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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8막 : 복수자 #33~#35

J.B.G |2006.01.13 11:15
조회 181 |추천 0

용국 황궁의 어전.

어전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것은 암살자가 예고한 날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런 두려운 자를 직접 맞으시겠다니 요.”

“그렇습니다. 전날의 맹장들이 칼을 미처 뽑기도 전에 그 사이를 헤집고 사람을 죽이는 자 입니다.”

“나는 그리 정했다 하지 않소.”

“폐하! 이것은 제국의 운명이 걸린 일입니다. 그런 자는 마땅히 군대가 맞아 참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단 한명의 암살자를 예를 갖추어 만나려 하시는 것입니까? 폐하께서 직접 나설 일이 아닙니다.”

“그리 정했다는데 어찌 일 말들이 많은가?”

 

그러자 한 신하가 장수 무비에게 물었다.

 

“무비 장군은 어찌 폐하의 뜻을 말리지 않고 가만히 계신 것입니까? 설마, 장군도 그자를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

“장군?”

 

그러자 선경이 말했다.

 

“부끄럽지만 그자의 살상영역은 우리보다 50보는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폐하와 50보 이내로만 있고 그 자에게 100보의 거리를 둔다면 우리가 전하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도 검술을 하시니 1합을 맞서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자의 진의를 안 다음에 참해도 늦지는 않을 듯 합니다.”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하시오. 폐하를 미끼로 도박을 하려 하다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논쟁은 계속 되었다. 대부분의 대신들은 병사를 모두 동원해서라도 암살자를 바로 주살하자는 것이었지만, 황제는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절대로 그리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었다.

 

“내게는 아직 그자를 막을 말이 있소. 그러니 내 뜻을 따라 주시오.”

“그 자를 막을 말이라니요? 폐하!”

 

적룡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 다시 나오셨습니다.”

“네?”

 

적룡의 이 선언은 그 곳에 모인 모든 자들을 다시 한번 크게 당황하게 하고 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암살자가 예고한 마지막 보름째 되는 날의 해가 밝았다.

 

황도의 대로.

적령은 신분을 가린 채 최후의 담판을 짓기 위해 궁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녀가 걷고 있는 대로는 무엇인가 사전준비가 되어 있는 듯 매우 적막했다. 그러한 살기 가득하고 건조한 인적이 사라진 황도의 대로를 적령은 홀로 복면으로 신분을 가린 채 귀절도를 허리에 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궁의 남문이 저 멀리 시야에 들어왔을 때 갑자기 그녀의 앞을 비가 막아 섰다. 그러나 비를 보자 그녀는 호통쳤다.

 

“물러서라!”

 

그녀는 비를 물리치고자 했으나 적령이 자신의 앞에서 멈추어 서자 비는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했다.

 

“정녕… 멈출 수는 없는 것입니까?”

“물러서라 했다. 물러서지 않으면 아무리 너라 해도 벨 것이다.”

“어머니!”

“닥쳐라! 누가 네 어미란 말이냐?”

“제가 형님의 몫까지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더 나아가시면 이제는 그 길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처음 이 길로 들어섰을 때 돌아설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아버님을 버리고 정녕 이대로 죽고자 하십니까?”

“그가 먼저… 날 버렸다.”

“어머니…”

 

비의 눈물과 함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비야…”

“…”

“너만은… 너의 길을 가거라! 나는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닐지라도 이 길을 가야만 한다.”

“그런다고… 이미 죽은 형님이 기뻐하겠습니까?”

“이제 와서 그런 논쟁은 무의미하다. 지금부터 나는 죽은 아들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로하고자 할 뿐이다.”

“어머니…”

“…고맙다. 이러 추한 나라도 어머니라 불러 주어서…”

“크흑~”

 

비는 마지막으로 간절히 그녀를 되돌리고 싶었으나, 사실 비에게는 그녀를 되돌릴 아무런 힘이 없었다.

