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운전을 한다.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라디오 볼륨을 줄이려 했다.
그 때 그 노래가 나왔다.
<그 여자>
사무실에 앉아서
파티션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몰래 MP3플레이어의 메뉴를
라디오로 바꾸고
기다린다.
오늘은 들을 수가 있을까.
<그 남자>
CD나 디지털로 돌리는 소리가 아니였다.
LP판만의 약간은 거친 잡음이 섞인
부드러운 아니 커피위에서 살며시 녹아가는
머쉬멜로우 같은 그런 감미로운 음악이 나왔다.
<그 여자>
12번째로 이멜이나, 문자나, 팩스가 아닌
손수 엽서를 보냈다.
꼭 레코드판으로 틀어달라고
그랬다.
오래전 이 노래를 나에게 일러주었던 그가 떠올랐다.
<그 남자>
차를 길 한편으로 세웠다.
시간이 아까워졌다.
언제 어디서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지금 듣고 있다.
마치 그때처럼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는
아주 오래 전
전공 수업 도망쳐서
그녀의 자취방에서 함께 들었던 그 노래.
<그 여자>
그와 헤어질 때,
그 레코드판을 버린 것은 내 평생 가장 큰 실수였다고
늘 생각했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전개로 흘러버리는 연애 공식이
자리잡힌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아무생각없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던
그 때가 그리울때가 있다.
그 때를
조금 더 오래 내 옆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그런 좋은 열쇠였는데.
내 이기심에
내가 더 많이 편해지고자
그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바보같이
<그 남자>
또다시
전화가 울린다.
나는 배터리를 뺐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그녀와 헤어진 후
정말로 다시는 듣지 않겠다고
맹새했던 내가
바보같았다.
이렇게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어오기 시작하는데,
너무 오래 잊었었다.
내가 어떻게
가슴 뜨겁게 누군가를 사랑하였는지.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 여자>
노래가 끝나고
DJ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 레코드 판
어떤 가게에서 몇 장 안 남은 것
힘들게 구해서 틀었다고,
열성팬을 위해서
그 가게 바로 회사 근처다.
부장님께
외근나간다고 뻥치고
얼굴에 한바닥 웃음을 숨기고
뛰쳐나왔다.
순수했던 그날을
잠깐이지만 나에게
돌려줄 것 같은
마법의 도구를 찾으러 가는 길이였다.
<그 남자>
전화를 걸었다.
약속을 바꾸고
서둘러
자동차 엑셀레이터에 힘을 싣는다.
이 시간이라면
그 레코드점까지 금방 갈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달콤했던
그래서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았던
그 시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