰차들.



민아야.... 오늘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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