 

‘결국, 이리 되고 마는가… 나는 어찌 이리 무익하단 말인가… 어찌…’

 

결국, 비는 적령을 멈추지 못했고, 적령은 비를 뒤로하고 남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녀는 수문장에게 명했다.

 

“죽고 싶지 않거든 날 막지 말아라!”

 

그러나 문을 지키는 자들은 애초부터 적령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황제가 이미 그녀의 앞길을 막지 말도록 어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적령은 남문을 지나 본 궁으로 곧장 이어지는 문들을 통과하여 곧 광장에 들어섰다.

 

‘이건…’

 

그녀가 들어선 거대한 본 궁의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금위군 병사들이 온통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긴 채 살기를 내 품고 있었으며, 그 자리에는 용의 모든 무, 무의 대신들이 대열을 갖추어 도열해 있었다.

 

‘거창한 환영식이로군…’

 

그럼에도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아갔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그녀는 제국의 일등공신만이 서 있을 수 있는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그곳부터는 위로 계단이 있었으며, 그 위에 황제와 황후 그리고 태자가 있었다.

 

‘무…’

 

그녀는 애써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우편에 무가 용화를 치켜들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살기를 내 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그를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창백한 얼굴의 무연이 나란히 서 있었다. 또한 좌편에는 무위와 선경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무장한 채 살기를 보내고 있었다.

 

‘무영…’

 

무위와 선경의 옆에는 의자에 힘겹게 앉아 있는 제상 무린과 차마 참담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서 있는 무영이 있었다.

 

‘오늘 모든 은원의 결말을 짖겠다. 반드시…’

 

그녀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황제 적룡이 어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오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에 금위군 대장이 놀라 칼을 뽑아 들고 그의 옆에 섰다. 그러자 황제는 그를 물리치며 말했다.

 

“물러서게!”

“폐하?”

“저가가 달려들려 했다면, 이미 그리 했을 것이네. 그런데도 저리 가만히 있는 것은 무엇 인가 할 이야기가 있음이 아닌가?”

“하지만…”

“물러서 있으라 하지 않았는가?”

 

적룡은 굳은 결의로서 어검을 든 채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 적령과 마주섰다. 그는 이미 적령의 영역 안에 있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단칼에 그의 목을 벨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적룡은 이에 개의치 않고 그녀에게 더욱 다가가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냐?”

“…”

 

적룡이 단도직입적으로 이리 물었으나 적령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자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적룡은 재차 물었다.

 

“대답해라!”

“…복수다.”

“…!”

 

그녀의 이 한마디에 광장은 침묵했다.

 

‘복수…라… 겨우 이런 정도의 작은 자란 말인가…?’

 

적룡은 커다란 대의를 저버린 그녀의 행동에 큰 실망감과 분노를 내비쳤다.

 

“전란의 시대에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인가의 남편을 죽이고, 누구인가의 아들을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너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시대에 그러한 은원으로 제국을 혼돈에 빠뜨린단 말이냐?”

“사연이 하도 하찮아서 실망하였느냐?”

“…”

“굳이 말하자면, 난 네가 말하는 이 평화로운 시대에 전혀 평안하지 못했다.”

“…!”

“사무치는 원한에 온 몸의 피가 끓어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내 가슴속에 사무친 원한만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힘의 원천이다. 오직 복수만이 내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도대체… 그토록 사무친 네 한이란…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는 평정심을 잃고, 날카롭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배신 당했다. 그리고… 내 아들은 남편의 벗에게… 죽임을 당했다…”

“뭣이?”

 

그녀의 가슴 저미도록 떨려 전해오는 이 음성에 적룡은 숨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너… 너는… 도대체… 누구냐?”

 

그러나 젹룡의 이 물음에 적령은 아무런 답해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역으로 적룡에게 물었다.

 

“먼저 내 물음에 답해라!”

“…?”

