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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도 없는 고민

이십대 후반.

저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하다 집 나왔습니다.

조실부모에 형제들 시집장가들 가서 남의 식구랑 부데끼며 사는게 쉽질 않아서요.

상처를 받고만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에게 제가 복수를 하는 셈인지...

엄청난 상처를 받은 끝에 안보고 사는게 길지 않은 인생 서로가 조금이나마 행복하려고

그냥 나와 지내면서 연락 한번 안했습니다.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모대학 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전 직장인.

작년 중순부터 이 남자와 심각한 권태기로 심하게 괴로워하다 결국 헤어지자 수도 없이 말했지만 받아 들이질 않아요. 그래서 현재 전 헤어진 상태 그 사람은 진행중인 애매모호한 상황에 있습니다.

인격적으로도 많이 괴롭히고 연락도 끊어 보고 도망도 다녀봤지만 그 사람 저한테 자기 인생 올인 했답니다. 거기다 제가 먹고는 살아야 하니 도망을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구요...

 

이런 와중에 친구들 하나둘 시집가면서 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봅니다.

결혼식에 꼭꼭 참석시키더군요. 제가 소개팅이나 맞선 같은거 안보거든요.

그런거... 조건이 되는 사람이나 보는거죠. 전 심하게 쳐지니까요.

식장에 엮어놓은 인간관계 다 풀어놓을테니 괜챦은 사람 눈에 띄면 말만 하라더군요. 고마워라~ ㅎㅎ

그렇지만 더이상 자존심에 생채기 내가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남한테 피해 안끼치니까요.

 

제 형편에 잘난 남자친구 언감생심. 호강에 받혔구나 싶으시겠지만.

제가 그 사람한테 많이 질리고 지쳤나봅니다. 더 이상 보는것 조차 힘이 드니까요.

십년넘게 알고 지내고 사귀기도 얼추 그정도 된 사인데.

그 사람 학생(물론 지금도 학생이긴 하지만 지금은 연구비라도 받으니...)일 때 저 아르바이트하고

직장다니면서 일해 번돈으로 데이트 비용에 용돈까지 챙겨 줬었구요. 친구들이랑 술마시면 술값도 내줬구요. 물론 본인도 돈 좀 만지면서는 그거 모른척은 안하더라구요. 있는 돈 탈탈털어 크고 작은 선물도 곧잘해 주더군요. 근데 제가 워낙 사치품을 별로 안좋아해서... 먹을걸로 많이 받았습니다. ㅎㅎ

 

그 부모님들... 어지간히 별나세요. 십년가까이... 웬 행사는 그리 많으신지... 제 부모님껜 한번도 해드린적 없는(이미 제가 돈벌땐 존재하지 않은 분들이시니깐..) 결혼 기념선물, 어버이날 선물, 명절선물, 각자 생신선물... 안챙겨드린거 없어 이젠 뭘해드려야 하나하는 고민까지도 해봤습니다. 불효녀중에 상불효녀죠. 지 부모 제사도 참석 않는 년이...

 

첨엔 그 사람이랑 저랑 둘이 있는게 싫으신지 데이트 하는 걸 못마땅해 하시더군요.

형제가 많지 않은 집에 제가 첫 여자친구이고 해서인지 둘이 만나고 있으면 시간 단위로 전화를 하세요. 집에 와서 놀라고... 눈치 보여서 맘 불편해도 결국 집에가서 놀구요. 밥 얻어 먹고, 온 식구들 같이 먹은 밥상 설겆이 혼자 다하고 집에 오고. 집 가까우니깐 차로 바래다주는 것도 가끔 못마땅해 하시고...나도 피곤한데... 꼭꼭 버스태워 보내는 남자친구도 야속하고...

 

주말 그렇게 보내고 나면 일주일이 또 피곤하고... 그래도 중년의 부모는 이제 두분이 얼굴 마주보시는것도 지겹고 적적하시니 늘상 만만한 저희를 불러다 놓고 이런 저런 농담 따먹기로 주말을 보내곤 하셨지요. 전 항상 대답만 하는 형편이고 그러다 보니 사람 자주보면 못할 말도 가끔 하게되고...

