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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 16번째 이야기. LP RECORD

안정호 |2006.01.14 22:37
조회 196 |추천 0


<그 남자>

 

운전을 한다.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라디오 볼륨을 줄이려 했다.

그 때 그 노래가 나왔다.

 

<그 여자>

 

사무실에 앉아서

파티션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몰래 MP3플레이어의 메뉴를

라디오로 바꾸고

기다린다.

오늘은 들을 수가 있을까.

 

<그 남자>

 

CD나 디지털로 돌리는 소리가 아니였다.

LP판만의 약간은 거친 잡음이 섞인

부드러운 아니 커피위에서 살며시 녹아가는

머쉬멜로우 같은 그런 감미로운 음악이 나왔다.

 

<그 여자>

 

12번째로 이멜이나, 문자나, 팩스가 아닌

손수 엽서를 보냈다.

꼭 레코드판으로 틀어달라고

 

그랬다.

오래전 이 노래를 나에게 일러주었던 그가 떠올랐다.

 

<그 남자>

 

차를 길 한편으로 세웠다.

시간이 아까워졌다.

언제 어디서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지금 듣고 있다.

마치 그때처럼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는

아주 오래 전

전공 수업 도망쳐서

그녀의 자취방에서 함께 들었던 그 노래.

 

<그 여자>

 

그와 헤어질 때,

그 레코드판을 버린 것은 내 평생 가장 큰 실수였다고

늘 생각했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전개로 흘러버리는 연애 공식이

자리잡힌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아무생각없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던

그 때가 그리울때가 있다.

 

그 때를

조금 더 오래 내 옆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그런 좋은 열쇠였는데.

내 이기심에

내가 더 많이 편해지고자

그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바보같이

 

<그 남자>

 

또다시

전화가 울린다.

나는 배터리를 뺐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그녀와 헤어진 후

정말로 다시는 듣지 않겠다고

맹새했던 내가

바보같았다.

 

이렇게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어오기 시작하는데,

 

너무 오래 잊었었다.

내가 어떻게

가슴 뜨겁게 누군가를 사랑하였는지.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 여자>

 

노래가 끝나고

DJ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 레코드 판

어떤 가게에서 몇 장 안 남은 것

힘들게 구해서 틀었다고,

열성팬을 위해서

 

그 가게 바로 회사 근처다.

 

부장님께

외근나간다고 뻥치고

얼굴에 한바닥 웃음을 숨기고

뛰쳐나왔다.

 

순수했던 그날을

잠깐이지만 나에게

돌려줄 것 같은

마법의 도구를 찾으러 가는 길이였다.

 

<그 남자>

 

전화를 걸었다.

약속을 바꾸고

서둘러

자동차 엑셀레이터에 힘을 싣는다.

 

이 시간이라면

그 레코드점까지 금방 갈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달콤했던

그래서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았던

그 시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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