“나와 내 아들을 죽이라 명하였느냐?”

“뭣이?”

“대답해라!”

“너는… 도대체…”

 

사태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린의 피를 꺼꾸로 솟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다 못한 무린이 갑자기 온 몸을 떨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두 사람이 있는 중앙으로 나아오려다 그만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버지!”

“제상!”

 

무린의 이 행동으로 팽팽하게 흐르던 긴장감이 흐트러지며 갑자기 광장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제상은 자신을 부축하는 아들과 무린, 선경을 뿌리치고는 기어서까지 적령의 앞으로 나아오고 있었다.

 

“폐하는 무관하다!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모두 우리가 꾸민 일이다. 어서 날 죽여라! 그러면 모든 은원이 끝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 사태에 황제는 크게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척 노하고 있었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제상!”

“폐하! 소신을 죽여주십시오. 폐하!”

“제상…?”

 

무린은 그만 지나치게 피가 끓은 나머지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계속 고통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적령이 발 아래 엎드려 애원하고 있었다.

 

“모두 내 탓이니 나로 끝내주시게! 제발…”

“무린!”

 

황제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사태를 접하면서 틀림없이 큰 비밀이 숨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는 무린에게 노기를 드러내며 물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묻고 있질 않는가?”

“폐하…”

 

무린은 갑자기 온 몸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 차가운 바닥에 엎드리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흐느껴 울더니 마침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지난날… 군사 미란과 저는 장수 악귀, 정찬우, 요적란을 비롯하여 이서기, 자현룡, 함덕, 유란 등과 함께 한가지 모의를 하였습니다.”

“지금… 모의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그 모의라는 것이… 여기 있는 이자와 그 아들을 주살하는 것이었단 말인가?”

“소신을 죽여 주십시오. 폐하…”

“…어서… 고하여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미란 군사와 저는 갈등하는 장수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그날의 모의가 어명에 의한 것이라 했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와 군사 미란이 그들을 속이고 폐하를 속인 것이었습니다.”

 

제상의 이 고변에 황제는 대노하고 있었으며, 좌중은 모두 큰 충격에 빠져 들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그런 어리석은 일을 벌였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것은…”

 

무린은 더욱 더 깊이 통곡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곧 쓰러질 듯 위태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참회를 고하고 있었다.

 

“그것은… 대장군 적청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뭣이?”

 

마침내 제상의 입에서 나온 이 고변에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바로 적청 자신 바로 무(誣)였다.

 

‘이럴수가…’

 

그리고 그 순간… 적령은 얼굴을 가렸던 자신의 복면을 벗었다.

 

“…운…향…”

 

철기주의 이 떨리는 한마디와 함께 그가 들고 있던 용화가 쓰러졌다.

 

‘덜그럭!’

 

그리고… 무연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럴수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자들이 그 적막함과 분노와 허망함에 매몰되어 금방이라도 구토를 하며 쓰러질 듯인 떨고 있었다.

 

‘안돼… 이럴수는 없어…’

 

적룡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슴이 타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만큼은 지금 가장 냉담해져야 했다. 적어도 황제만은…

 

“…형수…님…”

 

적룡은 지금 떨리는 입으로 적령을 부르고 있었다.

 

“…오랜… 만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아직도 유일하게 냉정을 잃지 안은 단 한 사람 적령은 냉담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단 한치의 망설임 없이 얼음장 같았다.

 

“내 물음에 답해라! 나와 내 아들을 죽이라 명하였느냐?”

“…!”

 

너무나 냉담한 그녀의 이 물음에 제상 무린이 갑자기 광기를 일으키듯 몸을 크게 떨더니 품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폐하는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라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하며 그는 갑자기 스스로 칼을 입에 물고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아버님!”

“아버지!”

 

이러한 갑작스러운 사태에 무영과 무연이 달려들어 피를 분수처럼 쏟는 제상을 끌어안으며 그를 애타게 부르기 시작했다.