그리고 꼭 주말엔 무슨 할일이 그리도 많으신지, 천성이 부지런하신 분들이시라, 김장에 철철마다 집안 크고작은 공사에 도배에... ㅠㅠ 형들은 귀챦아서 다들 나가 버리시고... 어휴~

이런저런 이유도 그분들 뵙는것도 피곤한데 남자친구는 어느덧 그런 데이트 패턴이 익숙하고 또 편하니깐. 몇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친구들 래프팅간다 스키장 간다 할때 맨날 집구석에서... ㅎㅎㅎ

매년 저만의 행사인 시골행(벌초)도 전 혼자 가고 싶지만 남자친구 체면에 혼자 보낼 순 없고 부모님 눈치보여 또 둘이 간다고도 못하고 전 남한테 제 그런 이면 보이는것도 싫은데 친구들 줄줄 달고 가거나 거짓말해서 가곤했구요. 산소가서 펑펑 울기도 하고 응어리도 좀 풀고 씩씩하게 내려오고 싶은데 막상 갈때되면 남자친구 본인도 귀챦아라 하고... 참나...

 

그 남자랑 헤어지자 독하게 맘먹고 나니 결혼이고 뭐고 다 싫더라구요.

그래서 인생 뭐있냐 싶어 이사람 저사람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친구 결혼식 몇군데가고 모임도 나가고 그러다 보니 친구 통해서 어떤 사람 연락을 받게 됐어요. 밥먹는 자리에서 얼굴 잠깐 본게 다인데...

 

지방 사람이고 지방에 있는데 운 좋게도 평범한 여자들이 좋아라 할 조건의 사람이네요. 서글서글한 외모에 연봉 좋기로 유명한 기업체의 성실하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 평범한 집안의 사람이요. 미래 설계 또한 제가 원하는 청사진이더라구요. 일단 이래저래 말이 통하니 나쁜 감정은 없더라구요.

새사람 만나는거 좀 꺼리는 성격인데도...

 

제 성격 제 친구통해 대충 캐치하고 혹시 불편할까봐 전화전에 꼭꼭 문자넣고 연락 해도 되느냐는 확인 받고 전화 넣어주는 그 분의 세심한 배려가 참 맘 편하게 다가 옵니다.

제가 사석에선 유쾌한 편인데 전화상으론 엄청 무뚝뚝해지고 별 말이 없어져서 당사자들이 대체로 싫어하나보다 싶어서 통화 세번이상 했다 싶으면 알아서들 연락들 안하거든요.

물론 전 결혼 같은거 생각 없다고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말해 버렸어요. 

근데도 꾸준히 연락을 주시네요. 이분... 참...  

 

근데 난 이미 헤어졌는데... 왜 이 두사람한테 죄책감이 드는걸까요... ㅠㅠ

물론 결혼 생각도 없고 둘 다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없는데

또 한편으론 굳이 막을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이기적인 생각까지 불쑥불쑥 들어 힘이 듭니다.

 

전 남자친구는 너무 잘 아는 사이에다가 이미 십년가까이 제게 세뇌아닌 세뇌도 당해 있는 상태라 그런지 의식 구조들이 제게 꼭 들어 맞아가고 있는 상황이었구요. 지금은 헤어지고 난리치니 그 사람 본인 권리고 뭐고 다 포기한 상태입니다. 제가 원한다면 부담스러워하는 부모님 피해 멀리 외국행까지도 생각하는 상태구요.

 

제가 절대 네 부모님께 더이상 효도할 생각이 없다는 말까지 해버렸거든요. 물론 결혼하면 또 눈치보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겠죠. 전 그게 너무 두려워요. 제 스트레쓰... 힘든 결혼생활이 눈에 보이는것 같아 이사람은 절대 안될꺼란 생각 뿐이예요.

 

새로운 사람이라고 다를 것이 없겠지만...

부모님과 알콩달콩 살아본 기억이 없는 저로는 포용력 없는 어르신을 모시기가 무척이나 힘이듭니다. 

오죽하면 어려서부터 결혼은 꼭 고아랑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어그러지고 보니 독신을 고집할 밖에 방법이 없어보이네요.

부모없는 사람은... 이래저래 사랑도 쉽지 않네요. 물론 제 생각에도 개선의 여지는 많지만...

 

글이 길어 죄송합니다. 매년 명절마저 뻘쭘하게 그 사람 집에서 보냈는데...

음식돕고 제사 가시면 청소하고 돌아 오시면 맛있는 음식 나눠먹고 사람 냄새 맡고 앉았다가도

친지분들 오시면 앉을자리 설자리 구분 못해 방황하느라 어찌나 힘들던지... ㅎㅎ

제가 진정 원한건 그런 부산스런 명절이 아니라 외롭더라도 혼자 있는 편한 명절이었는데 말이죠.

그와 헤어지니 한가로운 연휴라 이생각 저생각 끝에 몇자 적어 봅니다.

악플은... 조금만 부드럽게 해 주세요. 제가 요즘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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