 

“…날… 용서해라…”

“아버님…”

“미안하다… 영아… 연아…”

“아버님~”

 

작은 용의 개국부터 제국의 통일을 지켜오던 제상 무린은 그렇게 허무하게 스스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버지~”

 

그러나 그러한 흐느낌과 통곡을 뒤로하고 적령은 또 다시 묻고 있었다.

 

“어서… 답해라!”

 

너무나도 잔인하게 적령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주변의 혼돈에서 홀로 독립하여 존재했다. 그녀는 다만 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절대로…’

 

그곳에 유일하게 가장 냉철한 이성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한 사람 황제 적룡의 생각은 오직 이것 뿐이었다. 그는 죽을 수 없었다. 그는 제국을 지켜야 했다.

 

“형수님.”

 

그녀를 부르며 그는 형수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데었다.

 

“폐하!”

“아니 됩니다!”

“폐하!”

 

그곳에 모인 모든 자들이 황제의 이러한 행동에 놀라고 탄식하고 분개했다. 신하들에게 적룡은 제국의 황제였으나, 그들의 앞에선 적령은 복수자이며 자객이며 역도일 뿐이었다.

 

“제게 시간을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

“태자가 아직 어려 이 제국을 바른 길로 이끌 수가 없습니다. 10년만 기다려 주신다면 태자에게 양위를 하고 이 목을 형수님께 내어놓겠습니다.”

 

적룡의 이 말에 그 곳에 모인 모든 자들은 더욱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 자리에 황후와 태자가 뛰어들었다. 황후는 황제의 옆에서 엎드려 그의 뜻을 따랐으나, 태자는 이에 불복하여 적룡의 어검을 빼어 들었다.

 

“금위군 대장은 무엇 하는가? 당장 이 자의 목을 베거라!”

 

태자는 매우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적룡이 이러한 태자의 검을 잡으며 아들을 막아 섰다.

 

“그만 두지 못하겠느냐?”

“아바마마!”

“그만두라 하였다!”

“소자는…”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아직은 네 때가 아니다. 지금은 목숨을 소중히 하거라.”

“…아버님…”

 

바로 그때 두 사람을 묵묵히 지켜보던 적령은 더욱 잔인한 말을 했다. 그녀는 지금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십 년을 기다릴 것이 무엇이 있느냐? 지금 여기에서 황후와 태자의 목을 내어놓으면 나는 이대로 물러나겠다.”

 

그녀의 이 참언에 그만 금위군 대장이 이를 묵과하지 못하고 칼을 빼어 들고 달려들었다.

 

“이런 참담한 자가 있나!”

“안돼!”

 

적룡은 황급히 금위군 대장을 말리려 했으나, 그 순간에 이미 금위군 대장은 그의 검을 채 한번도 휘둘러 보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 이럴수가…”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치닫던 바로 그때, 긴장하여 떨리는 손을 어찌하지 못하던 한 병사의 화살이 그 자리에 날아 들었다.

 

‘아…’

 

이미 활 시위를 떠난 화살은 어찌할 도리 없이 누군가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통제를 벗어난 단 하나의 화살은 무심하게도 태자를 행해 불을 품고 있었다.

 

“태자!”

 

무심하게 날아든 화살이 태자의 머리를 관통하려는 그 순간… 그러나 화살은 두 동강이 나면서 땅에 힘없이 떨어졌다.

 

‘이… 이건…’

 

귀절도… 그것이 화살을 막아 섰다.

 

‘형수님…’

 

적령이 다시 무신경하게 말했다.

 

“이미 20년을 넘게 기다렸다. 더 이상은 내가 견딜 수가 없구나. 오늘 여기서 모든 은원을 끝낼 것이다.”

“형수님…”

 

적령은 마침내 뽑았던 검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녀는 지금 죽을 하고 있었다.

 

“죽어라!”

 

순식간에 적령의 귀절도가 적룡의 목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챙!’

 

날카로운 쇠의 반발음과 함께 적령의 칼은 멈추어 서고 말았다.

 

“당신…”

 

그녀를 막아선 것은… 놀랍게도 다름아닌 자신의 남편 철기주였다.

 

“어… 어떻게… 당신이 나를… 막을 수가…”

 

이 놀라운 사태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적령은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귀신의 냉혹함마저 그만 산산이 깨어져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녀를 대하면서도 철기주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 죽어서는 안돼…”

“무…”

“난… 철기주다. 철기주…”

 

적령은 그만 정신이 산화되는 듯한 허무함을 느꼈다.

 

‘이럴수는 없어… 이럴수는…’

 

그 순간, 그녀는 심장이 폭발해 죽을 것만 같았다.

 

“으아아~”

 

그녀의 비통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거대한 광장은 기나긴 정적이 매몰되는 듯 했다.

 

“헉! 헉! 헉!”

 

거친 숨소리… 그녀의 곧 꺾일 것 같은 거친 숨소리가 한참 동안 끊이질 않는다.

 

“죽일 거야… 모두… 모두… 죽어버려…”

 

적령의 목소리는 계속 힘겹게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 즈음 철기주가 다시 말했다.

 

“10년 이야. 날 원망하며 살아 있어줘.”

“어째서…”

“그리고…”

 

지금 철기주도 온 힘을 다해 차마 새어 나오지 않는 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그때는… 그만 내 목숨도… 거두어줬으면 좋겠군… 이 못난 내 목숨도…”

“…!”

 

철기주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적령은 다시 정신이 번뜩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귀신 적령이 아닌 한 여인 운향으로서…

 

“이… 이 한심한 자식!”

 

철기주의 말을 듣고 있던 적령은 그만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그의 따귀를 힘껏 때렸다. 그리고 한을 담아 한껏 소리를 질렀다.

 

“또 다시… 또 다시… 한 여인과 아이를 가슴 아프게 하겠다는 것이냐? 이 멍청한 자식!”

 

그녀의 이 호통과 함께 긴 침묵이 흘렀다. 기나긴 침묵이…

 

‘도대체,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젠장…’

 

적령은 갑자기 한없는 슬픔이 밀려와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슬펐다. 자기 자신에게…

 

‘빌어먹을…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 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항상 나는 이 모양이라고… 나쁜 자식…’

 

적막과 함께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긴 침묵의 그 공황상태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또 다시 깨져 버렸다. 그것은 그 침묵의 순간에 한 병사의 외침이 적막을 깨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봉화다!”

 

이 단 한마디 외침에 모든 적막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봉화가 올랐다!”

“외침이다!”

 

궁내는 순식간에 거대한 공포에 잠식되어 술렁거렸다. 황궁의 광장에 모인 모든 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용이 동요하고 있었다.

 

‘아… 결국, 이리 될 운명인가…’

 

적령은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려왔다.

 

‘난, 또 다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인가… 남편으로 인하여…’

 

이러한 한스러움과 함께 그녀의 떨림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결국… 또 다시 아들 곁으로 가지 못하겠구나…’

 

결국, 적령은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선언했다.

 

“명심해라! 10년 후 너희들의 목숨은 내 것이다. 10년 후에 보자! 그 전에는 절대로 죽지 말거라! 절대로…”

 

이리 말하며 그녀는 그 참담한 사건에서 물러서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적령은 무린의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무연과 무영에게 말했다.

 

“내 목숨은 10년 후에나 내어주어야 할 것 같다. 미안하다.”

 

무연과 무영에게는 이 마지막 한마디만을 남긴 채, 그녀는 그렇게 또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무에게서… 또.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미안하다. 운향… 그리고… 아들아… 이 못난 날 원망해라… 날…’

 

철기주 아니 무는 지금 무표정하게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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